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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부부 이야기 (3)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09.22|조회수275 목록 댓글 1

                               중이 될 사람

 

   나는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남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재미있고, 또 이 세상에는 왜 그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지, 나는 그저 듣기만 해도 즐거운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안하면 그때사 나는 조금 말문을 여는 정도이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나는 듣기를 즐겨한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다분히는 타고난 성향 같다. 직장에서 돌아와서도 나는 별로 말을 안 한다. 아내는 자꾸 말을 건다.

여보, 오늘 무슨 재미있는 일 있었어요?”

별로, 하루 종일 연구실에 앉아 벽 바라보고 있었는데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나.”

그래도, 점심은 다른 사람과 같이 먹었을 거 아니에요?”

, 옆에 있는 장 교수하고 먹었어. 그 사람도 별로 수다스런 사람이 아니잖아.”

애고, 재미없는 사람. 어쩌다가 이런 사람을 만났지.”

마찬가지지 뭐.”

   처음에는 아내도 말 없는 나를 이해하려는 입장이었다. 남자가 수다스런 것보다는 말 없는 것이 낫지. 자기가 오히려 그날 일어난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가 그저 듣기만 할 뿐 자기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자 아내도 차츰 말수가 적어졌다. 아내는 나보다는 다혈질이다. 신문을 읽다가도 이런 나쁜 놈들이 있어, 여보, 글쎄……하면서 욕을 해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때에 눈치 빠르고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정말 나쁜 놈들이네……하고 빈말이라도 하면서 맞장구를 쳐야 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 문제는, 알기는 아는데 실천이 안 된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 안 되는 것이다.

   애 둘 낳고, 15년 이런 식으로 살다보니까 아내도 이제는 체념을 한 모양이다. 어느 날인가 아내가 불쑥 말하였다.

여보, 당신은 중이 될 사람이 결혼을 한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뚱딴지같이. 왜 내가 중이 되어야 한단 말이야?”

중이 되었으면 훌륭한 수도승이라고 칭찬받았을 것이에요. 성철스님을 보세요. 묵언(黙言)이라고 해서 말 안 하고 5년을 살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말 안 한 것을 칭찬하고 있잖아요.”

말이 되네. 내가 중이 되었으면 그까짓 5년 기록은 쉽게 깼을 텐데.”

그런데, 왜 결혼했어요?”

당신한테 붙잡혔지. 그때 내가 힘이 없어 그만 붙잡히고 말았지.”

(사실 결혼 당시 나의 몸무게는 52kg, 아내는 53kg이었으므로 이 말은 일리가 있다.)

누가 들으면 정말로 알겠네. 자기가 쫓아다녀 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화가 나면 아내의 말은 반말로 바뀐다.)

우리 과거 이야기 또 꺼내어 현재의 행복을 깨지 맙시다. 그만 합시다.”

(나는 화가 나면 존대말로 바뀐다.)

   사실 나는 교회에 나가지만 불교에 대해서 매우 호감을 가지는 교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윤회사상으로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짐승이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가 있다는 것. 나는 아내가 바가지를 박박 긁는 유난히 치열했던 전투가 끝나면 언제나 한숨 쉬며 한탄을 한다.

, 왜 내가 기독교 가정에 태어나 기독교 신자가 되었는가? 불교를 믿었더라면 이 여자와 살다가 죽은 후 다시 태어나 다른 여자하고 한번 살아 볼 수 있을 텐데. 다른 여자는 이 여자처럼 바가지를 긁지는 않을 거야. 그때 내 눈이 멀었지.”

물론 이러한 것은 단지 생각일 뿐 아내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은 없다. 아무려면 생각은 대한민국에서 자유이니까. 어느 날, 불교신자인 옆 방의 장 교수가 말했다.

이 교수님은 아무래도 전생에 수도승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나의 어떤 면이 그렇단 말이요?”

전체적으로 느낌이 그렇습니다. 아마 틀림없을 것입니다.”

사람 놀리지 마시오. 엄연한 기독교 신자에게 무슨 불경한 소리를 그렇게 하시오.”

   사실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금욕주의자의 면모가 있다. 아내는 부엌에서 맛있는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하여 남편과 아이들을 잘 먹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가끔 반찬 가짓수가 너무 많다고 아내에게 불평을 한다. 맛있는 반찬은 한 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것 저것 여러 가지 맛있는 반찬을 한꺼번에 상에 올리니까 아이들이 오히려 반찬 없는 밥은 먹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국과 김치, 그리고 추가로 반찬 한두 가지면 충분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기 때문에 애들이 밥투정을 한다고 늘 불평하면서 간식거리를 아예 냉장고에서 없애라고 주장한다. 반찬 때문에도 가끔 부부싸움이 일어나고, 그러니 아이들은 식사 방침에 관한 한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연구실에 오디오가 없다. 집에 오면 그저 조용히 앉아 책을 보는 것이 제일 좋은 시간 보내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텔레비전. 그 전에 집을 이사하면서 텔레비전을 없애자는 아내의 제의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시시콜콜한 연속방송극에 정신이 팔려 설거지도 미루어 둔 채 얼이 빠진 아내의 모습을 이제는 보지 않게 되었구나. 그거 참 잘 되었다. 살다 보니 이런 좋은 일도 일어나네. 그러나 좋은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TV 없이 석 달이 지나자 아내가 슬그머니 물어왔다.

여보, 우리 텔레비전 한 대 사요. 우리 호연이 (첫째 아들인데 미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마쳐서 영어를 잘 한다) 영어 안 잊어버리려면 아무래도 AFKN 방송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은 텔레비전 사면 연속방송극에 정신을 뺏기지 않을 자신 있어?”

그야, 당신이 일찍 집에 돌아와서 그날 일어난 일을 재미있게 이야기 해주면 연속방송극이 필요 없지요. 그렇잖아요? 생방송이 녹화방송보다 더 낫지요. 당신이 연구한다고 늦게 오니까 꿩 대신 닭이라고 텔레비전을 보게 되지요 뭐.”

결국 그 전투에서도 내가 져서 우리는 3개월 만에 음성다중 텔레비전을 한 대 사게 되었다.

   중이 될 사람이 결혼을 했으니 싸움거리는 무궁무진하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데 바스럭거려 잠을 깨운다고 싸우고, 머리를 자주 안 감으니 비듬 생긴다고 싸우고, 샤워 자주 안 한다고 싸우고 등등. 어느 날 나는 아내가 기분이 좋을 때를 골라 심각하게 물었다.

여보, 만일 내가 당신과 애들을 떠나서 입산하여 중이 되고 싶다고 하면 당신은 무어라고 말할 거야? 만일이라는 가정을 하고서 한번 들어 보자고.”

좋지요. 효봉스님(일제 때 판사로서 사형수가 죽고 나서 무죄임이 밝혀지자 괴로워하다가 스님이 되었다)도 가족을 버리고 38세에 입산하였다고 들었는데, 당신이 신기록을 세우겠네요.”

꼭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만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여보, 얼마 전 재미있는 성경구절을 발견했어. 잠언(구약성서 중의 하나) 21장에 보니까 바가지 긁으며 괴롭히는 아내와 사는 것보다 광야에 나가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기록되어 있더라고. 옛날 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다 똑같은가 봐.”

좋다니까요. 그러나 당신도 결혼한 사람으로서 책임이 있으니, 2억 원만 현금으로 남기고 가세요.”

욕심이 많기도 하네, 2억 원?”

나는 지금까지 당신이 가져다 주는 봉급으로 생활하는 데 길들어 있어서 따로 생활능력이 없고, 애들을 키우려면 생활비가 있어야지요. 한 달에 한 2백만원은 있어야 할 터이고, 2억 원을 은행에 넣어두면 한 달에 이자가 2백만 원 정도 나오지 않겠어요?”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봉급쟁이가 2억원이라는 거액의 현금을 만든다는 말인가? 아무리 부부싸움이 지겹다고 해도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 어찌 보면 운명과도 같은 것.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얼마 전에 가느다란 불빛 같은 희망을 보게 되었다. 베스트셀러를 한 권 쓰면 아내가 말한 2억 원을 벌 수도 있다는 말을 누구에게서 들었다. 예를 들어 김우중씨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은 120만 부가 넘게 팔렸는데, 인세가 5억 원도 넘을 것이라는 놀랄 만한 이야기. 그래서 얼른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계산을 해보았다. 내가 책 한 권을 근사하게 써서 100만 부가 팔린다고 치고, 정가는 비싸면 사람들이 잘 안 살테니까 5000원만 붙이고, 인세는 10%로 치고, 이렇게 세 가지만 가정하면 거뜬히 5억 원을 벌 수 있다. , 대단하구나. 이걸 몰랐네.

   그 후 베스트셀러 한 권 쓰겠다는 꿈을 안고서 부부싸움을 견디고 있다. 언제 그 꿈이 이루어지려나!

(19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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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민들레 | 작성시간 13.09.22 이뭐꼬님이 말이 적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가끔 보면 말을 재미있게 많이 하는데요. 20년이 지나면서 변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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