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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장편소설(57) - 임동창은 누구인가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5.07.30|조회수221 목록 댓글 0

임동창은 1956년에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첫 음악 시간에 여선생님이 친 피아노 소리가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 왔다. 피아노의 신내림이다. 그날 당장 헌책방에서 바이엘 교본 한 권을 사들고 교회로 갔다. 피아노가 있는 곳은 교회뿐이었으므로. 수업도 팽개치고 잘나가던 짱(?)의 생활도 접고 미친 듯 피아노에 빠져 들었다. 그러다 가난한 어머니를 졸라 수강료 삼천원을 들고 이길환 선생을 찾아 갔다. 그의 재능을 인정한 선생님이 자기 집에서 숙식을 하며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임동창은 하루 16시간 이상 피아노를 쳤다. 미친 듯이 피아노를 쳤다. 어느 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피아노를 치는데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더란다. 이 무슨 조화? 도통? 그날 이후 독주회를 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1 때는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다. 피아노만 쳐댔으니 학교 성적은 ''''가 전부. 그러나 서류상으로 졸업은 했다. 어느 날 괘종시계가 땡땡땡 세 번을 치길래 "선생님 세시예요?"라고 물으니 "야 이놈아 열두시다."라는 답을 들었다. 그는 분명 세 번을 들었는데. 그 후 "무의식이란 무엇일까? 자아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피아노는 무슨 피아노냐?"라며 피아노를 끊고서 엉뚱하게도 출가를 한다.

 

열두 번의 시계 종소리 중 아홉 번은 무의식 상태에서 듣고 세 번은 의식 상태에서 들은 것. 이것은 뭘까? 출가해서 보림이라는 법명으로 절에서 수행 할 때 그가 끌어안은 화두는 이 뭐꼬였다. 이뭐꼬 화두로 끙끙거리다가 군에 입대하기 위하여 하산했다. 군에서도 이 화두를 풀고자 몸부림치다 탈영하고 감옥 생활까지 경험했다. 제대 후 음악학원의 강사가 되었다. 고졸의 그에게 음대생이 수강하고 피아니스트가 곡 해석을 부탁하러 오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임동창은 잘 나갔다. 누가 피아노 잘 치는 방법을 물으면 "드뷔시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자신이 피아노가 되라"고 큰 소리치고. 그야말로 기고만장. 그러다 아는 교수의 권유로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다. 서울시립대 작곡과 수석 합격. 그의 나이 29세 때다. 1학년 때부터 조교 같은 학생이었다. 교수님의 작품 발표회의 반주는 도맡아 하고.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만나 죽이 맞아서 판을 자주 벌렸다. 이름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임동창은 덴마크 국제 예술 대회에서 7시간 즉흥 연주를 하기도 했다. 무대에 서면 음악적 카리스마로 관중을 휘어잡고 끌고 가다가 갑자기 덩실덩실 춤을 추며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피아노를 치다가 갑자기 비내리는 호남선등 뽕짝을 부르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그는 피아노를 개량하여 우리 음악 연주에 적합한 '피앗고'를 직접 만들었다. 그가 1994년에 사물놀이패에서 태평소를 불던 장사익을 발굴하였고, 지금 장사익은 잘 나가는 국민가수가 되었다. 장사익 CD 1(찔레꽃)에 나오는 피아노 반주는 임동창의 것이다. 대금의 명인 이생강 선생과 함께 작업하여 공감이라는 제목의 CD를 내기도 했다

 

임동창은 마음대로 산다. 그는 자유인으로 산다. 누가 뭐라든 자기 식으로 놀면서 산다. 그가 쓴 책의 제목은 <노는 사람, 임동창>이다. 마흔이 넘어 늦게 결혼한 고운 마누라와 단 둘이 산다. 부인은 한복 디자이너 또는 문화 디자이너로 불리는 보자기 예술가 이효재이다. 그녀는 살림 잘하고 집안 잘 꾸미고 음식 솜씨 좋고 바느질 잘하기로 대한민국에서 소문이 난 사람이다. 그런데 임동창이 청혼할 때에 그가 내건 세가지 조건이 상식을 초월하여 희한하다. 첫째, 나는 내 맘대로 살테니 당신도 당신 마음대로 살라. 둘째, 내가 달라고 할 때 시원한 물을 달라. 셋째, 나는 피아노로 우리 선율을 정리할 때까지 돈을 안 벌겠다. 이러한 엉뚱한 프로포즈를 받고도 이효재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이효재의 말을 들어보자.


"남들은 그를 괴팍하고 센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여린 면이 있어요. '괴짜다, 천재다'는 평가를 들으며 외로움과 고독 속에 살았을 그가 내게는 보였지요. 또 그이는 무엇보다 돈 앞에 당당할 줄 아는 사람이고,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이에요. 아, 내가 존경할 수 있겠다, 내가 머리칼을 잘라 술을 받아다 주어도 좋은 사람이겠다, 그래서 결혼했지요."


임동창 부부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바로 앞집에서 산다. 안 맞을 것 같으면서도 희한하게 잘 맞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KBS 인간극장에도 나왔다임동창, 그가 추구하는 음악은 무엇일까? 그는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18~19세기의 베토벤이나 모짜르트를 콩나물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해야 하나?"라고 묻는다. 음악의 최고봉 바흐를 넘어 국악을 바탕으로 하는 세계적인 음악을 내놓겠다고 큰 소리 친다. 순수하고 깨끗한 열정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 할 때 사람은 아름답고 멋있어 보인다는데, 그는 그런 사람이다.

 

K교수가 임동창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으니, 세 사람 모두 흥미롭게 경청하였다.

원래 우리나라에 3대 기인이 있었습니다. 천상병 시인, 중광 스님, 그리고 이외수 작가. 그런데 두 사람은 돌아가시고 이외수 작가만 남았지요. 저는 조영남과 임동창을 대신 넣어 이외수와 함께 현존하는 3대 기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듯하네요.”

그런데 동양 음악은 서양 음악과 비교해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피아노를 전공한 파)교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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