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2주일이 폭풍같이 지나갔고 기온은 불과 몇 도가 내려갔을 뿐이었지만 두루마리 공원의 들실장들 사이에서는 꽤 많은 것이 변하였다.
식량석들은 이제 41번의 지도 없이 은행꼬치를 만들 수 있게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은행 과육을 만진 세 마리의 피부염, 은행을 깨다가 으깨진 두 마리의 손, 모닥불에 지나치게 다가간 다섯 마리의 앞머리 등 약간의 희생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이제 식량석들은 아예 은행꼬치를 만드는데 전념하고, 은행을 줍는 것은 관리석이나 경찰석들에게 맡겨버렸다.
보스의 지시가 있기도 했지만 대신에 그들도 갓 구운 따끈따끈한 은행꼬치를 얻어먹을 수 있었으니 그다지 손해보는 거래는 아니었을 것이다.
가을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버려진 은행이야 공원은 물론이고 인근 가로수 근처에 아주 지천으로 널려있기에 은행을 줍는건 수집이라기보단 운반에 가까운 작업이 되었다.
이렇게 꽤나 효율적으로 분업이 된 은행꼬치 제조작업은 점점 능률이 늘어나 이대로가면 41번이 장담했던 대로 ‘한 달내로 식량창고를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어보였다.
“으, 갈 수록 추워지는데스우. 겨울이 얼마 안남은 것 같은데스우.”
요즘 아침에 늘 그랬던 것 처럼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에 관리실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41번의 손을 잡고 걷고있었다.
“관리실장상, 물어볼게 있는테스.”
“뭐인데스우?”
“보스에 대해서 알고싶은테스.”
“뎃? 그건 왜 알고싶은데스우?”
퍽 뜬금없는 질문에 관리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결국 영 자신없단 투로 대답했다.
“와타시도 잘은 모르는데스. 힘이 엄청 세다는 거랑, 나이가 엄청 많다는 거랑 전 보스랑 결투에서 이겨서 보스가 된 것 밖에 모르는데스우.”
“결투라고한테스?”
“아, 식량실장상은 중실장이라 모르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는데스우. 그게 그러니까⋯”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듯이 관리실장은 미간을 찌뿌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와타시도 경찰실장에게 들은 이야기데스우. 전 보스는 엄청엄청 나쁜 실장석이 생기면 일부러 들실장들을 모아놓고 그 한 가운데서 슬픈 일을 하곤했던데스우. 전 보스는 그걸 ‘처형’이라고 부른데스우. 그 ‘처형’ 도중에 보스가 뛰어들어가서 전 보스에게 결투를 신청한데스우. 아무리 보스라지만 공원 들실장들이 다 모인데서 겁먹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데스우. 그 결투에서 이긴게 지금 보스라고 들은데스우.”
“보스를 결투에서 이기면 보스가 될 수 있는테스?”
“보스가 와타시타치 중에서 제일 쌘데 그 보스를 이기면 더 쌘 놈이라는 말이잖은데스우? 쌘 놈이 자기가 보스를 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리겠는데스우.”
“보스는 결투 신청을 자주 받는테스?”
“옛날에 분충들이 득실득실 했을 때는 자주 받은데스우. 요즘에야 날도 이렇고 다들 자기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 틈이 없는데스우.”
“그럼 여기 공원에서 가장 쌘 실장석이 보스겠는테스?”
“보스는 힘도 힘인데 대못을 엄청나게 잘 다루는데스우. 결투에서 늘 이긴 것도 그 대못을 기가막히게 잘 다뤄서였던데스. 하지만 힘이라면 군대실장상이 더 쌘데스우. 키도 크고 마라실장이라 근육이 어우, 장난이 아닌데스우.”
“그럼 군대실장상도 보스에 도전할만하겠는테스?”
“절대 그럴 일은 없는데스우. 식량실장상도 알겠지만 원래 군대실장상은 원래 마라라서 죽어야했던데스우. 그걸 살려주고 대장석을 시켜준게 보스인데스우. 군대실장상과 군대석들한테 보스는 그야말로 카미사마인데스우.”
“그런테스까⋯⋯.”
관리실장은 보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안 그래도 추운데 더 서늘해진 듯 또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스 이야기를 하다보니 관리실장은 운치굴 자판기 신세가 된 전 관리실장 생각에 우울해졌고, 그러거나말거나 41번은 방금 들은 정보가 도움이 될지를 골똘히 생각하며 회의장으로 향했다.
“군대석, 문제 없는데스. 야옹상, 다른 공원 분충, 안 나타난데스. 은행열매, 주워서 식량석들한테 갔다준데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보스 우측에 앉아있던 군대실장 부터 보고를 시작했다.
“이웃공원 놈들 상황은 어떤데쓰?”
“이웃공원, 많이 굶는데스. 와타시타치, 은행 먹을 수 있는데스. 이웃공원, 못 먹는데스. 이웃공원, 와타시타치에게 못 쳐들어오는데스.”
“그럼 공원 입구에 세워놓은 군대석들 반으로 줄이고 골판지에서 쉬게하는데쓰. 경찰석은 어떤데쓰?”
“경찰석들도 문제 없는데스. 겨울상이 가까워져서 실장석들이 밖을 잘 안 다녀서 일이 줄어든데스. 그래서 와타시타치도 은행 주워서 식량석들한테 갖다주고 있는데스.”
“이 때쯤마다 이웃집 월동식량을 노리고 습격하는 분충들이 있는데쓰. 방심하지말고 경찰석들 계속 공원 돌아다니게 하는데쓰.”
“하이데스!”
“관리실장, 운치굴에 얼어죽은 노예는 없는데쓰?”
“없는데스우. 자판기들이 아주 실한 구더기를 뽑아주고 있는데스우. 굽다가 부숴진 은행열매를 우지챠들 먹이로 주면 좋겠다는 식량실장상 아이디어 덕분인 데스우~”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인데쓰. 구더기들이 고치 만들면 실들 나뭇가지에 돌돌 말아서 창고에 넣어두는데쓰.”
“하이데스우!”
“식량실장?”
“하이테스. 식량쪽도 매우 잘 되고 있는테스. 곧 식량창고가 가득 차는테스. 이젠 와타시가 없어도 될 것 같은테스.”
“다행인테스. 이번 겨울도 무사히 날 수 있겠는데쓰. 이게 다 식량실장덕분인데쓰.”
아침마다 있는 이 회의는 며칠 전부터 41번에게 굉장히 불편한 자리가되었다.
보스의 말 한 마디, 대답 한 마디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와타시는 한 일이 없는테스. 다 식량석들 덕분인테스.”
“호오, 겸손하기까지한데쓰?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식량석 하나가 죽었다고 들은데쓰.”
이상한 분위기를 직감한 관리실장은 경찰실장의 눈치를 살폈다.
경찰실장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앙다문 턱에 힘줄이 울룩불룩 튀어나와있었다.
“개인적으로 좀 알던 실장석이었는데, 참 안타깝게 된데쓰. 꽤 괜찮은 실장석이었지데쓰?”
41번은 늙은 식량석이 죽기 며칠 전 일을 떠올렸다.
식량실장이 된 첫 날부터 그랬지만 늙은 식량석은 좀처럼 쓰레기장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쓰레기장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다른 식량석들에게 지시를 내리거나 41번을 상담해주는 일 정도였지만, 다른 식량석들은 거기에 불만을 표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41번도 그걸 문제삼거나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와타시, 곧 죽는데스.”
“왜인테스?”
“어제가 와타시의 10번째 생일이었던데스. 가슴의 소중한 돌이 이제 얼마 남지않았다고 말해준데스.”
그게 이런 이유였던가.
“그런테스까⋯⋯.”
“뭐, 이 늙은이가 죽고 사는 것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데스? 들실장인데 수명을 다 채우고 죽는건 큰 행운인데스. 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닌데스. 식량실장상, 와타시가 보스랑 나이가 비슷하다는 걸 알고있는데스?”
“몰랐던테스.”
“와타시가 먼저 태어나긴 했지만 큰 차이는 없는데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데스?”
“보스도 곧 죽는다는 말인테스?”
“그런데스. 그리고 와타시가 보기에 지금 다음 보스는 오마에인데스.”
“그럴리가 없는테스. 와타시는 이번 겨울까지만 대장석을 맡기로 약속한테스. 그런데 보스라니 무슨 말인테스?”
“오마에의 생각은 중요하지않은데스. 중요한건 보스가 오마에를 다음 보스로 점찍어두고 있단 사실인데스. 오마에, 다음 보스가 될 생각이 있는데스?”
“와타시는 언젠가 이 공원을 떠나야하는테스. 보스를 맡을 수는 없는테스. 그렇게 큰 책임을 떠맡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닌테스.”
“그럼 당장 이 공원을 떠나는데스.”
“왜 그렇게되는테스? 와타시 말고 다른 실장석을 보스로 삼으면 될 문제가 아닌테스?”
“보스는 머리가 굉장히 똑똑한데스. 그리고 오마에도 마찬가지인데스.”
“⋯그렇다치는테스. 그래서 왜 공원을 떠나란 말인테스?”
“보스의 자질은 있으면서 보스가 되지 않는 식량실장상은 보스자리에 위험하기 때문인데스. 보스는 공원에 위험할 것 같으면 자기 자매도 가리지 않고 죽여왔던데스. 오마에를 죽이는 건 보스에게 일도아닌데스. 보스가 되는데스. 그게 싫다면 어서 공원을 떠나는데스.”
“하지만 안 되는테스. 이 겨울에 골판지를 버리고 어디서 살라는 말인테스?”
“정말로, 정말로 공원을 떠날 수 없는데스?”
“지금은 공원을 떠날 수는 없는테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테스.”
“그럼 와타시가 할 말은 하나뿐인데스.”
짐짓 안타까워보이는 듯한 표정을 짓는 보스를 보며 41번은 그 대화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보스를 조심하는데스.”
“맞는 말인테스. 참 좋은 실장석이었던테스.”
“뭐, 그 식량석 이야기는 이만 됐고 이제 다들 가서 일 보는데쓰.”
군대실장을 필두로 경찰실장과 아직도 경찰실장의 눈치를 살피는 관리실장, 그 뒤로 41번이 나가려던 참이었다.
“식량실장. 오마에는 잠깐 남는데쓰.”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참으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아니, 이건 예감이 아니라 확신이다.
“식량실장 나이가 1년하고 11개월이라고 했지데쓰? 조금만 지나면 성체실장이 되겠는데쓰.”
“그런테스.”
“와타시가 오마에만할 때 공원은 지금과 같지 않았던데쓰.”
그 때가 생각난다는 듯이 눈을 감는 보스를 보면서 41번은 지금이라면 보스를 살해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를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다.
“사방이 분충이고 이웃공원은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오고 겨울이 오면 태반은 굶어죽었던데쓰. 분충들이 앞뒤 못 가리고 날뛰어서 닝겐들도 와타시타치를 많이 잡아죽이고 그랬던데쓰. 그래도 와타시는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보스가 된데쓰.”
다시금 눈을 뜬 보스의 눈에서는 빛이 쏘아져 나오는 듯 했다.
실장석을 생명체로 여기지 않는 어느 남자와도 생활한 적이 있는 41번이었지만, 여느 누구 못지 않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보스의 박력에는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보스가 되어서 와타시는 이 공원을 바꾼데쓰. 대장석과 부하석들을 만든데쓰. 경찰석 덕분에 공원에 분충들이 없어지고 군대석 덕분에 이웃공원 분충들은 못 쳐들어오는데쓰. 식량석과 관리석 덕분에 겨울에도 굶어죽는 실장석들이 없어진데쓰.”
세월은 생명체를 닳고 녹슬게 하지만 누군가는 그 세월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기도 한다.
나이를 먹었지만 그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겨 약해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오히려 자신의 강함으로 만든 단단함. 그것이 보스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데쓰. 와타시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데쓰.”
하지만 시간은 그 단단함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저 더 강하게, 더 오래 불어올 뿐이다.
“그리고 와타시는 오마에가 다음 보스를 하길 원하는데쓰.”
올 것이 왔다.
무거운 왕관이. 받을 수 없는 권력이. 받아서는 안 되는 의무가.
“보스상, 와타시는⋯”
41번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느낀 것은 기시감이었다.
여기에 온 첫날에도 이렇게 저 굵고 거친 손으로 입을 틀어막혔다.
그 날부터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얼굴을 들이미는 보스의 짙어진 눈 그림자와 주름에서 41번은 보스에게 가까워져 오는 죽음이 보였다.
‘닥쳐라’라는 의미가 너무나도 명확한 그 동작에 41번이 말을 멈추자 보스는 손을 풀었다.
“오마에가 원한다면 오마에가 해야 하는 이유와 다른 실장석이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수십가지라도 말해줄 수 있는데쓰. 하지만 와타시가 원하는 건 오마에를 설득하는 게 아닌데쓰. 와타시가 원하는 건 딱 한 가지인데쓰.”
보스는 자신의 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작은 41번의 귀에 잘근잘근 씹듯이 속삭였다.
살다보면 많은 선택에 직면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가혹하여 시험에 들게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하겠는데쓰, 말겠는데쓰?”
양자택일. 흑이냐 백이냐, 홀이냐 짝이냐,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앞이냐 뒤냐, O냐 X냐.
그 단순무식함에 얼마나 많은 희비가 교차되었던가.
“못하는테스.”
어쩔 수 없다. 이게 예정된 유일한 답이다.
41번의 답을 들은 보스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41번에게는 그것이 가장 격렬한 반응으로 보였다.
41번은 저 눈빛을 알고있었다.
한 톨의 애정도, 한 방울의 눈물도 없이 바라보는 저 눈빛을 하는 어느 남자를 알고있었다.
“그런데쓰까.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전부 다 잊어버리는데쓰. 그만 나가서 일보는데쓰.”
보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늘 앉아있던 원탁의 자기 자리로 가서 앉더니 귀찮다는 듯이 41번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뒷걸음으로 회의장을 나서려던 41번은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졌다.
아, 숨 쉬는 것을 잊었구나
쓰러지려고하는 몸을 간신히 붙잡고 회의장 안의 꽉 막힌 공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폐속에 밀어놓고 41번은 겨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41번을 보내고 보는 눈이 없자 보스는 자리에 벌러덩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러고 한참을 자는 듯이 누워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구석에 놓여있던 물통을 들어 벌컥벌컥 텅 비우더니, 물통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씨발년데쓰!! 총구를 잡아 찢어죽일년데쓰!!
보스는 강제로 시킬 수 없다.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힘으로 강요해서 보스자리에 앉히면 뭐하겠는가?
끊임없이, 쉬지않고 일을 해야 그나마 돌아가는 것이 보스의 일이다.
대장석들이 있는 잠깐 동안에는 돌아가겠지만, 그 다음은?
“못한다고한데쓰?! 못한다고한데쓰?! 그럼 와타시는 어쩌란 말인뎃쌰!!! 이 공원은 어쩌란 말인뎃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설득하고 어르고 달래봐야 아무 소용 없다.
그래서 죽기 직전인 지금까지도 다음 보스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보스를 하려고 하는 놈들은 많았지만 죄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혹은 능력이 부족한 얼치기들이었다.
그래서 지금 봐온 실장석들 중에서는 41번이 가장 적당한 후보인데, 자기가 싫다고하니 보스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원망스럽다.
모든 것을 공원을 위해 바쳤다.
보스가 된 이후로는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고, 혹시라도 자(子)가 생기면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워 보스가 되자마자 눈을 뽑아 스스로 불임이 되었다.
그래도 나중가면 자랑스러울 것이다, 다음 보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평화롭게 여생을 보내며 이 공원을 자랑스럽게 다닐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왔건만 정신차려보니 어느샌가 죽을 날이 가까워져있었다.
그나마 소망 하나, 믿음직스런 후계자에게 보스 자리를 맡기고 안심하고 눈을 감는 소망 하나도 못 이루고 죽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온 몸을 바쳐서 해온 일의 끝이 겨우 이거란 말인가?
죽으면 공원이 풍비박산이 날 걸 뻔히 알면서도 이 남은 한쪽 눈을 감아야한다니.
그렇게 생각하면 원망스럽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이고 허공을 향해 저실장이 들으면 파킨할 법한 소리를 위석이 터져라 내뱉던 보스는 제풀에 지쳐 다시 벌러덩 눕고 한쪽 눈으로 천장이 원수라도 되는마냥 노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불쾌감을 극한까지 자극하는 마이크 특유의 잡음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들립니까? 들리면 오른팔로 물구나무를 서서 반주에 맞춰 브레이크 댄스를 춰주세요~”
보스가 이성을 간신히 잃지 않은 것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파킨할듯이 치솟아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고 보스는 천장 달려있는 CCTV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닌데쓰. 별일 아니면 닥치는데쓰.”
“아잉, 보스쨩 너무 매정해~ 우리가 하루이틀 보는 사이야?”
“운치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하는데쓰.”
“아아, 별건 아니고 내가 소문으로 들은건데 너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
“저기 달린 저 씨씨팁인가 뭔가 하는거, 꽤 비싸지 했지데쓰? 지금 와타시가 기분이 상당히 안 좋은데, 오늘 저거 한 번 때려 부숴주는데쓰?”
“에이, 너무 그러지 마라. 이래봬도 널 위해서 오랜만에 이렇게 말하는 건데?
“오마에가 지금 와타시를 위해 해줄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는데쓰.”
“그래? 네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
“⋯말해보는데쓰.”
보스가 미심쩍게 노려보는 CCTV의 렌즈 너머, 허름한 복장에 포니테일을 한 어느 남자가 싱긋 웃으며 마이크에 속삭였다.
“나에게 계획이 있어. 한 번 들어볼래?”
12.
해가 저물 무렵,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일과를 마치고 41번은 찔레숲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좀 일찍 돌아온보쿠.”
41번은 자실창의 마중을 못들은 것 마냥 골판지 구석으로 가 쪼그리고 앉았다.
이 실장석이 어디가 잘못되기라도 한건가, 싶었던 자실창은 41번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 있는보쿠?”
41번은 갑자기 자실창을 홱 잡아채 끌어안았다.
중심을 잃고 졸지에 골판지 벽을 향해 얼굴을 처박은 자실창은 당황스러워 빠져나가려 바둥거렸다.
“가가가, 갑자기 왜 이러는 보ㅋ⋯”
“와타시가⋯어떻게 하면되는테치?”
버둥거리던 자실창이 멈췄다. 자실창을 서툴게 끌어안는 41번의 손은 덜덜 떨리고있었다.
“와타시가 어떻게 하면 되냔 말인테치. 왜 닝겐상들은 와타시타치를 키우려고 하는테치? 왜 아침마다 이상한 춤연습을 해야하는테치? 왜 장녀와 차녀 오네상은 와타시의 팔을 먹은테치?”
자실창은 41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자실장으로 퇴행이라도 한듯이 혀짧은 어미를 붙여 무미건조하게 의문을 읊어대는 목소리 뿐이었다.
하지만 자실창에게 그런 것들은 알 필요가 없었다.
“왜 마마는 와타시를 때린테치? 왜 센세는 와타시를 센세에게 보낸테치? 왜 보스는 저러는테치? 와타시는 보스에게 아무 잘못도하지 않은테치. 억지로 일을 시켜놓고 끝나는 마당에 왜 저러는테치? 와타시는⋯잘 모르겠는테치.”
자실창이 이해한 것은 단 한가지였다.
이 실장석은 상처입고 지쳤다. 자신 때문에.
“⋯⋯.”
하지만 자실창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 때문에 힘들어 하는 실장석에게는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실창석으로의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식량실장상! 식량실장상! 어디있는데스우! 빨리 나와보는데스우!”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둘은 순식간에 자세를 풀고 긴장태세가 되었다.
다행히 둘 모두 알고있는 목소리이다.
이 시간에 온 것이라면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보통 급한 일이 아닐 것이다.
밤이 늦고 날은 추우니 어쩌면 저 실장석을 골판지에 들여야할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살려보낼지는 알 수 없지만.
“오마에, 눈가리개를 하는테스.”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온 41번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굳은 얼굴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자실창은 혼자 능숙하게 검은색 눈가리개를 맸다.
밖으로 나가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가로등도 없는 외진 숲에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밤하늘에 달이 대낮처럼 밝았다.
덕분에 41번은 아무런 문제없이 관리실장이 소리 지르는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다가 야옹씨 부르겠는테스, 관리실장상.”
“덱! 또 뒤에서 온데스우.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데스우?”
41번은 대꾸없이 ‘그래서 왜 온 테스?’란 의미를 담아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중요한 일인데스우.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스우?”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나쁜 소식 쪽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지만 일단 들어야한다.
41번은 별 수 없이 관리실장은 찔레숲 숨겨진 길로 데려갔다.
“히야, 골판지 한 번 잘 지어놓은데스우. 어떻게 이런 곳을 찾은데스우?”
“와타시가 지은 건 아니고 와타시 전에 어떤 실장석이 지어놓은테스. 말하자면 우지챠가 엄지가 되어도 시간이 부족한테스.”
적당히 대꾸해주며 41번은 식량실장을 데리고 골판지에 들어갔다.
눈가리개를 한 채 긴장한 자세로 앉아 있는 자실창을 보고 관리실장은 깜짝 놀랐다.
“식량실장상, 자도 있던데스우?”
“와타시의 자는 아니고 이모우토챠인테스. 사고를 당해서 눈이 다쳤는데 흉터가 너무 끔찍해서 저렇게 가리고 사는데스우.”
“⋯⋯.”
“헤에, 그런데스우? 와타시는 관리실장인데스우. 오마에는 뭐라고 부르는데스우?”
“⋯⋯.”
“저 아이는 벙어리인테스.”
“저런, 자실장이⋯⋯. 오마에도 힘들겠는데스우. 힘 내는데스우!”
“⋯그래서 지금 그 말 하려고 찾아온테스?”
“아 참,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닌데스우!”
관리실장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지더니 습관인지 또 주위를 몇 번 휘휘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보스가 식량실장상을 죽이기로한데스우.”
이번에는 두명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늘 점심쯤에 식량실장상 몰래 대장석들을 다 모아놓고 식량실장을 죽인다고한데스우. 경찰석, 군대석들 눈을 피하느라 이렇게 늦게서야 온데스우.”
이렇게 될 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41번의 머릿 속에는 대체 어떻게 하면 되냐는 물음만 메아리치고 있었고 자실창은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한 쪽에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관리실장은 약간 망설이는 듯 하더니 41번을 향하여 꿇어 절하며 이마를 바닥에 처박았다.
재패니즈 석고대죄, 일명 도게자다.
“미안한데스우! 와타시가 식량실장상을 끌여들여서 이렇게 된데스우!”
하지만 이런 걸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둘 모두 알고있었다.
“된테스. 고개를 드는테스. 그건 관리실장상의 잘못이 아닌테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테스.”
“아닌데스우! 사죄의 의미로 식량실장상은 와타시가 책임지겠는데스우! 식량실장상의 이모우토도데스우!”
“어떻게테스?”
“와타시가 이웃공원으로 가는 길을 아는데스우. 숨겨진 길이라서 경찰석들도 군대석들도 모르는 길인데스우. 일단 골판지만 챙겨서 이웃공원에 가있으면 와타시가 여기 물건들을 몰래몰래 가져다주겠는데스우.”
“그거 참 좋은생각인테스.”
어쩌면 보스가 41번을 죽이겠다는 말이 다 거짓말이고 이 골판지의 물건들을 갖기위한 관리실장의 계략이 아닐까, 라고 잠시 생각해봤지만 41번이 지금까지 겪어온 관리실장은 그런 거짓말을 꾸며낼만큼 분충도 아니었거니와 애초에 그럴 생각을 할만큼 머리가 좋지도 않았다.
따라서 아마 보스가 41번을 죽이겠다는 말도 진짜일테고 식량실장의 제안 역시 진심일 것이다.
“그치데스우? 그럼 당장 골판지를 접어서 옮기는데스우! 오늘은 마침 달님도 밝은데스우!”
“하지만 와타시의 이모우토챠만 부탁하는테스. 와타시는 계속 여기에 있겠는테스.”
하지만 그건 41번이 이 공원을 벗어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째서? 어째서인데스우?”
“와타시는 여기서 벌을 받는 중이테스. 이 공원을 떠나면 안되는테스.”
자실창은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관리실장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관리실장은 큰소리로 뭔갈 말하려다가 멈칫하더니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드물게 약간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타시는 멍청해서 그런건 잘 모르는데스우! 그런데 하나는 알고있는데스우. 가족끼리는 떨어지면 안되는데스우!”
관리실장은 몰랐겠지만 그 가족을 죽이고 잡아먹은 죄로 이곳에 오게된 41번에게는 폐부에 꽃히는 듯한 말이었다.
“오마에의 이모우토챠, 몸도 불편하다고 하지 않은데스우? 그런데 그냥 내버려둘 생각인데스우? 저 자실장은 오마에의 도움이 필요한데스우. 그것말고 또 뭐가 중요하냔데스우!”
또 다시 지긋지긋한 양자택일이다.
가족. 그래, 가족 좋다.
자실창이 가족에 가까울까? 아니면 잡아먹은 자매들이 가족에 가까울까?
자실창을 지켜야할까, 자매들을 잡아먹은 벌을 받아야할까?
“관리실장상, 와타시는⋯”
쿠웅
41번이 뭔갈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관리실장이 픽하고 쓰러졌다.
무슨 일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실창도 이미 죽은 듯이 엎드려있었다.
영문을 모르고 둘만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41번은 문득 공기에서 굉장히 오래전에 딱 한 번 맛본 적이 있는 향이 난다는 것을 눈치챘다.
언젠가 마셔본 적이 있는 이⋯향은⋯
“전부, 잠든데스. 네무리, 그만 뿌리는데스. 식량실장 빼고, 전부 잡아오는데스.”
이 골판지만은, 저 아이만은 안되는데
그렇게 중얼
거리며 41번은
⋯
13.
41번이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떠올리고 벌떡 일어나니 저혈압으로 순간 눈앞이 흐릿해졌다. 시력이 회복되는 도중에도 주위를 휘휘 둘러보니 있어야할 실장석과 실창석이 없어 41번은 없는 위석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기분으로 골판지를 나섰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있을리가 없다.
그 다음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주위 풍경이 스쳐지나갔고, 활성제가 없었으면 허파가 찢어지고 발목뼈가 부러져라 뛰었다.
그 순간만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라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
회의장 근처 즈음 도착하니 산소가 부족하여 눈앞이 핑핑 돌았다.
나무를 붙잡고 간신히 진정시키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수백명의 들실장들, 귀로 들리는 것은 웅성거리는 소리 속의 지겹도록 익숙한 목소리들이었다.
“이게 다 무슨 짓인데스우! 왜 불쌍한 관리실장상 이모우토챠를 납치해온데스우! 아무리 보스라도 이건 지나친데스우!”
케이블 타이에 사지를 결박당한채 꿇어앉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섭게 항의하는 관리실장의 모습에서 평소 보스가 무섭다고 벌벌 떨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호오, 지나치다고한데쓰? 관리실장, 그렇게 안봤는데 꽤 용감해진데쓰?”
“조⋯조금 너무하지 않은데스우? 보스상, 대체 왜 이러는데스우?”
이젠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뭐, 대답 못해줄 것도 없는데쓰. 오마에 덕분에 식량실장의 골판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 말인데쓰.”
“데,데뎃! 보스상, 와타시를 미행했던데스우?”
“관리실장, 신기했던데스. 와타시, 계속 뒤따라간데스. 관리실장,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데스. 미행, 우지챠 먹기였던데스.”
“와타시 또 관리실장상한테 민폐끼친데스우? 와타시는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스우⋯⋯.”
빙빙 도는 머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실장석들을 헤치고 나가니 대못과 망토로 무장한 거세된 독라 마라실장. 군대석들이었다.
군대석들은 바깥을 향해 커다란 원 모양으로 진을 치고 있었고, 군대석들로 만든 그 커다란 원 안쪽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41번이 실장석들을 헤치고 군대석들 앞으로 나아가자 군대석 하나가 41번을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대못을 겨누었다.
“여기 그 놈이 온 데스!”
거기에 반응한 군대석들이 금속질 소리를 내며 대못과 커터칼을 빼어들자 주위 실장석들은 비명을 지르며 41번 뒤쪽으로 물러났다.
“왜 그러는데쓰? 식량실장이 아침회의에 왔으니 여기로 데려오는데쓰. 거기, 식량실장상 들어오게 비키주는데쓰.”
경계하던 눈빛으로 노려보던 군대석이 무장을 풀고 길을 터줬지만 41번의 시선은 태연자약한 보스도, 군대실장도, 색눈물을 줄줄 흘리며 미안한데스우를 연거푸 말하는 관리실장도 아닌 단 한 곳만을 향했다.
십자가.
자실창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다행히 눈가리개는 풀리지 않았지만 케이블타이에 양쪽팔과 다리를 결박당하고 허공에 매달린 채 모가지를 바닥에 추욱 늘어뜨린 모습은 어느 때보다 위태로워 보였다.
아마도 교회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려있었을 그 십자가는 밑부분이 반쯤 땅에 박혀있음에도 실장석 눈높이 보다 한참 높아 모여든 모든 실장석들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위태롭고 안쓰러워 보였는지 군중에서는 이따금씩 동정을 표하는 들실장도 나왔다.
41번이 온 것을 확인한 보스는 평소의 거칠고 낮은 억양과는 달리 꾸민듯한 빈정거리는 억양으로 이죽거렸다.
“이제야 온데쓰, 관리실장? 이렇게 아침에 지각하면 이번 달에 주는 식량을 깎는 수 밖에 없는데쓰요?”
“이게 다 뭐하는 짓인지 당장 설명하는테스.”
“음? 뭐가 말인데쓰? 혹시 오마에, 저기 메달아놓은 것과 관계가 있는데쓰?”
“닥치고 대답하는테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은테스!”
“왜 그렇게 화내는데쓰? 와타시는 그저 보스의 일을 하고있을 뿐인데쓰요? 그런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겠다면⋯”
보스는 귀찮다는 듯이 턱끝으로 41번을 가르키며 말했다.
“묶는데쓰.”
갑자기 41번의 시야가 흔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못대가리에 피가 묻은 대못을 들고 어리둥절해있는 군대석이 보였다.
퍼억!
움푹 패인 뒤통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41번은 군대석의 얼굴에 생애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
눈이 회색으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얼굴뼈가 박살나 눈깔을 뒤집고 쓰러진 군대석의 손에서 데구르르 굴러떨어지는 대못을 41번은 신속하게 주워들었다.
군대석들은 조금전에 집어넣었던 무장들을 신속하게 빼어들었다.
마찬가지로 대못을 주워들고 살기등등하게 대치하는 41번을 보며 들실장들은 조금 더 멀리만치 물러났다.
“진정하는데쓰, 식량실장.”
이런 예상치 못한 일에도 보스는 여전히 태연할 뿐이었다.
“설령 오마에가 여기 군대석을 다 잡아죽일 수 있다하더라도⋯”
챙!
십자가 근처에 있던 군대석 하나가 자실창의 목쪽에 대못 끄트머리를 겨누었다.
“이것까지 괜찮을지는 모르겠는데쓰?”
자기도 모르게 입 안쪽을 씹은 41번의 입줄기로 피가 흘러나왔다.
“자. 묶여주겠는데쓰, 식량실장?”
잠시 후 41번은 관리실장처럼 온몸을 케이블타이에 결박당하고 천으로 된 재갈까지 물린 채 관리실장 옆에 무릎꿇려졌다.
결박을 풀 수 있는지 은근히 힘을 줘봤지만, 41번의 근력으로 케이블 타이를 찢기는 무리였고 오히려 더 세게 조여와 손발끝이 보라색이 될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재갈이라도 풀려 이빨이 으스러져라 깨물고 소리를 질렀지만, 여러 겹의 천들이 두꺼운 탓에 그저 무의미한 소음만이 새어나왔다.
보스가 허리를 수구려 눈을 맞추차 41번은 목뼈를 뽑아서라도 공격할 기세였지만 그저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뭐하는데쓰, 목 길이 자랑하는데쓰? 와타시가 오마에에게 아주 재밌는걸 보여주겠는데쓰, 식량실장.”
보스는 귓가에 41번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속삭이고는 다시 한 가운데로 나섰다.
이빨이 다 부러지도록, 하얗던 재갈이 피로 빨갛게 물들도록 41번은 속으로 수십번이고 외쳤다.
제발 그만해! 저 아이는 관계 없잖아!
“자, 모두 여길 보는데쓰! 여기 십자가에 묶인게 무엇인지 보이는데쓰?!! 다들 이게 무엇인지 아는데쓰?!”
보스의 외침에 군중들은 어리둥절하여 웅성거렸다.
자실장 아니야? 그런데 왜 눈을 가렸지? 어디가 아픈가? 우리 집도 저만한 자실장이 있는데 쯧쯧. 오늘 처형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럼 지금 저 자실장을 처형하겠다는거야? 저 쪼끄만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뭐긴 뭐인데스우! 식량실장상의 이모우토챠가 아닌데스우!”
이제 잃을 것이 없는 탓인지 아니면 41번에 대한 죄책감인지 관리실장은 보스에 대한 공포고 뭐고 다 집어치운 채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댔다.
“호오, 관리실장. 오마에, 방금 이게 식량실장의 이모우토챠라고한데쓰?”
“당연한데스우! 와타시가 어제 식량실장상의 골판지에서 똑똑히 본데스우! ”
“관리실장, 방금 분명히 이걸 식량실장의 골판지에서 봤다고 한데쓰?”
묘하게 몇몇 단어를 강조하는 억양에 보스의 수작을 눈치 챈 41번은 목이 터져라 입안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만! 그만! 제발 그만해!
하지만 재갈에 삼켜지는 41번의 비명은 바로 옆의 관리실장에게조차도 닿지 못하였다.
“물론인데스우! 게다가 그 아이는 어릴 때 눈에 큰 상처를 입어서 눈가리개를 한데스우! 게다가 말도 못하는 벙어리인데스우! 그 불쌍한 아이를 저렇게 매달아 놓다니, 보스는 부끄럽지도 않은 뎃샤!!”
관리실장의 통렬한 항의에 보스는 폭소를 터뜨렸다.
“데퍄퍄퍄퍄퍄퍄퍗!!! 재밌는데쓰, 아주 재미있는데쓰! 관리실장, 오마에는 정말 최고인데쓰!”
“뭐인데스우, 오마에! 미치기라도 한데스우?!”
“군대실장?”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신호가 떨어지자 군대실장은 큰 키를 활용해 손쉽게 자실창의 눈가리개를 풀었다.
눈가리개가 풀리자 기절해있던 자실창은 눈에 직접 받는 햇빛이 부셨는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뭐가 어쨌단데스우! 자실장일 뿐이지않은데스까! 그러고보니 눈이 멀쩡ㅎ⋯”
십자가에 매달린 것의 눈색깔이 적록이 아니라 녹적인 것을 깨달은 관리실장의 사고는 순간 정지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자기가 뭐라고 소리질렀는지 깨닫고 얼굴이 새하얘졌다.
관리실장과 비슷한 타이밍에 그걸 깨달은 군중의 웅성거림은 더욱 커져갔다.
파란 분충인데스? 저거 지금 파란 분충인데스? 어디서 튀어나온데스? 아까 식량실장의 골판지라고 하지 않았던데스? 그럼 지금 식량실장은 집에서 파란 분충을 키우고있었단 말인데스?
들실장들의 웅성거림은 아까와는 다르게 점점 커져갔고 이따금씩 ‘저 놈은 뭐인데스!’
‘당장 잡아죽이는데스!’ ‘식량실장인가 뭔가 하는 놈도 다 죽여버리는데스!’ 소리가 간헐적으로 튀어나왔다.
“모두들, 보는데쓰! 방금 관리실장이 말했던 것처럼 식량실장은 골판지에서 몰래 이 파란분충을 키우고 있던데쓰!”
상황은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자기가 지금 어딘가에 묶인 채 들실장 무리 한 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실창은 턱을 덜덜 떨어댔다.
“다들 말해보는데쓰! 파란분층은 어떻게 해야하는데쓰!!”
죽이는데스!! 죽이는데스!! 죽이는데스!!
죽여라를 연호하던 군중 중에서 어떤 흥분한 실장석이 실창석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근력이 부족한탓에 헛되이 허공을 가르고 말았지만, 다른 실장석들도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파란 분충! 파란 분충! 가위도 없는 꼴이 웃긴데스! 잘난 척 하더니 저 꼴인 뭐인데스!
저마다 증오를 담아 던지는 돌들은 대부분 빗맞출 뿐이었지만 이따금씩 자실창을 맞추는 돌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한 수백마리의 분노에 자실창은 몸은 두려움에 미친듯이 떨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 몸부림을 쳐봤지만, 케이블타이는 더욱 쌔게 조여올 뿐이었다.
자신을 맞추는 돌이 하나, 둘, 셋 점점 늘어나자 자실창은 공포와 고통으로 패닉 상태에 이르렀다.
그 모습을 보고 41번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무의미한 소음과 핏물을 재갈에 더하는 것 뿐이었다.
“그만!! 그만하는데스우!! 아무리 파란 분충이라지만 아직 어린 아이인데 너무하지 않은데스우!”
그나마 관리실장이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들실장들은 당연히 듣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다들 비키는데스! 그런 걸로는 파란 분충을 맞출 수 없는데스!”
군중에서 유난히 팔다리가 긴 실장석 하나가 꽤나 큼지막한 돌을 그럴 듯한 자세로 던졌다.
왠만한 자실장의 머리만한 돌이 던져지자 자실창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몸서리 쳤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40도 위로 정확한 궤도로 던져진 돌은 자실창의 머리를 깔끔하게 강타하고
“제발! 제발 그만 좀 하는데스우!! 오마에타치는 부끄럽지도 않은⋯데교복!!”
근처에서 소리를 지르던 관리실장 머리에까지 떨어졌다.
그야말로 일석이석(一石二石)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두개골에 강한 충격을 받은 자실창은 코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다시 축 늘어졌고, 관리실장 역시 정신을 잃고 바닥에 픽 쓰러졌지만, 운이 좋게도 옆으로 쓰러진 덕에 질식은 면했다.
“그만데쓰!”
보스의 말에 군대석들이 의도적으로 무기로 금속질 소리를 냈고 실장석들은 집단다발적인 투석을 중단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식량실장의 말을 들어보겠는데쓰!”
재갈을 풀자 41번은 입으로 핏물에 이빨 섞인 것들을 뱉어내며 분노했다.
“오마에! 저 아이는 관계가 없지않는테스! 왜 이런 짓을 하는테스!”
“그야 당연하지않은데쓰?”
41번은 한 번도 학대파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게 오마에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인데쓰, 41번.”
학대파라는 인간들은 저렇게 웃을 게 분명하다.
타인에게 가하는 고통이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이 웃는 저 모습은 41번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악의였다.
“와타시가 그 망치닝겐에게 들은데쓰. 오마에 몸은 고통을 모른다고 한데쓰. 자, 와타시가 준비한 고통은 어떤데쓰? 마음에 드는데쓰?”
웃는 얼굴의 보스의 얼굴을 보면서 41번은 단 한가지가 아쉬웠다.
왜 실장석을 죽이는 방법을 배워두지 않았을까.
“죽여버리는테스!! 오마에를 죽여버리는테스!!”
“참 지긋지긋하게도 들은 소리인테스.”
보스는 지루하다는 듯이 혀를 한 번 찼다.
“오마에는 머리가 꽤 좋은 것 같던데 그 꼴로 뭘 어쩌겠다는말인데쓰? 상황파악도 못하는데쓰? 와타시는 저 파란 분충을 죽이는데쓰. 그리고 오마에를 도우려고 했던 저 멍청한 관리실장도 죽인 다음 오마에를 운치굴에 처넣어서 그 활성제인가 뭔가가 다 없어질 때까지 강제출산을 시켜주는데쓰. 참 식량실장이란 역할에 어울리는 결말인데쓰.”
분노하던 41번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스의 말투가 이상했다.
왜 저것을 자신에게 설명해주고 있는걸까? 마치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는 것처럼?
41번의 사고가 빠르게 돌아갔다.
정말 저 아이를 구할 방법이 없는걸까?
지금 여기서 살아나가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보스 뿐만이 아니다.
만약에 보스를 죽이더라도 군대석들이, 군대석들이 없으면 들실장 무리들이 자실창과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다.
터무니없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보스를 없애고 군대석들과 들실장들의 위협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나? 정말로?
“오마에, 잘 생각해보는데쓰. 정말 여기서 끝내는데쓰?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딱 하나 있지않은데쓰?”
41번의 뇌리에 어떤 한 가지 방법이 벼락같이 스쳤다.
그리고 그 방법을 여기 모인 모든 실장석이 들을 수 있도록 위석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보스! 오마에한테 결투를 신청하는테스!”
“바로 그거인데쓰, 41번.”
보스는 마침내 만족스럽다는 듯이 씩 웃었다.
14.
들실장들에겐 꽤 난데없는 상황이었다.
처형을 한다고 해서 나왔다니 갑자기 결투라니?
대다수의 들실장들이 어리둥절하며 웅성거리는 와중에 오래전 현재 보스와 전 보스의 결투를 기억하는 늙은 실장석들이 그 때를 기억하며 젊은 실장석들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그 때의 일을 들려주었다.
결박에서 벗어난 41번의 손목과 발목에는 케이블 타이 자국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자유로워진 41번은 굳어진 몸을 풀고 손끝을 쥐었다 폈다하면서 움직일 때 반응속도가 늦지는 않은지 체크했다.
감각이 없는 41번이 나름대로 생각해낸 컨디션 점검 방법이었다.
“결투, 간단한데스. 무기, 각각 대못을 하나씩 가지는데스. 이 동그라미에서 살아서 나가는 한 명, 보스가 되는데스. 그 밖에 규칙, 없는데스.”
자연스럽게 군대실장이 결투의 사회를 보기 시작한 걸 보니 분명히 보스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말해두었을 것이다.
내심 보스를 따르는 이 군대실장이 결투에 어떤 간섭이나 방해를 해오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별 수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한테스?”
대못에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을까 염려하며 41번은 신중하게 대못을 골라 집어들면서 보스를 노려보았다.
“와타시가 말했던데쓰. ‘지혜를 공원을 위해 쓰지않는 분충은 필요없다’라고데쓰..”
보스는 히죽 웃고는 41번이 고르지 않은 대못을 가져갔다.
“그게 이유인테스? 대체 왜 와타시에게 이러는테스? 와타시한테 뭐가 있다고 이러는테스?”
보스는 뭐가 그렇게 기쁜지 히죽거리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대못 끝을 툭툭 긁고 쓰다듬으면서 실장석의 몸을 꿰뚫기에 충분히 날카로운지 점검했다.
“오늘 아침에 오마에는 도망칠 수 있었던데쓰. 하지만 여기에 온데쓰. 아까 전에 살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쓰. 하지만 와타시에게 도전하는 방법을 떠올린데쓰. 이게 오마에가 자질이 있다는 증거인데쓰.”
41번도 대못의 끝을 힐끔 바라보았다.
늘어뜨리면 허리께쯤 오는 것이 인간의 기준으로도 꽤 길다란 못이다.
보스는 이것을 실장석을 죽이는 데에 사용하는 모양이지만, 인간들은 이것을 집을 지을 때나 가구를 만들 때 사용한다.
“자질이 있던말던 상관없는테스. 와타시는 보스가 되지 않는테스.”
자질이건 대못이건 쓰이기 나름이다 결국.
“하, 그럼 보스가 되지 않고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 생각인데쓰?”
“보스가 되고 여길 빠져나가면 보스자리는 운치굴 구더기한테라도 던져주는테스. 나머지는 와타시가 알 바가 아닌테스.”
“이제 공원의 온 들실장들이 오마에가 골판지에서 파란 분충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데쓰. 그 와중에 보스 자리라도 없으면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인데쓰?”
정확한 지적에 41번은 이를 까득 갈았다.
“어찌됐든 오마에는 저 아이를 저렇게만든테스. 오마에를 용서할 수 없는테스.”
보스는 껄껄 웃으며 자신의 명치 부근을 가르켰다.
“그거 좋은데쓰. 위석은 여기있으니 잘 보고 찌르는데쓰. 기왕 보내주는 거 한방에 잘 보내주는데쓰.”
저것이 설령 속임수라도 상관없었다.
저길 찌른 후 위석을 찾을 때 까지 모조리 다 찔러버리면 되니까.
“준비, 하는데스!”
두 실장석은 대못을 잡고 자세를 취해 서로에게 대못 끝을 겨누었다.
41번은 양손으로 단단히, 보스는 왼손잡이인지 왼손으로 가볍게 잡았다.
“결투, 시작하는데스!”
결투가 시작되었지만 41번은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보스는 대못의 달인이라고 했고 자신은 오늘 처음으로 대못을 잡은 초보자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못을 잘 다룬다고한들 공격을 포기하고 아예 방어에 전념하면 보스라도 쉽게 방어를 뚫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은 피로와 고통을 모르는 몸이니 시간을 계속 끌다보면 분명히 기회가 생길 것이다.
“오마에는 지금 시간을 끌면 이길거라고 생각하고있는데쓰.”
41번의 눈이 커졌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쓰. 오마에의 생각처럼 오마에가 아예 공격할 생각을 안 하면 와타시도 참 곤란하단말인데쓰? 그런데⋯”
보스는 히죽거리며 대못으로 자실창이 매달려있는 십자가를 가르켰다.
“저 길쭉넓쩍한 막대기가 좀 불안해보이지 않은데쓰?”
아까 돌들에 몇 번 맞은 탓인지 십자가는 묻혀진 땅바닥에서 살짝 들떠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자실창이 정신을 잃고 있어서 괜찮지만 만약 강한 바람이 불거나 자실창이 정신을 차리고 버둥거린다면 쓰러질지도 모른다.
41번은 오늘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나게 까득 이빨을 갈았다.
“자자, 빨리 덤비는데쓰. 시간이 많지 않은데쓰.”
보스는 비어있는 손을 내밀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도발했다.
41번은 잠시 주저하다가 양손에 쥔 대못의 머리를 자신의 오른쪽 겨드랑이 쯤 위치시키고 보스에게 돌진하며 대못을 쭉 뻗어 찌르기를 시도했다.
“대못은 그렇게 다루는게 아닌데쓰.”
비록 키는 보스에 비해 작지만 근력은 그렇게 부족하지않은 탓에 꽤나 위력적인 돌격이었지만, 보스는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비어있는 오른손으로 못의 옆면을 쳐내 궤도를 비틀어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는 41번의 오른눈을 찔렀다.
“아까운데쓰.”
중심을 잃고 넘어진 41번의 눈은 멀쩡했다.
오른쪽눈에 못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목을 왼쪽으로 비틀어 간신히 눈 바로 옆부분을 깊게 스치는 것으로 그친 것이다.
넘어진 지금이 보스에게는 찬스였지만, 41번은 곧바로 일어나서 자세를 고칠 때까지 여전히 여유로운 자세였다.
첫번째 칼부림이 오고가자 들실장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찔러! 죽여! 피를 보여줘!
“오마에, 대못은 칼이 아닌데쓰. 잡으려고 하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데쓰. 그러니까 그렇게 양손으로 꼭 잡고 있을게 아니라 한손은 자유롭게 둬서 언제든 상대방의 대못을 잡을 수 있게 둬야하는데쓰.”
보스의 말에 41번은 잠시 생각하다 보스의 말대로 대못을 한 손으로 고쳐잡았다.
“그렇지, 바로 그 자세인데쓰.”
두 실장석은 거울 같은 자세로 한 손으로 대못을 들고 끄트머리를 서로에게 겨눈 채 대치했다.
“오마에, 실장석에게는 두 곳의 급소가 있는데쓰.”
보스는 한 호흡만에 41번의 앞으로 다가와 41번의 복부를 향해 대못을 찔러넣었다.
당황한 41번 역시 빠르게 방어하려 했지만 반응할 틈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격에 복부 한가운데 찌르기를 허용하고말았다.
통증은 없기 때문에 반격하려 다시 못을 휘둘렀지만, 보스는 예상한 것 처럼 뒤로 스탭을 밟아 유유히 빠져나갔다.
“하나는 위석인데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보스는 대못을 슬쩍 들어 41번의 왼쪽 눈가를 가르켰다.
“왼쪽 눈 위인데쓰. 아무리 강한 놈이라고해도 양눈이 빨개지면 그저 자판기에 불과한데쓰. 오마에는 고통을 못느끼지만 과연 강제 출산상태에서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 궁금한데쓰. 왜냐하면 와타시는 그런적이 없는데쓰.”
보스의 남은 한 쪽눈이 붉게 번뜩였다.
왼쪽 눈 위가 급소가 될지에 대해서는 41번 역시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고통을 모르고 위석이 활성제에 있다고 하더라도 끝없는 강제출산에는 버틸 수 있을지, 그것은 41번도 장담할 수 없었다.
“자, 다시 한 번 와보는데쓰.”
41번이 다시 덤벼들었지만 보스는 성의 없이 그저 걷어내는듯이 공격을 툭툭 받아내기만 하였다.
들실장들은 아무 생각없이 둘이 막상막하라고 떠들어 댔지만 이대로 가면 절대 승리할 수 없음을 41번도 보스도 알고 있었다.
“와타시는 오마에가 이기기를 진심으로 바란데쓰.”
보스의 눈을 노린 41번의 12번째 공격이 막혔다.
“용기도 있고 똑똑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오마에는 여기까지인 모양인데쓰. 와타시가 죽고 보스가 없으면 이 공원은 이웃공원과 똑같아질 것인데쓰. 하지만 어쩔 수 없는데쓰. 편히는 못 보내주지만 오마에는 여기서 죽는데쓰.”
공격을 한 번 쳐내고 다시 대치상태로 이어지자 보스는 기묘한 동작을 취했다.
왼손으로 쥔 대못의 머리쪽을 41번쪽으로 향하며 중간 부분은 자신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 놓고 끄트머리는 자신의 뒷쪽을 향한채 오른으로 쥔 자세였다.
마치 오른춤에 찬 가상의 검집에 대못을 넣고 있는 듯한 자세였다.
다가가는 순간 대못을 뽑으며 크게 휘둘러서 공격할 것이다, 라고 짐작한 41번은 ‘그렇다면 뽑기도 전에 공격한다. 설령 맞는다해도 상관없다.’는 계산으로 온 힘을 다해 지금까지의 공격중 가장 빠르고 강력한 찌르기를 시도했다.
챙!
하지만 그것은 41번의 오산이었다.
보스는 못을 뽑지도 휘두르지도 않았다.
대못 양쪽끝을 각각 양손에 쥔 그 자세 그대로 대못을 앞쪽 위로 내밀어 41번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41번의 못과 보스의 못은 하늘에서 봤을 때 십자가처럼 가로질러진 형국이었다.
41번의 못끝은 보스의 못가운데부분에 튕겨내어 하늘 위를 향했지만 보스의 못은 가로형태로 41번의 얼굴 옆에 위치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마지막인데쓰, 41번.”
보스는 41번의 왼쪽에 위치한 대못끝으로 41번의 왼쪽눈의 위쪽를 긁어냈다.
“테갸아아아악!!!”
손끝에 감각이왔다.
확실하게 왼쪽 눈 위를 긁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그랬왔기 때문에 보스는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며 눈을 부여잡은 채 주저앉는 41번을 보며 진심으로 아쉬웠다.
모든 시험을 통과했지만 마지막, 대못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다니.
슬슬 41번을 처리해야한다.
아쉽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일단 케이블타이로 묶어놓고 운치굴에 처넣어서 죽을 때까지 구더기를 왕창 뽑아내야할 것이다.
고통을 모르는 몸이니 그렇게 슬퍼하지는 않겠지.
잠깐
고통을 모르는데 방금 비명을 지른 이유는 뭐지?
이상함을 눈치챈 보스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41번은 주저앉은 채로 보스의 안대를 하지 않은 쪽 눈으로 무언가를 던졌다
“데쌰아아아악!”
이번에 비명을 지른 것은 보스쪽이었다.
남은 오른쪽눈에 무언가가 들어간 보스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생애 처음으로 결투에서 이성을 잃고 울부짖었다.
보스가 패닉에 빠져 사방에 대못을 휘둘렀지만 41번은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로 보스를 들이받았다.
쿵!
덩치에 걸맞는 거대한 소리를 내며 거목은 쓰러졌다.
보스를 넘어뜨리고 그 위로 올라탄 마운트 포지션이 된 41번의 왼쪽 눈은 텅 비어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오른손에는 피와 흙이 낭자했다.
보스가 왼쪽 눈위를 긁어내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아 오른손으로 왼쪽 눈을 뽑아 터뜨린 후 바닥의 흙에 개어 그것을 보스의 눈에 던진 것이었다.
“오마에야말로 마지막인테스, 보스.”
마침내 승부가 결정나자 들실장들의 열광은 뜨거워졌다.
죽여라! 죽여라!를 외치는 들실장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보스위에 올라탄 41번은 보스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조금 전 보스가 위석이 있다고 말한 명치부근에 대못을 깊숙히 찔러넣었다.
대못을 찔러넣으니 보스의 입에서는 한숨과 같은 긴 신음소리가 들렸다.
대못끄트머리가 등 뒤로 뚫고 나올정도로 찔러넣으니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말한 것이 거짓말은 아니었구나, 싶었던 41번은 죽었을 보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스의 여전히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지만 분명히 살아있었다.
혀를 한 번 찬 41번은 보스의 가슴팍에서 대못을 뺴내 여전히 눈을 뜨려 애쓰는 보스의 나머지 눈을 찔러버렸다.
“데쌰아아아아악!!”
이제 보스는 남은 시간을 어둠에서 살아야할 것이다.
남은 시간이라는게 있다면 말이다.
“같잖은 거짓말이나한테스까. 오마에의 위석은 어디에있는테스? 편하게 보내주는테스.”
“와타시는..쿨럭⋯거짓말을 한 적이⋯없는데쓰⋯.”
“헛소리하지마는테스. 오마에가 지금 살아있지않은테스.”
갑자기 보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양쪽눈이 먼데다가 가슴팍으로 피를 줄줄 흘리는 보스가 대못을 쥔 41번을 이길 가능성은 없었기 때문에 별로 경계하지는 않았다.
“데프프⋯쿨럭⋯데프프⋯데퍄퍄퍄퍄퍄퍄퍄퍗!”
고통에 미쳐버린 건가?
“이제 이걸로⋯와타시처럼⋯쿨럭⋯오마에도⋯약해지지 않는데스⋯데퍄퍄퍗!!”
“무슨 헛소리인테스?”
“데퍄퍄퍄퍄퍄퍄퍄!⋯쿨럭! 와타시의 가슴에 위석은 분명히⋯쿨럭, 있는데쓰. 못 믿겠으면 확인해보는데쓰.”
아까부터 이게 대체 다 무슨 소리인가 영문을 알 수 없던 41번은 속는 셈치고 보스의 실장복을 찢고 가슴팍을 열어보았다.
그 곳에는 분명히 위석이 있었다.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난 채 박살난 파란색 위석이.
41번은 순간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41번의 온몸을 지배하는 그것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달리려 숨을 한 번 들이킬 때마다 메마른 한기가 폐부를 찢어놓고 베인 상처를 핥는 바람이 쓰라리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은 찢겨져 나갈 것 같고 고장난 것처럼 온몸을 빠르게 휘도는 혈액이 너무나도 뜨겁다.
앙다문 끝에 흔들리던 이빨이 으스러져 입안에는 피맛이 가득했다.
대못으로 결박을 풀어 자실창을 끌어내릴 때 41번은 처음으로 손끝으로 자실창의 체온을 느꼈다.
그 체온이 너무나 따뜻하고 위태로워서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실창의 가슴팍부터 열어보았다.
열린 가슴팍에는 희미하게 베인 자국과 근처로 말라붙은 핏자국이 보였다.
자실창의 생사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한 가지가 남았지만 확인하고싶지 않았다.
아직 체온이 남아있으니까 괜찮을것이다. 그냥 골판지로 데려가서 눕혀두면 일어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싶다.
늘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내버려두면 슬금슬금 기어와서 이야기를 조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고, 날씨가 추워지면 서로 체온을 나누면서 겨울을 보낼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싶다.
아
하지만 앞으로 그럴 일은 없다.
저 눈동자에 내 모습이 미칠 일은 없다.
저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는 일은 없다.
먼 미래에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서로 이야기 할 수 없다.
이 어린 것이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자신의 어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채 잊혀질 것이다.
자실창의 회색빛 눈 아래로 적루(赤淚)와 녹루(綠淚)가 보채듯 톡톡 뺨을 두드렸다.
41번은 울부짖었다.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다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이 세상의 모든 축복과 저주를, 감사와 원망을 담아 41번이라는 이름을 받은 실장석은 숨이 끊어지도록 길게 울부짖었다.
들실장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생에 처음 들어보는 울음소리에 못박힌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고 몇몇 실장석들은 눈물을 흘리기도했다.
그렇게 들실장들 한 가운데서 고통과 죽음으로써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난 짐승이 생애 첫울음을 내뱉었다.
풀썩
41번은 쓰러졌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들실장들과 군대석들에게는 난감한 일이다.
우린 저것을 보스로 모셔야하는가? 보스도 아직 살아는 있는 것 같은데? 숨통을 끊을 수 있게 돕기라도 해야하는 것인가? 어느 쪽을 도와야지?
들실장들이 고민에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신이 내려왔다.
“자, 그럼 이제 내가 등장할 때인 것 같네?”
들실장들의 뒷편에서 나온 그 신은 모든 들실장들이 한 번쯤 들어본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망치닝겐, 분충 잡아가는 닝겐, 검은봉지와 망치의 주인, 등 들실장 사이에서 다양한 이명을 가진 공원 관리인이자 실장학교의 주인에게는 41번을 잘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받은 후배이다.
그리고 이 촌극을 꾸민 자이자 그 촌극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다.
“자, 그럼 애네들은 내가 챙겨갈게. 다들 수고하렴~ 경찰실장쨩, 너는 아까 내가 말한거 기억하지?”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군대석들이 둘러싼 원의 안 쪽으로 다가가(재수없는 들실장 몇몇이 밟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경찰실장을 내려놓고 자실창과 41번을 챙겨 양손에 들었다.
“알았으니까 냉큼 사라지는데스, 망치닝겐.”
남자는 피식 웃더니 두 실석(石)을 다칠세라 소중히 안고 들실장 무리를 떠났다.
희극이라 하기엔 슬프고 비극이라 하기엔 마무리가 이상한 이야기의 끝에 남겨진 들실장들은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그저 망연자실했다.
15.
눈을 뜨니 오래된 천장이었다.
옛날 실장학교에 있었을 때, 잠자리로 쓰던 실장학교의 창문 밑 책상에 놓인 택배상자에서 눈을 뜨면 보이던 천장이었다.
그 천장을 바라보고있자니 41번은 문득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이 공원으로 보내지기로 한 그 전 날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꿈인 것이다.
공원에 간 것도, 글을 배우고 싶어했던 어느 실장석을 만난 것도, 어머니를 잃고 죽고싶어했던 어느 실창석을 만난 것도, 들실장들에게 은행꼬치 굽는 법을 알려준 것도, 보스와 결투를 한 것도. 그리고⋯
“아픈⋯데스.”
하지만 낮고 굵어진 음색과 달라진 어미가 그 모든 시간들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활성제는 몸을 회복시켜주었지만 이 흉통은 없어지질 않는다.
분명히 위석은 어느 벽장속에 잠들어있건만 어째서 있지도 않은 위석이 아파오는걸까.
“너무⋯아픈데스.”
가슴에 손을 대어봤지만 어느새 평소처럼 손끝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이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걸까.
“미안한데스⋯⋯.”
좀 더 일찍 데리고 공원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
죄이니 벌이니 하는 것들은 죄다 무시하고 지켜주지 않은 것.
진작에 보스를 죽이려고 하지 않은 것.
보스의 가슴을 찌르기 전에 너의 위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그리고
“정말⋯미안한데스.”
내 곁에 있게한 것.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남는 건 후회뿐인걸까.
41번의 후회가 적색과 녹색으로 바닥을 적셨다.
“일어났나, 41번.”
“안녕하신데스, 센세.”
남자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41번은 누운 채로 남자를 맞이했다.
“다 들었다. 공원에서 참 많은 일을 겪었더군.”
“그렇다면 알려주는데스, 센세. 대체 와타시는 뭘 잘못한데스? 대체 와타시가 뭘 어떻게 했어야했던데스?”
남자는 침묵했다.
“어째서 가슴이 이렇게나 아픈데스? 다른 실장석들이나 닝겐사마들도 이런 고통을 느끼는데스? 이건 어떻게 하면 사라지는데스?”
남자는 계속 꽤 오랫동안 침묵했다.
41번 역시 아무 말 없이 그저 눈물만 흘려댈 뿐이었다.
“넌 잘못한게 없다. 넌 할 수 있는 걸 다했다. 설령 다른 좋은 방법이 있었어도 그건 나조차도 생각치 못한 방법이겠지.”
남자는 잠시 뜸을 들였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소리가 다음 말을 재촉하듯 쉬지않고 째깍거렸다.
“그건 그 자실창이 너한테 그만큼 소중한 존재여서겠지. 인간이나 다른 실장석들 모두 그런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고통은 절대 사라지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 소중한 존재를 잃으면 실장석이건 인간이건 모두 늙어죽을 때까지도 계속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 와타시를 분쇄기에 넣어주는데스.”
41번은 주저없이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한다면, 와타시는 살아가고싶지않은데스. 그러니 제발 와타시를 분쇄기에 넣어주는데스.”
남자와 41번은 그 다음으로 아무 말도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남자는 이윽고 41번이 들어있는 택배상자를 들어 문을 열고 어두운 복도로 향했다.
뚜벅 뚜벅
남자의 손에 들려 이동하는동안 41번은 자신이 살아야할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왜냐면 애초에 살아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알아버렸다.
마지막 순간, 자실창을 향해 달려가던 순간 알아버렸다.
뺨에 스치는 바람을, 체온의 따스함을, 상처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살아있다는 느낌을.
그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지금에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살아있지도 않고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을.
문이 열리는 소리가 한 번나고 몇 걸음 더 가 남자의 발걸음이 멈췄다.
어두운 공간이었다.
사방이 택배박스 옆면으로 가로막혀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곧 남자가 상자를 뒤집을 것이다.
그리고 분쇄기의 전원 버튼을 누르면 먼저 머리카락이 빨려들어갈테고 팔끝, 다리끝에서부터 천천히 갈려나갈 것이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천천히 분쇄되어 위석이 활성제가 전부 다 빨아들일 때쯤 되면 마침내 그토록 갈망하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상자를 뒤집으려고 하는지 택배상자가 조금 위로 들렸다.
마지막 순간이었다. 하지만 41번은 아무것도 추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가슴의 고통이 끝나길 바랄 뿐이다.
마침내 상자가 뒤집혔다.
떨어지는 동안 41번은 눈을 감았다.
만에 하나, 들실장들이 떠들어대던 것처럼 콘페이토 낙원이 존재하고 거기서 자실창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면서.
“뭐하는보쿠?”
41번의 눈이 번쩍 뜨였다.
거기엔 거꾸로된 자실창이 있었다.
뭐지? 콘페이토 낙원이라는게 진짜로 존재했던건가?, 하고 멍하니 있던 41번은 자신의 손과 발이 분쇄기에 갈리지도 않아고 멀쩡히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머리에서부터 바닥에 떨어져 꺼꾸러진 자세이다.
41번은 벌떡 일어났다.
상황이 파악되지않아 주위를 휘휘 돌아보니 여기는 실장학교의 어느 암실, 그 안의 실장석용 수조였다.
수조 바깥에서 전구 하나가 유일하게 이 방을 밝히고 있었고 선생님이 빈 박스를 든 채 무표정하게 있었다.
그리고 여기 수조 안에 있는 것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보쿠? 그 관리실장인가 뭔가하는 실장석이 골판지로 온 이후로 기억이 없는보쿠. 그리고 무서운 꿈을 꿨는데 갑자기 인간님한테 온 보쿠. 너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있는보쿠?”
41번은 떨리는 손으로 제대로 된 실창복으로 갈아입은 자실창의 얼굴에 손을 갔다댔다.
“보쿠? 뭐하는보쿠?”
피하지는 않았지만 자실창은 그저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느껴진다.
따스함이, 부드러움이, 덜 자란 솜털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이, 자실창이,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눈이 회색도 아니고 말을 하고 움직이고 있다.
“가⋯간지러운보쿠! 왜 그러는보쿠?”
스스로를 만져본다.
얼굴에서는 부드러움이, 실장복에서는 까슬까슬함이, 숨을 들이키고 쉴때마다 공기가, 덜 아문 상처에서는 쓰라림이 느껴진다.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행복회로인걸까?
어쩌면 실제로 이 몸은 분쇄기에 넣어진 채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관없다.
이 아이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뭐라도 상관없다.
만일 이것이 행복회로라면 그저 조금이라도 더 오래가기를 기도할 뿐이다.
“너 아까부터 왜 이렇게 이상한⋯보쿳!!!”
41번은 자실창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으며 남자가 인간과 실장석을 통틀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예술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저 얼굴을 묘사해서 세상에 널리퍼뜨릴 수 있다면 세상이 좀 더 행복해질지도 모르는데
비록 글로는 반의 반이나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나마 저급한 어휘력을 빌려서 표현해보자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눈물과 가장 행복하게 짓는 웃음’이었다.
그걸 보면서 남자는 중얼거렸다.
그래,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지. 그건 짊어지고 살아야하지. 다만 그걸 견뎌내기 위해서는 인생을 더 큰 기쁨으로 채우는 수 밖에 없겠지.
전구 하나만 빛나는 암실에서 어리둥절한 자실창의 등뒤를 41번의 색눈물이 적시고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기쁜 통곡 소리가 한참이고 들려왔다.
epilogue.
“⋯그래서 여기까지가 이야기였습니다. 어때요, 괜찮은 이야기였죠?”
41번이 공원에서 겪은 일을 온갖 미사여구와 극적인 어투로(솔직히 재미는 있었다) 이야기한 녀석의 말을 들은 내 소감은 딱 이거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지독하다 넌.”
“왜요? 해피엔딩이라구요, 해피엔딩.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유명한 말이잖아요?”
“그래서 너한테도 똑같은 짓을 하면 너는 받아들일 수 있나?”
“저한테요? 세상에, 그런 나쁜 놈이 있을리가 없잖아요?”
참 솔직한 태세전환이다.
“세 번째 말하는 거지만 그 뻔뻔함은 배우고 싶다, 정말.”
“파하하하하! 왜요, 정말 괜찮은 결말이잖아요? 음, 먼저 41번은 행복을 알게되었죠? 하린 선배와 선배가 바란 것 처럼?”
“그래, 비록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이 따랐지만 말이지.”
“개인적 취향이 들어가있지는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네요. ‘올렸다 떨어뜨리기’는 너무 많이해봐서 식상했거든요. 그래서 취향을 좀 바꿔서 ‘떨어뜨렸다가 올리기’를 시도해봤죠. 그런데 이것도 의외로 괜찮더라구요?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거있죠, 막?”
이젠 학대조차도 질린 건가.
아니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 녀석은 학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학대’도’ 좋아하는 녀석이었지.
“⋯그래. 대단하다, 대단해.”
“뭐, 그 과정에서 41번의 감각이 돌아온 건 저한테도 예상 못한 결과였지만 말이에요. 선배는 어떻게 그랬는지 알겠어요?”
41번을 맡은 후 부터 지금까지 나도 여러 연구자료를 뒤적여 보았지만 감각이 없어진 실장석은 물론이고 실장석이 감각을 되찾는 경우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려진 것이 없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통증이나 감각같은 것은 머리의 문제니까 41번이 느낀 강렬한 감정이 머리의 어떤 부분을 자극해서 잠들어있던 감각을 깨운 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지.”
“이거 논문각 아니에요? 월간 짓소 1면에도 실리는거 나쁘지않잖아요?”
“실험대상이 하나여서야 논문은 커녕 칼럼도 못 쓰지. 실장실험은 귀납적 추론에 의존하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표본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학교 때 실장실험의 기초요소는 배웠을텐데.”
“그럼 41번을 임신시켜서 자를 잔뜩 낳게하면⋯알았어요, 알았어. 그냥 해본 소리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요. 이젠 자기가 키우는 실장석이라고 그렇게 챙기기 있기에요?”
“키우는거 아니다. 실장숍에 취직시킨거다.”
그 말대로다.
일이 이렇게 되니 41번을 다시 공원으로 보내기도 뭣해진 나는 41번을 실장학교에 두기로 했다.
41번이 하는 일은 손님이 오면 차나 커피를 타주는 접객, 세레브 실장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기를 원하는 손님에게 제공하는 살아있는 샘플 겸 카탈로그, 필기구나 리모콘, 스마트폰 등을 가져다 주는 잡다한 심부름 담당이다.
그리고 그 세 가지 역할에 대해서 고용주와 소비자들은 모두 크게 만족해하고 있다.
“그냥 서로 좋으니까 키우고 키워진다고 하면 될 걸, 선배나 41번이나 참 고집쟁이라니까요. 41번은 그 자실창이랑 떨어져서 어떤대요? 막 울고 그러지는 않아요?”
“그래. 그 자실창말이지.”
자실창의 실창복에 붙어 있던 그 사진을 데스넷에 올린 며칠 후, 그 실창석의 주인이라는 여성에게 연락이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여성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실창석이 도둑을 막으려했지만, 오히려 도둑에게 납치를 당한 뒤로 행방불명이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실창석은 이미 들실장들에게 살해당한 상태였지만, 그 여성은 그렇다면 그 자실창이라도 데리고 가고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어찌해야할지 난감해하던 자실창에게 41번은 단호하게 말했다.
“가는데스.”
“하지만⋯”
“가고싶어하는 거, 아는데스. 그 닝겐사마도 오마에를 원하고 오마에도 그 닝겐사마에게 가기를 원하는데스. 그런데도 가지 않는건 잘못된데스.”
자실창은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러기를 한참동안 망설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보쿠는 모르는보쿠. 하지만 하나는 알고있는보쿠. 네가 보쿠를 받아준 것, 네가 힘들어하던 것, 모두 보쿠를 위한 것이었던보쿠. 보쿠는 아직 어려서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보쿠. 하지만 정말 미안하고 고마운보쿠. 네가 해준 것들, 평생 잊지 않는보쿠.”
자실창을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인가 잠시 생각하던 41번은 생각났다는 듯이 빙긋 웃으며 손을 잡았다.
그 날 밤이 새도록 두 실석(石)은 공원의 추억에 대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음 날 아침 자실창을 배웅할 때, 41번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였다.
“그래, 좀 울긴했다.”
“이제 41번은 감정을 완전히 찾았나보네요. 봐요, 제가 만든 이야기지만 정말 끝내주는 결말이죠? 파하하하하!”
“그래. 그 이야기 말인데, 이상한 부분이 몇 군데 있지.”
“에이, 사소한 건 신경쓰지마요. 안 그러면 재미없다구요?”
“제일 큰 문제다. 그 자실창은 대체 어떻게 살아있던거냐? 분명히 위석이 대못에 꿰뚫렸을텐데?”
“별거 아니에요. 한 번 맞춰볼래요?”
나는 녀석을 찌릿 노려보았다.
“네네, 알았어요, 알았어. 별 거아니에요. 보스의 가슴에 붙여놓은 위석, 사실 그거 가짜였거든요. 보스는 진짜 자실창의 위석인 줄 알았겠지만요. 유리조각으로 예쁘게 정성들여 만들었는데 그렇게 박살나서 아쉽네요.”
“하지만 분명 자실창의 눈이 회색으로 변했는데?”
그러자 후배가 주변을 휘휘 돌아보다니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선배가 준 그거 있잖아요, 제가 그걸로 실험을 좀 해봤거든요?”
“그 비싼걸로?”
“아 왜, 그 엘릭시르 하면 죽은 실장석도 살린다고 하잖아요?”
그 소문이라면 나도 심심찮게 들어봤다.
“그건 과장된 사실이다. 아무리 엘릭시르라고해도 죽은 실장석을 살릴 순 없어.”
내가 엘릭시르를 구할 수 있게 된 후 가장 먼저 해본 것이 그것이다.
깨진 위석을 엘릭시르에 넣어봤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실창석의 것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네, 그렇더라구요. 그런데 만약에 위석을 엘릭시르에 담은 채로 파손하면 어떻게 될까가 궁금해져서 실험을 좀 해봤는데 참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있더라구요?”
녀석은 가져온 가방을 뒤적뒤적 거리더니 A4용지 여러 장을 내밀었다.
A4 용지에는 엘릭시르에 담긴 위석에 취한 조치와 그 조치에 따른 실장석의 상태와 생사여부를 리스트로 정리되어있었다.
위석을 2등분 했을때, 위석을 4등분 했을때, 위석을 약간 파손후 이물질을 끼워넣었을 때 등등.
대부분 사망한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만 살아있다 등으로 끝났지만 유일하게 다른 결과 하나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위석 한 가운데를 관통할 때
: 관통했을 때는 사망한 것 처럼 보이지만 체온은 유지되는 일종의 가사상태에 빠지며 삽입한 물체를 빼면 위석이 재생될 때까지 그 가사상태를 유지하다가 위석이 재생되면 회복된다.
“정말이냐?”
“그 실제 사례를 선배가 직접 봤잖아요?”
"41번이 보스의 가슴에 붙인 가짜 위석을 찌를 때 너도 타이밍에 맞춰서 엘릭시르에 담긴 진짜 자실창의 위석을 무언가로 관통시킨거로군?"
"리얼리티를 중시하기 위해서 저도 특별히 대못으로 했지요!"
“흥미롭긴한데 써먹을 구석은 없겠군. 실장석을 가사상태에 빠지게 하려면 그냥 네무리로 재워버리는게 나으니.”
“네, 게다가 위석이 재생할때 엘릭시르를 무지막지하게 빨아먹더라구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헤헤.”
“⋯수고했으니까 고려해보도록하지.”
“정말이죠? 약속한거에요, 약속?”
이러다가 정말 협회에서 제명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나는 문득 보스에 대해서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너, 결국 보스에게 거짓말을 했군.”
“거짓말이라뇨? 제가요? 무슨 말이에요, 저는 사람에게는 몰라도 실장석에게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거 알잖아요?”
놀랍게도 이 말은 진실이다.
“41번도 보스의 자리를 못 맡게 되었잖나. 보스의 자리도 텅 비었고.”
“저는 분명 보스한테 이렇게 말한 걸요? ‘너의 고민을 해결해주겠다.’ 라고. 보스의 고민은 다음 보스를 맡을 실장석이 없다는거였잖아요? 보스의 시점에서 다음 공원 보스는 용기가 있고 명석한데다가 공원의 최강자인 보스를 이길 정도로 강한 41번이 맡게 되⋯는 줄 알고 눈을 감았으니 결과적으로는 보스의 부탁을 들어준 셈이지요. 어때요, 거짓말 안했죠?”
아, 생각해보니 눈을 감은 건 죽기 전이던가? 라고 킬킬대던 녀석에게 나는 완전히 질려버렸다.
“⋯아무리 실장석이 상대라지만 너 그러다가 천벌받을거다.”
“하하, 그런 걸로 천벌 받을거면 저는 이미 지옥 1등석 예약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을걸요?”
“잠깐, 경찰실장은 어떻게 된거지? 이 이야기에서 경찰실장이 중간에 갑자기 사라버렸다가 마지막에서야 등장하잖아. 마치⋯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것 처럼 말이지?”
“파하하하! 경찰실장이요? 참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경찰실장에게는 맡을만한 역할이 없더라구요. 그래도 머리를 쥐어짜내서 중요한 역할을 하나 맡겼죠. 바로 애매하게 끊겨버린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끝내는 역할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는 역할이었나, 를 듣을려던 찰나 41번이 쟁반위에 커피 두 잔을 들고 가져왔다.
교육받은 대로 41번은 군더더기 없는 우아한 자세로 커피 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여기, 드시는데스.”
“오! 41번쨩! 이거 고마워서 어쩐데?”
녀석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뜨겁지도 않은지 단숨에 몇 입 들이키다가 순식간에 이상한 표정이 되어 커피를 뿜어냈다.
“야! 이거 소금이잖아! 내가 각설탕 3개 넣으랬지 소금 넣으랬냐!”
“죄송한데-스. 와타시는 그저 명령받은 대로 하는 실장석일 뿐인데-스.”
“이거 선배가 시킨거죠!”
“⋯말했잖아. 그러다가 천벌받는다고.”
“와타시는 감정도 감각도 없어서 짠맛이라는게 뭔지 모르겠는데-스.”
“거짓말치지마! 너 이제 감각 다 돌아왔잖아! 야, 내가 마지막에 너랑 그 자실창 구해줬는데도 이러기야?”
“죄송하지만 후배사마, 애초에 그 사달이 난 건 다 후배사마 때문이란 것도 알고있는데-스. 그러니까 그 일을 소금이 들어간 커피 하나로 퉁치는건 매우 저렴한 대가인데-스. 그러니 그냥 쳐드시길 바라는데-스.”
“선배! 애 나한테 팔아요! 얼마면 되요, 얼마면?”
“생명을 돈으로 사고팔려하다니 정말 천박한 생각인데-스. 부디 후배사마도 닝겐사마라면 닝겐사마에 걸맞는 품격을 가져주시길 바라는데-스.”
“야, 니 주인은 실장숍 주인이거든?!”
“와타시는 주인이 없는데-스. 그저 사장님이 있을 뿐인데-스. 왜 그런 헛소리를 와타시에게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스. 혹시 소금이 부족하셨던 데-스?”
“이게 정말! 선배? 지금 웃고있죠?! 대체 애한테 뭘 가르친거에요, 네?!”
내가 가르쳐준대로 아주 철저한 존댓말로 후배를 엿먹이는 41번을 보면서 난 속으로 웃음을 끅끅 참으며 커피를 삼켰다.
아직 41번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행복할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 앞으로도 많은 슬픔을 겪을 것이며 어쩌면 분충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 불의의 사고로 끝나버릴 이야기일지도 모르고, 불행한 결말이 예정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41번은 이제 행복을 알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행복을 찾기 위해 나아갈 수 있다.
그 끝에 뭐가있든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이것으로 마침내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 어느 실장석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내가 너 공원에 처음 온 날 푸드도 줬는데 이러기야?”
“알고있는데-스. 그리고 와타시를 납치하려고한 것도 알고있는데-스.”
“윽, 그건 어떻게 알았냐?”
아직도 티격태격하고 있는 둘을 보면서 나는 남은 커피를 마저 한입에 들이켰다.
아
무심코 창문을 바라보니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첫눈이 오니 오늘은 이 녀석과 삼겹살에 소주라도 한 잔할까, 하면서 나는 스마트폰으로 실장석이 출입할 수 있는 식당들을 검색했다.
<고통과 죽음, 41번 실장 完>
Extra.
어떻게 하지 이거
그게 들실장들과 군대석들을 지배하는 생각이었다.
보스자리를 걸고 한 결투에서 보스는 가슴에 구멍이 난 채 숨이 넘어갈락말락한 상태이고, 이긴 실장석은 갑자기 망치닝겐이 와서 들고가버렸다.
“오마에! 정신차리는데스, 정신!”
하지만 경찰실장은 그런 상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관리실장을 깨웠다.
굳이 따지자면 저건 보스에 대한 반역행위이다.
그래서 군대석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군대실장의 눈치를 보았지만 군대실장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원 안쪽의 일에 간섭할 의지는 없어보였고, 보스 역시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상태였다.
“끄으응⋯뎃? 경찰실장상 아닌데스우? 그 자실창은 어떻게 된데스우?”
“그건 됐고, 당장 와타시를 따라하는데스!”
“뎃? 갑자기 그게 무슨⋯”
“닥치고! 따라하는데스!”
“뎃⋯알겠는데스우.”
관리실장은 난데없는 주문에 놀랐지만, 자신이 뭔가를 잘못해서 사고가 터지면 경찰실장이 수습해주는 경우가 많았고 경찰실장이 하라는 대로 하면 대개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었기 때문에 일단 따르기로했다.
“와타시는”
“와타시는”
“보스에게”
“보스에게”
“도전하는데스”
“도전하는데스우⋯뎃? 지금 와타시가 뭐라고한데스우?”
스스로 지금 뭐라고 했는지 깨달은 관리실장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겨겨겨겨경찰실장상, 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된⋯”
하지만 경찰실장은 신경도 쓰지 않고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크게 외쳤다.
“모두들! 관리실장은 지금 보스자리에 도전한데스! 다들 똑똑히 듣는데스!”
그리고는 어디서 난 힘인지 저실장처럼 꽁꽁 묶인 관리실장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뭐뭐뭐뭐뭐하는데스우? 장녀쨩, 이거 내려놓는데스우!”
“던지기 힘드니까 가만히 있는데스! 그리고 이 꽉 깨무는데스!”
“지금 던진다고 한데스우? 뭘 말인⋯데갸아아아악!!”
심호흡을 몇 번 한 경찰실장은 기합을 내지르며 창을 던지는 것 처럼 몇 발자국 도움닫기를 하더니 관리실장을 그대로 투창처럼 던져버렸다.
“데갸아아아아악!! 와타시 한줄기 바람이된뎃샤아아!”
쿵!
관리실장의 낙하 완충제가 된 보스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꽤 애매한 상태였지만, 방금의 일격이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완충제가 있긴했지만 얼굴로 착지를 한 결과, 관리실장은 오늘 두 번째로 졸도하였다.
“다들 본데스? 관리실장이 보스에게 도전한데스! 그리고 관리실장이 보스를 쓰러뜨린데스! 그러니까 관리실장이 지금부터 보스인데스!”
경찰실장의 말에 들실장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저걸 결투라고 할 수 있는지, 관리실장이 보스가 맞는지에 대해서 저마다 갑론을박을 펼쳤다.
“조용, 데스!”
41번과 보스의 결투가 시작된 이후로 계속 사태를 관망하던 군대실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마라실장의 굵고 큰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들실장 일동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경찰실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보스가 없는 지금, 가장 강하면서 군대석들을 통솔하는 것은 군대실장이다.
군대실장이 마음만 먹으면 방금 있었던 코미디 따위는 무시하고 예정대로 처형을 집행한 후 자신이 보스가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와타시, 보스에게 명령받은데스. 두가지, 였던데스. 첫째, 보스나 41번, 하나가 죽을 때까지 결투에 관여하지 말라고한데스. 둘째, 누가, 보스가 되건 보스의 말을 충실히 따르라고한데스.”
그렇게 말하며 보스의 시체를 쳐다보는 군대실장의 시선에는 약간의 애수가 담겨있었다.
보스는 혹시라도 41번이 보스가 되었을 때 군대석들 쪽에 문제가 없도록 일러두었던 것이었다.
“보스, 죽은데스. 식량실장, 여기 없는데스. 결투 규칙, 여기 살아남은 실장석 하나만이 보스가 되는데스. 관리실장, 여기서 살아남은 유일한 실장석데스. 관리실장, 지금부터 보스인데스. 와타시, 보스를 따르고 지키는데스.”
군대실장은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관리실장을 향해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군대석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하나 둘 씩 상황을 파악하고 군대실장을 따라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군대석들이 원모양으로 일제히 관리실장을 향해 충성을 바치는 것은 꽤 볼만했지만 관리실장을 잘 알고있는 관리석과 식량석, 들실장들은 ‘정말? 정말 관리실장이 보스가 되는거야?’ 하면서 우왕좌왕거렸다.
“어이! 다들 뭣들하는데스! 박수치는데스, 박수!”
그렇게 말하며 경찰실장이 가장 먼저 크게 박수를 치기 시작하니 저도 모르게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한 박수가 하나 둘 씩 늘어나 어느새 박수소리는 공원 전체에 우레처럼 울려퍼져나갔다.
모든 들실장들이 축복하는 가운데 두루마리 공원의 보스 자리가 계승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데에⋯데에⋯뭔가⋯시끄러운데스우⋯⋯.”
몇 시간후, 두루마리 공원의 새로운 보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이 보스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세 번째로 졸도하는 것이었다.
저를 기다려 주겠다고 하신 분들도 여럿 계셨건만 그 기대에 보답해드리지 않은 것이 뭐라 할말도 없습니다.
그저 이 글이 그 분들께 조금이나마 재미를 주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2. 넘버링 시리즈는 저에게도 참 할 말도 많고 일도 많았던 글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쓴 제대로 된 글이기 때문이지요.
중간에 여러번 막혀서 완결 짓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글을 써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지만, 이 시리즈를 마무리 짓지 않고 다른 글을 쓰기에는 너무 신경이 쓰이더군요. 아, 여기서 이렇게 하면 전개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 여기서 이 장면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제가 이 글을 마무리지은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이 글을 그만 쓰고 싶어서'입니다.
3. 41번 실장을 쓰기 전에 제가 맨 처음 구상한 부분은 14번쨰 단락 뿐입니다. 이 부분을 쓰고 싶어서 머리를 쥐어짜고 짜내서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쁩니다.
4. 복종과 침묵,40번 실장과 고통과 죽음, 41번실장-죽음편을 예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제가 글을 잘 쓰는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고통편을 쓰고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전 아직 너무 부족하고 배울 것도 많다는걸요.
그래서 이제부터 소설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문예창작 관련 대학원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힘들고 스스로 부족함에 치가 떨리지만 그래도 이걸 쓰면서 너무 즐거웠거든요.
5. 언제나 그랬듯이 감상, 비평, 지적, 칭찬, 악평, 설정오류 지적, 무엇이든지 환영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모든 이유는 댓글을 받기 위함이라고 할 정도로요......
어떤 댓글이라도 감사히 받겠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대댓글을 달아드리는 것 뿐입니다만ㅠㅠ
우연한 기회로 정주행 중이셨더라도 댓글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ㅠㅠ
6. 재미가 있었을지, 읽을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늘 긴장되지만, 일단 완결을 지으니 마음이 참 편안합니다.
http://cafe.daum.net/sweetjissouseki/eOP9/7
혹시라도 제 글이 보시기 역하지 않으셨다면 시간을 내주셔서 여기로 가서 다른 글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들 즐거움 참생되십쇼~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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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실창석 솔직히 귀여움 작성시간 20.12.25 노벨문학상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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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레휘잉 작성시간 21.01.12 최고인 레후. 정말 감동받은 레후. 아름다운 이야기였던 레후. 덕분에 며칠동안 무척 즐거웠고 41번의 이야기에 온 마음을 쏟아서 읽었던 레후. 좋은 글 감사하는 레후, 감사하는 레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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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시그 작성시간 21.11.23 너무나도 감동인 테치
아타시는 렌즈삽입술을 한지 하루밖에 안됬는데도 이 소설을 읽은 테치.
너무나도 극상의 아와아와인 테치잇. -
작성자사육닝겐 작성시간 22.05.08 오늘에야 넘버링 시리즈 정주행했네요.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몰입도가 상당하네요.
불길한 제목과는 다르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입니다.
클라이막스 부분이 짜릿했어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레후레후뎃데로게 작성시간 23.02.05 운치 개지린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