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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구도 이야기 (23)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12.13|조회수261 목록 댓글 0

금산정사 방문기 - 12

 

   그러다 보니 날이 밝아 온다. 차에서 내려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마침 해가 동쪽 바다에서 떠오른다. 하늘과 바다는 시시각각 색깔이 변해 간다. 이글거리지만 눈이 부시지 않는 일출 광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다. 방파제를 따라 상쾌한 바닷바람을 쐬며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걸었다. 선창에는 굵은 줄로 묶어 놓은 고깃배들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어디에나 부지런한 사람은 있는가 보다. 저쪽을 보니 작은 배 하나가 모터 소리를 내면서 물을 하얗게 튀기며 앞섬을 향해 달려간다. 선창가에는 이제 사람들이 보였다. 대개는 아주머니들인데 얼굴을 햇볕에 그을려 건강한 모습이었으며, 멸치를 말리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멸치는 어떤 것은 굵고 어떤 것은 아주 잘고, 길에 깔개를 깔고 종류별로 널어놓았다.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도시인들은 맛있는 멸치를 맛볼 수 있는 것이리라.

   신도회장 집에 돌아오니 연담 거사는 일어나 방에서 고요히 명상을 하고 있었다. 법정 스님이 정의를 내린 명상이란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명상을 통하여 마음의 호수에 떠 있는 온갖 티끌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맑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명상을 하면 무엇이 좋은가? 마음을 맑게 하면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고 한다. 호수가 흐릴 때에는 아무 것도 안 보였는데, 맑아진 호수를 들여다보면 많은 것들이 보이듯이 말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바쁘게 살면서 지나치게 사물과 인간관계에 얽매여 산다. 마음이 흐려져서 사물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명상을 할 필요가 있으며, 명상을 통하여 사물을 제 모습대로 바르게 볼 수 있다. 그리하면 우리의 판단력은 정확해지고 우리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명상을 하기는 해야 할까 보다. 이제 몇 년 지나면 지천명(地天命)의 나이인데 나에게 주어진 천명이 무엇인지 아직도 흐릿하기만 하니 말이다.

   신도회장 집에서 아침 공양을 하고 절에 가서 현정 스님과 녹차를 마셨다. 스님은 금산정사가 지금은 가건물에 불과하지만 근사한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선방(禪房)을 꾸밀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나는 스님에게 생태 선방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선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거닐 산책로를 만들되, 산책로 주변에 자연의 여러 가지 동물과 식물을 관찰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을 마련하는 선방을 꾸미면 좋을 것이다. 인도의 명상철학자인 크리슈나 무르티는 진리를 알고자 하거든 나무를 보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현대인은 진리를 책에서 배우려고만 하는데, 과학적인 지식은 책에서 배울 수 있어도 인생의 진리는 자연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서 나뭇잎을 바라보고, 꽃이 피어나는 신비를 느끼고, 꽃 진 후에 열매 맺는 것을 관찰하고, 온갖 벌레가 움직이는 모습에 감탄하면서 우리는 자신만이 깨닫는 진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여름방학에는 이러한 생태 선방을 지식 공부에 찌들은 청소년들에게 수련원으로 개방하면 진리의 한 조각이라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스님과 작별할 시간이 왔다. 한 번 찾아오는 데 8년 걸렸으니 다시 뵐 때까지 또 얼마나 세월이 흘러갈지. 아쉬운 이별이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모든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진다. 그렇지만 나는 이럴 때 생각나는 시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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