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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부부 이야기 (6)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09.28|조회수447 목록 댓글 6

                                       주말농장

 

   몇 년 전부터 주말농장이 유행이다. 도시에 살다보면 땅을 밟을 기회가 거의 없다. 남자들은 피곤하다며 낮잠을 자거나 TV에서 스포츠 중계를 보는 외에는 별다른 할 일이 없이 주말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주말농장은 농협의 중개로 시작되었다. 일손이 없어서 농사를 짓지 못하는 도시 근교 농민의 땅을 도시인에게 빌려주어 밭을 경작하게 하는 제도로서 쌍방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부터 도시에서 다녔기 때문에 농사일에는 전여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내 손으로 땅도 파고 씨앗도 뿌리고 풀도 뽑아보는 체험을 하는 주말농장이 마음에 끌렸다.

   지난 봄에 우연히 신문에 낀 선전지에서 주말농장회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나처럼 농사경험이 없는 아내에게 상의하니 좋다고 한다. 전화를 걸어 땅 다섯 평을 5만 원을 주고 샀다. 우리는 난생 처음 근사해 보이는 주말농장의 1년 소유주가 되었다. 4월 둘째 주말에 모종과 씨앗을 받으러 갔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녀석도 좋아라고 따라 나섰다. 농기구는 농협에서 무료로 제공한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장갑도 준비하고 햇빛에 그을릴까 봐 모자도 준비하고 농부처럼 옷을 입고 농장에 갔다. 주말농장은 집에서 차로 10분정도 걸리는 그리 멀지 않은 변두리에 있었다.

   나는 사실 다섯 평이 얼마나 넓은 지 감이 없었다. 땅 한 평이란 성인 남자가 클 태()자로 누우면 차지하는 면적이라고 하는데, 막상 가 보니 다섯 평은 별로 넓지가 않았다. 농협직원이 나와서 상추 모종 열다섯 포기와 배추씨 그리고 무 두 종류의 씨를 2천 원을 받고 나눠 주었다. 우리는 삽으로 땅을 파고 호미로 골을 만들고, 상추를 심고, 씨앗을 뿌렸다. 평생 안 하던 농사일을 하려니 힘이 들었다.

   주말농부가 된 첫 날부터 우리부부는 싸우게 되었다. 우선 땅을 얼마나 깊이 파야 되는가에 대해서 의견이 맞지 않았다. 나는 힘드니까 삽의 반절 깊이 정도만 파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삽날의 길이만큼 깊이 파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까 땅속에 산소가 들어가야 채소에 좋다고 한다. 나는 모종의 뿌리야 지금 2~3cm 밖에 안 되고 길게 뿌리가 내리려면 한참 있어야 하므로, 얕게 파나 한자 깊이로 파나 채소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고 설명을 했지만 요즘 여자들이 남편 말을 듣나? 아는 게 병이라고, 서로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으니까 한쪽이 신경질을 내고 다른 쪽이 열을 받고 결국 싸우고 말았다.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주말농장을 무대로 하는 싸움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한 주일이 지난 후 농장에 가다가 꽃가게 들러 모종을 몇 종류 샀는데, 모종 값이 싸지가 않았다. 고추모가 네 개에 1천 원, 가지 모종 세 개에 1천원, 방울 토마토 모종 두 개에 1천 원이니 돈으로 따지면야 가게에서 그냥 사다 먹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모종을 심은 후에 나는 물을 듬뿍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물뿌리개로 몇 번씩 물을 주었더니 아내는 그렇게 물을 많이 주면 안 된다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물이 너무 많으면 뿌리가 썩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 대답은, “당신 말이 맞다면 소나기가 쏟아지면 고추 모종은 다 죽을 것이다. 식물도 사람처럼 살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물이 많으면 물을 적게 먹고, 물이 적으면 참고 지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을 것이다. 물의 양은 상관이 없다.” 좋게 말해서 개성이 강한 우리 부부는 물 때문에도 한 판 싸웠다.

   고추가 어느 정도 자라자 아내는 어디서 들었는지 고추가 쓰러지지 않게 받침대를 세워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 받침대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문방구에서라도 팔면 좋으련만 고추용 받침대를 파는 데는 없었다. 아내는 다른 집 사람들은 모두 받침대를 구해 오는데 왜 당신은 못 구하느냐고 성화다. 그 다음 토요일에는 농장에 혼자 갔다. 농장 옆 야산에 올라가 받침대로 쓸 나뭇가지를 구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땅에 떨어져 있는 가지는 이미 썩은 가지로서 힘이 없고, 생가지를 꺽자니 나무가 울 것 같다. 식물의 신비생활이라는 책에서 보니까 나무도 사람처럼 의식이 있어 아파하고 좋아하고 한다는데…… 할 수 없이 나무야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나뭇가지를 몇 개 꺾어다가 받침대를 세워 주었다. 다음 주에 받침대를 본 아내는 당신은 어떻게 꾸불꾸불하게 못생긴 나뭇가지만을 구해 왔느냐고 핀잔이다. 나는 약간 자존심이 상해서. “아니 받침대가 반듯하면 어떻고 굽었으면 어떻다는 말인가? 그저 고추를 받치고만 있으면 될 게 아니냐?”고 받아쳤다. 그래서 또 한바탕 싸웠다.

   그 다음 주에는 같이 온 둘째 녀석이 뽑으라는 풀은 뽑지 않고 여치를 쫓아다니고 잠자리를 잡으려고 돌아다니다가 야단을 맞는다. 나는 자연으로 돌아와서 좀 장난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아들 편을 들다가 또 싸웠다. 아내 말은, “집에서는 장난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얌전해야 한다. 남의 농장 밟으며 천방지축 돌아다니면 야단을 쳐야지 아빠가 되어가지고 내버려 두기만 한다는 것이다.

   주말 농장에 와서 모처럼 자연과 벗하며 부부간에 정이 다져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싸움만 하게 되니 은근히 화가 났다. 괜히 5만 원이나 들여 싸움터를 넓힌 꼴이 되고 말았다. 농사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동안 상추를 세 번, 깻잎을 두 번, 가지를 한 번 따다 먹은 것이 전부였다. 농약을 안 뿌리니 무우는 조금 크더니 벌레가 먹어서 남은 게 없다. 비료를 안 주니 고추는 열리기는 해도 실하지가 않다. 농사라는 것이 매우 힘들며 땀을 흘려야 함을 깨달았다. 대중가요의 가사에 나오듯 농사가 그렇게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농약과 비료는 환경적으로 해롭다고만 알았는데, 농약과 비료 없이는 제대로 수확할 수 없음을 알았다. 어쨌거나 사소한 일에도 의견이 맞지 않아 주말농장에 가는 족족 싸움만 하게 되자 나도 심술이 나서 한 3주는 농장에 가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가보니 농장은 완전히 초원이 되고 말았다. 어디서들 날아왔는지 심지도 않은 온갖 잡초가 우거지고 농작물은 잡초에 치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잡초처럼 강한 생명력이라는 표현이 실감났다. 손과 호미를 이용하여 잡초를 뽑는 데 서너 시간이 걸렸다. 뿌리가 길어 잘 뽑히지도 않고, 풀 뽑기는 완전히 중노동이었다. 나처럼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농부들이 농사를 기피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다음부터는 핑계를 대고 주말농장에 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주중에 생존경쟁에 시달리며 매일 매일이 피곤하기만 한데 주말에까지 힘든 노동을 하기 싫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주말농장에 가지를 않았다.

   결국 우리의 주말농장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우리처럼 잘 싸우는 부부는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멋지게 살자는 꿈도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말농장을 경영하고서 남은 것은 색다른 주제로 싸운 우리부부의 전투기록 뿐이다.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낭만적인 주말농장을 꿈꾸는 다른 부부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19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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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9.28 또 어떤 교수님은 부부 이야기를 각시가 읽으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걱정해 주셨습니다. (저는 4년 동안 암투병하던 아내와 2011년 2월에 사별했습니다. 그후 2012년 9월에 현재의 각시와 재혼하였습니다.) 각시는 그 수필집을 읽었고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올해 4월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작은 아파트를 6개월간 월세로 얻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0월 말까지는 이른바 주말부부입니다. 제가 3월 19일에 교협의 공동대표가 된 이후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하여 각시가 평창으로 가버렸다는 이야기는 전혀 근거없는 낭설입니다. 각시는 교협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저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9.28 또 어느 교수님은, 부부 싸움이란 사생활이며 프라이버시인데, 이처럼 글로써 공개하는 것은 좀 그렇다는 의미로 걱정을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걱정해 주심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부부로서 그 정도의 부부싸움은 대부분 할 것입니다. 저는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은 대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일로 싸우고, 자녀 교육 때문에 싸우고, 시집 때문에 싸우고, 등등. 저는 그러한 부부 싸움 이야기를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글로 써서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너무 솔직해서 거북하다는 느낌을 가지는 독자도 있겠지만, 오히려 솔직해서 공감이 간다는 독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9.28 어쨋든 부부 싸움 이야기는 오늘로써 끝내고, 다음 주에는 다른 주제로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틀에 한 번씩 글을 올리는 작업도 쉽지는 않습니다. 옛날 글들이기 때문에 현재에 맞추어 약간의 수정과 각색이 필요합니다. 저는 하루 빨리 우리 학교가 정상화되어, 제가 교협 공동대표에서 물러나고, 이곳에 글도 더 이상 올리지 않게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협조를 기대합니다.
  • 작성자유기농 | 작성시간 13.09.28 올리시는 글 마다 마음의 쉼터로 즐겁게 읽어왔고 따듯한 삶의 미소를 얻고 갑니다! 잘 읽고 있어 감사합니다. 속히 수원대가 정성화가 되어 이뭐꼬님께서 쓰고 싶은 글 원하는 일상을 전념하실 수 있도록 그날을 기대합니다.
  • 작성자우리와우리 | 작성시간 13.09.28 교수님 글 잘보고 있습니다. 제 남편도 보고는 웃고 힘내고 있습니다. 신랑 왈, 진정한 컨텐츠와 다양성, 격, 여유, 승자의 미소. 어군이 몰락할 수 밖에 없겠다더군요. 교협에 가입신청하고 미력하나마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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