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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장편소설(64) - 기다리는 행복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5.08.14|조회수157 목록 댓글 0

 

대추꽃 이후에 꽃이 피는 나무는 배롱나무이다. 배롱나무는 나무 줄기가 매끄럽다.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르는데, 여름 내내 백일 동안 작은 가지들 끝 쪽에 작고 붉은 꽃이 계속해서 핀다. (배롱나무는 원래 남도 지방에서만 자라는데,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높아져 중부 지방에서도 관상수로 많이 심는다. S대 학생회관 오른 쪽 앞 정원에 작은 배롱나무 세 그루가 심어져 있다.)

 

학기말 고사 시험기간 중인 어느 날 오후 3시 경에 미스KK교수의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 왔다. 안 바쁘시면 커피 마시러 오시라고. 그러나 K교수는 330분에 시험감독이 있어서 못 간다고 미스K의 초대를 거절했다. 한 시간 시험감독이 끝나고서 440분에 K교수는 미녀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미스K는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하는 소리는 들리는데, 나타나지는 않았다. 베란다로 나가서 자리를 잡았다. 알바 종업원이 와서 무얼 주문하실까요 물었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이제 계절은 여름이 시작되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하나를 천천히 끝까지 먹었다. 채점을 끝내고 성적을 공시하면 이제 여름방학이 된다. 방학 때는 무얼 할까? 미스K는 방학이 되면 어떻게 될까?

 

무성한 나무잎 사이로 바람이 살랑대며 지나갔다. 정남을 지난 해는 서쪽에 있는 저수지 쪽으로 기울어갔다. 한낮의 더운 기운은 수그러들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 갔다. 미스K는 홀에 나타나지 않고 주방에서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저쪽 숲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잘 관찰해 보면 새도 두 마리가 함께 다닌다. 신기하다. 사람이 남녀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묘하고 신기한 일이다. 종업원을 불러서 허브차를 한 잔 주문했다. 캐모마일 허브차는 뜨거워서 천천히 마셨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미스K는 여전히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K교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은 지루하지만, 기다리면서 K교수는 묘한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기다려지는 사람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기다리는 시간은 매우 느리게 흘러갔다. 

 

베란다에서 보이는 숲에는 이제 나무잎만 무성할 뿐, 꽃은 모두 떨어지고 없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나뭇가지에는 잎 대신 꽃이 만발했었다. 그리고서 죽은 것처럼 보이던 땅에서 온갖 화초가 돋아나 꽃이 만발했었다. 그 예쁜 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예쁜 꽃들은 환상이었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꽃은 시들어 떨어지고, 꽃이 피었던 바로 그 자리에는 하나 하나 열매가 맺힌다. 연분홍 복숭아꽃이 진 그 자리에 복숭아처럼 큰 열매가 생기기도 하고, 제비꽃처럼 작은 풀꽃에는 작은 꽃씨가 생긴다. 꽃이 져야 꽃씨가 만들어진다. 꽃씨는 땅에 떨어져 겨울을 보내고서 내년 봄에 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꽃씨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무엇이 들어 있기에 제비꽃씨에서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제비꽃이 나올까?

 

기다림/유경환(아동문학가)

 

꽃씨 안이 궁금해

쪼개 보기엔

너무 작고 단단해

 

꽃씨 안이 궁금해

귀에 대고 들어보지만

숨소리도 없어

 

꽃씨 안이 궁금해

코에 대고 맡아 보지만

냄새도 없어

 

궁금해도 기다려야지

꽃씨만 아니야

기다려야 할 건 참고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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