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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부부 이야기 (2)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09.20|조회수303 목록 댓글 1

                        쇼핑은 싫어

 

   선천적으로 여자는 쇼핑을 좋아하고 남자는 쇼핑을 싫어한다. 그 걸 알 수 있는 것은 시장이나 백화점에 가보면 항상 여자들로 꽉 차있다. 요즘에는 이러한 모습도 변하여 남자들도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모양이나 적어도 내 또래의 부부를 보면 남자들은 시장이나 백화점에 따라가기를 싫어한다. 나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모처럼 큰 맘 먹고 쇼핑에 따라갔다가 결국 부부싸움으로 이어져 돌아올 때는 각각 딴 길로 돌아오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물건이란 같은 값이면 비슷비슷하다. 요즘같은 경쟁 시대에 만일 물건의 질에 비해 가격을 비싸게 매기면 그러한 물건은 잘 팔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시장에 나온 물건은 가격이 비슷하면 품질도 비슷하리라는 것이다. 물론 자세히 보면 상표나 회사에 따라 약간의 차이야 있겠지만 나같이 눈이 무딘 사람에게는 그 차이라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얼른 보기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사용하는 데에는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물건 사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내가 살던 도시는 동부의 작은 도시로서, 구멍가게나 동네 수퍼마켓이라는 것이 없고, 찬거리를 사러 가더라도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차는 한 대이고 내가 운전을 해야 하니 매번 쇼핑에 따라가야 한다. 미국에는 큰 가게들이 한 곳에 몰려 있는 쇼핑몰이 있다. 나는 아내 따라 쇼핑가는 날은 아예 잡지책이나 소설책을 한 권 가지고 가서 의자나 휴게소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아들과 함께 가면 아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며 함께 기다리는데 그렇게 지루할 수 없다. 견디다 못한 나는 아내에게 운전을 배우라고 꼬드겼다. 혼자서 쇼핑가면 남편 신경 안 쓰고 얼마나 한가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겠느냐고, 어떤 남편은 위험하다고 아내에게는 절대로 운전을 시키지 않는 사람도 보았지만 나는 아내가 빨리 운전을 배우기를 원했다. 아내가 면허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을 때에는 “제발 이번에는 합격시켜 주십시오” 라고 기도까지 했다. 나의 소망은 일년 만에 이루어지고 나는 그 후 쇼핑에 따라가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물건을 살 때 첫 번째 가게에서 한 번 고른 물건을 그대로 사는 습관이다. 아내는 이곳 저곳을 모두 둘러본 후 제일 싼 가격에 파는 집에 가서 산다. 그러니 자연 시간이 걸릴 수밖에. 나는 물건 구경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에 차라리 집에서 소설책을 읽는 것이 더 낫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쇼핑 좋아하는 아내와 살다보니 나도 변하였다. 요즘에는 두 번째 가게에서 물건을 산다. 정가가 있는 물건을 사는 것은 그래도 나은데, 정가가 없이 파는 과일이나 생선은 속수무책이다. 나는 물건 값을 깍거나 덤을 더 달라거나 하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그저 “잘 좀 주세요”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아내는 값 깍는 솜씨가 대단하다.

   우리 학교는 이름은 수원대학교이지만 행정구역으로는 화성군에 있어서 전원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학교 근처에 딸기밭, 수박밭, 포도밭이 있다. 철이 되면 점심식사 후에 원두막에 가서 밭에서 금방 딴 싱싱한 과일들을 사먹을 수 있다. 언젠가, 낮에 사먹은 딸기 맛이 좋아서 퇴근길에 들러 딸기를 샀다. 그러나 집에 가지고 들어가서 야단만 맞았다.

“여보, 딸기 사왔어. 학교 앞에서 샀는데 맛이 좋더라고.”

“1kg에 얼마 주었어요?”

“응, 1kg에 3천 원인데 4kg을 사니 만 원만 달라더군.”

“아이고, 이 양반, 또 바가지 썼네. 요 앞에 과일가게에서는 1kg에 2천 원 하던데. 1kg에 3천 원이면 무려 천 원이나 비싸잖아요.”

“내가 그걸 알았나. 아무튼 당신 주려고 사왔으니 맛있게 먹으면 되잖아.”

“여보, 제발 부탁이니, 시키지 않는 짓 하지 마세요. 어디 가서 땅을 파 보세요. 천 원은 커녕 백 원짜리 동전 하나 나오나.”

“여보, 그만 합시다.” 딸기 맛이 싹 달아났다.

   1년 후, 나는 딸기를 사오면서 슬쩍 거짓말을 했다. 1kg에 3천 원 준 딸기를 반절로 뚝 잘라 말했다.

“여보, 딸기 사왔어. 학교 앞에서 샀는데 1kg에 1500원 하더군. 4kg에 6000원 주었더니 5000원만 받더라고.”

“뭐라고요, 1kg에 1500원. 와, 우리 신랑 참 잘하셨네. 앞 가게에서는 1kg에 2000원 하던데.” (나의 아내가 가장 기분이 좋아 나를 부르는 호칭은 ‘우리 신랑’이고, 가장 기분이 나쁠 때 부르는 호칭은 ‘나쁜 놈’이다.)

“그래, 당신 신랑이 사온 딸기 한번 맛있게 먹어 보자고. 애들아 이리 와라. 아빠가 딸기 사왔다.”

나는 딸기 잘 샀다고 한참 칭찬을 받았고, 아내는 이웃 아줌마들에게 자랑까지 했다나. 요즘도 여름에 딸기 먹을 때는 그때의 일로 칭찬을 받을 정도이다. 아내한테 칭찬받기가 이렇게도 쉬운 것을 왜 진작 몰랐던고?

(19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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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9.20 이 글도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 이야기입니다. 이제 딸기밭, 수박밭은 다 없어지고 학교 본관 뒤로 시골길을 따라 25분 정도 걸으면 보통리 저수지 옆에 작은 포도밭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3일 전인 9월 17일 화요일 오후에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함께 걸어가서 포도를 먹고 왔습니다. 학생들은 학교 근처에 저수지와 포도밭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깜짝 놀라더군요. 학생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이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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