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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크립트/ 단편

자판기 구하기

작성자Doosam|작성시간22.04.28|조회수1,375 목록 댓글 2

 

 

 

1.

''어디보자. 여기가 거긴가?''

한 남자가 공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의 이름은 구시야키. 한참을 돌아다니던 그는 마침내 구석에 있는 커다란 상자를 발견한다.

구시야키는 조심스럽게 상자에 접근해 노크를 한다.

''뭐인 데... 닝겐상? 닝겐상이 여기는 무슨 용건인 데스?''

상자 안에서 나온 실장석은 이 공원의 보스. 녀석은 적당히 힘도 쌔고 머리도 좋아 먼저 인간에게 다가가지 않는 분충도 양충도 아닌 녀석이었다.

''안녕. 실장석아. 너한테 좋은 제안이 있어서 왔단다.''

''데에...''

보스는 두려움에 구시야키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구시야키는 그걸 보고 웃으며 준비한 '그걸' 꺼낸다.

''특제 과일향 콘테이토란다.''

''뎃?''

알록달록 화려한 색으로 가득한 콘테이토가 봉지 안에 가득이다. 제아무리 공원의 보스라도 이렇게 많은 콘테이토를 본 적은 없을 것이다.

턱이 빠진 것처럼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는 녀석. 처음에 보였던 경계심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콘테이토 한 봉지를 자판기 한마리랑 바꿔줄게. 여러마리를 넘겨주면 여러 봉지를 주도록 하지.''

구시야키의 제안을 들은 보스는 냉정하게 판단한다.

'공원에서 콘테이토 하나는 우지챠 열마리 만큼의 가치가 있는 데스. 자판기 한마리로 뽑을 수 있는 우지챠는 대략 20~30마리 정도인 데스. 저 콘테이토는 와타시 일가가 겨울 동안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데스. 이건 바꾸는 게 이득인 데스.'

한참을 생각하던 보스는 구시야키의 제안을 수락한다. 그리고 비닐로 덮어둔 운치굴을 열어재낀다.

''와타시가 가진 자판기 세마리를 바치는 데스. 그러니 콘테이토 세봉지를 주시는 데스.''

''자, 여기 콘테이토 세봉지.''

구시야키는 상자 앞에 콘테이토 봉지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빈 봉투에 반 시체 상태인 자판기 세마리를 넣는다.

''좋은 거래였어.''

''데프픗. 나중에 또 오시는 데스.''


2.

집에 도착한 구시야키는 봉지에서 자판기를 꺼내 수조 안에 넣어둔다.

''심각한 상처로군.''

두개골이 함몰되어 뇌를 관통한 상처를 세마리 모두 가지고 있다. 아마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일 것이다.

''실장석은 뇌도 재생하지. 그걸 막기 위해 두개골의 파편이 뇌를 파고들게 만든 거야. 정말이지 잔혹한 습성이라니까.''

구시야키는 한마리 씩 수조에서 꺼내 실장석용 침대에 눕힌다. 그리고 메스와 주사기, 집게를 꺼내든다.

''먼저 위석을 꺼내 영양액에 담군다. 재생이 느린 특수영양액이다. 너무 빨리 재생하면 수술이 힘들어져.''

남자는 가볍게 위석을 꺼내 영양액이 담긴 접시 위에 올려둔다.

''다소 거친 치료가 되겠지만 불만은 없겠지. 마취도 필요 없을 테고.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는 없을 테니까.''

메스로 머리뚜껑을 열고 그 속에 박혀있는 두개골의 파편을 꺼낸다. 그리고 손상되어 열화된 조직도 제거한다.

''다음은 팔다리. 상처에 운치와 모래를 문질러서 재생을 막아두었군. 여긴 간단하지. 해당 부위를 제거하기만 하면 되니까.''

구시야키는 과감하게 상처 부위를 도려낸다. 그걸로 치료는 종료다.

''남은 건 스스로 재생하는 것 뿐이다.''


3.

자판기 세마리는 모두 온전한 독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야 그렇겠지. 극심한 고통 속에서 계속 살아왔을 테니까. 눈앞에서 자를 빼앗겨 먹히고 재생할 때마다 깍여나가고... 인간이라도 그런 고통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구시야키는 독라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구석에 숨어 들어간다.

''잘못한 데스. 잘못한 데스  잘못한 데스. 잘못한 데스.''

''주인사마. 다시는 자를 낳지 않는 데스. 운치를 던지지 않는 데스. 그러니 용서해 주시는 데스.''

''무서운 데스. 이제 더 이상은 싫은 데스.''

PTSD.

''녀석들은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정신적 고통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식사도 조금씩은 하고 있지만 대부분 토해내거나 억지로 삼키고 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세심한 멘탈케어가 필요할 것 같다.''

구시야키는 잠시 밖으로 나간다.


4.

''레후? 독라 오바상들이 가득인 레후?''

''독라 오바상 투성이인 레후~''

''프니프니후~''

구시야키는 우지챠 여러마리를 준비했다.

그동안 자를 빼앗기면서 살아왔을 녀석들. 정신이 피폐해진 녀석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줄 방법은 이것 뿐이다.

우지챠들이 꿈틀거리며 쓰러져있는 독라들에게 다가간다.

''오바상들이 우지챠의 새로운 마마인 레후?''

우지챠의 목소리에 독라들이 반응한다.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고 점점 활기가 살아난다.

''우지챠?''

''프니프니후?''

독라가 우지챠를 향해 손을 내민다. 녀석은 우지챠를 번쩍 안아든다. 그리고,

오도독

''레뺫! 우지챠는 먹는 게  아닌 레후!''

''이런 프니프니는 싫은 레삐야아앗!''

우지챠를 잡아먹기 시작하는 녀석들. 전부 한마리씩 입에 넣고 맛나게 뜯어먹고 있다.

''그래! 이거야! 자신의 자를 다른 녀석에게 빼앗겨 먹히던 녀석들이 이제 다른 녀석들의 자를 잡아 먹는다! 이것 만큼 휼룡한 정신적 힐링은 없지!''

우지챠를 잡아먹은 녀석들은 기운을 되찾은 듯 하다. 구시야키의 멘탈 치료가 성공한 것이다.

''이런 맛이었던 데스까. 우지챠의 맛은,''


5.

독라들은 다소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듯 하다. 구시야키의 손길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행동도 다채로워졌다. 우지챠를 잡아먹는 걸로 식욕도 돌아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제 자존감을 되찾아 줘볼까?''

실장석의 자존감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것'이다.

''우선 마취.''

구시야키는 수조에 네무리를 뿌린다. 안좋은 기억이 있는지 놀라서 탈분하지만 곧바로 잠들어 얌전해진다.

''주변 공원의 들실장으로부터 구한 머리카락(피부까지 전부 뜯어내 가져왔다)과 실장복. 우선 독라들의 피부를 약간 제거하고 그 위에 들실장의 머리 붙은 피부를 이식한다. 그리고 거기에 영양액을 바르면 완성. 이전 수술에 비해 간단하다.''

잠에서 깨어난 독라, 아니 이제는 독라가 아니다.

''뎃? 뒷통수가 갑자기 무거워진 데스?''

''머리가 생긴 데스! 찰랑찰랑해진 데스!''

''닝겐상이 주신 머리 데스? 감사한 데스! 정말 감사한 데스!''

한때 자판기였던 녀석들이 나에게 도게자를 해대며 감사를 표한다. 감사해하는 녀석들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짓는 구시야키.


''옷도 준비해두었으니 입으라고.''


6.

마지막 과정이다.

''모두 수레에 올라타렴.''

케이지 달린 이 수레는 실장석들이 내부에 타서 밖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 수레를 준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외출이다.''

''데뎃?''

''데에... 밖은 무서운 데스. 수조 안에 있고 싶은 데스.''

밖이 두려운 녀석들. 그런 경험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계속 회피하기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당당히 직면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 갈 곳은 녀석들이 자판기로 살던 그 공원이다.

''뎃! 이곳은!''

''무서운 데스! 여긴 싫은 데스!''

치과에 온 어린아이처럼 난동을 부리는 녀석들. 하지만 구시야키는 계속 수레를 민다.

''저길 보렴.''

구시야키가 도착한 곳. 그곳은 이 공원의 보스실장. 자판기들을 착취하던 그 녀석이 있는 곳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 데스?''

''보스일가가 실각한 데스?''

보스실장이 있던 곳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나름 깔끔한 편이던 상자는 완전히 무너져있으며 여기저기 운치가 묻어있다.

''내가 나눠준 콘테이토. 그건 사실 실장석의 근육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키는 성분으로 되어있다. 그 약을 겨울 내내 먹었으니 녀석들의 일가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겠지. 그런 상태에서 다른 들실장의 습격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보스실장은 머리카락이 뜯겨나가고, 팔다리가 잘린 채 운치굴에 던져져 있다. 집은 다른 들실장에게 빼앗겼으며 녀석의 자들은 전부 뼈만 남았다.

''자, 어떻게 생각하니?''

구시야키는 한때 자판기였던 녀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판기들은 잠시 망설인다.

''데....꼴 좋은 데스! 그렇게 와타시타치를 부려먹더니 이제 똑같은 꼴이 된 데스!''

''사필귀정인 데스!''

자존감 회복의 최종단계.

한때 자기들을 괴롭히던 녀석이 나락으로 떨어진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판기들은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자존감을 되찾는 것이다.

다른 녀석들이 난리를 피우는 와중에 한 녀석이 구시야키에게 질문을 던진다.

''저건 닝겐사마가 한 일인 데스?''

''맞아.''

그 녀석은 구시야키가 내심 기대하던 질문을 던졌다. 나름 똑똑하고 사리분별이 되는 녀석이다. 왜 굳이 구시야키가 자신들을 이곳에 데려왔는지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닝겐상이 보호해주면 와타시타치도 안전한 데스.''

자신들을 괴롭히던 보스일가를 손 하나 안대고 실각시켰다. 인간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인간의 보호 아래 있으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런 생각을 녀석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이 외출의 진짜 목적이다.

''맞는 데스! 닝겐상만 믿고 의지하는 데스!''

''닝겐상 만세인 데스!''

신나서 춤을 춰대는 녀석들. 구시야키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7.

그 후로 약간의 훈육과 예의범절 교육이 있었다. 녀석들은 구시야키의 말에 철저히 복종했다.

''두번 다시 자판기는 되고 싶지 않은 데스!''

보통의 사육실장과 다르게 동기부여가 제대로 된 녀석들이다. 게다가 자판기로 고통받던 기억이 있어 자를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닝겐상 말만 잘 들으면 편한 실생을 살 수 있는 데스!''

무엇보다 인간에게 의지하며 무조건적으로 복종한다. 사육실장으로써 최고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좋은 소식이다. 너희들을 입양하겠다는 주인님들이 나타났다. 이제 사육실장으로써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구시야키는 비싼 값을 받고 녀석들을 팔았다. 수술비용이나 기타 지출을 제외해도 상당한 흑자이다.

한때 자판기였다는 사실이 애호파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게다가 인간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예의바른 양충. 비싼 돈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구시야키는 그 점을 노린 자판기 전문 브리더이다. 최근 훈육이 제대로 된 성체실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그의 사업에 좋은 원동력이 되었다.

''오로롱. 그곳에서도 닝겐상의 은혜는 잊지 않는 데스.''

''절대 주인사마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스!''

''아리가또데스웅~''

구시야키는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있기를 기도할게.''


8.

구시야키는 또다시 공원을 방문했다.

''이 콘테이토 한 봉지랑 그 자판기랑 바꾸지 않을래?''

''가져가는 데스. 어차피 괴롭힐 생각으로 자판기로 만든 녀석인 데스.''

구시야키는 미소를 지으며 운치굴의 자판기를 꺼낸다. 그 자판기는 처음에 그와 거래를 했던 그 보스실장이다.

녀석은 팔다리가 잘렸지만 뇌만은 멀쩡한 상태이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 괴롭히기 위해 자판기로 만든 것이다.

''역시 끔찍하군. 자판기란 습성은 말이야.''

''그때... 그 닝겐상인 데스?''

보스실장이 정신을 차린다.

''그래. 오랜만이네?''

''왜 그런 일을 하신 데스? 왜 굳이 와타시에게 그런 약을 먹여서 괴롭힌 데스?''

구시야키는 웃으며 설명해준다. 자신이 하는 일과 그 목적까지 전부 다.

''이해...한 데스.''

''그래. 똑똑하구나.''

''하지만 그냥 자실장 한마리 키우는 게 더 이득 아닌 데스? 닝겐상의 힘이라면 충분히 양충 사육실장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닌 데스?''

역시 이 보스실장은 똑똑한 녀석이다.

녀석이 말한대로 어린 자실장을 키우는 게 더 이득이다. 굳이 수술을 할 필요도 없고, 번거로운 멘탈치료도 필요없으며, 구시야키의 기술력이라면 충분히 양충으로 훈육할 수도 있다.

자판기를 사육실장으로 만드는 일은 좋아보이기는 하지만, 불필요한 작업을 늘리는 귀찮은 일인 것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 데스?''

보스의 질문에 구시야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왜냐니 그야... 재미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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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테츄아아 | 작성시간 22.04.29 구시야키상.. 무서워무서워 테치
    전개가 완벽테츄!
  • 작성자심심레후 | 작성시간 22.04.30 재밌다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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