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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구도 이야기 (2)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10.26|조회수193 목록 댓글 0

예수원 방문기 - 2

 

   그때에 C라는 우리 학과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경기여고 출신이었는데 3수를 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더 많아서 지금 생각하니 조숙했던 것 같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잘 웃고 마음이 무척 너그러웠는데, 나는 철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끔 삼립빵을 사달라고 해서 여러 번 얻어먹은 기억이 나는데, 그때 나는 장난 삼아 그녀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도 무례하고 끔직한 호칭이었는데, 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그냥 웃기만 하였다.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그때의 호칭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별다른 일 없이 그저 사이좋게만 지내다가 4학년 1학기에 설악산으로 졸업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때에는 한 학과의 정원이 20명이었는데, 우리 학과에는 여학생이 5명 남학생이 15명 있었다.  그런데  여학생들은 다 빠지고 남학생들만 설악산으로 2박3일로 졸업 여행을 갔었고,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녀에게 줄 선물을 하나 샀다. 아마도 조개로 만든  팔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어느 날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조개 팔찌를 꺼내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팔찌를 받아서 자기 가방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교실을 나가 버렸다.

   그 후 한 달쯤 지나서 그녀가 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을 하였다. 4년이 지나도록 커피를 같이 마신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단 둘이 다방에서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순순히 따라 나섰다. 물을 마시고, 커피를 주문하여 다 마셨는데도 그녀는 아무 말이 없다. 무슨 할 말이 있을 텐데 시간만 흘러간다. 나는 기다리다 못해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채근을 하였다. 그러자 그녀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자기는 UBF라는 기독교성경읽기단체에 나가는데 거기에서 성을 가르치는 고려대 대학원생과 결혼을 할 것이라고. 나는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다. 내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할게 뭐람.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 그러세요. 축하합니다그게 전부였다. 그녀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그냥 다방을 나왔다.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말자는 말로 해석되었다. 언젠가 여자의 심리에 도통한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그 친구의 해석은, ‘그러니까 마음에 있으면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덤벼 보라는 뜻이었단다. 어느 해석이 맞는지 알 수는 없다.

   다방에서 나와 그녀가 버스를 타러 저쪽으로 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괜히 서운했다. 주머니 속에 있던 보물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내가 진작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갑자기 씁쓸한 느낌이 몰려왔다. 나는 청량리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제목은 솔져 블루(soldier blue)였는데 무슨 인디언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고 씁쓸하기만 하였다. 고려대 대학원생인 그 남자는 나중에 목사가 되었고 그녀는 목사의 아내로서 지금은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 동창회를 통하여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재회의 인연이 없었는지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기차는 12시 정각에 출발하였다. 기차는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더니 기차길 옆으로 흐르는 남한강을 따라 씽씽 달려갔다. 양평, 원주, 제천을 거처 영월, 고한을 지나 태백시가 목표였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서 창밖으로 나무가 울창한 산을 보고 굽이쳐 흐르는 강을 바라보니 모처럼 시간이 천천히 흘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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