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실장석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짤땅만한 몸과 A 형태의 입.
초록 빨강 눈을 지니고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작은 생명체.
누구도 이 생명체가 어디서 왔는데, 어떻게 발생했는지 알지 못 한다.
그냥 갑자기 생겨났다.
얼핏 보면 귀엽기도 하고 언어가 통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전성기는 짧았다.
실장석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가장 큰 피해는 교통 사고였다.
실장석들은 도로의 위험성을 알지 못 했고, 설령 안다고 해도 그 짧은 다리로 안전하게 도로를 건너는 건 무리였다.
"자들은 잘 듣는 데스. 도로씨는 무척 위험한 데스. 부릉부릉씨가 지나가면서 우리를 짓밟을 수 있는 데스."
한 친실장이 자들에게 교육 중이었다.
자들은 테치 테치 거리며 친실장의 말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다.
"테에. 마마 테치. 근처에 신기한 게 너무 많은 테치."
"레치 레치. 너무 신나서 빵콘한 레치."
친실장은 딱히 주의를 주지 않고 지 할 말만 하였다.
"도로씨를 건널 때는 반드시 이 흰흰 자국이 있는 곳을 통해 건너야 하는 데스."
흰흰 자국이란 횡단보도 표시를 뜻한다.
"알겠는 테치! 장녀인 와타치가 가장 먼저 가는 테치! 오네차들은 와타치를 따라오는 테치!"
장녀가 갑자기 급발진하며 달려갔다.
친실장의 안 그래도 튀어나온 눈이 더욱 튀어 나왔다.
"1녀차! 멈추는 데스! 아직 빨강씨인 데스!"
도도도도 뛰어가는 1녀.
잠시 후 휑 하니 지나간 자동차의 바퀴에 갈려 적록색의 얼룩으로 변했다.
"지벳!"
그 모습을 보자 자매들은 일제히 빵콘하며 공포에 질렸다.
"오네차!"
"오네차가 죽어버린 테치! 갑자기 죽어버린 테치!"
친실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사, 상관없는 데스. 어차피 장녀는 분충이었던 데스. 2녀. 이제부터는 오마에가 장녀인 데스."
"테엣? 와타치가 장녀인 테치? 기쁜 텟츄!"
친실장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다시금 설명했다.
"저기 앞에 보면 빨강씨가 있는 데스. 이 때는 흰힌 자국을 건너면 안 되는 데스. 이 때는 부릉부릉씨가 방금처럼 무섭게 지나가는 데스아?"
"그럼 언제 지나가는 테치?"
"기다리면 빨강씨가 파랑씨로 바뀌는 데스. 가만 지켜보는 데스."
"테휴우... 와타치들 눈 같은 테치."
"역시 와타시를 닮아서 똑똑한 자인 데스."
실장석 가족은 횡단 보도 앞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횡단 보도에 너무 가깝게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번화가가 아니고 근처에 공업 단지가 있는지라 화물 트럭이 자주 다녔다.
거대한 트럭이 굉음을 내며 실장석 가족 근처를 지났다.
쿠르릉!
그 순간 바람과 먼지가 맹렬하게 휘몰아쳤다.
"데갸악!?"
"테챠아아!"
친실장은 그나마 기우뚱하는 정도로 멈췄지만 자실장들이 문제였다.
일제히 나동그라지며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자들은 괜찮은 데스우!? 다친 자는 없는 데스!?"
"와타치 괜찮은 테치."
"와타치도 괜찮은 테츄아... 하지만 너무 놀라서 빵콘한 테치."
친실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인 데스우. 사랑스러운 자들이라 하늘이 도운 게 분명한 데스."
"마마. 그런데 막녀 엄지짱이 안 보이는 테치."
"데겍?! 그러고 보니 막녀짱이 어디로 간 데스?"
자실장이 데굴데굴 구를 정도의 풍압이었다.
그보다 작은 엄지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트럭이 만들어 낸 강력한 풍압에 날아간 엄지는 옆에 있던 배수구에 떨어졌다.
배수구에는 창살 형태의 뚜껑이 있었으나 엄지 입장에서는 창살의 틈이 지나치게 널널한 게 문제였다.
자실장 정도라면 어딘가에 걸치기라도 했을 텐데 정말로 엄지 손가락 크기인 엄지 실장은 창살 사이로 쏙 빠져버렸다.
"레츄앗!? 아픈 레치!"
엄지는 까마득한 위를 올려다 보았다.
배수구 뚜껑의 창살 사이로 빛이 내리 쬐고 있다.
"레에엣!? 여긴 어디인 레치? 더럽고 냄새나는 레치! 마마! 막내는 여기 있는 레치! 꺼내주는 레치!"
막내의 비명을 듣고 친실장이 뚜껑 위로 올라왔다.
"막내차. 거기 있는 데스우?"
"마마! 와타치 여기 있는 레찌! 귀여운 와타치 핀치인 레치. 어서 꺼내주길 바라는 레츄아!"
"... ..."
친실장은 차갑게 돌아섰다.
눈치 빠른 엄지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척추를 바로 세웠다.
"마마...? 어디 가는 레치? 와타치 여기 있는 레치! 꺼내주는 레치!"
"미안하지만 안 되는 데스. 곧 파랑씨가 오는 데스."
"가지 마는 레츄아! 와타치 버리지 마는 레츄!"
엄지는 작은 몸을 버둥대며 배수로의 벽에 매달렸다.
하지만 엄지의 짧은 팔과 둥글둥글한 손으로는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애초에 배수구에는 엄지가 잡고 올라갈 만한 홈이 없었다.
폴짝 뛰어 올라 벽에 부딪치고,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진다.
또 다시 뾱 하고 뛰어 오르지만 역시나 주르륵 나가 떨어질 뿐이었다.
그 자리에는 엄지의 눈물과 운치가 묻은 녹색 자국이 일자로 남았다.
"레챠아! 혼자는 싫은 레츄아! 마마! 제발 같이 가는 레치이익!"
곧이어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파랑씨가 온 데슷! 자들은 어서 출발하는 데스!"
"마마? 막내짱은 어디 있는 테치? 이대로 우리끼리 가는 테치?"
"막내짱은 나중에 마마가 구하는 데스. 우리끼리 먼저 가는 데스."
"역시 마마는 멋진 테치."
"감탄할 시간 없는 데스! 자들은 빨리 뛰는 데스얏!"
친실장은 데싯 데싯 하는 기합을 넣으며 열심히 짧은 다리를 놀렸다.
친실장의 크기는 손바닥 정도.
두께는 주먹 두 개를 맞댄 정도다.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횡단 보도를 건너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한 번에 다 건너지는 못 한다.
절반으로 나눠서 통과한다.
도로에서 얼룩이 된 수많은 희생을 통해 배운 삶의 지식이다.
"데싯! 데싯! 이제 거의 다 온 데스! 중간에 도착하면 잠시 쉬었다가 가는 데스!"
친실장은 침을 질질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데스앗!?"
자들은 시작 지점에 거의 그대로 있었다.
자실장들은 나름 짧은 다리를 놀리며 열심히 뛰고는 있었다.
아니, 몇 몇 자실장만 열심히 뛰고 있었지 꼴찌는 주변의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기 바빴다.
문제는 열심히 뛰나 열심히 안 뛰나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친실장은 펄쩍 뛰었다.
"어서 오는 데스얏! 머뭇거릴 틈은 없는 데슷! 자들은 어서 이리로 오는 데스!"
"테에... 마마, 와타치 운치 마려운 테치. 잠깐 싸고 가면 안 되는 테치?"
"안 되는 데슷! 그냥 싸면서 오는 데스우우!"
"테에엣. 안 되는 테치. 숙녀는 팬티에 빵콘하면 이야 테츄. 착한 마마는 잠깐만 기다리는 테츄아~"
"데샷!"
자실장 하나는 아예 팬티를 내리고 그 자리에서 볼 일을 봤다.
"마마! 저기 높게 솟은 상자는 뭐인 테치? 설마 마마가 말한 닝겐상의 집인 테치? 엄청나게 큰 테치!"
"텟테로제~ 마마와 함께 하는 산책은 너무 즐거운 테치~"
신호등의 파랑불이 꺼지고 빨강불이 들어왔다.
자동차들이 출발하고, 거대한 그림자가 자실장들을 덮쳤다.
나름 고등한 언어를 쓰는 지성 높은 생명체이건만.
맹렬하게 구르는 바퀴에 짓눌려 녹색 얼룩으로 변해버렸다.
"지벳!"
"테뷰욱!"
"테찍!"
찍찍대며 생명들이 하나 둘 꺼져 간다.
친실장은 적녹의 눈물을 흘리며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달려가봤자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그저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다.
"오로롱...!"
지금은 그저 실장석 몇 마리가 찍 하고 죽었을 뿐이지만, 심할 경우에는 교통 사고로 이어졌다.
어두운 밤에 갑자기 실장석을 발견한 운전자가 운전대를 꺾는다던지, 혹은 추운 날씨에 늘러붙은 실장석의 시체에 서리가 껴서 적녹의 빙판길이 의도치 않게 생겨난다던지, 아니면 주차된 차의 보닛 안에서 자던 실장 일가가 차의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갈려서 엔진을 망가트린다던지.
실장석의 등장으로 인해 교통 사고 발생률이 무려 1200%나 증가했다고 한다.
실장석이 유해 조수로 낙인 찍힌 '여러 이유' 중의 하나이다.
실장석을 죽이면 안 된다는 여러 단체가 있었으나 눈에 띄게 사망자가 늘어나니 정부 입장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유해 조수로 정식 등록이 되고 여러 구제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실장석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그로 인해 끝모를 듯 치솟던 교통 사고율도 서서히 안정세를 보였다.
다만 거기에는 인간의 노력만이 있지는 않았다.
무수한 희생을 통해 지혜를 얻은 실장석들의 노력 또한 있었다.
"자들은 잘 듣는 데스요?"
친실장은 자들을 모아두고서 설명에 들어갔다.
"여기는 횡단보도라고 하는 곳인 데스요. 무시무시한 부릉부릉씨가 지나는 도로씨를 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횡단보도를 통해서 지나야 하는 데스. 명심하는 데스."
"명심하는 텟치!"
친실장의 자들은 일제히 삐약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친실장의 표정이 흡족스러워진다.
'이번 자들은 똑똑한 자들인 데스. 저번과 같은 슬픈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 데스.'
저번에 횡단 보도를 걷다가 자들을 모두 잃은 친실장이었다.
그런 비극이 있었기 때문일까?
친실장의 준비는 철저했다.
'이번에는 슬픈 일을 피하기 위해 봉투를 마련한 데스.'
봉투도 종류별로 사이즈가 다른데, 친실장이 들고 있는 건 가장 작은 크기였다.
친실장은 봉투를 펼쳤다.
"자들은 안으로 들어오는 데스."
"텟치!"
우르르, 자실장들은 봉투 안으로 들어갔다.
친실장은 봉투의 손잡이에 손을 넣어서 양 어깨에 걸었다.
가방처럼 맸다.
"잘 듣는 데스. 저기 멀리 보이는 빨강불이 파랑불로 바뀌어야 이동하는 데스. 그 전에는 이동하면 부릉부릉씨에 부딪쳐서 죽는 데스."
"테치이이. 무서운 테치..."
"지금은 마마가 함께 하지만 나중에 자들도 성장하면 자들을 잘 가르쳐야 하는 데스. 알겠는데스요?"
"텟치!"
신호등의 파란 불이 들어왔다.
친실장은 귀를 쫑긋거리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와타시의 몸은 이미 준비가 된 데스. 그럼 출발하는 데스앗!'
친실장은 데싯 데싯 거리며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자들을 무려 셋이나 매고 있어서 힘겹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운을 냈다.
"거의 다 온 데스!"
"마마! 힘 내는 테치!"
봉투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들은 힘내라며 노래를 불렀다.
"마마! 힘내는! 테치!"
"힘내라 테치! 힘내라 테치!"
하지만 그 소리는 친실장의 신경만 긁을 뿐이었다.
'데에에.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는 데스...'
어찌어찌 친실장은 횡단보도의 중간에 도달했다.
아슬아슬하게 신호등 불이 바뀌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섭게 쌩쌩거리며 지나는 차를 보며 친실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부릉부릉씨 너무 무서운 데스... 너무 크고 너무 빠른 데스우..."
겨우 횡단보도의 절반을 넘었을 뿐이다.
하지만 친실장은 벌써 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숨도 가빠서 숨을 쉴 때마다 데싯 데히힛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너무 힘든 데스 잠시만 쉬는 데스."
친실장은 잠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그런데 그 순간.
"테뷰웃!?"
"테뺙!?"
잠시나마 등에 매고 있던 봉투에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친실장의 무게에 짓눌린 자실장은 즉시 뼈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어떤 녀석은 바로 목이 부러진지라 비명도 못 지르고 죽었다.
"데스아앗! 자들은 움직이지 마는 데스! 가만히 있어야 하는 데스!"
자들은 애초에 움직이지 않았다.
친실장 혼자서 자초했을 뿐.
"마... 마마... 숨이 막히는 텟... ..."
"오로롱! 어째서 이런 비극이 또 벌어진 데스읏!"
친실장이 오열하고 있을 때였다.
자동차 한 대가 살짝 옆으로 이동했다.
그냥 직진해도 되는데 일부러 슬쩍 옆으로 이동했다.
그대로 친실장의 다리를 짓뭉갰다.
"데갸아악!"
실장석으로 인한 사고가 많다 보니, 실장석에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운전자도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일부러 밟고 지나간 것이다.
잔인하게도 완전히 짓밟지 않고 반만 밟았다.
"데갸아아! 아픈 데스! 와타시의 아름다운 각선미씨가!"
"마마... 와타치타치도 아픈 테에... 파킨!"
친실장은 한참을 그렇게 오열했다.
다리를 잃을 때의 고통, 자들을 잃은 슬픔에 사무쳐 울었다.
몸부림 쳤다.
그리고 몸부림 칠 수록 아스팔트와 친의 몸 사이에 끼인 자실장들의 숨은 더더욱 막혀만 갔다.
하지만 이곳은 인적이 드문 횡단보도 한 가운데.
누구도 친실장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히 차들이 왕복할 뿐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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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pt.dcd 작성시간 22.04.08 난무하는 실장석 로드킬 때문에 SUV+스노우 타이어가 필수인 세상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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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뱀왕님 작성시간 22.04.08 도로에 페인트칠하는 업체들 딥빡감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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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가치 있는 삶 같이 있는 삶 작성시간 22.04.09 일거리 늘어서 좋아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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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실장권리증진본부 작성시간 22.04.09 간만에 좋은 작품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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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화살촉 작성시간 22.04.09 오랜만에 레전드가 납신데스.
실장석갤러리 명작 소개란에 이 센세의 글에 대한 평이 아래와 같이 있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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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liang - <대가와 책임.> 01 끝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임. 스크도 명작.
작가가 지금 활동 안하는 이유가 싸움난거 중재하다가 카페 특유의 아 모르겠고 분쟁에 엮인건
다 분충이야 빼애액에 걸려서 목이 날아갔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확실한건 아니므로 자세한
사정을 아는 사람이 댓글로 수정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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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좋은 스크 많이 올리던 센세인데스. 찾아보시기 바라는데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