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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장편소설(54) - 화수 조영남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5.07.24|조회수218 목록 댓글 0

조영남은 음악대학을 다녔고 가수로서 알려져 있지만,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그가 쓴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책은 미술에 대한 입문서로서 매우 알기 쉽게 역사적인 흐름을 따라 현대 미술을 설명한다. 그 책에서 조영남은 미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미술이란 우리의 두 눈을 즐겁게 하거나 언짢게 하는 모든 것, 즉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다.”

 

자연과학을 공부한 K교수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미술의 정의는 너무 광의의 정의같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미술이라면 미술의 특징에 대해서 별로 말해 주는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모든이라는 형용사는 함부로 가져다 붙일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미술이라면 이 세상에 미술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미술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별로 쓸모가 없는 정의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눈을 언짢게 하는 것도 미술이라면, 이 또한 세상 사람의 통념을 벗어난다.

 

음악과 미술 두 가지를 잘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사)교수는 한때 유명 가수로 이름을 날렸는데, 프랑스 파리에 유학하여 10년 동안 그림 공부를 한 후에 미대 교수가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었다. 번역곡인 딜라일라를 불러서 단번에 유명 가수 대열에 끼게 된 조영남도 음악과 미술을 동시에 잘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조영남은 스스로 자신을 화수(화가+가수)라고 말한다. 조영남은 미술과 음악의 같은 점과 차이점을 매우 명쾌하게 설명한다.

 

미술과 음악에 차이가 있다면 눈과 귀의 차이이다. 미술이 눈을 위한 기쁨조라면, 음악은 귀를 위한 기쁨조 같은 것이다. 나는 음악을 먼저 공부했기 때문에 미술에 관한 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음악과 미술 두 가지를 다 해보면, 그 두 가지가 일란성 쌍둥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음악이나 미술이나 둘 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캔버스 위에 유화 물감으로 옛날 초가집이 있는 풍경화를 그릴 때의 감정이나, 윤용하의 '보리밭'을 내 목소리로 부를 때의 감정은 결국 동일하다. 초가집을 그릴 때도 기분이 아련하고 몽롱해져서 어린 시절 추억에 젖게 되고 보리밭을 노래할 때도 역시 기분이 아련하고 몽롱해져서 추억에 젖어들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쾌적해진다. 내가 노래를 부를 때나 그림을 그릴 때 이러한 감정에 젖게 되면 신기하게도 나의 노래를 듣거나 나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그것이 예술의 기능이다.“

 

미술은 완전 자유다. 맘대로 공상할 수가 있다. 나는 내가 오히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서 아무거나 막 그려낼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나왔으면 결코 화투짝 같은 걸 그릴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교육 없이도 미술은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된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나 우리 동네 이발소 아저씨도 아무 때나 얼마든지 화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수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만일 당신이 누구한테 나는 가수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면 질문이 꼭 들어오게 되어 있다. 히트곡이 뭐냐, 언제 열린 음악회에 나왔냐, 트로트냐 발라드냐, CD를 몇 장 냈느냐, 등등. 가수는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한다. 대답을 못하면 결국 당신은 가수가 아닌 게 들통 나고 망신만 당하게 된다.

 

미술은 다르다. 당신이 자칭 화가라고 했을 경우에도 그토록 까탈스러운 질문은 돌아오지 않는다. ‘무슨 그림을 그리냐는 질문이 나왔을 경우 동양화, 서양화 중에 아무거나 둘러대면 되고, 수채화를 그린다고 해도 되고, 정물화나 풍경화를 그린다고 해도 된다. ‘어디서 전시 했냐고 물으면 그때는 지금 전시 준비 중이라고 대답하면 된다. 실제로 장안에는 그냥 전시 준비만 십 수년째 하고 있는 화가가 수백 수천 명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 한 명이 더 늘어난다고 해서 한국 미술계에 차질이 생기는 건 절대 아니다. 하늘에 걸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무나 화가가 될 수 있다. 단 유명한 화가가 되는 건 보장 못한다.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미녀가 없는 미녀식당에서 미술과 음악에 대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아)교수가 계산을 하고 식당 문을 나와서 차로 가는데, 마침 미스K가 들어오다가 일행과 마주쳤다.

아니, 교수님, 왜 벌써 가세요?

앙꼬 없는 찐빵만 먹다가 이제 가려고요.”

아이, 미안해요. 서울에서 일 좀 보느라고 늦었습니다.”

“K사장님, 이 분은 아시죠? 우리 학교를 빛내주는 간판 스타 사)교수님입니다.”

그럼은요. 잘 알지요. 사)교수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10년 전에 사)교수님의 청담동 화실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 그래요. 반갑습니다.”

다음에 꼭 한번 오세요.”

,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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