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자 스베덴보리/펌

작성자황문철|작성시간08.12.13|조회수441 목록 댓글 1

 

스웨덴보르그

 

 

큰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끝은 사다리로 되어 있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위험한 사닥다리. 그 밑에 구멍이 있고, 거대한 심연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구멍 저쪽으로 잘못 건너다가는 깊은 구멍 속으로 떨어져 버린다. 구멍 저편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서 구멍을 뛰어 넘었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지옥에 떨어질 처지였을지 모른다. 만일 그 도움이 없었다면 말이다.
                    

                                                                                               ─『꿈 일기』 중에서

 

음의 세계, 이 세상을 초월한 세계로의 여행 만큼 신비로운 여행은 없다. 위의 인용문은 역사상 가장 다재다능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인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가 남긴 꿈 일기 중의 한 토막이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에 쓰여진 것이지만, 꿈에 대한 이해 방법은 현대 심리학의 해석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1744년에 쓰여진 이 가장 오래되고 대대적인 꿈과 연상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이 인물의 업적들은 가히 놀랄 만하다. 그는 당시의 모든 과학을 상세하게 마스터하고 있었다. 뇌에 관한 새로운 학설이나 성운星雲의 존재를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웨덴보르그는 56세가 되자 이들 학문을 버리고 심리학과 종교의 세계로 몰입했다.
 비평가들은 그이를 괴상한 신비주의자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어떤 인간이며,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이 글이 후반기의 파격적인 그의 담론 ‘천국과 지옥’들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견해로 자리하기를 바라며 펜을 든다.
  

 

존재의 궁극적인 비밀을 탐구했던 젊은이

 그의 이름 임마뉴엘은 성서에서 유래하며, ‘신은 우리와 함께 있도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의 부친은 루터파의 목사였으며, 성자의 칭호를 받아도 좋을 만큼 훌륭한 성직자였다. 부친은 천사나 악마의 존재를 믿고, 때로는 천사나 악마하고도 접촉을 했다고 전한다. 임마뉴엘은 9명의 남매 중 셋째였다. 8살 때 모친과 형을 잃었으며, 그의 인격형성기의 대부분을 ‘웁사라’에서 보냈다. 이 시기에 대한 그의 기록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보수적 성향의 교회에서 자랐고, 라틴어나 그리스 문예 등 고전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다. 그가 최초로 출판한 책이 라틴어로 쓴 시집이었다는 점은, 젊은 스웨덴보르그가 시인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인생의 궁극의 문제를 사색했다. 때때로 부친과 장시간동안 종교적인 테마에 관해 토론하기도 했지만, 종교의 진실성을 단순히 믿는 부친과 달리 스웨덴보르그는 그것을 검증하려 애썼고, 늘 의문을 품고 사색하기를 즐기는 편이었다.
  그가 과학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시절 자연과학에 대하여 넓은 관심을 가진 자형과 함께 살면서부터다. 뿐만 아니라 그의 친척이나 지인들 중에는 스웨덴의 초창기 과학자가 많았다. 크리스토퍼 포르헴도 그 한 사람으로, 그는 자신의 장녀를 임마뉴엘과 결혼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일생 동안 독신으로 지내기로 마음먹는다.
 

 스웨덴보르그의 집안은 부유층에 속했으므로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계속해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공업이나 과학에 관련한 업적을 인정받게 되어 국왕에 의하여 국가 광업 감독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지식의 실용화를 꾀했다.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광업의 최신 기술을 수집하여 모국에 도입시켰다. 또 그는 매우 활동적이었는데, 말을 타고 스웨덴의 모든 광산을 찾아다니면서 실제로 갱도에까지 들어가서 광업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실용적인 과학 기술 뿐 아니라 천문학에도 깊은 조예가 있던 그는 1712년부터 1921년까지,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식과 월식을 전부 예측하는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스웨덴보르그가 31세 되던 해에 그의 집안은 귀족으로 서품敍品되었다. 그도 남작으로 귀족원의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귀족원 회의에 참석한 그는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말을 더듬기도 했는데, 글 쓰는 일에 있어서는 언제나 자신 있었다. 경제 문제, 알콜 규제, 정전停戰 문제에 관한 의견을 국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틈틈이 그는 제본, 시계 만들기, 옷장 만들기, 악기 만들기, 대리석 세공, 렌즈 연마 등의 취미생활을 즐겼다. 그리고 어느 분야에 있어서나 아마추어의 경지를 뛰어 넘었다. 실제로 망원경은 렌즈부터 모든 것을 조립하여 만들기도 했다.
  발명가로서의 면모도 매우 뛰어나 잠수함이나 비행기의 원형이 되는 아이디어를 고안해 내는가하면, 펌프, 소화기, 압연기, 난방 시스템에 관한 발명을 했다. 하지만 이런 발명이 자신에게 있어서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저작물들의 제목을 보면 그가 어떻게 과학에 접근했는지를 알 수 있다. 
  

   『화석』 1716, 『메아리』 1716, 『지구의 정지』 1717,
    『불과 색채』 1718, 『자연의 본질』 1718, 『기하학 및 대수
    학』 1719, 『열의 보존』 1722, 『은에 대하여』 1724, 『자연
    의 운동』 1733, 『인체』 1734, 『마음의 세계 원리』 1740,
    『혈액의 붉은 색에 대하여』 1741, 『생식 기관에 대하여』
    1734, 『꿈에 대하여』 1744.
 
   

 이것들은 스웨덴보르그가 초기 과학상의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들이다. 눈 밝은 이들은 벌써 알아차렸겠지만, 물질세계에서 인간의 몸으로, 몸에서 마음으로 그가 탐구해간 연구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해부학에서의 몇 가지 큰 발견으로 ‘의학의 개척자’라는 칭호도 받은 스웨덴보르그의 연구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해부학을 통해 영혼의 존재를 계속해서 탐구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초기에 그는 그러한 방법으로 영혼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천국을 체험한 이후로 인간 생명의 정체는 바로 영혼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탐구해 들어가기 시작한 계기이다.
  

 

고독한 영혼 여행가의 비애

 과학에 있어서나 철학에 있어서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분자나 원자 나아가서 원자핵이라는 문제에까지 접근했으나 당시의 과학적 토양 위에서는 더 연구를 지속할 수가 없었다.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이는 수학으로 파고들어 사색이나 추리를 통해 복잡하게 짜여진 창조의 비밀에 접근해 보려고 끈질기게 고투하기도 했다. 그의 후기 과학상의 업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신이 너무 멀리(혹은 깊숙이) 와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의 동요를 스스로 일으켰음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그는 두 세기 이상을 앞서간 사람이었다. 그러한 그의 심정을 헤아리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고독한 사나이 혼자서 세계의 비밀을 해독하려 했던 악전고투의 비애를 어렴풋이 느끼게도 된다.
  

 56세의 스웨덴보르그는 당시의 모든 자연과학을 마스터하고 심리학의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때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최고의 안정기였는데, 스톡홀름 교외에 자신이 설계한 독특한 집을 짓고 살았다. 세 방향으로 똑같은 입구와 창문이 있는 3각형의 집이었다. 입구는 모두 이중문으로, 바깥쪽의 문을 열면 정원이 비치도록 만들어 놓았다. 당시 그의 모습을 회고한 카알 로브삼의 이야기를 옮겨보면 이렇다. 
  
 

  그의 방에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된 성서, 그리고 자신의 저작 인덱스 외에는 아무런 책도 없었다. 그는 밤낮 구분 없이 연구에 몰두했다. 늘 깨어 있는 그를 의아해하던 이에게는 “졸리면 침대에 눕는 거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가정부에게 요청하는 일은 오직 잠자리를 준비시키는 것과 방의 큰 항아리에 물을 담아두게 하는 일 뿐이었다. 그는 자주 커피를 끓여 마셨고, 저녁은 언제나 우유에 빵을 적셔 먹었다. 특이하게도 서재의 난로에는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늘 불이 피어 있었지만, 침실에는 언제나 불이 없었다. 추운 날은 서너 장의 담요를 덮고 잤고, 유난히 추운 날은 침대를 서재로 옮겨 잤다. 

  모든 지식 체계를 섭렵한 스웨덴보르그는 마침내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최대의 업적을 향해서 출발한다. 그 최대의 업적에 비하면 이전의 연구들은 모두 전주곡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늘 영혼을 추구했다. 또한 1744년부터 자신의 꿈이나 영혼의 내면세계에 대한 체험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꿈 일기』와 전 5권의 『영계 일기』가 그것이다. 두 가지 모두 출간을 위한 공적인 기록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탐구를 위한 메모였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 파격적인 지성의 소유자는 영혼 속의 샘물을 찾아 마음의 내부로 침잠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신비주의자로 연금술적 변환을 거치게 된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영혼 여행을 체험할 당시에도 그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실제 여행을 즐겼으며, 탐구심도 여전했다. 여행지의 시가지 구조나 도서관을 조사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여행의 방식은 점점 간소해졌고, 내적인 마음의 체험과 탐구, 그리고 집필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누군가는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많은 것들을 쓸 수 있냐고 물었는데, “천사가 말해준다”라고 그이는 대답했다.
  

 

영계로의 영원한 여행을 떠난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가 아무도 없는 방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아마 그이는 트랜스 상태에서 ‘표현할 길 없는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 찬’ 천국, 그 아름다운 비전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내면 체험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신비로운 초상적 능력이 때때로 외부로 누출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에 세상은 영적 세계를 다룬 충격적인 저서를 익명으로 발표하는 인물이 스웨덴보르그라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었다. 물론 그러한 스웨덴보르그를 비난하는 측도 있었다. 종교계 지도자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단죄하거나 저서의 국내 반입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여론은 스웨덴보르그를 지지했다.
 

 80대가 된 후에도 스웨덴보르그는 건강하고 인상 좋은 신사였다. 치통 이외에는 병을 앓은 적이 없었는데, 노후에 그에게는 새로운 이가 나왔다. 말년에 그는 런던에 머물렀고, 옷감이나 손수건을 파는 상인의 집에서 하숙을 했다. 그는 여느 친절한 노신사와 다를 바 없었지만, 천국과 지옥, 그리고 그곳에 사는 영들에 대하여 만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했다. 훌륭한 지성의 소유자로서 자신의 인생 체험의 내면을 파헤쳐 세상에 드러낸 스웨덴보르그. 그럼으로써 천국과 지옥의 실체를 설파한 그이는 마침내 세상을 떠나 내면세계로의 영원토록 긴 여행을 시작했다.

 

 

      출처 블로그 > 까만 눈물 조각과 거짓말
                             원본 http://blog.naver.com/redkisa/120004985495

                              

                                                                     

                                                                            - Hieronymus Bosch

 

 

 

이 신비로운 스웨덴의 영성가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영혼의 여행을 통해
우리를 빛으로 휘감을 진정한 사랑의 거처 ‘천국과 지옥’을 목격했다.



습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일상의 세계가 유일한 세계는 아니라는 생각은 공상적인 기이한 생각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 실재(Reality)의 전부라는 물질주의적인 시각이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식의 이해가 자리잡은 건 근래의 일이다. 고대의 인류와 문화는 결코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들이 실재의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들은 물질계를 확신하듯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실재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일례로 중세인들에게 있어 영적인 세계는 나무나 집의 존재처럼 아주 분명히 실제하는 것이었다. 물질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며 물질계 너머의 세계에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놓여 있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이처럼 영적인 세계의 실재를 더욱 확실하게 믿도록 만든 것 같다.
  

 

미지의 저 세상에 대한 정직한 안내자 스웨덴보르그

  오감을 통해 인식한 것이 실재의 전부라는 견해가 지난 수 세기 동안 우리의 문화를 지배해왔다. 하지만 그 한편에선 언제나 또 다른 세계의 실재를 인정하는 사상의 조류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이 두 가지 개념들이 흥미로운 변증법적 상호 작용에 들어섰다.
 

 신경과학자들은 인간 정신의 신체적인 기반으로 추정되는 것에 천착하는 반면, 대중문화에선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한 스케일로 또 다른 세계를 포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영혼의 시장’엔 채널러와 물리학자, 신비주의자, 온갖 분야의 선지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 중엔 물론 진실로 유익한 지혜를 설파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소 미심쩍은 가르침들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소설『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에서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백년 전의 지구처럼, 우리의 내면엔 아직도 미지의 아프리카 대륙과 인적미답의 보르네오 섬, 아마존 습지 같은 곳들이 존재한다.” 또 다른 세계로의 이끌림과 함께 이 세계에 대한 탐구의 어려움을 토로한 대목이다. 미지의 영역에서는 길을 잃기 쉬우며,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없을 경우엔 그곳을 다녀왔다는 사람의 주장도 쉽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들의 기묘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확고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밝힐 방법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말이다. 하지만 진실로 현명한 방법은 역시 믿을 만한 안내자를 찾는 데에 있을 것이다.
  

 

두 세계의 장벽을 뚫어버린 놀라운 염력

  근대에서 다른 세계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도 일관된 안내자의 한 명으로 스웨덴의 선지적 철학자인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그의 책을 논하면서 올더스 헉슬리가 스웨덴보르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심쩍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천국과 지옥』은 분명 영계를 다룬 서양의 정전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훌륭한 안내서이다.
  

심각한 영적 위기를 맞이했던 1745년, 57세의 스웨덴보르그는 이를 계기로 그 이전은 물론 이후까지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훌륭한 영계 안내서를 만들어냈다. 귀족의 칭호를 받기 전까지 스웨드베르그(Swedberg)로 불렸던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는 1688년 1월 29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772년 3월 29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천사나 영혼들과의 대화를 기록하는 데에 스무 해도 넘는 세월을 바친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이 세계와 저 세계간의 장벽을 뚫어버릴 수 있는 그의 능력을 확실하게 입증해 보였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달, 그는 영적인 세계를 통해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존 웨슬리 자신은 누구에게도 이런 소망을 고백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광범위한 설교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웨슬리는 스웨덴보르그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영적인 세계를 통해 당신이 나와 간절히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란 웨슬리는 유감스럽지만 방문을 몇 달 뒤로 연기할 수밖에 없으며,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에 뵐 수 있으면 감사하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그러자 스웨덴보르그는 내달 29일이 되면 자신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므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회답했다. 실제로 스웨덴보르그는 그가 예견한 바로 그 날,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스웨덴보르그의 예언은 그의 놀라운 염력을 입증해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의 생애를 다룬 책들을 보면 그의 이런 능력에 대한 기록들이 무수하게 실려 있으며, 그 자체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들이다. 그래서일까? 영계에 대한 그의 저작물들은 괴테나 윌리엄 블레이크, 헨리 제임스, 사뮤엘 테일러 코울리지, 오노레 드 발자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어거스트 스트린드베리 같은 주목할 만한 인물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랄프 왈도 에머슨 같은 경우는 그를 일컬어 ‘평범한 학자들로서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는 문학의 거성’이라고까지 했고, 자기 나름의 색다른 방식으로 이미 보이지 않는 세계에 거주하고 있던 헬렌 켈러 같은 경우는 스웨덴보르그의 가르침들을 담은 그녀의 점자식 책들 속에 영적인 세계의 비밀들을 가득 채워 넣었다. 하지만 이들이 스웨덴 보르그에게서 이토록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은 결코 그의 사소한 이적들(minor miracles) 때문은 아니었다.
  

 

실제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으로 그린 영계 지도

  그렇다면 이처럼 무수한 사람들에게 스웨덴보르그가 엄청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실제로 천국과 지옥을 가 보았으며 다시 돌아와 아주 세밀하게 두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스웨덴보르그는 내면의 세계가 아닌 외면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데에 생의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했다. 그의 학문적 열정은 그야말로 탐욕스러웠다. 덕택에 영적인 위기를 맞이할 즈음 그는 이미 야금학에서부터 두뇌해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역에 걸쳐 엄청난 양의 글을 쓴 저자이자 정치가, 광산의 감독원으로서 스웨덴에서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대단한 수완가이기도 했다. 일례로 배 몇 척을 산 넘어 내륙으로 운반하는 일을 원래 일정보다 훨씬 앞당겨 완수하기도 했다.
  

  요컨대 스웨덴보르그는 결코 모호한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실제적이고도 체계적인 접근법으로 영계의 지도를 그려냄으로써, 천국과 지옥에 대한 자신의 기록에 논리적인 일관성을 부여했다. 이는 덜 꼼꼼했던 다른 탐구자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미덕이다.
윌슨 반 뒤센의 말처럼, ‘내면으로의 여행은 습관적으로 무시하고 간과했던 것들을 설명하는 개인의 가치와 시각을 근본적으로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스웨덴보르그는 당대의 과학과 철학에 두루 정통했지만 정작 자신의 내적인 삶, 즉 감성의 세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적인 위기를 맞이하던 시기, 그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인간의 두뇌 안에 있는 영혼의 자리, 당대의 신경 과학자들도 계속해서 찾고 있던 그 자리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결국엔 영혼에 대한 그의 과학적인 탐구에 가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진정한 집, 인간 정신의 내적인 영역들로부터도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가 『꿈일지(Journal of Dreams)』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를 이런 깨달음으로 인도한 것은 일련의 파편적인 비전들이었다. 한창 그런 비전들에 시달리기 시작할 즈음, 꿈에 예수가 나타나 스웨덴보르그에게 ‘건강 증명서’를 갖고 있냐고; 전염병을 옮긴다는 오해로 죽을 뻔했던 사건을 암시하는 것; 물었다. “주여, 저보다 주께서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하거라.” 스웨덴보르그는 자신이 영적인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들게 되리라는 것으로 이 꿈의 의미를 해석했다.
  

  그 영적인 위기를 통해 스웨덴보르그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영적인 세계에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 예로 『천국과 지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보다 내적인 영역과 관계를 맺는 만큼 천국과 교류할 수 있다.’ 
  

 


“내면을 탐구함에 있어 스웨덴보르그가 갖고 있던

가장 중요한 무기는, 흔히 최면 상태라고 부르는, 그 자는 듯 깨어 있는

경계 상태 속에서 수 시간 동안이나 머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융처럼 스웨덴보르그 역시 이런 의식의 역치상태에 있을 때

정신이 맑게 깨어 있으며 내적인 작용들을 관하고, 심지어는 그 작용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융은 이런 과정을

‘적극적 명상(active imagination)’이라 불렀는데, 스웨덴보르그는 이를

천사나 영혼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생각했다.”

 




오랜 최면상태를 통해 천사와 나눈 영혼의 대화

  내면을 탐구함에 있어 스웨덴보르그가 갖고 있던 가장 중요한 무기는, 흔히 최면상태라고 부르는, 그 자는 듯 깨어 있는 경계상태 속에서 수 시간 동안이나 머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융처럼 스웨덴보르그 역시 이런 의식의 역치상태에 있을 때 정신이 맑게 깨어 있으며 내적인 작용들을 관하고, 심지어는 그 작용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융은 이런 과정을 ‘적극적 명상(active imagination)’이라 불렀는데, 스웨덴보르그는 이를 천사나 영혼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생각했다.
  

  내면의 심리적 작용들과 영적인 존재들이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스웨덴보르그는 이런 구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는 내적인 작용과 영적인 존재가 같은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상응론(doctrine of correspondence)에 따르면, 물질계가 인간 마음의 반영체이듯 인간의 마음은 보다 고차원적인 세계의 반영물이다. 이와 관련해 『우주적 인간(The Universal Human)』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영계는 자연계와는 다른데, 영적인 현상과 자연 현상 사이에서 상응이 일어나기도 한다 (…) 영적인 근원에서 비롯된 것들이 자연 현상으로 나타난 이유는 표상들(representations)이다. 그것들이 상응물인 이유는 그것들이 반응적이기 때문이고, 그것들이 표상물인 것은 그것들이 그대로 나타내고 있기(portray) 때문이다.”
  

  스웨덴보르그에게 실재 전체(the whole of reality)는 모든 것의 근원인 하나의 실재(One Reality), 즉 그가 신의 신성(Lord’s Divine)’이라고 부른 것과 다양한 차원에서 상응하는 것이다. 우리가 잠 속을 표류할 때에 보고 듣는 것과 같은 그 기묘한 환상들과 음성들을 탐구함으로써, 스웨덴보르그는 그것들의 자가상징적인(auto symbolic) 성격을 확신하게 되었다.
  

  최면 상태에서는 영혼이 상징적인 형태로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재현하기 때문에, 그것은 의식적인 에고의 기만과 왜곡에 의해 지워져버릴 수도 있는 ‘자기(self)’에 대한 지식들을 습득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된다. 우리의 의식적인 에고는 우리의 태도와 동기들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만, 최면 상태에서는 영혼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꿈속에서도 최면 상태에서와 똑같은 상징들이 나타날 수 있지만, 최면 상태에서의 의식은 꿈속에서라면 지극히 어려웠을 방식으로 내적인 작용, 혹은 영적인 존재들과의 대화를 가능케 한다. 최면 상태를 설명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수면 상태와 눈을 뜨고 있는 각성 상태의 중간에서 타나나는 비전이 있는데 (…) 이는 그 어느 것보다도 감미롭다. 천국이 지고의 고요함으로 인간의 이성적인 정신에 작용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멈추어 버렸다면, 그는 아마 오늘날 자기분석법의 선두적인 탐구자의 하나로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최면 상태에 머물 수 있는 그의 놀라운 능력 덕택에 그는 살아있는 인간으로선 결코 가본 적이 없는 영역으로까지 내면의 여행을 감행할 수 있었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정령들의 세계로의 영혼 여행

  영계에 대한 그의 비전들은, 정통적인 의미로서는 물론 아니지만 지극히 기독교적이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스웨덴보르그 자신이 정령들의 세계(가톨릭의 연옥과 유사한)라 부른 ‘유계猶界(interme diary sphere)’는 런던에서 파리를 가듯 인간이 죽은 뒤에 가는 ‘거처(places)’는 아니다. 요컨대 그것들은 존재의 상태이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에서의 우리의 최종 종착지는 신의 의지가 아닌 그가 ‘진정한 성정(true affections)’이라고 말한 것에 의해 결정된다.
 

 영계에 대한 묘사는 그의 저작물 전체에 산발적으로 실려 있다. 12권으로 된 방대한 『천계비의(Arcana Coelestia)』나 여섯 권으로 된 『묵시록 풀이(Apocalypse Explained)』, 여러 권의 짧은 저작 등 그의 저작물 대부분은 성경의 상징체계를 다루고 있다. 성경이 상응론에 기초한 상징적인 코드로 씌어져 있으며 영계에 관한 진실들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 이십 년에 걸쳐 쓴 그의 다섯 권짜리 『영계일기(Spiritual Diary)』는 하루하루 그가 내적 차원에서 경험한 것들을 기록한 것이다.

  이천 쪽도 넘는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영혼들의 먹을거리와 마실거리’에서부터 ‘최후의 심판 이후 사회의 정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에 대한 그의 통찰이 담겨 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천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신성이 영원성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거나 ‘위선자들은 승천하면 (…) 무시무시한 용모를 가진 천사들의 눈에 비쳐진다’는 등의 말로 도입부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영계에 대한 그의 비전들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필수적인 작품은 바로 『천국과 지옥』이다.
  

  이 책의 독자들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이것이 공허한 사색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웨덴보르그는 실제로 영계를 보고 들은 것이다.
  
  “요즈음의 성직자는 천국이나 지옥, 심지어는 그 자신의 사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 교회 안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부정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외쳐댄다. ‘실제로 영계에 다녀온 사람들이 아무도 없잖아?’ 이런 부정적인 태도가 신실한 마음과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오염시키고 부패시키는 것을 막으라고, 내게 천사들을 정면으로 보며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도록 해준 것 같다. 나는 천국은 물론 지옥의 풍경도 보았는데, 이런 일은 13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다.
  
  스웨덴보르그는 천사와 천국에 대한 당대 식자들의 생각;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세계와 미생물들에 대한 그들의 견해, ‘결코 실체가 없는 알레고리적 체류’라는 블레이크의 개념; 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응론에 따라 스웨덴보르그의 천국은 천사들이 집에 거주하며 단체에 소속되어 있고 옷을 입고 지내는 그런 곳이다. 요컨대 지구상의 인간들이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현세적인 차원을 훨씬 능가하는 아름다움과 이상화된 의미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바로 이런 ‘구체적인(concrete)’ 묘사와 천국을 직접 경험했다는 그의 주장으로 인해 그는 당대의 신학자들로부터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을 정도로 거센 반발을 샀다.
  

  스웨덴보르그의 시각에서 볼 때, 사후에 영혼이 직면하는 세계는 방금 떠나온 세계와 아주 흡사하다. 너무도 비슷해서 영혼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반 뒤센의 주장처럼,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되는 그 끔찍한 환각증세는 이 불운한 정령들의 작용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저급한 영혼들의 작용일지도 모른다.
 

 스웨덴보르그는 우리가 평생 일련의 영혼들과 상호작용을 한다고 가르쳤다. 일례로 반 뒤센의 환자들이 보고한 환각증세들은 대개가 그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유용하고 차원 높은 것이었다. 고급한 영혼(천사)들 역시 인간의 경험 속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평상시에는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지만, 정신분열적인 상태에서는 두 세계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채널러들이 소통하는 영혼이 고급한 영혼인지 아니면 저급한 영혼인지는 더 논의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출처 블로그 > 다Vinci의 망치
원본 http://blog.naver.com/yc510/40021174693

 

                                         

 

 

 

스웨덴의 영성가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영혼의 여행을 통해 목격한 '천국과 지옥'은 우리를 빛으로 휘감을 진정한 사랑의 거처였다.

 

은 뒤 천국이나 지옥에 이르려면, 영혼들은 먼저 중간 상태인 정령의 세계(The Spirit World)를 통과해야 한다. 영혼이 자신의 ‘진정한 성정’을 알게 되는 곳도 바로 이 세계이다. 스웨덴보르그에 따르면 ‘정령의 세계는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 죽은 뒤 인간이 처음으로 도달하는 곳’이며,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곳에서 정령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에 따라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참된 본성을 향해 표류하는 죽은 이의 영혼

  이 최초의 자기 직면 이후에 영혼들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참된 본성을 향해 표류하기 시작한다. 스웨덴보르그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두 개의 자질(qualities) 혹은 능력(powers)으로 이루어져 있다. 감성(intention)과 통찰(discernment) 혹은 사랑(love)과 이성(reason)이 그것이다. 인간을 이루는 것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감성에서 비롯된 생각과 실제적인 행위인 것이다. 스웨덴보르그의 말처럼,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은 그의 감성과 그로 인한 깨달음이지, 감성과 유리된 인식은 결코 아니다.
  

  영계가 존재의 상태이므로, 이곳에 기만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야 말과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영계에서는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영계에서는 모든 존재들이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과 몸짓을 통해 자신의 감정적 상태를 숨김없이 드러내게 된다. 때문에 스웨덴보르그는 인간으로서의 건전한 실존적 윤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의 참 모습은 외부적인 앎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로 느끼는 것에 달려 있다. 대부분은 자신이 천국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며, 법을 고수하거나 외면적인 행위를 통해 교회의 명령을 지킴으로써 훌륭한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외면적인 행위는 결코 저 편에서의 위치를 결정짓지 못한다. 우리의 진정한 성정이 타인에 대한 참사랑과 자기에 대한 초월 욕구로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분명 천국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진짜 성정이 자기애와 탐욕과 시기, 방종, 타인에의 지배욕 등 자기애에서 비롯된 감정들에 집중되어 있다면, 외면적인 행위에 상관없이 우리는 지옥으로 추락한다. 

 

  스웨덴보르그의 지옥은 끊임없이 회전하는 상태에 있다. 때때로 지옥에 대한 그의 설명은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와 윌리엄 S. 버로우(William S. Burroughs)의 악몽과 같은 비전들을 혼합한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배설물과 구토물에 형언할 수 없는 악취, 채워지지 않는 욕망, 지겨운 허기, 끝없이 펼쳐진 암흑 그리고 아귀다툼하는 영혼들의 장광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천국에서처럼 지옥의 영혼들도 집과 도시를 이루며 산다. 그러나 천국의 거처가 천상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반면, 지옥의 집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몇몇 지옥에서는 대화재로 인해 스러진 집이나 도시의 잔해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 이보다 덜 끔찍한 지옥에는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 집안에는 무시무시한 영혼들이 끊임없이 싸움과 구타를 일삼고 있으며 (…) 거리에는 도둑과 강도들이 판을 치고 (…) 그런가 하면 온갖 종류의 오물과 배설물이 그득한, 혐오스러운 모양의 매춘굴만 즐비한 지옥들도 있다. 
   

 

  이 외에 바싹 메마른 불모지나 축축한 동굴,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대는 밀림 같은 형태의 지옥들도 있다. 우리가 이곳에 가는 이유는 심판의 신이 내린 징벌 때문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본성과 이 세상에서 우리가 내린 선택들 때문이다. 요컨대 천국과 지옥은 자유의 긴장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 영혼의 두 지주와 같은 것이다. 저급한 세계에의 유혹이 없다면 우리 영혼의 성장에는 활기와 모험이 부족할 것이다. 스웨덴보르그는 자유 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악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지 않는 한 인간에게 구원이란 없다고 생각했다.
  



“천국 자체는 천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천사들은 다시 '진정한 성정'과 같은 덩어리에 속해 있고,

그 모든 덩어리들이 모여 위대한 인간의 몸을 형성한다.”



 

현실에서의 경험은 영적인 실체와 상응한다

  어쨌든 지옥으로 떨어진 영혼들은 정말로 그곳을 즐긴다. 죽은 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데,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영혼들은 우주의 근본적 합일을 산산이 조각내 버리는 자기중심주의를 통해 그런 길을 자초한다. 그의 이런 사상은 ‘큰 뜻을 따르는 자는 대인이 되고, 작은 뜻을 따르는 자는 소인이 된다’는 맹자의 말과도 통한다.
  

  스웨덴보르그라면 아마 맹자의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풀어썼을 것이다. ‘자기 의지를 초월하려는 내면의 부름을 따르는 자는 천국을 선택하겠지만, 자기 의지에 집착하는 자는 지옥을 선택한다. 지상에서 어떤 신분을 갖고 있었든, 지옥에서는 내면의 빈약한 실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스웨덴보르그는 종종 지옥에서 주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스웨덴보르그의 지옥은 이처럼 매력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에 그의 천국은 상상할 수도 없이 충족된 상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천국과 천사들이 실체적이라는 그의 확언은 독자들을 양분시켰다. 고차원적인 세계가 완전히 ‘다른 세계’가 아니므로, 우리의 삶이 선과 진실을 향해 있다면 이 지상의 차원에서도 고차원적인 세계에 관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었다. 반면에 어떤 독자들은 천사들의 집과 주차장, 의복, 식사, 성적인 관계 등에 대한 스웨덴보르그의 묘사가 지상의 것들을 약간 격상시켜서 그대로 천상의 배경 속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며 그의 영계 묘사가 허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실재(One Reality)가 인간적인 것이라는 바로 이 가르침 속에 그의 비전을 이해하는 열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통해 신적인 것에 다가갈 수 있으며, 우리의 경험은 영적인 실체와 상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실체들이 결코 인간적 실체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인간적인 것 어느 것도 영혼의 영역 밖으로 밀어버릴 수 없다. 지상에서의 우리 삶은 영적인 의미들을 반영하는 것이며, 저 편의 세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우리 경험의 잠재력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사상은 우주를 위대한 인간(the Great Man)으로 본 그의 비전속에 잘 나타나 있다. 상응론이 이런 사상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인간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신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며,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 모두 이런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 현상들을 고찰하는 속에서 우리 존재의 여러 측면들을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 신적인 것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스웨덴보르그에게 있어, 실재는 모든 것들의 핵심에 있는 신적인 인간성(the Divine Human)의 반영인 것이다.
  

하지만 천국의 환경이 지상과 아주 흡사하다 해도, 그곳의 조건은 지상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시간과 공간이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다. 스웨덴보르그의 말에 따르면, 천국에서 시간은 하루나 주, 년 단위가 아닌 존재 상태의 변화를 단위로 계산한다고 한다. 시간의 진정한 본질은 직관에 의해 포착된다는 앙리 베르그송의 주장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천국에서 우리는 만날 수 있으며, 신과 하나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천국의 공간 역시 지상과는 다르다. 천국에서 거리는 물리적인 위치가 아닌 감정적 이입의 정도로 측정한다. 때문에 천국에서 마음이 비슷한 영혼들은 그들의 위치가 어디든 서로 ‘가까이’ 있게 된다. 
 

 이 가르침의 핵심은, 진정한 실재란 우리 내면의 물리적 반영이 아닌 바로 우리의 내면 상태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 우주에서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부분의 중심과 근원이 태양인 것처럼, 천국에서는 신성이 천상적인 온기와 빛 즉, 사랑과 진리의 중심과 근원이다. 때문에 천사들은 어느 쪽으로 가든 동쪽에서 언제나 신의 모습을 보며, 신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할 정도로 천사들의 언어는 매우 압축적이고 의미심장하다.
  

 사실 천국에도 세 가지가 있다. 천상적 천국(the celestial)과 영적인 천국(the spiritual), 자연적 천국(the natural)이 그것들인데, 신성과의 거리나 신의 진리와 사랑에 관여하는 정도가 저마다 다르다. 예컨대 천상적 천국은 말로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운 곳으로, 신의 의지 혹은 감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반면에 영적인 천국은 그 관여 정도가 덜하지만, 신적인 깨달음 혹은 통찰에 전적으로 관여한다. 자연적 천국은 신적인 통찰에 관여하는 정도가 미약하며, 천국의 기준으로 볼 때 신적인 감성과도 아주 거리가 멀다.
  

이런 배열은 우리 정신적 삶의 구조와 대응된다. 예컨대 우리의 이성적인 의식은 자연적이며 물질적인 세계에 관여한다. 그러나 꿈이나 최면 상태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 밖으로 진입해, 영적인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깊은 명상적 삼매에 들어간 상태에서는 하나의 실재와 그것의 본질(스웨덴보르그를 포함한 많은 은비가(隱秘家)들은 이를 사랑으로 본다)을 자각하게 된다.
  

천국에 대한 스웨덴보르그의 묘사는 너무도 상세하기 때문에 간략한 요약이 불가능하다. 상응론에 따라 그는 천국의 건축물에서부터 의복에 이르기까지 천사들이 사는 모습을 하나하나 그 영적인 의미와 연결 짓고 있다. 그 결과 힘차고 찬란하며 복합적인 세계의 모든 부분들은 무한정 서로를 반영한다. 요컨대 스웨덴보르그의 천국은 정적인 완벽함으로 정체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신적인 감성의 맥박에 맞추어 무한히 전개되고 있는 곳이다. 그 이미지들은 우리들을 숨죽이게 한다. 스웨덴보르그의 말처럼, 천국 자체는 천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천사들은 다시 ‘진정한 성정’과 같은 덩어리에 속해 있고, 그 모든 덩어리들이 모여 위대한 인간의 몸을 형성한다.
  

 

‘다른 세계’의 가르침은 바로 이 세계에 대한 사랑

  스웨덴보르그의 천국은 단테의 비전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삶의 본질을 스웨덴보르그는 ‘네가 아는 선을 행하라’는 소박한 금언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에게 선이란 결코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설거지나 쓰레기 청소처럼 언제나 가까이 있는 문제인 것이다. 때문에 천국에서는 누구도 빈둥거리지 않으며 모든 천사들이 나름의 소임을 갖고 있다. 천국에서는 천사들로 이루어진 합창대나 기타 다른 곳에서 영원토록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런 삶은 결코 동적일 수 없다. 활동을 배제한 채 빈둥거리기만 하는 인생에 행복이란 없다. 때문에 천국에서는 모든 천사들이 각자의 ‘진정한 성정’에 맞는 할 일을 갖고 있다.
  

실제로 천국에서의 기쁨은 자신의 진정한 성정을 추구하며 다른 존재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는 데에 있다. 반드시 쓸모가 있어야만 한다는 이 ‘준빅토리아적’인 개념은 천사들에 대한 스웨덴보르그의 가르침(천사들은 실제적 행위를 통해서 배운다는 기본적인 실존 윤리)과 연관이 있다. 천사들은 오로지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것만을 배우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행위를 독려하지 않고 그저 훈계만 하는 가르침은 그들에게 아무 쓸모가 없다. 천국에서 중요한 것은 외향적인 과시가 아니라 내면적인 실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내면의 감성적 상태가 곧 모든 것이다.
  

  천국과 지옥을 여행한 뒤 이처럼 소박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 다소 싱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웨덴보르그의 가르침이 그를 만났던 영혼들에게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또 다른 것을 암시한다. 스웨덴보르그가 비록 ‘다른 세계’를 여행했지만, 그의 중심적인 관심사는 언제나 현생에서의 삶의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블라바츠키나 루돌프 슈타이너 같은 후대의 영계 여행자들과는 달리, 스웨덴보르그의 가르침 속엔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전통적인 기독교도들처럼, 스웨덴보르그 역시 지상에서의 삶은 유한한 것이며 진실로 중요한 것은 지상에서의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웨덴보르그는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 사상가인 키에르케고르처럼 자유의 그 끔찍한 책임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요컨대 스웨덴보르그의 비전은 본질적으로 이 세계는 물론 다른 어떤 세계에도 잘 들어맞는 아주 건강하고 풍요로운 성격을 띠고 있다.

 

 

                                                                   2002, 10월호 <정신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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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엄기욱 | 작성시간 09.01.19 옮겨갑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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