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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사는 이야기 (5)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09.18|조회수465 목록 댓글 3

                                 껌과 애국심

 

   나는 정치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다. 신문의 정치면을 건너뛰지 않고 읽을 정도이다. 내 생각으로는 정치인이란 누구나 비슷한 속성을 가졌다. 당선되기 위해서는 강도 없는데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공약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다. 정치인이란 선거 때는 대단한 애국자이지만, 일단 당선되면 선거구민보다는 당의 보스를 더 무서워한다. 또한 공통적으로 정치인은 말을 잘한다. 정치인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문과가 아니고 이과 공부를 해서인지 아직도 신문의 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다르다. 아내는 신문의 정치면을 정독하며, 신문의 행간을 읽을 줄 안다. 신문을 읽다가 이런 나쁜 놈들. 여보, 여기 좀 보세요, 아 글쎄……”  이런 식으로 흥분을 하며 욕을 해대기가 일쑤이다. 물론 애처가인 나는 아내가 가리키는 기사를 읽어 본다. 그러나 대게 나의 반응은 , 꼭 그렇게 욕할 수만은 없잖아.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자세한 이유를 들어 보아야 판단할 수 있지 않겠어?”  이런 식이니, 아내는 가끔 핀잔을 준다. “당신은 그렇게 꼭 외교관 같은 말을 하세요? 나쁜 놈은 나쁘다고 해야지.”  여자가 왜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애들 교육에 나쁘게 어른들을 욕하느냐고 물으니 아내의 대답은 정치를 잘해야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지 않아요.”  나의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경제기획원(지금은 기획재정부)장관은 5공화국 수립 직전에 장관을 한 이한빈씨이다. 왜냐면 그 때에 유일하게 장바구니 물가가 내려가는 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해는 경제가 극도로 침체되어 우리나라는 마이너스 성장을 한 해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아내는 국산품을 애용한다. 요즘과 같은 WTO(국제무역기구)와 세계화 시대에 국산품 애용이 꼭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언젠가 일본의 총리는 나라를 위해서 미국 물건 좀 사줍시다라고 호소를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아내의 국산품 애용은 한마디로 끝내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는 가전제품을 외제로, 주로 일제로, 한 세트 구입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귀국할 때 아내는 삼성 VTR, 금성 전자레인지를 사왔다. 텔레비전은 보던 중고 텔레비전을 그냥 가지고 왔다. 냉장고는 귀국하여 대우 제품을 샀다. 요즘에도 애들이 외제 초콜릿이나 맥도날드 햄버거를 사달라고 하면 열 번 졸라야 한 번 사줄 정도이다. 껌은 롯데껌을 사지 않는다. 나는 처음에는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상상을 초월한 대답이다. “롯데 회장은 부인이 일본 여자이고, 어느 잡지에서 읽어 보니 일 년에 반절은 일본에서 지낸다고 한다. 일본 부인 데리고 사는 사람이 한국에서 껌 팔아 돈을 벌면 아무래도 일본으로 빼내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내가 살면서 보니 사람마다 애국심의 정도가 다르다. 아내같은 극단적인 국수주의자가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외제를 좋아하다 못해 심지어는 물까지 외제 생수를 사 마신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사람마다 절약하는 부분과 낭비하는 부분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식사에는 돈을 절약하지만 옷 사는 데에는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옷에는 관심이 없는데 예쁜 그릇은 자꾸 사는 사람이 있고, 지하전세를 살면서도 번듯한 차를 사는 사람도 있고. 아내는 가족의 식사는 잘 챙기지만 그 밖의 모든 부문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 애들 옷은 언니네 애들 것을 물려 입히고, 동네 채소가게에 갈 때는 마감 직전에 간다. 그 시간에 제일 채소가 싸다고 한다. 가구는 웬만한 것은 주워다 쓴다. 미국에 살 때도 아내는 창고 세일(집 앞 잔디밭에 쓰는 물건을 늘여놓고 아주 싼값에 파는 풍습)을 매우 좋아했다.

   요즘 아파트단지에는 쓸 만한 가구를 그냥 버리는 사람이 더러 있다. 어느 날 퇴근하는 나에게 아내가 말하기를 쓰레기통 옆에 쓸 만한 소파가 버려져 있단다. 둘이 가서 보니 쓸 만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은 소파였다. 우리는 당장 아파트 수위 아저씨에게 허락을 받고 둘이서 낑낑대며 옮겨다 놓았다. 놀이터에서 돌아온 둘째 녀석이 웬 소파냐고 묻는다. 버린 걸 주워 왔다고 말하기가 뭐해서 5만 원 주고 샀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랬는데 며칠 후 동네 아주머니가 놀러 와서 커피를 마시는데 둘째가 하는 말, “아줌마, 저 소파 있잖아요. 우리 엄마가 5만 원 주고 사 왔대요.”  아주머니가 어디서 샀느냐고 자꾸 물어서 아내는 난처했다고 한다.

   사실 가난할 때의 절약과 검소는 강요받는 것이다. 거지가 절약한다고 누가 칭찬할까? 부자가 되었을 때에도 자발적으로 절약하고 검소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경우, 집 장만하기까지 아내는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나이보다 빠르게 흰 머리가 많이 생겼다. 우리는 작년(1995)부터 재산세를 처음으로 내기 시작했는데, 아내는 집을 마련한 후에도 생활 수준을 높이지 않는다. 애들과 나는 불만이 많다. 이제는 우리도 좀 남들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가끔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가고, 옷도 사고 싶은 것이 우리 집 세 남자들의 욕심이다. 그러나 아내는 원칙적으로 주위 사람보다 낮추어 사는 생활을 고집한다.

   어느 날, 수요예배에 다녀온 아내가 참으로 좋은 설교 말씀을 들었다고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 들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우리 국민은 소득이 만 달러가 넘었다고, 이제는 부자나라가 되었다고 착각하며 산다. 못살았을 때의 근검절약 정신을 다 잊어버렸다. 요즘의 부자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 일, 멀쩡한 아파트 내부를 뜯어고치는 일, 아직은 쓸 만한 차를 큰 차로 바꾸는 일, 비싼 브랜드 옷을 사 입는 일, 맛있다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일, 스키와 골프를 즐기는 일, 외화 쓰며 해외 관광여행을 다니는 일, 남의 자식 기죽이는 줄 모르고 불법 고액과외를 시키는 일, 등등에만 관심이 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믿는 신도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얼마나 눈을 돌리는가? 우리나라에는 무려 100만의 장애자들이 있다. 근로능력도 없고 부양자도 없이 한 달에 65천원의 생활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41만 명이나 있다. 변두리 달동네에는 아직도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있다.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는 소년 소녀 가장이 73백 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통계숫자에 불과한가? 여러분은 이 땅의 통일을 원하는가? 이북에 헐벗고 굶주린 우리의 동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통일을 위해서 여러분이 준비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북에는 23백만 동포가 있고, 이남에는 45백만 국민이 있다. 남한의 두 가정이 북한의 한 가정을 먹여 살리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는 한 하느님은 결코 우리에게 통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통일을 위해 우리는 손해를 볼 결심을 해야 한다. 모든 신도는 현재의 생활수준을 1/3 줄이는 생활을 해야 한다.”  간접적으로 전해 들어도 가슴이 뜨끔한 설교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의 앞길을 생각하니 고생문이 훤하다. , 내가 어쩌다가 이런 아내를 만났던고? 이런 아내와 살다보면 통일되기 전까지는 유럽 여행은 커녕 제주도 관광 한번 못 가겠다. 애가 둘이나 있으니 이혼할 수도 없고 평생 살아야 할 여자인데, 잘 만났는지 잘못 만났는지, ‘최후의 심판전에는 알 수가 없구나.

(19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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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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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오솔길 | 작성시간 13.09.19 이뭐꼬 사모님의 애국심이 대단하십니다.
  • 답댓글 작성자단풍나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9.19 인수1의 애국심은 어느 수준일까요?
  • 답댓글 작성자일지매 | 작성시간 13.09.19 이 곳에서 거론하기는 부적절한 주제입니다. 학교 경영과 관련없는 총장의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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