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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구도 이야기 (8)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11.07|조회수188 목록 댓글 0

예수원 방문기 - 8

 

  다음 날은 금요일, 새벽 5시 반에 기상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들어서 나는 시계의 도움 없이 일찍 일어날 수 있다. 새벽 기도인 조도는 6시에 시작되었다(예수원은 성공회라서 용어가 일반적인 기독교 용어와 조금씩 달랐다. 새벽 예배는 조도, 점심 예배는 대도, 저녁 예배는 만도라고 부른다). 예수원의 조도는 개신교의 새벽 기도와는 조금 달랐다. 하나님 대신 천주님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조도 중에 치는 종은 천주교 예식과 같은 느낌이었다. 조도는 찬송가를 부르며 시작 되었다. 그 다음에는 <시편> 중에서 두 편을 골라 읽고, 이어 구약 성경 중에서 1, 신약 성경 중에서 1장을 읽었다. 그리고는 설교는 없었고 읽은 성경 중에서 가슴에 와 닿는 구절에 대하여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기도집에 있는 기도문을 읽는 것을 마지막으로 조도는 1시간 만에 끝났다. 목사님의 설교가 중심인 기독교의 새벽기도와 달리 예수원의 새벽기도는 신도들의 자유발언이 중심이어서 매우 민주적인 새벽기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침식사 역시 반 공기의 밥과 국 그리고 간단한 반찬 2가지로 소식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소식을 하지만 대식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원의 식사는 견디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았다. 식사 끝에 안내자는 8시에 작업을 개시한다고 공고를 하였다. 작업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 사항이므로 원하지 않는 사람은 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8시에 식당인 나사렛관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아마도 아침식사 인원의 2/3정도가 모였다. 안내자가 시범을 보이는 간단한 요가 체조를 모두가 따라서 하였다. 몸을 풀어 주는 운동이 끝나고 안내자는 오전에 할 일의 종류를 알려 주었다. 새로 집을 짓기 위하여 통나무 자르는 일, 세탁, 화단 정리, 청소, 풀 뽑기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작업을 선택하여 지정된 장소로 모이라고 한다. 나는 가장 쉬워 보이는 풀 뽑기 작업에 지원하였다.

   십여 명이 풀 뽑기 작업에 지원을 했는데, 나는 빨간 티셔츠를 입은 목사님과 한 조가 되었다. 젊은 목사님은 전라남도 광주 한빛교회에서 청년부 수련회를 인도하여 어제 도착하였다고 한다. 풀 뽑기 작업은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작업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부목사로서 청년부를 지도하고 있는데, 청년들이 대학교에 들어가면 신앙에서 자꾸 멀어져서 큰일이라고 걱정을 하셨다. 나도 고등학교 때에는 천주교회에 다니면서 학생회 간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교리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점이 머리를 들면서 결국은 신앙심이 식었던 경험이 있었다(천주교에서는 신앙심이 식는 현상을 냉담이라고 한다).

   목사님은 나더러 교회에 나가느냐고 물었는데, 내가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홍정길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남서울 은혜교회에 나간다고 말하니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다. 그는 홍 목사님의 명성은 광주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고 칭찬을 하신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내가 알고 있는 홍 목사님의 여러 가지 훌륭한 모습을 이야기 해 주었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은데, 서울에 있는 여러 대형 교회는 돈 문제, 세습 문제, 여자 문제 등 문제점이 많은 것 같다고 이야기 하자 그 목사님 역시 성장 위주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익히 알고 있다고 말하였다.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여러 측면에서 토론 겸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목회자는 가난한 삶을 시범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맞는 말이다. 자동차만 해도 그렇다. 나는 소형차인 프라이드를 타고 다니면서 십일조를 꼬박꼬박 교회에 바친다(물론 내가 바치는 것이 아니다,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아내가 바치고 나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목회자가 그랜저 같은 고급차를 타고 다닌다면 나는 기분이 별로 좋을 것 같지 않다. 다행히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목회자가 없어서 아직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가장 모범이 되는 목회자는 고 한경직 목사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 그분은 늙어서 추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은퇴를 하신 후 남한산성 내에 있는 작은 기도원에서 검소하게 살다가 생을 마치셨다. 세습은 커녕 목사인 아들을 미국에서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셨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이천 년이 지났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표현하면, 목사님의 설교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목사님의 해석이라고 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내용은 신약 성경 중에서도 4권에만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4권의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누가, 요한)에서도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은 따옴표로 인용되어 있다. 누구나 정말로 예수님의 사상을 잘 이해하려면 목사님의 해석보다는 따옴표로 인용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읽어 본다면 우리나라 교회에서 신도들이 듣는 목사님의 권위적인 설교가 예수님의 말씀과 정신을 왜곡시켜서 전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예수원의 새벽기도가 목사님의 설교 대신 신도들의 자유 발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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