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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불교 이야기 (11)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10.20|조회수281 목록 댓글 1

산은 산 물은 물 - 6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세 번째 사례로서 이성(理性)의 함정 또는 한계를 들 수 있다. 이성이란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으로서 서양 철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이라는 명저를 남겼다. 그런데, 중국의 철학자 임어당은 일찍이 칸트의 철학 책은 3장 이상을 읽지 못하겠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서양철학에 대해서는 임어당과 동감하는 바가 많으며, 칸트의 책을 구경은 했지만 어려워서 끝까지 읽지는 못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참된 진리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것임을 느끼게 된다.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서양 철학사를 장식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책을 다 읽어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진리라면 그러한 진리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진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요즘에 점점 동양 철학에 매력을 느낀다.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서양 철학자의 모든 저서들은 노자가 도덕경첫머리에서 갈파한 대로 도를 도라고 말하면 참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라는 한 구절에 모두 날아가 버리고 만다. 특정인을 지칭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처음에는 도올 김용옥 교수를 철학자로서 존경하였는데 요즘에는 불만스럽다. 도올은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그가 연구한 그렇게 어려운 내용들을 모두 알아야 진리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자랑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도올의 저서들은 너무 현학적이어서 오히려 진리를 설명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진리는 의외로 간단하며 쉽지 않을까?

   어째서 이성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에 방해가 되는가?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몇 년 전인가 매직아이(magic eye)라고 해서 이상한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책을 펼치면 그림이 나오는데 여러 가지 이상한 모양의 천연색 무늬가 종이 전체를 채우고 있다. 그림 자체는 우리가 아는 어떤 형태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 그저 무질서한 무늬의 혼합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서 그림을 5센티미터 정도에서 시작하여 점점 멀리하면서 바라보면 어느 순간 3차원의 새로운 형태가 나타난다. 아무것도 없던 그림에서 송아지가 보이기도 하고, 토끼가 보이기도 하고, 글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나도 숨겨진 그림을 보기 위하여 오랫동안 노력을 하였으나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성공을 하여 숨겨진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매직아이를 볼 때에 주의할 점은 냉철한 이성을 통하여 보려고 하면 할수록,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흐릿한 눈으로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바라보아야 한다. 냉철하게 깨어 있는 이성은 매직아이 그림을 볼 때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성철 스님의 법어에 대한 있는 그대로 보라라는 주석은, 내가 해석하는 바로는 사물을 볼 때에 우리가 지금까지 갈고 닦은 이성은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철스님은 제자들에게 책을 읽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까? 불교에서 선지식(훌륭한 스승)들이 본 세상은 매우 아름답고 장엄한 세상, 모든 생명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 있음을 노래하는 환희에 찬 세상이라고 한다. 이성을 통하여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 속에 숨겨져 있는, 아름답고 환희에 찬 다른 차원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세상을 보려면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현재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가르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그저 잡다한 지식, 암기용 지식만을 가르칠 뿐 아름다운 세상을 보는 데 필요한 감성 교육은 도외시하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살아 있는 꽃을 들여다보고 만져 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경험 없이 인터넷에 떠 있는 꽃의 모습과 이름만을 외울 뿐이다. 사람과 꽃과의 접촉이 빠져 있다. 현재의 교육 제도는 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결과 대부분의 아이들은 꽃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며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라라는 말에서 본다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본다는 것은 꼭 눈으로 본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알아 보라, 먹어 보라, 들어 보라, 가 보라, 와 보라, 살아 보라 등등 동사의 뒤에 보조용언으로 사용되는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의 작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알아 보라를 영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know and see’ 정도로 어색하게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에서 알아 보라는 표현은 안다는 것보다 본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사물을 지식으로서 아는 것보다는 알고서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보라는 우리말 표현은 정확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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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가을국화 | 작성시간 13.10.21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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