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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장편소설(41) -하이트 맥주 이야기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5.06.28|조회수298 목록 댓글 0

이틀 후 K교수는 야간 강의가 끝난 후에 미녀식당을 방문하였다. 미녀식당은 점심 시간에는 붐벼도 막상 저녁 시간에는 손님이 별로 없다. 미스K를 보려고 점심시간에는 S대 교수들이 많이 오지만 저녁 5시만 되면 교수들은 서울에 있는 집에 가기 바쁘다. 저녁 8시가 넘으면 미녀식당은 대체로 한산하다. 미녀식당에서는 간단한 차와 음류수를 팔지만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서는 적당하지 않다. 야간 강의가 끝나면 930분 쯤 되고, K교수가 그 시간에 방문하면 대개는 미스K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빈 식당을 지키고 있다. 그날도 K교수가 방문하자 미스K는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듯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스파게티 팔아서 부자가 되려면 아무래도 식당을 알리는 광고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하네요.”

그래서 이왕 제가 미녀식당의 홍보이사를 맡았기 때문에 그동안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였습니다.”

무슨 정보를요?”

 

학교 후문으로 나오면 슈퍼가 하나 있고, 그 앞에 주간 광고신문인 벼룩시장이 무인 전시대에 진열되어 있다. 아무나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면 된다. 거기에는 구직광고, 구인광고, 매물광고, 전세광고, 차량광고 등등 50여 쪽에 가득 상거래 광고가 실려 있다. K교수는 후문 쪽으로 나오면서 벼룩시장 한 부를 가져왔다. K교수는 가방에서 벼룩시장을 꺼내어 미스K에게 전해주었다.

 

이 지역에서 발행되는 광고 신문입니다. 식당 선전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참고로 하세요.”

, 벼룩시장이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신문 보급소에 문의를 해 보았습니다. 이 지역은 모든 신문을 봉담읍에 있는 조선일보 보급소 한 곳에서 공급하는데, 모두 3700부가 나간답니다. 선전지를 만들어 끼워서 이 지역에 돌리려면 1부에 10원씩 37,000원만 내면 된답니다.”

가격이 별로 비싸지는 않네요.”

선전지 광고문은 전문가에게 맡겨 보세요. 제 머리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네요. 그리고 조선일보 보급소 전화번호가 여기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 교수님이 신경을 많이 써 주셨군요. 너무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 . . ”

이렇게 좋은 정보를 주셨는데, 제가 맥주 한 잔 대접해도 되겠죠?”

미녀가 사는 맥주라면 거절할 남자가 누가 있겠어요?”

 

두 사람은 함께 베란다로 나갔다.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대는 베란다가 실내보다 분위기가 좋았다. 두 개의 술잔이 가볍게 쨍 부딪혔다. 때마침 달은 보름달이었다. 달빛이 교교하게 쏟아져 내렸다. 밤 공기는 훈훈하였다.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에서 발산되는 신선한 기운이 두 사람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두 사람이 마신 술은 하이트 맥주이었다. K교수는 하이트 맥주의 상표를 보더니 하이트 맥주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였다.

 

“1991314일 화이트 데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화이트 데이를 모른다고요? 214일은 발렌타인 데이라고 해서 여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코렛을 선물한다는 것은 아시죠? 그 후 한 달이 지나 314일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한다는 화이트 데이입니다. 사실 영어로 부르는 이런 날들이 모두 서양에서 건너왔는데 백화점의 상술과 결합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차츰 퍼지게 되었지요. 어쨌든, 314일에 경상북도 구미에 있는 한 전자회사에서 페놀이라는 화학물질이 8시간 동안 30톤이나 누출되었답니다. 처음에 신문에서는 페놀을 몰래 방류했다고 보도하였는데,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페놀은 전자회사에서 회로기판을 만드는 비싼 원료이기 때문에 몰래 방류할 바보는 없지요. 사고로 비싼 원료가 누출된 것이지요. 페놀은 액체인데, 석탄에서 추출하는 물질로 처음에는 소독약으로 사용했습니다. 페놀의 다른 이름은 석탄산이랍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합성수지, 그러니까 플라스틱을 만드는 원료로 많이 사용합니다. 페놀이 인근 하천에 흘러들고 하천은 아래로 흘러 낙동강과 합류했습니다.

 

합류 지점 바로 아래에 대구시에서 운영하는 상수도 취수장이 있었습니다. 페놀 섞인 물이 취수장을 거쳐 정수장으로 갔습니다. 정수장에서는 수돗물을 정수하는 최종 단계에서 염소 소독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페놀이 염소를 만나면 클로로페놀이라는 화학물질이 생기는데 고약한 냄새가 나는 물질이랍니다. 페놀로 오염된 수돗물이 수도관을 타고서 대구시민에게 공급되자 커다란 소동이 벌어졌답니다. 수돗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시민들이 대구시청에 전화를 했습니다. 신고를 접한 대구시 관계자는 정수장에 이 사실을 알렸고, 정수장에서는 소독약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염소 소독량을 늘렸지요.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어요. 화학반응이 더욱 활발해지고, 수돗물에서는 악취가 더 심해지고 말았지요. 결국 취수가 중단되고 원인을 조사하기에 이르렀답니다. 며칠 지나서 구미에 있는 두산그룹 계열 전자회사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을 밝혀 내었지요.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페놀로 오염된 수돗물을 공급받은 대구시민은 무려 170만 명이나 되었답니다. 시민들은 사실이 밝혀지자 난리가 났지요. 대구시에 항의하고, 두산그룹에 항의 방문하고, 일부 임산부들은 자기가 임신한 아기가 페놀로 오염된 물을 마셨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걱정이 되어서 아기를 유산하기까지 하고. 환경단체에서는 서울에 있는 두산그룹의 본사 앞에서 OB맥주를 땅에 쏟아 부으며 데모를 하고, 두산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하여튼 온 나라가 난리가 났어요. 저도 그때에 불매운동에 동참하여 두산에서 나오는 마주앙 포도주 대신 진로회사에서 나오는 붉은 색깔의 진로 포도주로 바꾸었지요. 그런데 확실히 맛은 마주앙이 낫더라고요. 결국 전자회사의 담당자가 구속되고, 두산그룹은 회장이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대구시에는 수질개선을 위한 기부금으로 50억을 내겠다고 약속을 하고 한참 난리를 떨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그러듯이 몇 달이 지나 불매운동이 시들해지고 페놀오염사건은 신문에서 사라졌지요.“

 

"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저도 기억이 나는 것 같아요.”

미스K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K교수를 바라보며 경청하였다. 달빛이 환히 비치는 늦은 밤, 미녀식당의 베란다에서, K교수는 미스K를 바라보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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