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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부부 이야기 (4)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09.24|조회수209 목록 댓글 1

                                         남편의 점수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이것은 불란서 작가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별에서 온 주인공 소년이 지구를 둘러본 후 내린 결론이자 불만이다. 어린왕자의 말에 의하면,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어른들은 친구의 목소리가 어떠한지, 무슨 장난을 좋아하는지, 나비 같은 것을 채집하는지 등은 묻지 않는다. 요즘 식으로 하면 몇 평 아파트에 사는지, 반에서 공부는 몇 등이나 하는지,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인지 등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숫자로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숫자병에 걸린 것 같다.

   나의 아내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어느 날 아내가 물어 왔다.

여보, 당신은 솔직히 자신을 평가하면 몇 점 남편이 될 것 같아요?”

이거 참 대답하기 어려운 묘한 질문이네. 여기서 잘못 대답하면 또 싸움날 텐데…….

꼭 남편을 점수로 평가해야 하겠어?”

아니, 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요. 심심해서 그냥 한번 던져 본 질문이에요.”

그렇다면 나도 심심하니까 한번 점수를 매겨 볼까? 51점은 될 거야.”

그러니까 중간 이상은 된다는 말인가요?”

물론 이 세상에는 나보다 잘하는 남편들도 많이 있겠지만, 주위에서 보면 나보다 못한 남편들도 많더라고. 모든 대한민국 남편들에게 점수를 주고 평균을 내면 50점이 되지 않을까?”

역시, 예상했던 대로 당신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군요. 당신은 보통은 넘는, 그러니까 괜찮은 남편이라 그 말이지요?”

   아니, 이거 또 잘못 나가는 모양이네. 49점이라고 말할 걸 그랬나? 그렇지만 나도 자존심이 있지. 나도 보통 남편은 되지 뭐. 이래서 또 한 판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100점 남편이 되고, 100점 아빠가 되겠다고 결심하며 출발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에 시달리고, 날로 날로 경쟁사회로 치닫는 요즘 세상에서 가족에게 할애할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정복하느냐, 정복당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등의 험악하고 비인간적인 구호가 난무하는 풍토에서 어떻게 100점 남편이 될 수 있는가? 100점 남편이면서 동시에 100점 직장인이 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속담에도 있지만 쉽게 말해서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살고 있지만, 대학 교수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언제부터인가 교수평가제가 도입되더니 매년 일년 업적을 100점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점수는 내가 학생들에게만 매기는 줄 알았더니, 나도 점수를 받게 되었다. 강의평가제가 그것이다. 학생들이 내가 한 강의를 평가하겠다나. 그러니 강의준비를 철저히 안 할 수가 없고, 1년에 한 편 이상의 논문을 내야만 되고, 연구비도 따와야 되고, 자연히 정시퇴근은 무너진 지 오래이다. 저녁식사를 학교에서 때우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그러니 아이들과 함께 오순도순 저녁을 먹는 즐거운 우리 가정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내 생각으로는 내가 51점 남편에 불과한 것은 내 탓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경쟁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탓이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이 나와야 한다. 공산주의가 대안인 듯 했으나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가 보여 주었듯이 공산주의는 대안이 못 되었다. 불행하게도 아직은 뚜렷한 대안이 안 보인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과 모든 장관들, 모든 회사 사장들, 모든 부모들은 자기 부하들에게. 자기 자녀들에게 열심히 뛰라고 외친다. “좀 천천히 뛰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더 열심히 뛰면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면서 죽을 힘으로 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상자, 중도 탈락자, 정신 이상자가 속출하고 있고, 40대 중년 남자의 돌연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이처럼 논리정연한 나의 설명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당신의 문제점은 보다 나은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다른 남편들을 좀 보세요. 아내 생일을 잊어버리는 남자가 어디 있는가? 자식이 공부를 몇 등이나 하는지 그렇게 무관심한 아빠가 어디 있는가? 3 아들이 밤늦게 공부하는데 피곤하다고 쿨쿨 자는 아빠가 어디 있는가? 1년이 가도록 장인에게 안부 전화 한번 안 하는 남편이 어디 있는가? 아내가 파마를 했는지, 커트를 했는지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지요?”

그만해요 여보. 나는 내가 보통은 된다고 생각하고, 또 나름대로는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만 듣고 보면 언제나 내 점수는 30점이나 40점으로 추락하고 마는구려. 그런데 왜 당신은 맨날 100점 남편과 나를 비교해? 나는 당신을 아무하고도 비교하지 않았는데. 나도 가장으로서 또 직장인으로서 세상살이가 쉽지는 않아. 내 머리가 빠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잖아. 제발 부부 간에 그런 식으로 애들처럼 성적을 매기지는 말자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잖아. ‘이 세상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은 비교할 수도 없고 점수로 매길 수 없다는 것을 몰라?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은 잘 안 믿지? 이 말은 내 말이 아니고 어린 왕자가 한 말이야.”

(19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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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단풍나무 | 작성시간 13.09.24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 좋은 교수되면서 동시에 좋은 가장 되기는 어렵다는 귀절에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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