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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구도 이야기 (17)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11.27|조회수225 목록 댓글 0

금산정사 방문기 - 6

 

   세월이 흐르면서 술집 풍속도 많이 바뀌었다. 술집 아가씨들의 인권이 향상되어 옛날처럼 함부로 만지고 주무르고 할 수가 없다. 그저 아가씨가 좋아하는 안주 시켜서 먹고 야한 농담 좀 하면서 손이나 만지작거리다가 노래 몇 곡 부르고, 끝나면 5만 원이라는 거액을 팁으로 주어야 한다. 사실 5만 원이라는 돈은 적다면 적겠지만 대부분의 봉급쟁이들에게는 적은 돈이 아니다. 더욱이 주어진 봉급의 범위 안에서 그 비싼 과외비를 지출하고 적금까지 들면서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 주부에게는 큰 돈이다. 만일 남편이 어느 날 공돈이 생겼다면서 5만 원을 봉투에 넣어서 아내에게 준다면 최소 한 일주일 동안은 반찬도 좋아지고 좋은 남편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게 비싼데도 카페나 룸살롱이 번창하며 남자들은 속없이 술집에 가서 거액의 돈을 팁으로 아낌없이 주는 것일까? 우리나라 남자들이 특별히 못돼서 그럴까? 이러한 의문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는데, 얼마 전 재미있는 책을 읽고서 해답을 얻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마광수 교수가 쓴 <열려라 참깨>라는 평론집을 빌려 읽었는데, 의외로 문장이 매우 유려하고 내용도 음미할 만한 것이 있었다. 마광수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서양에 비해 엄청나게 술값이 비싸고 팁 값이 비싼데도 수요가 계속 있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특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파티 문화가 발달하여 결혼한 사람들도 이성과 만나 건전하게 대화하고 사교춤도 출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장례식이나 다른 결혼식 빼고는 공개적으로 이성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으며, 유일하게 부인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 대화하고 접촉할 수 있는 자리는 술집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쁘고 힘든 현대 사회를 살면서 쌓이게 되는 심리적· 성적(性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비싸더라도 술집을 가게 된다는 매우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다. 술집에 가면 아가씨들은 마누라와는 달리 바가지도 긁지 않고 남자의 기를 살려주니, 집에서는 마누라에게 직장에서는 상관에게 주눅 들어 지내던 남자들은 모처럼 신나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덧붙여 마광수 교수는 이왕에 돈 들여 술집에 가면 백디가 불여일부라고 썼다. 무슨 뜻이냐면 백 번 디스코 추는 것보다는 한 번 부루스를 추면서 이성과 살갗이 접촉하는 짜릿한 맛을 즐기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맥주를 마시면서 마 교수의 충고대로 부루스를 몇 곡 추었으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12시가 되었다. 술을 거의 못하는 연담 거사는 12시에 혼자 숙소를 찾아가고, 모처럼 동창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 할 이야기가 많은 우리는 더 남아 있었다. 나는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돌아와 쓰러져 졌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보니 연담 거사가 안 보인다. 어디로 갔을까? 한참 지나 단정한 모습의 연담 거사가 들어온다. 물어 보니 새벽 4시에 일어나 택시를 타고 무등산에 있는 증심사에 가서 참선을 1시간 하고 왔단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불교를 믿으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증심사에 가 보니 법정 스님이 법회를 하러 오신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더란다. 법정 스님은 내가 좋아하는 스님인데. 나는 법정 스님의 작은 수필집 <무소유>를 좋아한다. 혼자 읽기에는 너무 내용이 좋고, 또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환경 문제의 해결책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생각되어 나는 내가 가르치는 모든 과목에서 학생들에게 <무소유>를 읽고 독후감을 3장 이상으로 써 내라는 과제를 낸다. 그 일을 1990년부터 시작했으니까 아마도 3,000권 이상 책을 팔아주었을 것이다. 그날은 바빠서 증심사에 못 갔지만 언제 법정 스님을 만나면 내가 많은 책을 팔아 주었으니 점심이라도 한 끼 사시라고 청해야겠다.  (그후 인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법정 스님을 만나지는 못했다.  스님은 몇년 전에 돌아가셨다.)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우리는 소나타 승용차를 렌트하여 8시 반에 광주를 출발, 송광사로 향하였다. 조계산의 송광사는 현정스님이 있는 거금도 가는 길목에 있고, 삼보사찰 중의 승보사찰이라는데 TV에서만 보았지 한 번도 구경을 못해서 일정에 넣었다. 송광사는 16국사가 배출된 가람으로서 훌륭한 스님이 많았다고 한다. 신라 말에 혜린 선사가 창건했는데, 그 후 보조국사 등 큰 스님이 배출되었단다. 법정 스님도 송광사 출신이고 해서, 어쨌든 꾝 한 번 가보고 싶은 절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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