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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구도 이야기 (26)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12.21|조회수533 목록 댓글 3

금산정사 방문기 - 15

 

   그것은 불경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연담 거사로서도 대답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불경이 씌어질 당시에 1초에 10억 번의 연산을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등장하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정보화 사회와 불교에 대해서 연담 거사와 내가 나눈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불교에서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관심을 가지는 인간의 행복은 욕망의 절제와 무소유에 있다. 하루의 일정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바쁜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잃기 쉽다. 정신없이 뛰다 보면 마음의 평정은 멀어진다. 평안한 마음은 머릿속이 정보로 가득 찰 때에 얻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서 최소한으로 소비하고 최소한으로 움직일 때에 마음의 평안이 얻어진다. 정보화 사회가 인간을 행복으로 인도할 것 같지 않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인간의 행복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 참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고서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다. 인터넷이 설혹 좋은 것이라고 해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이 퍼지는 것은 예로부터 시간이 걸렸다. 자꾸 서두르는 사람,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 그는 장사꾼이기 십상이다. 상업적 이익이 있기 때문에 서두르며 떠든다. 정보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모든 가정, 모든 직장, 모든 사찰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면 좋은 정보보다는 나쁜 정보가 더 빨리 퍼질 것이다. 온갖 쓸데없는 상품 광고와 음란물이 우리의 거실과 마음과 의식 속에 들어와 소란을 피울 것이 염려된다. 인터넷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기 십상이다. 불교의반야심경에서 추구하는 반야, 즉 지혜는 대상의 인식 과정에서 내 것이라는 집착을 없애는 지혜이다. , 색즉시공이다. 여기 저기 자꾸 들여다보고 주문하고 복사하고 프린트하는 것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지혜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보의 바다는 고해(苦海)이다. 앞으로 닥칠 정보화 사회는 인간이 더 괴로운 사회가 될 것이고 따라서 진실한 불자들은 할 일이 더 많아지는 그러한 사회가 될 것이다.

   비관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이 깨달은 인생이란 원래 고해가 아니었던가? 지금이나 2,500년 전이나 인간과 세상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에 적용되는 진리나 현재에 적용되는 진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똑같다.  수원에 돌아온 후 여행 가방을 정리하다 보니 송광사에서 산 부채가 나왔다. 여름도 물러가는데 이 부채를 어이할꼬? 생각 끝에 광주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갔던 술집의 주소를 물었다. 그리고서는 큰 봉투에 부채를 넣어 그날 밤 내가 만났던 광주의 아가씨에게 전해달라고 우송했다. 그 부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는 누구에게나 배우는 자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자기를 이기는 자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는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자이다.

 

부채를 받고서 그 아가씨가 이 말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연담 거사와 내가 23일의 여행에서 나눈 그렇게도 많은 이야기들을 듣지 않았어도 아가씨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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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2.21 제가 이뭐꼬라는 필명으로 "나는 왜 교수협의회에 가입을 하였는가"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교협 창립 1주일 후인 3월 27일이었습니다. 그후 생태이야기, 학교이야기, 부부이야기, 불교이야기, 구도이야기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이삼일에 한번씩 써왔는데, 저는 학교와의 대화와 협상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체될 줄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야기거리도 거의 다 떨어지고, 연재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 고민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2.22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어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두시간 동안 교협대표 3인의 대표인 푸른하늘님이 총장님과 총장실에서 대화다운 대화를 했습니다. 한번의 대화로 수원대의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대화가 시작되었으니, 학교측과 교협측은 서로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협대표 3인이 만나서 이 문제를 논의할 것입니다.

    어렵게 시작한 대화가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으려면 쌍방이 자본주의 원리를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오히려 종교적인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최근에 연재한 구도이야기 속에 대화성공의 열쇠가 들어있다고 믿습니다.
  • 작성자자유영혼 | 작성시간 13.12.21 이뭐꼬님의 구도이야기 마음을 차분히 하는 샘물이었습니다. 진솔하고 꾸밈이 없는 얘기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시작이 반이다.
    대면을 통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의 진의를 읽을 수 있고,
    그 진의가 추구하는 바가 공통의 목표라면, 방법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갈래가 있으며, 순탄한 길이 있는가 하면, 절벽과 벼랑길이 있습니다.
    최 정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여러 갈래 길의 특성이 보이지요.
    아직 오르는 길목에 있지만 가끔씩은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상상을 해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늠해 봄이 필요합니다.
    외면에서 대좌로 모드 전환이 새로운 희망의 씨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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