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28 세겜 계약
<줄거리>
1. 세겜에 소집 - 하나님 앞에 시립 (1)
2. 여호수아의 전언 : 역사 서론 (2-13)
1) 그 강 건너에 살았던 너희 조상들은 다른 신들에게 종노릇했다(섬겼다).
2)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그 강 건너에서 취하여 가나안 땅으로 걸어가게 했고, 그의 씨를 많아지게 했다.
3) 야곱과 그 아들들이 애굽으로 내려갔다.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애굽을 치고 너희를 이끌어내었다.
4) 애굽에서 나온 조상들이 홍해에서 부르짖을 적에 흑암과 바닷물을 애굽인들에게 덮었다.
5) 광야에서 오래 지낸 뒤, 요단 건너에 사는 아무리 사람들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여, 그 당을 너희 손에 주었다. 발락이 일어났을 적에 발락의 손에서 구해주었다.
6) 예리고에 도착했을 적에 예리고, 아모리, 헷, 기르가스, 히위, 여부스 사람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었다.
7) 아모리 두 왕을 말벌을 보내 쫓아냈다.
3. 주에 대한 백성들의 충성 확인 (14-24)
4. 계약 체결 (25-27)
5. 해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마지막 훈계를 끝냈다(23장). 그는 세겜으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소집했다. 여호수아는, 시내산 계약(출 24장)과 모압 땅의 계약(신 29-30장)에 이어 다시 이스라엘의 계약을 맺었다. 계약을 맺은 곳은 세겜이다. 왜 세겜인가?
세겜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머무른 곳이다(창 12.6). 세겜은 또 야곱이 아람으로 길을 떠났다가 고향 땅 가나안으로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장막을 친 곳이기도 하다(창 33.18). 이들은 왜 세겜에 머물렀는가? 세겜은 하늘스러운 일들[천적인 사실들] 또는 사랑에 속한 일들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상태를 가리킨다(비밀 1441).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땅을 모두 분배한 이후에 세겜에서 계약을 맺었다. 이것은 이제 영적인 싸움은 모두 끝나고, 곧 진리의 투쟁은 그치고, 안식의 일곱째 날에 도달한 평화로운 상태, 곧 천적인 사랑의 상태에 도달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여호수아는 계약을 맺기에 앞서 주의 말씀을 전한다. 그 핵심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본래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돌아갈 수도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주님만을 두려워하고, 그분만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라”고 권고한 것이다(수 24.14). 주를 두려워히고, 그를 성실과 진리로 섬긴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이러한 뜻이다.
제이 고대교회는 내적 예배의 어떤 요소로 말미암아 퇴보했고, 음란해서 드디어 우상숭배에 이르렀다. 교회들이 그러한 일에 익숙해졌을 적에 그들은 내적인 것을 버리고 외적인 것을 추구했으며, 드디어 단순한 외적인 것들에 갇혀 내적인 것들을 더럽혔다. 그러한 사실들이 이 교회 안에 있었던 예인데, 그들 대부분이 주를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고 다른 신들을 예배했다는 사실이 여호수아 24. 2, 14, 15에서 분명한 것이다 (비밀 1356).
말씀에서 “주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예배를 의미하는데, 두려움에서 말미암은 것이든, 믿음의 선에서 말미암은 것이든, 사랑의 선에서 말미암은 것이든, 예배를 가리킨다. 곧, 거듭나지 않았을 적에는 두려움에서 말미암는 예배이고, 영적으로 거듭났을 적에는 믿음의 선에서 말미암는 예배이고, 천적으로 거듭났을 적에는 사랑의 선에서 말미암는 예배이다. 누가복음 12.4,6과 마태복음 10.28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들을 순종으로 몰고가기 때문에 오는 어떤 두려움을 가리킨다. 신명기 17.18-19에서 왕은 속뜻으로 믿음의 진리를 가리키는데, 왕위(왕권)은 주의 영적인 나라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의 주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믿음의 진리로 말미암아 주님을 예배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웃사랑의 선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법의 말씀들을 지키고 그 법규들을 행한다”고 기록된 것이다. 여호수아 24.14에서 “주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선과 진리로 말미암는 예배를 가리킨다. 그것은 영적인 사람에게 속하는 일이다. “성실”[타밈]이란 믿음의 선을 가리키고, “진실”[에메트]이란 믿음의 진리를 가리키는 까닭이다 (비밀 2826).
“증인”이란 진리로 선을 다지는 일, 또 선으로 진리를 다지는 일이다. 여기서 “증언”은 진리에서 말미암은 선을, 또 선에서 말미암은 진리를 가리킨다. 증인이 진리로 선을 다지고 또 선으로 진리를 다진 것이라는 사실을 여호수아 24. 22-27에서 보여준다. 여기서 증인은 다짐이라는 것이 분명하며, 참으로 계약의 다짐이며, 따라서 결합의 다짐인데, 계약은 결합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주님과 결합하는 일은 선에 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가능하지 않으므로, 또 결합하는 선이 진리에 의한 성질을 갖지 않는다면 결합은 가능하지 않으므로, “증인”은 진리에 의한 선의 다짐을 가리킨다는 사실이 따른다. 여기서 선은 주님을 섬기려고 그들이 주님을 택함으로써 이루어진 결합이다. 그리고 다짐이 이루어지게 한 진리는 “돌”이다. 가장 높은 의미에서, “돌”은 주님 자신인데, 모든 진리는 그에게서 말미암는 까닭이며,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돌”(창 49.24)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인이 될 것인데, 그것이 우리에게 하신 주의 말씀을 모두 들었기 때문이다” 하고 언급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