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너무 졸리고 배고픈 테..."
"쉿! 조용히 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 데스."
응석조차 받아주지 않는 어미에, 두건 오른 귀가 떨어져 나간 차녀가 입을 삐죽댔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맞는 데스. 다 나온 데스."
그런 차녀의 심술은 생각할 거리도 되지 않은 듯, 친실장이 무심히 속삭였다.
자들의 수를 몇 번이고 세어 본 친실장은 이제 마지막으로 집을 돌아보았다.
막 모든 이삿짐이 담긴 비닐을 가지고 나온 참이었다.
친실장은 반쯤은 졸려 내려온 눈꺼풀과 반쯤은 두려워 반짝이는 자들의 눈을 하나씩 맞추었다. 하나같이 굶어서 노랗게 부황이 올라오기 시작한 자실장들이었다.
"오마에라들은 마마가 반드시 낙원으로 데리고 가는 데스... 모두 무사히..."
굳은 다짐을 한 친실장은 자들을 바라보면서도 엄지와 우지를 깨우지 않았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좌절감을 느꼈다.
"마마, 정말 엄지는 안데리고 가는 테치?"
장녀가 속삭였다.
"...나중에 데리러 오는 데스."
"...테?"
"마마, 그럼 우지차는...?"
"..."
"...테에"
"...이제 가야 하는 데스."
여정의 시작은 서둘러 자들의 등을 떠미는 것으로 시작했다.
엄지는 그때도 다 스러져 가는 상자에 우지와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친실장은 끝내 한 번 더 상자를 돌아보았다.
바쁜 걸음으로 자들의 등을 떠미는 친실장은 그들이 뒤를 돌아보지 않기를 바랐다.
끝 모르고 흐르는 눈물의 이유를 설명하기에 곤란했기 때문이다.
"...구더기는 마지막 선물인 데스. 미안한 데스"
어차피 닿지 않을 사과가 조용히 흩어졌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어미로서 살려 보낼 자와 남겨 죽을 자를 나누어야 하는 원통함은 어째서 져야 했을까.
끔찍한 부조리함이 친실장의 위석을 몹시도 할퀴어 대는 듯했다.
깨질 듯이 가슴을 아리는 위석은 묘한 비취색 광을 흘리었다.
그 주인이 몇 번이고 되물었기 때문이리라.
"어찌 된 영문으로 모두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피눈물을 흘리며 치를 떠는 주인을 위하여 위석은 어젯밤의 기억부터 되새겨주었다.
...
...
...
빗물이 똑똑 떨어지는 골판지 안에서도 작은 생명들이, 한 가족이 살아갔다.
골판지 사이사이 낀 곰팡이와 푹 삭은 종이의 악취가 좁아터진 집을 더욱 볼품없어지도록 하였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집으로서의 본분을 다해 주었다.
"코츙... 코츙..."
"테츄후... 테츄후..."
"레츙... 레츙..."
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자세로 흐트러져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는 친실장만이 홀로 깨어 앉아 자들을 내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쩔 수 없는 데스"
친실장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녀의 양 뺨에서는 뜨거운 적녹 눈물이 두 줄의 궤적을 그리며 미끄러졌다.
"다 닝겐타치 잘못인 데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은 데스까?"
무력감과 공포의 기억은 친실장도. 그녀의 위석도 바들바들 떨게 하였다.
돌이켜보니, 열 밤도 더 지난 일이었다.
맛난 푸드를 뿌리고 튼튼한 새집을 바꿔 준 애호파들은 간다는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이 사라진 지 며칠 만에 공원 실장 사회는 붕괴 직전에 다다랐다.
절도와 강도, 폭행과 납치가 빈번했다.
일곱 밤이 지나서는 공연히 서로를 죽이고 머리카락을 뽑아 독라로 만들기를 서슴치 않았다. 질서는 파괴되었고 마침내 지나가는 인간에게도 투분을 하는 분충들이 성행했다.
누구도 그들을 막지 않았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암묵의 규칙도 사라졌다.
그런데도, 실장석들은 애호파들이 왔던 시간이면 그들이 오던 장소에 우르르 모여 고개를 빼들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한 마음으로 애호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해가 서서히 서편으로 떨어지면 그들은 허탈함과 분에 못 이겨 어김없이 패싸움을 일삼았다. 날이 어둑해져서야 끝나는 패싸움 후에는, 찢겨진 시체와 분비물이 광장을 얇게 펴 바른듯 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원의 시설들도 분노의 투분에 초록 빛 얼룩으로 덮여갔다. 조용한 교외 근린공원에서 캠핑과 저녁 조깅을 즐기던 시민들은 기습적이고 집단적인 투분에 낭패를 겪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장석들은 마땅히 자신들에게 제공해야 할 의식주의 의무를 그날도 인간들이 팽개쳤다는 사실이 납득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다음 날의 오전이 되면, 실장석들은 애호파들이 오던 광장에 우르르 모여 다시 바보같이 고개만 빼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유난히 구름 한 점 없는 오전이었다.
그들이 와야 할 시간,
그들이 왔을 자리로 드디어 한 무리의 인간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실장석들로서는 전혀 모르는 인간들이었다.
푸드 봉투도 별사탕 봉지도, 하물며 박스 묶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직 커다란 비닐봉지와 쇠 막대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 닝겐 타치만 아니었어도... 미안한 데스. 마마가 힘이 없어서 미안한 데스..."
다시 발작하는 간헐적 가슴 통증이 친실장의 회상을 잠시 끊어버렸다.
친실장은 터지려는 흐느낌을 간신히 참아내며 다시 한번 자식들을 둘러보았다.
특히 몸을 새우처럼 말고 옅게 코를 고는 엄지를 비통하게 내려보았다.
...
...
...
그날,
매일 같이 애호파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실장석들은 위화감을 느꼈다.
검은 옷과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도열한 인간들은 정말 낯선 존재였다.
신속한 군무로 대열을 이루며 진을 친 그들의 행동도 실장석들의 경계심을 조장했다
그럼에도 인간들이 왔다는 소문에 점점 많은 실장석들이 그들로부터 거리를 두고서라도 모이고 있었다.
저들도 애호파처럼 무언가 주지는 않을지 하는 기대심과 종족 특유의 강한 호기심이 발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뛰어넘는 위화감과 위압감에 실장석 그 누구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뭐인 데스... 애호파가 맞기는 한 데스까."
"이 시간에 여기 오는 닝겐은 애호파밖에 없는 데스! 조금 더 기다려 보는 데스!"
"혼또 데스... 우마우마가 가득 담겼을 봉투도 잔뜩인 데스!"
"테에... 그럼 왜 우마우마 안 주는 테츄... 며칠이나 굶은 테치..."
몇 시간 전까지만 하여도 서로 치고 찌르고 머리를 뽑던 실장석들이 정답게 추론을 이어가며 웅성거렸다.
"...이게 다 뭐인 데스까?"
조금 늦게 공원에 도착한 친실장은 이러한 낯선 광경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녀 또한 오늘에라도 애호파가 찾아와 푸드를 주지는 않을까 나와 본 참이었다.
며칠 간의 대혼란을 겨우 버텨 낸 친실장 일가는 이제 일용할 양식이 무척이나 필요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처음 보는 인간들의 복장과 대열에 큰 위화감을 느꼈다.
차마 다가가 푸드를 구걸하지 못하는 무언가의 예감이 그녀를 짓누르는 듯했다.
"오바상, 저 닝겐 타치는 뭐인 데스까, 무슨 일이 일어난..."
"귀찮게 굴지마는 데샤, 어디에 손대는 데스?"
그녀가 동족 무리에 끼어 상황을 물어보았지만, 비아냥과 짜증스러운 대꾸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 즘이었다.
바글대는 실장 무리를 뚫고 어느 실장 일가가 당당히 인간들에게 다가섰다.
"뭐인 데스! 왜 이리 늦은 데샤! 똥노예들이 군기가 빠져버린 데스?"
"괘씸한 테치! 고귀한 와따치 타치가 쫄쫄 굶었던 테치! 감히 노예가 며칠이나 보이지 않았던 테치?"
"테에? 와따치에게 세레브하게 보이려고 까만 옷을 입은 테치? 그래서 이렇게나 늦은 테치! 음흉한 테치! 발랑 까진 테챠!"
"정말 그런 데스?! 감히 와따시 타치와 격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데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예타치인 데스!"
겁도 없이 인간들에게 따지며 다가서는 모습은 모든 실장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지능과 심성 수준이 익히 공원 사회에서 잘 알려진 분충 일가였다.
키가 작은 친실장은 무리의 맨 뒷줄에서 그 광경이 잘 보이지 않아 또 답답해하였다.
"이런 분충 닝겐 타치를 노예라고 거둬준 우리가 불쌍한 데스. 마땅한 체벌이 필요한 데샤!"
"맞는 테치! 이거나 쳐먹고 늦은 만큼 콘페이토를 바쳐 사죄하는 테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가의 자실장이 자신의 팬티를 뒤적거리더니 운치를 한 웅큼 펐다.
그러고는 무척이나 노련한 폼으로 대열 맨 앞줄 인간에게 투분하였다.
깔끔하게 접혀 올린 검정 청바지 밑단에 운치가 명중하자 인간이 움찔하였다.
"테프프프, 쫄아버린 테치? 웃기는 노예 테치"
"마...마마... 진미를 바치던 닝겐 타치랑은 좀 다른 것 같은 레치..."
말없이 올라가는 인간의 빠루에 핀치의 예감을 느낀 엄지가 말했다.
"이래서 엄지는 안되는 데스. 세레브한 장녀가 설명하는 데스."
"멍청한 엄지 테치. 공원에 오는 닝겐 타치는 젠부 와따치 타치를 모시는 노예라고 마마가 몇 번이나...테뱟!"
"테뵷!"
"데갹!"
"레, 레치...? 치벳!"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그날 가장 먼저 구제(驅除)된 일가가 탄생했다.
"뭐... 뭐인 데샤! 닝겐 노예들이 미친 데스?!"
"애호파가 아니었던 테치!!"
"학대파인 데스! 자들은 마마를 위해 시간을 끄는 데샤!"
"학대파인 테치? 테갸아!"
"오네챠! 놓고 가면 다메 레치!"
한 일가의 실각은 수 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꼴을 목도한 실장석들의 집단 패닉을 유도하는데에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수많은 실장석들이 한꺼번에 줄행랑을 치려했고, 광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마마, 마마! 어딨는 테치! 테엥, 테에엥!"
"3녀, 3녀! 어디인 데샤아!"
"데갸아아! 차녀?! 어떻게 된 데샤아, 오로로롱!"
큰 실장이 작은 실장을 밟았고
작은 실장이 더 작은 실장을 밟았다.
손을 놓친 자가 친을 찾아 비명을 질렀다.
놓친 자를 찾는 어미도 비명을 질렀다.
애써 자를 찾고도, 어미는 이미 짓밟혀 경단이 된 자의 시체 앞에서 절규했다.
공포와 슬픔의 비명이 절묘한 합주를 이루었다.
"데...데에... 뭐인 데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인 데스..."
그저 일용할 양식을 받을 수 있을까 나와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친실장은 우르르 도망가는 동족들에 놀라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고는 멍청하게 웅크려 있어야만 했다.
그런 친실장의 몸을 툭툭 치며 수많은 실장석들이 사방으로 달려 흩어졌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산처럼 미동 없이 굳건하게 서 있었다.
저마다 몇 마디 대화를 하거나 이따끔 쇠 빠루만 까딱거릴 뿐이다.
"...3조, 멀었는지?"
"3조, 3조라고 알리며, 현재 공원 북쪽 길 거의 폐쇄 완료하였다고 알림"
"그럼 우리 조 작업 먼저 시작해도 되는지?"
"어... 우리 쪽 조장님이 조금만 더 기다리라 하신다고 알림"
"...다시 타격조라고 알리며, 조금 서두르기 바란다고 알림"
"야, 나 3조 조장인데 어떤 새끼가 자꾸 먼저 시작한다고 지랄이야, 무조건 정각부터 시작인 거 몰라?"
"어... 2조라고 알리며, 이쪽도 공원 동문 폐쇄가 미흡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알림"
"아니... 시발... 하아... 다 모여 있었는데, 꼰대들 진짜..."
가장 키가 큰 인간이 대열에서 홀로 서성이며 무전기를 쥐고 분노했다.
천운으로 동족에게 밟히지 않은 친실장이 엉거주춤 일어서자, 얕게 일던 흙먼지 넘어 인간들이 일렁였다.
방금의 참살도, 내달리는 동족도, 웬 네모에 대고 말을 거는 인간도...
친실장은 어느 것 하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하나만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도...도망가는 데스. 뭔진 몰라도 단단히 마라된 데스!"
거의 텅 빈 광장에서, 친실장과 몇몇 부상 실장만이 마지막으로 그 광장을 빠져나갔다.
...
숨을 헐떡이며 집에 도착한 친실장은 약속된 노크도 없이 문을 발칵 열어젖혔다.
허술한 나뭇가지 잠금장치가 젖혀 열린 문에 박살이 났다.
이 야단에도 낮잠을 자던 자들이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다들 며칠을 거진 굶어 왔기에 차라리 잠을 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대파인 데스! 학대파가 쳐들어온 데스! 다들 일어나는 데샤아!!"
목청 터지도록 외치고 나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떠한 준비도, 대처도 없이, 무언가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도 못 한 채 혼비백산한 자들과 뛰쳐나갔던 것만 어렴풋 기억날 뿐이었다.
그래도 마침 숨어있기 적당한 피난처 정도는 알고 있던 것이 일가의 운명을 살리었다.
친실장은 본능이 이끄는대로, 일가를 이끌고 공원 산책로의 경계를 이루는 화단으로 달려갔다.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일가는 화단의 연석을 넘어 관목의 수풀 속을 헤쳐나갔다.
친실장이 조금 관목을 헤쳐나가자 하수구 덮개가 빼곡히 덮인, 화단 밖으로부터 이어지는 하수 도랑이 나타났다.
이미 화단 관목에 파묻혀 사람의 손길이 닿기에는 너무나도 불편한 곳이었다. 때문에, 관리가 팽개쳐진지 오래된듯한 도랑 중간 즈음에는 하수구 덮개 하나가 어긋나 있었다.
오직 친실장만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어긋난 덮개로 인해 비좁은 틈이 있었는데, 과연 성체 실장이 겨우 몸을 우겨 들어갈 크기였다.
살아있는 존재 중, 그녀 이외 누구도 도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이곳에 있단 것은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독립할 즈음, 그녀의 어미가 알려준 가문의 비밀이었으니까.
"여기 들어가서 숨는 데스!"
"더럽고 냄새 나는 테챠!"
"테에엥... 테엥... 무서운테치이... 어두운 테치"
"안 들어가면 다 죽는 데스! 미친 닝겐 타치가 다 죽이는 데스!"
"테갸아!"
자들의 투정도 받을 시간이 없었다.
친실장은 자들을 잡히는 대로 밀어 구멍 안으로 던져 넣었다.
마침 뛰어올 때부터 들려 오던 동족들의 절규가 이제는 공원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지척에서도 인간들의 고함과 목숨을 구걸하는 동족들의 마지막 울음이 들렸다.
"데데데뎃, 닝겐상! 한 번만 살려주는 데스! 와따시 대신 여기 자들을...!"
"똥마마!"
대혼란 속에서 엄지까지 잊지 않고 구멍에 던져 넣은 친실장이 이제 자기 다리를 틈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양 다리가 들어가고는 허리가 꽉 끼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무리였던 친실장이 아래를 향해 속닥거렸다.
"너무 좁은 데스...! 자들은 마마를 끌어당겨 보는 데스!"
"테에엥... 좁은 테치..."
"테에엥 테에엥... 축축한 테치, 냄새 나는 테치, 마마... 테엥"
"안 보이는 레츄! 오네챠아... 레치에엥! 어두워서 안 보이는 레치엥!"
패닉에 빠진 자들에게 친실장의 속삭임은 닿지 못했다.
당황한 친실장은 몇 번이나 허공에서 몸을 바둥거렸다.
"데뎃... 마라된 데스까, 빨리 못 들어가면...! 다 죽는 데스...!"
조바심을 낼수록 더더욱 허리가 끼어 들어갔다.
어찌나 바둥댔는지 양발의 실장화가 벗겨져 도랑 바닥으로 투둑 떨어졌다.
"닝겐상! 자만은 살려주... 데복!"
화단 바로 옆에서 들린 비명에 친실장의 얼굴이 더더욱 사색이 되었다.
분명 잘 아는 이웃의 목소리였다.
"마마! 제발, 제발... 마마 도와주는 데스!"
죽은 지 오래된 그녀의 어미를 부르며 친실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한참을 바둥댄 덕분일까, 며칠간 부실한 식사를 하였던 덕분일까.
마침내 그녀의 허리가 틈 사이를 쑤욱 통과했다. 그러고는 온 몸뚱어리가 도랑 속으로 훌렁 떨어졌다.
온몸에 멍과 찰과상이었다.
"데슷, 독라 노예가 될 뻔한 데스. 옷이 다 찢어지고 헝클어진 데스..."
"테에엥... 마마, 마마, 테에엥..."
그녀가 도랑에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금속 타격음과 함께 일가실각의 절규가 들려왔다. 아마 인근에서 마을을 이루던 상자촌과 그 피난실장들이 몰살당하는 모양이었다.
"마마! 버리지마는 테치! 버리지마는 테치!"
"따라오지마는 데스우! 저리로 가는 데샤! 마마 대신 닝겐을 유인하..."
'깡!'
"....마마?"
"레후~, 마마 머리씨만 바람씨를 타고 휑 날아가 버린 레후~?"
...
...
"제발 자들만은 살려주는 데스! 오로롱!"
"마마를 살려주는 테치! 마마를 살려주는 테치이!"
"살려주는레치잉...! 와따치타치 아무 짓도 안한 레치! 레치엥레치엥..."
"누,구,먼,저,죽,일,까,요,알,아,맞,춰,보,세,요,딩,동,댕,동,커,피,잔"
"데갹!"
"마마!!"
"햣하!"
"치벳!"
"테벳!"
...
- 지옥.
완벽한 실장 지옥이었다.
절규가 더 큰 절규를 낳아 공원의 단말마는 조금의 끊김도 없었다. 흐물대는 살덩이가 빠루에 이겨지니 그 소리는 시계 초침같은 규칙성마저 있어 보였다.
... ... ...
어느새 무자비한 추적과 살육의 비극이 몇 시간이나 이어갔다. 이제 격자 틀 하수구 덮개 사이로 비추던 햇살이 많이 비스듬해지자, 그 즈음에서야 끔찍한 비명과 신음 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러나 이제 끝났겠지, 생각할 즘에는 어김없이 실장 종특의 하이톤 비명이 공원을 울렸다.
"테챠아아...!"
"데갸아악...!"
"또 들린 테치! 테에엥..."
경기를 일으키며 귀를 막던 삼녀가 울부짖었다.
"와타치도 저렇게 되는 레치? 다 파킨하는 레치? 레치에에엥..."
피난 내내 줄곧 어미에게 안겨있던 엄지도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쉬이잇... 걱정마는데스. 어둑어둑씨가 오면 나쁜 닝겐타치는 다 집에 가는 데스."
"정말인 테치? 이젠 여기 무서운 테치... 테에엥..."
"와따치, 집에 가고 싶은 테치... 테에엥....테에엥..."
"닝겐 타치는 밤씨를 싫어하는 데스... 어둑씨가 오면 분명 안전할 데스.... 그때 집에 가자는 데스."
과연 일가가 고대하던 컴컴한 밤이 금방에 찾아왔다. 그리고는 축축하게 습기 찬 도랑 바닥에도 서늘한 냉기가 깔리었다. 하수구 악취 섞인 불쾌한 한기가 불과 초가을임에도 일가의 이를 딱딱 떨게 했다.
그럼에도 친실장은 조금만 더 버티면 이 악몽이 끝나리라고 믿었다. 밤이 되면 인간들이 공원에서 사라진다. 낮에 해가 뜨고 밤에 달이 뜨듯 당연한 공원의 이치였다. 언제나 줄곧 그래왔다.
그러니 그들이 모두 돌아간다면 자신들도 이 냄새나고 누추한 곳에서 빠져나와 집에 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는... 일상은 다시 돌아오리라...
그러나 난생처음 듣는 괴이한 소음이 그녀의 환상을 찢어발겼다.
"삐이이이이익! 삐이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야간 공원 이곳저곳을 뒤흔들었다.
그러고는 어김 없이...
"여기 숨어 있었네, 똥벌레들!"
"데뎃!!"
"마마!"
"테벳!"
"데갸아아아아!"
밤이 찾아오고 공원이 조용해지자, 숨어있던 실장들이 어둠을 틈타 슬금슬금 은신처에서 기어나왔다. 그러고는 예외 없이 하나둘 발각되어 구제되고 말았다.
일가가 흩어져 도주한들, 인간들은 호루라기를 불어가며 마지막 한 놈까지 좇아갔다. 쫓겨서 살아남은 실장석은 그날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기어이 실각된 일가는 사이좋게 봉투에 쑤셔 담겼다.
이제 공원이 다시 새로운 유형의 사냥과 비명으로 시끄러워졌다.
"삐이이이이익!"
"햣하!"
"마, 머하노! 저저저 똥벌레 새끼 도망 안 가나, 좇아라!"
"이번에도 2조보다 대가리 수 안 나와 봐! 보너스 날리고 다 내 빠루에 골 깨져서 뒈지는겨!"
실장들의 절규와 인간들의 포효가 서로를 잉태하는 법칙처럼 순환하니 곧 커다란 광기의 대류가 만들어졌다. 광기에는 광기, 광기만이 오직 공원의 밤 공기를 가득 채워갔다.
도랑 속의 일가는 다시 시작되는 살육의 광란에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벅찬 책임감과 보이지 않는 희망으로 친실장의 스트레스는 극에 몰려갔다. 차라리 이 더러운 하수 도랑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저 빨리 생을 끝마치는 것이 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품에 안겨 바들바들 떠는 자들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들으니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다시 그녀가 정신을 가다듬으려 하는 순간, 저벅거리는 인간의 발걸음이 순식간에 화단으로 다가왔다.
그녀도, 품에 안긴 자들도 모두 화들짝 놀라 몸을 튀었다.
"어, 여기에도 뭐 있는 거 아니야?"
"파스락!"
도랑 옆 수풀이 홱 젖혀지자, 관목 헤집는 굉음이 났다.
그러고는 햇살만큼 밝은 손전등 빛이 수풀 사이 공터를 유심히 훑었다.
"테흡...텝..."
"레흡...!"
"쉿... 쉿..."
일가는 입을 틀어막고 서로에게 꼭 붙었다.
친실장은 자신이 껴안은 자들의 가슴이 크게 부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손전등 불빛이 하수구 도랑을 천천히 쓱 훑었다.
불빛은 이제 일가가 있던 곳에 닿았다.
자들이 모두 입을 틀어막고는 친실장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친실장도 감전된 것 마냥 달달 떨어댔다.
전에 없던 핀치의 예감이 들기 때문이었다. 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차라리 자들은 내 손으로...
그러나 불빛은 다시 천천히 옆으로 옮겨갔다.
천만다행으로 일가는, 불빛이 오는 반대편 벽에 딱 붙어서 사각지대의 그림자 안에 있었던 것이다.
"에이, 없네."
"파스락, 파스락"
인간이 떠나며 다시 수풀이 걷히는 소리가 들렸다.
화단 옆 연석에서 불편한 자세로 수풀을 걷고 그 안을 살피자니 여간 귀찮았던 것이다.
자들은 인간이 떠나고도 친실장의 품에 꼭 껴안겨 있었다.
탈분을 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나 친실장은 탓할 수가 없었다.
"괜찮은 데스... 닝겐 간 데스... 소리도 안 내고 대견한 데스... 장한 데스..."
친실장이 이를 딱딱 떨어가며 말했다.
결국 친실장은 그날 밤이 가도록 자들을 끌어안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자를 달랠 수도, 무언가 먹일수도, 눈을 붙일 수도 없었다.
그 작은 몸뚱이로서 무엇도 할수 없었다.
그저 작은 요행을 바라며 벌벌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퍼런 새벽빛과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친실장도, 자들도 모두 진이 빠지고 몽롱해 있었다.
간간히 들리는 동족들의 단말마는 이제 그들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자들도 그저 마마의 품이나 치마폭에 껴서는 축 늘어져 있었다.
"집에 언제 가는 테치..."
"이제 가는 데스... 이제 가는 데스..."
"언제..."
"해씨 다 뜨면 가는 데스..."
그러나 해가 뜨고 나서도 간간히 비명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뒤처리하던 구제팀 수거조가 우연히 발견한 생존 실장을 처단하는 소리였다.
그때마다 친실장은 다시 자들을 꼭 끌어안고는 멍하니 반대 벽을 응시할 뿐이었다.
...
마지막 비명이 들리고 몇 시간이 지나서였다.
오후가 되어서 일가는 조심스레 지상으로 올라왔다.
친실장은 신중을 가해 수풀 틈을 살짝 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은 닝겐이 없는 데스... 다 집에 간 데스..."
그녀는 조심스레 화단을 나왔다.
구제 직후의 교외 공원은 시민들이 거의 찾지 않는 탓에 텅 비어 있었다. 어제의 아수라장과는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고요였다.
지천에 널려 있을 줄 알았던 동족의 시체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흐릿한 핏자국이나 으깨어진 살점 덩어리가 거리와 들판 곳곳에 깔려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친실장은 방심하지 않고 최대한 응달과 장애물에 몸을 숨겨가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고 나서는 모두가 잠깐 말을 잊고 말았다.
"마마, 집이 없어진 테치"
한참을 말 없이 바라보던 장녀가 말했다.
"...마마도 보고 있는 데스"
친실장이 무미건조한 투로 대답했다.
집이 없어졌다.
마을에서 가장 두껍고 튼튼하던 하얀 라면 집은, 이제 그 자국만 남기고 사라졌다. 마을을 이루던 이웃집들도 그 흔적만 있을 뿐, 남김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마?"
다리에서 힘이 풀린 친실장이 털썩 주저앉았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장녀가 친실장을 부축했다.
...
...
...
여기까지 떠올리자, 친실장은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로 다시 눈물을 훔쳤다.
'똑... 똑...'
"안되는 데스... 비씨가 많이 내리지 않아야 하는 데스... 제발..."
마침 다시 내리는 비가 하우스 천장을 두드리자 그녀는 허름한 집의 천장을 올려보며 애간장을 태웠다.
그날 하루를 또 굶고 노숙한 일가는, 기적적으로 미처 수거되지 않은 골판지 상자를 찾아내었다.
피와 살점에 푹 젖어 다 썩고 찢겨진 상자였다. 그래서인지 잘 세워지지도 않는 최하품이었지만, 친실장은 이만한 거처라도 구한 것에 감사해하며 몇 번이고 시도하여 상자를 세워내었다.
이 집에 입주한 이래 서너 번은 마름모 꼴로 집이 무너졌지만, 친실장은 굴하지 않고 일가를 위해 꼿꼿히 다시 세워내었다.
그러나 어제부터 내린 비에 상자 천장이 더는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다.
친실장은 언제 당장 천장이 무너져 내릴까 애만 태웠다.
"...그래도 오늘까지인 데스. 이 집도. 이 공원도."
친실장은 집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다.
빈털터리가 된 일가의 소박한 전 재산이었지만, 그래봤자 궁상스레 모은 날벌레, 풀벌레 보존식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는 데스. 마마는 정한 데스... 그렇게 정한 데스..."
깔끔해진 공원에서 더는 쓰레기통을 뒤져도 먹을 것이 나오지 않았다.
좀처럼 시민들이 찾지 않으니 일용할 쓰레기도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화단을 뒤져 잡은 벌레로는 자들의 간식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실장석들이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연결된 음수대 호스는 뽑혀 있었다.
일가는 결국 고인 흙탕물을 마시며 갈증을 채워야 했다.
한때 푸드와 콘페이토, 맑은 수돗물을 먹으며 살아가던 이들에게는 고역스럽기 짝이 없는 나날이었다.
간혹 공원을 찾는 시민들도 일가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도리어 애호파가 없어진 이후로는 공공연히 그들를 위협하거나 매서운 눈으로 흘겨보았다.
푸드는 고사하고 밟혀 죽지 않은 것에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탁아조차 시도할 수 없었다.
"이 공원은 이제 틀린 데스... 떠나야 하는 데스... 와따시의 마마도 그랬던 데스."
친실장은 그녀의 어미를 떠올렸다. 살아 생전, 다른 공원에서 천신만고 끝에 이주에 성공했던 일대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언제나 이 공원이 낙원과도 같다며 운명에 감사하던 그녀의 어미가 떠오르자, 친실장 또한 결심을 굳혔다. 일가를 위해 이 공원을 떠나야만 한다. 그녀의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당장 새로운 낙원을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하지만 엄지는..."
잠깐 멎은 눈물이 다시금 주르륵 흘렀다.
친실장은 자신이 이렇게나 눈물이 많았던가 자조하면서도 다시금 엄지를 바라보았다.
"약한 엄지는 따라올 수 없는 데스. 마마가 정말 미안한 데스. 정말로..."
...
...
...
어느새 슬픔과 피로에 지친 눈꺼풀이 무거워지자, 친실장은 잠깐의 쪽잠에 들었다.
새벽동이 조금 트일 무렵에서야 친실장이 잠깐의 쪽잠에서 깨어났다.
그새 비가 멎어 있었다.
깨어난 친실장은 잠시 망설였다.
벌떡 일어나다가도 주저하여 도로 앉기를 반복했다.
결심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결심이 서고 나서는 더 이상의 지체도 없었다.
지체를 하다가는 이 결심을 물릴 지도 모를 자신의 나약함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를 하나씩 깨워 조용히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
...
...
어느새 하우스에는 엄지만 남아 코를 골았다.
친실장이 뒤를 돌아보자 엄지는 옆구리를 긁적이며 낙엽 이불을 끌어 올렸다.
열린 문틈으로 새벽 냉기가 들어찼기 때문이었다.
엄지가 설마 깨는 것이 아닌가 위석이 철렁 내려 앉았던 친실장의 우려와는 달리, 규칙적인 엄지의 코골이는 끊김도 없이 이어졌다.
"정말 잘 자는 데스... 귀엽게 잘 자는 데스..."
"레츄우웅... 레츄우웅..."
"구더기는... 작별 선물인 데스..."
어제저녁, 어느 운치 굴의 폐허에서 기적적으로 홀로 살아있던 저실장이었다. 친실장은 턱 없이 부족한 일가의 식량에도 보태지 않고 엄지를 위해 그것을 집에 남겨두었다.
어미로서의 마지막 양심이자 의리였다.
"원망하라는 데스... 그럴 수 있다면... 살아서 다시 보는 데스..."
마지막으로 집 안을 돌아본 친실장이 작게 속삭였다.
그렇게 상자 문이 닫혔다.
....
공원을 나가는 출구가 보이기까지, 친실장의 위석은 괴로운 기억을 곱씹고 또 곱씹어 대며 바들거려야만 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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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반영구콘페이토 작성시간 23.04.25 무심코 글을 눌렀다가 흡입력 있는 글에 너무너무 놀라버린데스..... 글쓴이상 이름을 보고 납득한데스
진짜로 세레브한 글인데슷
다음은 어딨는데샤 오로로로롱 -
작성자뭐아뭐 작성시간 23.04.26 간만에 좋은 스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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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람쥐챠 작성시간 23.04.27 미도리 다음작 없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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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실장권리증진본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5.08 앗... 개인적으로 망작이라고 생각해서 더 쓸 생각은 없었는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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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을버스였어 작성시간 23.05.29 참피물 전성기의 수준을 지닌 명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