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창작스크립트/ 단편

실장석의 세계 - 집 지키기.

작성자emilliang|작성시간22.05.18|조회수2,238 목록 댓글 3


실장석의 세계 - 집 지키기. 


"자들은 어서 아침을 먹는 데스요~"

친실장의 말에 자실장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아침이라고 해봐야 대충 모아놓은 음식물 쓰레기에 불과하다.
걸쭉하고 미끌미끌하고, 냄새가 난다. 

"테챱 테챱~ 오늘도 아침은 맛있는 테치!"

식사는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근처에서 뜯어온 잡초풀이다. 
차녀의 표정이 어째 시무룩하다. 

"테에에... 풀씨는 이제 질린 테치..."
"차녀. 음식을 가리면 나쁜 아이인 데스. 야채도 골고루 먹어야 착한 아이인 데스."
"아, 알겠는 테치. 아타치는 착한 아이니 마마 말을 듣는 테치."

차녀는 마지 못해 풀을 씹었다. 
먹을 걸 구하기 힘든 실장석들에게 있어 잡초는 좋은 식재료다. 
흔히 구할 수 있으며, 쉽게 배부르게 해주니까. 
물론 잡초만 먹이진 않지만 거의 5대 5 비율로 먹인다. 
억지로 먹는 차녀에 비해 삼녀는 입맛이 맞는지 잡초를 잘도 먹었다.

"풀씨를 씹으면 시원한 물이 나오는 테치. 아마아마한 테치!"

장녀는 어째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친실장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장녀는 왜 안 먹는 데스우? 입맛이 없는 데스요?"
"마마는 안 먹는 테치?"
"마마는 오늘도 일을 나가야 하는 데스. 나가서 먹으면 되는 데스."

친실장은 장녀가 대견스러운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따스한 손길에 장녀는 테휴~ 테휴~ 하며 기분 좋다는 소리를 낸다. 

"그럼 마마는 오늘도 밥을 가지러 가는 데스. 늘 말하는 거지만 집을 잘 지켜야 하는 데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안 되고, 집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되는 데스."
"테치 테치."

어미가 나간 뒤.
작은 상자 안에는 세 마리의 자실장과 구더기만이 남았다. 
어미가 나가기 무섭게 삼녀는 구석에 있던 솔방울을 꺼냈다. 

"오늘도 솔방울 놀이하는 테치!"

숲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솔방울.
실장석 일가가 흔히 고무 공 대신에 쓰는 놀이 기구다. 
나름 둥그스름하고 가볍기 때문에 연약한 자실장들도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다. 
삼녀의 말에 장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되는 테치."
"테에에... 장녀차랑 같이 놀고 싶은 테치..."
"그치만 방금 밥 먹은 테치. 밥 먹자마자 놀면 금방 배가 꺼지는 테치. 그러니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는 테치."
"그럼 뭐하는 테츄?"
"그냥 기다리는 테치. 움직이면 배가 꺼져서 금방 배가 고파지는 테치."
"테에에..."

장녀는 나름 현명한 개체였다. 
태어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움직이면 금방 배가 꺼진다는 개념까지 알아냈다. 

딱히 일가에 도움 되는 일을 할 수 없는 자실장들.

중실장이 되기 전에는 손에 돌기도 안 나서 노동력에 보탬조차 될 수 없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최대한 배가 안 꺼지게 하기.
시간 때우기 정도이다.
또 하나 있다면 운치를 안 흘리는 정도다.
실장석은 지저분한 생물이지만 그들 나름의 청결의 기준은 존재하니까. 

뭔가를 하기 보다는 안 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 
그리고 뭔가를 안 하면 지루할 수밖에 없지. 

"장녀챠. 지루한 테치..."

자그마한 상자 안.
안에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 쪽에는 수건과 마른 낙엽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는 잠자리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텅 빈 0.5리터 페트병이 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사람으로 치면 이불만 있는 골방에 있는 격이다. 

차녀와 삼녀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며 장녀는 고민에 잠겼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럼 서로 머리를 다듬어주는 테치. 마마는 우리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한 테치. 하지만 늘 가꾸지 않으면 안 되는 테치."
"테휴! 좋은 생각인 테츄!"

자실장들은 서로의 등을 보며 뒷머리를 다듬어줬다.
물론 손가락이 없는 자실장들이 만져줘봐야 딱히 되는 건 없다.
그냥 만질 뿐이다.

"테치 테치. 머릿결 좋아지는 테치."
"테에엥... 아타찌만 손질 못 받는 테치..."

삼녀만 머리 손질을 못 받는 중이다.
현명한 장녀는 반대로 돌아서 다시 해주기로 하여 갈등을 봉쇄했다. 
그렇게 한창 자매들이 서로의 머리 손질을 해주고 있을 때였다.

"레훗...? 아침인 레후?"

늦잠을 자던 구더기가 잠에서 깼다. 
구더기답게 깨어나자마자 프니프니를 찾는다.

"레후? 구더기 아침 프니프니 원하는 레후?"

자매들은 구더기 근처에 모여 서로 번갈아 가며 배를 만져줬다.
원래 저실장은 실장석 일가에게 가족 취급을 받지 못 한다.
하지만 이처럼 극소수의 일가는 가족 대우를 해준다.

이 일가의 어미는 자식들이 심심해하지 말라고 하나 있는 구더기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막내쨩, 이렇게 배 만져주면 기분 좋은 테치?"
"레훗? 기분 좋은 레훼엥~"

서로 머리를 다듬어주고, 
구더기와 놀아주고,
테치 테치 거리며 수다를 떨다 보니 장녀는 슬슬 배가 꺼지는 걸 느꼈다. 
배가 고플 정도는 아니지만 포만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바로 지금이다.

"차녀, 삼녀쨩. 이제 슬슬 낮잠을 자는 테치."
"테치? 하지만 아직 안 졸린 테치?"
"그래도 자두는 테치. 미녀는 잠이 많은 테치. 많이 많이 자둬야 더욱 이뻐지는 테치."
"그런 테치? 그럼 다 같이 자는 테치."

자매들은 구더기와 함께 서로를 껴안으며 잠을 청했다. 
따스한 체온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금방 잠에 빠졌다. 

실장석들은 야행성과 주행성의 구분이 없다.
그 대신 두 세 시간씩 잠을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 
체구가 작다 보니 그만큼 체감하는 시간의 개념도 길다. 

지금 보는 것처럼 집을 지키는 자실장들이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시간 때우기에 가장 좋은 건 낮잠을 자는 거고, 그런 생활이 몸에 배는 셈이다. 
때문에 야생의 실장석은 틈만 나면 잠을 잔다. 
시간도 때우고 식량도 아끼고 일석일조가 아닐 수 없다. 

"테헤에... 일어난 테치..."

두 시간 정도가 지나고 자실장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자실장들은 눈을 비비거나 작은 몸을 기우뚱거리며 기지개를 폈다.

"테에..."
"테휴..."

그리고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저 가만히.
멀뚱멀뚱.
가끔 빈 입맛을 다시고 다리를 긁적인다.
이제는 무얼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일단 배가 고프다. 

"배고픈 테치..."

배가 고프지 않게 미리 잠을 자두는 건 좋은 생각이었지만, 일어나서 배가 고플 경우를 생각지 못 했다. 
자실장은 테치 테치 거리며 멍하니 상자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만 할 뿐이다. 
사람으로 치면 컴퓨터도, 휴대폰도, 책도, 아무 것도 없는 방 안에서 지내야 하는 셈이다.
한창 활동적인 자실장들이 견디기에는 힘든 환경이다. 
그런데 삼녀가 말을 꺼냈다.

"한 번 밖에 나가보는 테치."

그러자 장녀가 펄쩍 뛴다.

"안 되는 테치. 마마가 집을 보라고 한 말을 잊은 테치?"
"그치만 이대로는 너무 심심한 테치. 잠깐은 괜찮은 테치. 요 앞에만 살짝 나가보는 테치."

말리고는 있다만 장녀도 마음이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대로는 너무 심심하고 지루했다. 
구더기와 놀아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어차피 구더기는 제대로 된 대화가 통하지 않고 프니프니만 요구할 뿐이라서 시간 때우기에 그렇게 썩 적합하지도 않았다. 

"알겠는 테치. 그럼 살짝만 나가보는 테치."

동생들의 성화에 장녀는 굳은 결심을 했다. 

일가의 집은 수풀 사이에 놓은 작은 상자였다.
상자를 뒤집어 놓은 형태라서 따로 문은 없지만, 한 곳에 돌을 덧대놔서 자실장들도 땅을 파거나 허리를 숙여서 밖으로 나올 수 있다. 
큰 상자여도 비좁을 텐데 작은 상자이니 자실장들의 답답함은 오죽했을까.

"테휴아! 세상은 엄청 커다란 테치!"

밖으로 나온 자실장들은 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다. 
인간에게는 그저 무릎 높이의 풀이 무성한 흔한 수풀이겠지만 실장석들에게는 거대한 숲이었으니까. 
거대한 숲, 혹은 울창한 정글. 
무시무시한 육식동물이 사는 숲이 아니라 판타지의 동화 나라 같은 느낌을 자실장들은 받았다. 

"풀씨가 많은 테챠! 엄청 커다란 테치!"
"테에에. 너무 커서 한 눈에 안 들어오는 테치!"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자실장들에게는 새로움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그간 못 맡아본 냄새가 난다.
흙 냄새, 풀 냄새, 그리고 채 마르지 않은 아침의 이슬 냄새 등등.
자실장들은 감격스러운지 찌이이 거리는 소리를 내며 재잘거렸다. 
차녀가 기쁨에 젖어 외쳤다.

"세상은 엄청 커다란 테치. 마마는 어째서 이런 모습을 안 보여준 테치? 감동인 테치."

장녀도 감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똘똘한 장녀이니만큼 경계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조심하는 테치. 마마가 세상은 위험하다고 한 테치."
"괜찮은 테치. 사방에 숨을 곳이 많은 테치."

장녀도 솔직히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새로웠으니까.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서 느끼는 배덕감이 장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장녀차. 솔방울 놀이 하는 테치!"
"아, 알겠는 테치."

차녀와 장녀는 서로 솔방울을 던지며 놀았다. 
삼녀도 근처에 무성한 풀잎을 뜯어 먹으며 기뻐했다.

"테햐앗! 풀씨가 이렇게나 많은 테치. 이런 행복 몰랐던 테치! 배 빵빵하게 먹는 테츄아!"

자실장들은 찌이이 거리는 기쁨의 소리를 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친실장의 귀에 들렸다.

"데에에? 이 소리는 자들의 소리인 데스? 어째서 이렇게 크게 나는 데스?"

실장석.
그 중에서도 자실장들의 소리는 꽤나 고음이라서 멀리서도 들린다.
테치 테치, 레치 레치, 혹은 찌이이 거리는 소리.
어쩔 때는 매미의 소리와 흡사하다.

성체쯤 되면 데스 데스~ 거리면서 톤이 낮아지긴 하지만 어리면 얄짤없다.
친실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수풀을 해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데에?"

친실장은 눈을 의심했다.
분명 집 안에 콕 틀어박혀 있으라고 했던 자들이 바깥에서 테치 테치 거리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으니까.
말 그대로 놀고 있다. 

"데샷! 뭐하는 짓인 데스! 마마가 밖에 나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데샷!?"

친실장은 분노하며 일갈했다.
솔방울을 굴리며 놀던 장녀와 차녀, 그리고 흙 장난을 치던 삼녀까지 모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 마마가 온 테치?"
"오늘은 일찍 온 테치."

친실장은 우선 자들을 모두 집 안에 들였다. 

"치마 올리는 데스."
"테에에?"

친실장은 자들의 엉덩이를 돌아가면서 팡팡 때렸다.

"테챠앗! 아픈 테칫! 잘못한 테치!"
"마마가 분명히 말했던 데스. 밖은 위험하니 나오면 안 된다고 한 데스! 어째서 마마의 말을 듣지 않는 데스!"
"챠아앗! 하지만 심심한 테치! 집 안에는 놀 게 아무 것도 없는 테츄아!"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데스! 지루한 게 고통스럽게 죽는 것보다 나은 데스! 맴매 맞는 데스아!"
"찌이이!"

삼녀, 차녀, 장녀 순으로 그렇게 엉덩이를 팡팡 맞아야 했다. 

잠깐의 폭풍이 지난 뒤.
냄새 나는 상자 안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자들은 눈물을 훌쩍이며 눈치를 살폈고, 친실장은 묵직한 한숨을 내려놓았다. 

"다시 말하는 데스. 집 밖은 위험한 데스."

반항심이 있는 차녀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그건 거짓말인 테치."
"지금 마마 말에 대드는 데스? 또 엉덩이 팡팡 당하고 싶은 데수?"
"아, 아닌 테치. 하지만 밖에서 노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테치. 위험한 건 없는 테치."
"그건 너희가 운이 좋았던 것 뿐인 데스. 운이라는 건 언제까지고 좋을 수 없는 데스."
"치이이..."

차녀는 연신 훌쩍이며 적녹의 눈물을 쏟았다. 
방금 전까지 엄했던 친실장은 말없이 차녀를 안아줬다.

"답답한 거 마마도 알고 있는 데스. 지루한 것도 아는 데스. 마마도 너희 때를 겪어봤으니 다 아는 데스. 하지만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일가 전체가 실각할 수도 있는 데스. 마마는 그런 광경을 몇 번이나 봐온 데스."

친실장은 차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슬프지만 쓰다듬어주는 건 기분 좋은지 치르르 하는 소리를 옅게 낸다. 

"차녀. 너는 마마의 말을 믿지 못 하겠다고 한 데스. 하지만 마마의 말을 실감하는 순간, 우리 가족은 끝장나는 데스. 그러니 평생 모르는 게 나은 데스. 답답하겠지만 모르는 게 나은 것도 있는 데스요."
"마마 미안한 테치. 아타치가 잘못한 테치... 너무 심심했던 테치..."
"마마도 다 아는 데스. 그러니 자매들끼리 서로를 보듬어야 하는 데스. 구더기쨩도 있으니 서로 위해주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데스. 마마도 가슴이 아픈 데스."

자매들은 일제히 어미의 품에 안겨 찌이이 울었다. 
친실장은 슬픔을 삼키면서도 계속 말했다.

"언젠가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면 그 땐 자유롭게 밖에 나가서 놀아도 되는 데스. 너희들이 마마가 될 즈음이면 분명 그렇게 되는 데스. 와타시는 그렇게 믿는 데스."

하지만 친실장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식량을 가지고 오는 길에 친실장은 인간이 집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덱! 인간이 근처에 있는 데스? 어째서인 데스?"

친실장은 수풀 근처에 숨어서 가만히 동태를 살폈다. 
한 인간이 뭔가를 흠씬 밟고 있었다.
발을 구를 때면 찌이이 찌아아 하는 비명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것은 자들의 비명이었다.

"데덱! 와타시의 사랑스러운 자들의 비명인 데스!?"
"쨔아아! 마마! 구해주는 테치! 인간이 우리를 밟는 테치!"

친실장은 혼란에 빠졌다. 
자들이 공격을 받고 있다. 
구해야 한다.
하지만 실장석으로써 구할 방도가 없다. 
자신이 나서봐야 무덤 옆에 또 하나의 무덤을 댈 뿐이니까. 
친실장은 인간의 무서움을 잘 아는 개체였다. 

"구, 구할 수 없는 데스... 나서봐야 소용 없는 데스... 인간은 무적인 데스...!"

친실장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어서 인간이 물러가기를 기도했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인간은 왠지 모르게 후련한 소리를 내며 멀리 사라졌다. 
인간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도 친실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풀 너머에서 흘낏 바라보는 인간의 눈빛을 보았으니까.
친실장이 혹시 오나 안 오나 기다리는 것이다. 

"소름끼치는 인간인 데슷! 아직 저기에 있는 데스. 가지 않은 데스. 분명 와타시를 기다리는 게 분명한 데스."

인간은 한참이나 숨 죽여 기다리다가 끝끝내 친실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미련을 버리고 자리를 떠났다.

"된 데스! 인간이 간 데스! 바로 지금인 데샷!"

친실장은 뒤뚱거리며 현장으로 향했다.

"데뎃...!"

그야말로 참혹한 현장이었다. 
집은 잔뜩 구겨져 있고 비상식은 바닥에 온통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는 자들이 짜부러져 시체가 되어 있었다. 

"이건 악몽인 데스! 악몽인 데스! 어째서 와타시의 자들이 이런 꼴을 당해야 되는 데스!"

친실장이 상냥하고 현명하던 장녀의 시체조각을 수습하는 사이.
옆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테에에... 마마..."

그나마 신체가 멀쩡한 삼녀였다.

"삼녀! 살아 있었던 데스! 다행인 데스!"

하지만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검은 눈물이 그 증거였다.
실장석이 죽기 직전에 흘린다는 검은 눈물.

"데샤악! 삼녀! 정신 차리는 데스! 마마가 먹을 걸 잔뜩 잔뜩 들고 온 데스! 이걸 먹으면 힘이 나는 데스!"
"미안한 테치... 밖에 나갈 수 없어서... 심심해서 자매들과 노래를 부른 테치... 장녀챠가 말리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테치... 미안한 테치..."

파킨!
이윽고 유리가 깨지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삼녀가 숨을 거뒀다.
적녹의 눈이 빛을 잃고, 벌어진 입에서 도톰한 혀가 비죽 튀어 나온다.

"오로롱! 삼녀!"

친실장은 서럽게 울어댔다. 
한편으로는 자들이 밉기도 했다. 

"어째서 마마의 말을 듣지 않은 데스요!? 마마가 조용히 지내라고 한 데스! 가만히만 있으면 되는데 왜 그걸 못 하는 데스! 대답 하는 데스! 맴매 해주는 데스! 맴매할 테니 어서 일어나는 데스!"

서러움과 슬픔, 분노가 뒤섞인 친실장의 오열이 숲을 울렸다.

***

친실장의 운명은 그 때 뒤바뀌었다.
서럽게 우는 소리가 근처를 지나던 사람의 이목을 끌었고.
대화를 통해 사정을 이야기 했다.
딱하게 여긴 인간은 친실장을 사육실장으로 삼아 주겠다고 하였다. 

"데에? 사, 사육실장 데스?"

사육실장의 안타까운 사연과 애처로운 울음이 마음을 이끈 모양이다.

"데에에..."

고민하던 사육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데스! 와타시 사육실장을 하는 데스! 이런 위험한 곳은 이제 싫은 데스! 안전함을 제공해준다면 와타시 평생 인간님을 위해 따르겠는 데스!"

그리하여 친실장은 사육실장이 되었다. 

친실장은 딱히 분충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세레브한 삶이라며 행복회로를 돌리지 않았다.
인간 역시 학대파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감정에 의해 변덕을 부렸을 뿐이다. 
딱히 나쁜 건 없다.
나쁠 건 없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는 게 좋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데히이..."

인간은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저녁 7시에 집에 돌아왔다. 
친실장은 장장 11시간을 홀로 수조에서 보내야 했다. 
잠 자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더 된다. 
실장석은 인간처럼 길게 6~7시간씩 자는 게 아니니까. 

"저, 저기 주인상?"
"어 왜? 나 출근해야 되니까 빨리 말해."
"그... 출근이라는 걸 하면 뭘 하는 데스?"
"너희 식으로 치면 먹을 걸 구하러 가는 거지. 너도 자들에게 먹일 식량을 구하러 밖에 나가고 그랬잖아."
"덱! 이해한 데스! 완전 이해해버린 데스!"
"혼자 있으려니 심심하구나? 퇴근하면서 장난감이라도 사다 줄게."
"장난감! 좋은 데스! 고마워버리는 데스!"
"그럼 나 올 때까지 집 잘 지키고 있어야 된다? 시끄럽게 소리 내면 안 돼."
"절대로 소리 안 내는 데스. 주인님의 말을 잘 듣는 게 사육실장의 사명인 데스!"

주인이 집 밖으로 나가고, 친실장은 그렇게 수조에 홀로 남게 되었다. 

"데히..."

주인은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섬세한 인간도 못 되었다.
실장석이 감수성이 풍부하고 외로움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 했다.
아니, 실장석까지 갈 것도 없다.
개나 고양이도 좁은 우리 안에 가둬서 키우면 마음에 병이 생긴다.

"...심심한 데스."

수조 안에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친실장은 수조를 가만히 둘러 보았다. 

한쪽에는 자전거처럼 손잡이를 잡고 탑승하는 형태의 화장실이 있고.
다른 쪽에는 수건을 대충 말아 넣은 침대가 있다. 
맞은편에는 밥 그릇과 식수대가 수조 벽에 달려 있다.
그 뿐이다. 

"집이 너무 좁은 데스..."

엄밀히 따져서 인간이 흔히 사용하는 방의 평균보다는 큰 편이다. 
문제는 할 게 없다는 거다. 
투명한 수조벽 너머로는 아무 것도 없었다. 
벽지가 발린 벽과 장롱이 전부다. 
구경할 것도 없었다. 

TV라도 틀어놓고 간다거나, 바깥 구경 좀 하게 아파트 베란다에 놔둘 수도 있지만 주인은 그 정도로 세심하지 못 했다. 

친실장은 생각했다.
이런 게 사육실장이라고?

"흠흠. 부, 분충 같은 생각을 하면 안 되는 데스! 와타시는 선택 받은 사육실장인 데스! 마마가 밥을 구하러 가면 자들은 조용히 집을 지키는 게 사명인 데스! 똑같은 데스!"

친실장은 억지로 세뇌하듯이 중얼댔다. 

"이곳은 더위나 추위도 없는 데스. 비나 눈도 오지 않는 데스. 무시무시한 동물씨도 없고 배고픔도 없는 데스. 감사해야 되는 데샷!"

친실장은 저 혼자 성화를 내며 데싯 데싯 거렸다. 

"일단은 잠을 자두는 데스. 잠을 자면 시간이 빨리 가는 데스."

친실장은 꾸물꾸물 수건 속으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수건의 보들보들한 감각을 느끼며 잠을 청했다.

"와타시는 사육실장인 데스. 집을 잘 지키는 데스. 보에 보에."

세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친실장은 스멀스멀 잠에서 깼다.

"데휴우. 꿀맛 같은 낮잠이었던 데스. 지금쯤이면 주인님이 올 게 분명한 데스."

첫날에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첫날에는 자를 잃은 슬픔과 인간이 혹시 학대파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등등이 피로로 쌓여서 긴 잠을 잔 탓이다.
지금은 긴장이 사라져서 평소처럼 짧게 자고 일어났다. 

"데힉!? 시간씨가 저것 밖에 안 지난 데스?"

친실장의 눈에는 벽걸이 시계가 보였다.
시간의 개념은 없지만 주인이 7시 위치에 표시를 달아놨고 시계 바늘이 거기에 닿을 즈음에 온다고 일러서 이제 대충은 볼 줄 안다.
그러나 벽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킬 뿐이었다. 

"어째서인 데스! 어째서 시간씨가 가지 않는 데스! 이건 이상한 데샷!"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계속 시계만 바라보며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는 사람과 바쁘게 일하는 사람, 정신없이 즐겁게 놀고 있는 사람의 시간이 각각 다르듯이 말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친실장은 그야말로 시간의 감옥에 갇혀버렸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난다.

"데이..."

그나마도 큰 소리조차 낼 수가 없다.
딱히 요구하는 게 없는 주인이지만 자신이 없는 동안 절대로 큰 소리를 내지 말라고 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자기가 자들에게 했던 말과 같았다.

'자들은 잘 듣는 데스. 마마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절대로 큰 소리를 내면 안 되는 데스. 소리를 듣고 야옹씨나 멍멍씨가 오는 데스. 혹은 학대파가 찾아올 수도 있는 데스. 그러니 절대로 소리내지 마는 데스.'

그 약속을 지키지 못 해서 가정이 파탄났었다.
그런 와중에 자기가 큰 소리를 내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우스워진다.

세 시간이 지나고 네 시간이 지난다.
그리고 다섯 시간이 지난다.

"데이..."

노래조차 부를 수 없기에 친실장은 뭔가 기이하고 짧은 울음소리만 작게 낼 뿐이었다. 
눈으로는 벽 시계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였다.
저 굵은 초침이 어서 7시에 닿기를 기도하며. 

영겁의 시간이 지나 주인이 집에 왔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자 시체처럼 멍하니 있던 친실장은 곧장 수조 벽을 토닥였다.

"주인님 데스! 드디어 오신 데스! 오로롱! 보고 싶었던 데스!"
"집 잘 지키고 있었지?"
"그런 데스! 와타시 큰 소리도 내지 않고 얌전히 있었던 데스!"

아직은 사육 초기인지라 분충성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당한 요구 사항도 말하지 않은 건 친실장의 실수였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
시간을 때울 것이 필요하다고 말을 꺼냈어야 했다. 

"주인님? 공씨는 어디 있는 데스요?"
"아, 공? 깜빡 했다. 미안해."
"아, 아닌 데스! 괜찮은 데스! 공은 어린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인 데스!"

하지만 다음 날, 친실장은 공이라도 있었어야 했다고 후회를 했다. 
그 날도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 보낸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
주인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고무 공을 사다주었다. 

친실장은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수조 벽에 공을 튀기며 놀았다.
하지만 그 재미는 채 한 시간을 가지 않았다.
원래 공놀이는 자실장들이나 하는 것이다. 
성체가 공놀이 하는 건 다 큰 성인이 소꿉놀이를 하는 것과 같다.
실장석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데우우..."

어김없이 주인을 기다리던 친실장은 문득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위석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더위나 추위, 배고픔, 고통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지루함 때문에 생긴 위석 통증이다.
심심함이 임계점을 넘은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 느낀 건지 결국 친실장은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데샤아앗! 이건 아닌 데스! 언제까지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지내야 하는 데스! 집 지키는 건 너무 지루한 데샷! 똥 주인은 어서 와서 와타시와 놀아주는 데스아! 데스 데스!"

결국 그 날 다른 집에서 민원이 들어 왔고, 친실장은 주인에게 혼을 나야 했다.

"내가 말했잖아. 내가 밖에 나가는 건 먹이를 구하러 가는 거라고. 먹이 구하지 말고 너랑 계속 있을까? 그러다가 배고프면 딴소리 할 거잖아. 사육실장이 되었으면 집을 잘 지켜야지. 큰 소리도 내면 안 돼."
"데스우우! 하지만 심심한 데스! 혼자서는 너무 힘든 데스!"
"그럼 어떻게 해. 저번에 공 사다줬잖아?"
"공놀이는 자실장들이나 하는 거인 데스앗! 그런 걸로는 턱없이 부족한 데샷! 수조 밖에서 살고 싶은 데스!"

"실장석들은 운치 흘리잖아. 안 돼."

"그건 주인님이 닦아주면 되는 데샤앗! 와타시도 자들이 운치를 흘리면 핥아서 치운 데스! 그런 데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분충화가 되었다고 지레 짐작을 해버린 것이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을 못 하고 더 원하게 되어버렸다고 판단을 했다. 

"그럼 자를 갖게 해주는 데스! 사랑스러운 자들이 있다면 심심하지 않은 데스!"

남자의 오해에 쐐기를 박은 것이 자를 갖고 싶다는 발언이었다. 
친실장은 정말로 열 몇 시간을 홀로 지내는 게 너무 외롭고, 그렇다고 딱히 놀 것도 없으니 한 요구였지만...
자를 가지고 싶다는 건 분충의 뻔한 래퍼토리 중 하나였기에 오해를 사버렸다. 

"이거 완전 분충 됐네."
"와타시는 분충이 아닌 데스! 그저 놀아주길 바라는 데스읏! 이럴 거면 왜 기르는 데스! 차라리 버려주는 데스! 다시 들에 가는 데스웃! 와타시의 자유를 쟁취하는 데샤앗!"

결국 남자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사육실장을 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행해지는 시술이 있다.
 
그건 바로 성대 제거 수술.
수술이라고 말만 거창하지 사실 별 건 없다.
불에 달군 바늘로 목을 찌르면 된다.

실장석의 살과 피부는 불에 그을리면 재생을 안 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시술이다.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이타와 바늘을 쓰면 된다.
주인은 친실장에게 몰래 수면 가스를 뿌린 뒤에 불에 달군 바늘로 목을 찔렀다. 

주인의 어설프게 착한 점이 친실장에게는 비극으로 작용했다. 
차라리 그냥 버렸으면 자유라도 얻었을 텐데.

"데훗... 데훗..."

그 날도 친실장은 비좁은 수조 안에서 멍하니 있었다.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약간의 숨소리, 속삭이는 정도의 소리 밖에 내지 못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데스! 어째서인 데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는 데스! 태교를 할 수 없는 데스!' 

소리 또한 지를 수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절망에 차서 수조벽을 때리는 거지만.
목으로 소리를 낼 때보다는 작아서 민원을 부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친실장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의 감옥에 갇혀서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곳은 지옥인 데스! 제발 꺼내주는 데스! 싫은 데스! 이제 싫은 데스으! 지겨운 데스! 심심한 데스! 데샤아악!'

그것도 실장석의 최대 수명인 5년을 거의 다 채워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jisr | 작성시간 22.05.20 실생이란… 잘 봤습니다
  • 작성자꿈나라꽃동산 | 작성시간 22.06.17 아리가또 데수웅
  • 작성자Zergling01 | 작성시간 22.07.07 데에에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