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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정사 방문기 - 14
불교를 공부할 수 있는 이렇게 좋은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 같아, 나는 연담 거사에게 무소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내가 이해하는 무소유 사상은 물건을 소유하게 되면 물건에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의 글에 난초를 애지중지 기르다가 어느 비 오는 날, 소유의 번거로움과 무소유의 역리(逆理)를 깨닫고 난초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린 예가 나온다. 내가 이해하는 무소유 사상은 이렇게 요약된다. ‘많이 소유한다고 해서 많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유가 많을수록 많이 얽매이게 된다. 그러므로 적게 소유하는 데에 만족하며 소박하게 사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연담 거사의 무소유에 대한 해석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난초의 예에서, 자기를 그렇게 안달하게 만든 난초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면 그것이 무슨 자랑인가? 난초에의 집착을 끊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면, 받은 사람은 다시 집착하게 될 것이 아닌가? 번뇌 덩어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비난하면 법정 스님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실까? 그러므로 연담 거사가 해석하는 무소유 사상은 보다 큰 뜻이 있다고 한다. 깨닫는 경지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무소유는 위에서 두 번째 단계라고 하니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쉽게 표현하여, 무소유는 물건을 소유하고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마음 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연담 거사는 중국 선종의 6조인 혜능이 깨닫고 출가하게 된 고사를 이야기해 준다.
혜능은 글을 모르는 일자무식 나무꾼이었는데, 하루는 시장에서 집으로 가던 중 어느 스님의 ⟪금강경⟫독송을 듣게 된다. “머무를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라는 대목에서 깨닫고, 혜능은 출가하게 된다. 즉 ‘마음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로 마음을 쓰는 상태’가 무소유의 정의라고 한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연담 거사는 다르게 설명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난초를 가지고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마음 쓰는 것이 무소유라고 한다. 이러한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비가 왔을 때에 난초가 죽을까 염려가 되어 집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대로 볼일을 다 보고 집으로 가서 난초를 들여놓는 사람이다. 설혹 그 난초가 죽더라도 애달아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무심도인(無心道人)의 경지에 이른 사람의 행동을 무소유라고나 할까? 까마득한 경지였다. 알기 쉽게 재산을 예로 들면, 재산이 많은 사람이 재산을 없애어 적게 하는 것이 무소유가 아니고 재산에 전혀 집착하지 않는 것이 무소유라고 한다.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즉 본래부터 내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필요하면 장학금으로 1억 원짜리 수표를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주듯이 기증하고도 전혀 자기 마음에 흔적이 남지 않는 그러한 소유 사상을 무소유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돈을 예로 드니까 겨우 이해가 되는 듯 했다. 듣고 보니 결국 무소유도 무주상보시하고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무소유는 거지들이 목표로 할 수 있는 그러한 사상이 아니고 누구나 목표 삼을 수 있는 그러한 사상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친 김에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는 무엇이냐고 연담 거사에게 물었더니,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이라고 대답한다. 아니라는 뜻의 비(非)자가 세 개나 나오는 것을 보니 설명을 듣기도 전에 겁부터 나서 더 이상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기차는 거의 100킬로미터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테제베인가 TGV인가 하는 고속전철이 프랑스에서 도입되면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다니, 수원에서 광주까지 한 시간이면갈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궁금하였다. 이렇게 세상이 빨라지면 정말로 좋은 세상이 될까? 정보 고속도로, 인터넷, 무한 경쟁 등의 단어들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의 세상은 모든 것이 번개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그런 세상이 될 모양인데, 불교에서는 21세기의 정보화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래서 연담 거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불교에서는 세상이 빨라지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보느냐고?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