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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불교 이야기 (10)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10.18|조회수163 목록 댓글 0

산은 산 물은 물 - 5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선입견에 사로 잡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부시가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라크는 보유하고 있던 미사일을 파괴했고, 또 국제 사찰단의 사찰 결과 대량 살상 무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데, 이라크가 어째서 악의 축인가?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종교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하는 것을 우상 숭배라고 몰아 부치는 일부 기독교인들, 그리고 천주교는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선입견에 사로잡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구체적인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찍이 교육에 의해 사물에 대한 개념과 가치 판단을 배우기 때문에 선입견이 없이 사물을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도 사물에 대한 관념이 생기기 전의 갓난아기는 벌거벗은 자기 몸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은 교육을 받은 일반인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리는사물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가치 판단을 하고, 싫어하고, 좋아하고, 비난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선입견을 떨치고서 산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아니, 사실은 산이라는 이름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방해가 된다. 산에 가까이 가야만 있는 그대로의 산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산에 들어가서 있는 그대로 본다면 산이라는 이름까지도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입견을 넓은 뜻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법칙이나 진리도 일종의 선입견으로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는 방해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집착 중에서 가장 큰 집착을 법집(法執)이라고 한다. 세상에 유일한 진리가 있다거나, 이것만이 진리라거나 하는 것은 모두 법집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금강경에 나오는 그 유명한 뗏목의 비유이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서 지혜의 저편 언덕에 도달한 사람이 뗏목을 버리지 않고서 메고 간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미련없이 뗏목을 버리고 지혜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뗏목을 붙잡고 살아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두 번째 사례는 사물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즉 돈이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보는 경우이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듯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잘 살기 위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자로 잘 살아 보겠다는 목표를 두고 살아간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나타내는 예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장기간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돈 중심의 인생관이 놓치는 것은, 돈이란 행복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수단과 목표를 구별하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주변을 보면 돈은 많은데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이런 의미에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왜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불교의 유명한 비유 이야기는 매우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돈은 수단에 불과하지 결코 목적이 될 수가 없다. 손가락 대신 달을 보아야 하듯이, 우리는 돈 대신 행복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났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돈 번 이야기만 하여 식상했던 적이 있다. 어디에다 땅을 사두었는데 얼마가 올랐고, 아파트 평수를 늘려 몇 번 이사하니 얼마를 벌었고, 남들은 증권을 하면 손해를 본다지만 자기는 일 년에 한번 사고 팔았는데도 얼마를 벌었다는 등등. 사실 내가 친구를 만났을 때에 관심이 있는 것은 어떤 부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아이들은 학교에 잘 다니는지, 요즘 건강을 위해서는 무슨 운동을 하는지 등인데, 그와 만나서는 돈 이야기만 듣다가 헤어졌다.

   최근 들어서 이처럼 돈이라는 안경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고, 또한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사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사람은 산을 광물을 캐낼 수 있는 광산으로 볼 것이며, 강물을 바라볼 때에 강가에 매운탕집을 차리면 돈벌이가 될까라고 생각한다. 또한 물을 수자원으로 보고, 나무를 산림 자원으로 보며, 심지어는 사람을 소중한 인격체라기보다는 인적 자원으로 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는 예전에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라고 개명한 것을 개탄하고 있다.) 경제라는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은 산이 주는 의미, 물이 가진 또 다른 의미를 놓치기 십상이다.

   산이 주는 또 다른 의미가 무엇인기?  달리 설명할 길이 마땅치 않다. 그저 산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이 주는 또 다른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산이 좋아 산에 다니는 사람에게 산에 왜 가느냐고 물으면 가장 좋은 대답은 너도 산에 가보라는 대답이다. 말로 설명해 보았자 산이 어떻게 좋은지 의미를 전달하기가 어렵다. 불교에서는 언어의 한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는 표현이나 우레와 같은 침묵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산과 계곡에 관한 재미있는 문자 풀이를 본 적이 있다. (신선 선)이란 사람 인 변에 뫼 산으로, 산에 있는 사람이다. 俗人(속인)이라는 단어에 나오는 (풍속 속)이란 사람 인 변에 골 곡()으로서 사람이 산에서 내려와 골짜기에 있는, 즉 다시 말해서 마을 또는 도시에 사는 것을 나타낸다. 사람이 속세인 도시를 떠나 산에 들어가면 신선이 되는 것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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