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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여행 이야기 (6)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1.02|조회수223 목록 댓글 0

   저녁 무렵 우리는 섬의 북쪽 해안에 푸에르토드라크루스(Puerto de La Cruz)에 도착하였다. 스페인어로 Puerto는 영어의 Port, 즉 항구라고 한다. 우리가 머문 아탈라야 호텔은 고급호텔로서 모든 시설이 만족스러웠다. 특히 내가 관심있게 본 것은 화장실 변기가 절수형이었고 욕조의 양쪽으로 적당한 손잡이가 있어서 노인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욕실 바닥에는 미끄러지지 말라고 깔개가 있었다. 나오면서 지배인에게 물어보니 물을 절약하기 위하여 중수도까지 설치하고 있었다. 고급호텔이라는 것이 방 치장만 고급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처럼 손님이 이용할 때에 감탄하도록 작은 곳까지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것이 고급호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플라멩고 춤이 유명하다는 무도장에 공연을 보러 갔다. 무도장은 바닷가에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바닷물을 끌어들여 섬처럼 무도장이 있고 물 아래로 통로를 통해서 들어간다는 점이다. 밤이라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낮이라면 매우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플라멩고는 원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Andalusia)지방의 민속춤인데, 손벽을 치고 발을 굴러서 리듬을 맞추는 독특한 춤이라고 한다. 우리가 본 공연에서는 무희들이 나와서 손벽과 구두 외에 캐스터네츠를 끼고 딱딱 박자를 맞추었다. 캐스터네츠를 쓰는 것은 말하자면 현대식으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날씨가 더운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모인 스페인 사람들은 정장 내지는 약식 정장을 하고 모여들었다. 정장을 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편한 복장을 즐기는 나는 그저 남방셔츠를 입고 갔는데 나중에 보니 나만 남방셔츠 차림이어서 약간은 쑥스러웠다.

   예쁜 무희들의 공연이 끝나고 음악이 바뀌더니 관중석의 신사 숙녀들이 우루루 무대로 나가 자유스럽게 춤을 춘다. 생각 같아서는 미스 최와 나가서 춤을 추고 싶었지만 복장이 실례일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아뿔싸 제주대의 정 교수가 미스 최를 끌고 나가더니 멋지게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키 크고 코 큰 서양사람 틈에 끼여 능숙하게 블루스를 추는 두 남녀의 춤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어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미스 최는 그날 오후 분명히 나하고 사진도 같이 찍었는데…… , ‘여자의 마음과 개구리 튀는 방향은 알 수가 없다는 말은 여기 스페인에서도 맞는구나! 나중에 물어보니 정 교수는 옛날 소시적에 친구 형님이었던 트위스트 김에게 춤을 사사받았다고 한다.

   씁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호텔에 돌아와 잠을 청하였다. 잠이 올 리가 있나. 시차를 계산해보니 한국은 지금쯤 토요일 오후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잊고 현지생활에 몰두하느라고 집에 전화를 하지 않는 나쁜 습관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지에 도착하면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면서 애들은 잘 있느냐, 별일은 없느냐는 등 별 내용도 없이 전화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차를 계산해서 잘 있느냐고 의무적으로 전화를 한다.  내가 전화를 안 하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옛 사람들이 지혜롭게 갈파했듯이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아 정말 모처럼 집에 국제전화를 했다. 평소에 안 하던 전화를 하니 아내는 무슨 사고라도 났나 의아해 한다. 나는 마땅히 할 말도 별로 없어서 그저 집에 있는 난초에 물 좀 주라고 엉뚱하게 한마디하고 전화를 끊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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