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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우물

[스크랩] 6/23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작성자이웅수|작성시간26.06.22|조회수1 목록 댓글 0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마태오 복음서의 황금률은 산상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 전체를 거꾸로 비추는 거울의 구실을 합니다. “그러므로”라는 짧은 접속사는 앞서 말한 모든 요구, 분노와 보복의 중단, 원수 사랑 등을 하나의 문장 안으로 끌어당깁니다. 오늘 복음은 이 문장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7,12)이라고 선언하는데, 이는 그 정신의 확장에 가깝습니다. 이미 있는 도덕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 가르침을 다른 이들을 향한 무한한 관계 속으로 밀어 넣기 때문입니다.
황금률은 인류의 여러 전통 속에서 되풀이되어 온 윤리적 경구입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사가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인간 사이의 단순한 계산을 넘어섭니다. 이 말은 ‘다른 이의 자리에 서 보라.’는 요청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위의 방식이 아니라 시선의 이동이지요. 사실 서로를 향한 윤리는 언제나 관점의 문제를 불러옵니다. 황금률은 나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자리를 떠나, 다른 이의 상처가 보이는 자리로 옮겨 가 보라고 재촉합니다. 그 이동이야말로 산상 설교가 요구하는 핵심이자 실체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다른 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아야 할 질문이 아닐까요. 황금률이 말하는 바는 다른 이를 나와 같다고 단순화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다름을 인정하며, 그 다름 속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이라는 초대입니다. 그래서 이 규범은 자기 수양의 기술이 아니라, 다른 이의 고통과 슬픔, 때로는 행복과 기쁨 앞에 멈추어 서서 그의 삶에 머물러 보는 열린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서의 황금률은 인간적 격언이라기보다, 다른 이를 통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는 초월의 자리입니다. 그 초월의 끝에는 하느님께서 꼭 함께하실 것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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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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