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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안병(黒眼病)

작성자코로리캅카스룰렛|작성시간22.07.16|조회수807 목록 댓글 2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

 

한 들실장의 비명이 공원에 울려퍼진다. 약육강식의 세계인 공원에서 이는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위이다. 아니나다를까, 한 실장무리가 들실장에게 다가온다.

 

"데프픗, 멍청한 똥분충이 자길 먹어달라고 우릴 부르는데스웅~"

 

"팔하나만 남기고 달마로 만드는 데스~ 운치굴의 노예로 삼아주는데스~"

 

"먹이가 부족했는데 잘된데스. 행운이 찾아온데스~"

 

곧 들실장에게 다가온 실장무리. 하지만 들실장의 모습을 본 실장무리는 온몸을 떨기 시작한다.

 

"데…데데데…데샤아아아아아!"

 

"도망치는데샤아아아! 빨리 벗어나는데샤아아아!"

 

"위험한데스! 저주받는데샤아아아아!"

 

곧이어 비명을 지르며 죽어라 도망치는 실장무리. 마지막 녀석의 '저주받는다'는 소리에 주변의 실장석들도 도망치기 시작한다.

 

"오지마는데스! 이쪽으로 오지마는데샤아아아!"

 

"가까이 가지 마는데스! 어서 도망치는데샤아아!"

 

"자들은 마마를 따라오는데스! 저쪽을 보면 안되는데스!"

 

이윽고 그 실장석 주위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주위 풀숲의 인기척또한 남지 않았다. 왜 다른 실장석들은 이 들실장을 이렇게 두려워하는것일까.

 

"어째서인데스우…어째서 와타시가 저주받은데스우…오로롱…이건 꿈인데스…너무 슬픈꿈인데스…"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울부짖는 들실장. 평범한 들실장과 다를바 없는 모습이지만 단 하나 다른점이 있었다. 바로 눈동자가 적녹의 오드아이가 아닌, 양쪽 모두 검은색의 눈동자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들실장은 병에 걸린것이다. 그 병의 이름은 바로 '흑안병(黒眼病)'. 지구상의 모든 생물중 유일하게 실장석만 걸리는 병으로, 이 병에 걸린 실장석은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변색되며 그들이 흘리는 눈물까지 검게 변하게 된다. 이는 눈의 변색에 따라 임신과 출산이 결정되는 실장석에게는 '영구적 임신불가'라는 청천벽력같은 일인것이다.

 

또한 임신중에 이 병에 걸린 실장석들은 단 하나의 예외없이 출산시 새끼들이 모조리 죽은채로 나오게 된다. 열심히 태교를 해 낳은 새끼들이 모조리 죽어서 태어나고, 자신의 눈동자가 검게 변한 사실을 확인한 순간 대부분의 실장석들은 정신이 망가질 정도의 충격을 받지만, 여기서 또 다른 증상이 드러난다.

 

바로 이 병에 걸린 실장석들은 행복회로가 돌아가지 않는다는것. 한계 이상의 고통을 받는 실장석들은 생존본능으로 인해 위석에서 행복회로를 가동시키는데, 이 병에 걸린 순간 아무리 처절하게 고통을 받아도, 행복회로의 작동이 매우 활발한 분충들도 행복회로가 작동되지 않는다.

 

다시말해 그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회피할 수단 없이 온전히 실감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실장석 본인이 삶을 포기해 위석이 깨지는것을 바라더라도 위석이 반응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충격을 가하지 않는 이상 위석이 깨지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죽고싶어도 죽을 수 없는 지옥같은 심적고통이 이어진다.

 

이 병에 걸린 실장석을 해부한 결과, 위석에 까만 반점들이 생겨있었다. 이것과 행복회로가 연관성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위석에 영향을 끼칠만큼 치명적인 병인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병의 무서운 점은 바로 전염이 된다는것. 한마리의 실장석이 발병된 순간 매우 빠른 속도로 다른 실장석들까지 모조리 전염이 된다. 실장석들은 병이나 바이러스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그저 저주받았다고만 인지하기 때문에 방역같은 것도 모른채 광범위하게 전염되는것이다.

 

실제로 실장석들 역시 동족이 죽을때 눈동자가 검게 변색되고 검은눈물을 흘리며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태로도 살아서 움직이며 자신들까지 감염시키는 숙주는 말 그대로 죽어서도 움직이는 저주받은 존재일것이다.

 

이 병의 원인은 밝혀진바가 없다. 카오스실장석이 죽기 직전 퍼뜨린 저주라는 설과, 환경오염설, 실장석의 진화과정서 나타나는 일종의 부작용이라는 설 등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하지만, 명확하게 원인이 나오진 않았다. 다만 다행인 점은 백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육실장들은 예방접종을 통해 발병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발병된 상황에서는 손을 쓸 수가 없으므로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즉각 구제를 할 수밖에 없다.

 

"오로롱…와타시는 이제 살 수 없는데스…돌씨는 파킨해주는데스…누구든 좋은데스…와타시를 죽여주는데스우…"

 

이렇게 또 한마리의 감염석이 생겼다. 새끼를 낳을 수도 없고, 다른 실장석들에게 저주받은 존재로 취급당해 가까이 오는 이가 없고 스스로 죽음을 바랄수도 없는 상태. 머리가 좋은 실장석들은 인간에게 죽음을 요청하지만, 이 또한 일부일 뿐, 대부분의 경우엔 그저 앉아 울다 굶어 죽을 뿐이다.

 

오늘도 감염된 실장석의 울음소리가 적막하게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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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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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펑크 | 작성시간 22.07.25 더이상 자식이 생기지 않는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이 생각나네요...
  • 답댓글 작성자코로리캅카스룰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7.25 사실 제목은 흑사병에서 따온거지만 그 영화는 이름만 들어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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