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과의 첫만남은 어릴 적, 그러니까... 10살 쯤이었을 것이다. 30년도 전이구나. 집 근처 공터에서 흙장난을 하면서 땅을 파던 중에, 묘하게 생긴 통 하나를 발견했는데 동심에 푹 빠져 있던 그때의 나는 보물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땅을 깊게 파헤쳐 통을 꺼냈다. 기대하면서 뚜껑을 열어 발견한 것은 웬 실장석 한마리였다. 나는 통으로부터 훅-하고 올라오는 무시무시한 악취에, 통 속의 녀석은 갑자기 내리쬐는 밝은 빛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이 '두더지'과의 첫만남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두더지라는 이름이 참 잘어울리는 녀석이었다.
밝아진 주변에 혼란스러워 하던 것도 잠시, 두더지는 두번 정도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치켜들며 나를 향해 무어라 텟치-텟치 하며 짖어대기 시작했다. 시끄럽다 못해 사나워보이기까지 하는 그 꼴에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뚜껑을 다급히 닫은 뒤 다시 땅 속으로 그걸 밀어넣고 도망갔다. 집으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뛰어가는 내 뒤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지만, 그저 전력으로 뛰었다. 그 괴이한 순간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고, 며칠간 악몽에 시달리다 녀석의 존재를 깔끔하게 잊었다.
두더지와의 두번째 만남은 몇 년 후였다. 내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먼 지역으로 이사를 떠나기 전, 추억이 서린 동네를 마지막으로 돌아보던 중이었다. 나는 공터에서 흙장난을 치던 추억을 생각하며 땅에 손을 짚어보던 중에, 자연스럽게 두더지의 존재를 떠올려내었다. 과거의 나라면 두더지는 공포의 대상이었겠지만 고등학교 진학까지 앞두고 있던 나는 그저 호기심이 들 따름이었다.
녀석이 아직까지 있을까?
나는 근처 화단에 방치되어 있는 모종삽 하나를 가져와 과거에는 힘겹게 파냈던 땅을 손쉽게 파내었다. 아무것도 없던 곳만 파내며 허탕 치기를 5번 정도 반복하고 녀석은 역시 사라졌나보다 하고 아쉬워하며 포기하려던 찰나에, 마침내 나는 땅 속에서 눈에 익은 통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통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미리 코를 막은 채로 뚜껑에 손을 올리자,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감지한 통 내부의 무언가가 요란하게 떨기 시작했다.
두더지는 그대로 통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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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테치, 이상한테치이이!"
어린 자실장은 어둡고 비좁은 통 안에서 깨어났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집 안에서 상냥한 마마의 품에 안겨있었다.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떼를 쓰고 어리광을 부린 끝에 어미로부터 내일은 꼭 나들이를 나가겠다는 약속을 받고 행복에 겨워 잠들었는데 지금은 이 아무것도 없는 기이한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어둡고 비좁다. 믿음직한 오감을 가지지 못한 실장석에게 있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시야의 차단은 죽음에 이르는 수 많은 길을 열어젖혔다. 비좁은 공간이란 한 치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산만함이라는 개념의 정점을 차지한 녀석들에게는 그야말로 고역이다. 그저 겁 많고 호기심 많고 혈기왕성한 어린 개체들에게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의 환경이다.
그 아담한 체구로도 팔과 다리를 시원하게 뻗을 수 없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와 고개를 숙이지 않고서는 일어설 수 없다. 행동의 자유는 몇 번의 버둥거림 끝에 조각남이 확실해졌다. 통 안에서 괴롭게 버둥거리며 어떻게든 편한 자세를 취해보기 위해 노력하던 녀석은 관절의 뻐근함은 차치하고 문득 가슴에서 작열하는 통증이 느껴져 더듬거려보니, 가슴은 무언가에 의해 갈라져 절개되었고 얇은 끈으로 엉성하게 꿰매져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사라진듯 내부의 공간은 허전했다. '위석'이 사라졌다는 것을 녀석은 몰랐다. 단지 불길한 허전함만을 느꼈을뿐. 난데없이 생겨있는 상처를 의식하기 시작하니 고통은 참을 수 없을만큼 커져간다. 새끼실장에게 있어 고통에 대응하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다.
"테차아아아아, 아픈테치! 아픈테치! 마마 테에에에에엥-"
울었다, 넋놓고 최대한 소리높여 울었다. 녀석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개인적인 호기심을 제외한 일과 아둔한 지능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일은 어떠한 관심사도 아니었다. 시작된지 얼마 안된 삶 내내 의지하기만 하고 의존하기만 했던 새끼는 그저 울었다. 그럴 때면 항상 울음소리에 반응한 어미가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이 이상한 공간 밖 어딘가에 자신을 도와줄 어미가 있을 것이라 여기고는 목청껏 울었다. 녀석에게는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산뜻하게 무시하고 집 밖에서 뛰어놀다가 넘어져 이마가 깨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냥한 어미는 돌아와서 이마를 핥아주고 '들으면 고통이 가라앉는 신비한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름답고 좋은 추억이었다.
녀석은 기대했다. 울음소리를 듣고 영웅처럼 나타난 마마가 자신을 이 곳에서 꺼내주며 언제나 그렇듯 자신을 소중히 안고 마땅한 걱정을 하며 당연한 위로와 사랑을 베풀기를. 그렇기에 자제 따위는 없이 울더라도 중간중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은 결코 잊지 않았다.
...
5분쯤 울었을까, 반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새끼는 고개를 떨구며 테에에... 하고 나지막한 소리를 내었다. 가식스럽게도 도움의 손길이 없다는 것을 알자 상처의 고통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새끼에게 있어 자신이 직접 극복하기 어려운 일은 노력이나 고민의 가치가 없었다. 남이 도와주지 않는 일은 도와줄 때까지 밀어내고 방치할뿐. 녀석은 고개를 다시 든 뒤 주변을 살펴봤다.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고, 어둡고 비좁은 채 그대로였다. 그나마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라고는 이 비좁은 공간은 '나무'로 되어 있다는 것. 도대체 이 곳은 무엇이며, 대체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인가? 어린 새끼는 생각했다.
"여기는 어디인테치...? 코- 자기 전까지만 해도 마마와 있던테치... 마마는 어디로가버린테츄...?"
수십, 수백번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과정을 알지 못했다. 결과 맞이의 국면이 되서야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녀석의 머리는 혼란과 고통만이 자리하고 있다. 유추할 단서도, 추리할 지능도 없었다. 상황을 분석할만큼 지능을 가질 정도로 성장한 녀석도 아니었다. 자신이 이 상황을 극복할 어떤 힘도 없음을 점점 확신하게 되자, 녀석은 공포와 혼란에 다시 구슬피 울부짖었다. 이번에는 울면서 주변을 살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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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흘렀고, 통 안의 새끼는 미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외롭다. 무릎과 팔이, 목이 아팠다. 목마르다. 배고프다.
처음 이틀간은 새끼는 어미의 등장을 고대하며 조용히 통 안에 앉아있었다.
"누가, 누가 좀 와타치를 구해라 테치이이이! "
이틀이 지나자 녀석은 더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크게 울었다. 전력을 다해서 울어댔다. 제발 누군가 자신의 울음소리를 듣고 도우라는 듯이. 정말 질리지도 않고 오랫동안 울어댄 녀석은 목이 쉬어서야 울음을 그쳤다.
사흘이 되던 날, 녀석은 상황 변화를 시도했다. 등을 뒤에 기대고 악을 써가며 벽을 향해 발길질을 하고 밀어댔다. 다리를 뻗을 수 없다는 것이 어린새끼를 반쯤 미치게 만들었다. 벽은 굳건했다. 엉거주춤하게 일어난 녀석은 천장(뚜껑)에 손을 짚고 힘껏 위로 밀어올렸다. 뭔가 달그락- 하면서 정말 살짝 천장이 흔들리는 순간 어린새끼는 엄청난 희망과 자신감을 가지고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힘을 주었다. 포기하고 주저 앉은 것은 5분후였다.
나흘째, 기력이 쇠하고 굶주리고 절망한 녀석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영양분을 원했다면, 저열한 소화효율 때문에 식사의 반 이상을 그대로 배출하는, 실장석의 특징을 감안한다면 부풀어오른 속옷 안에 명확한 해답이 있었지만, 새끼의 지고의 입맛과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녀석이 갇힌지 일주일이 넘었다.
한달이 넘었다.
새끼는 3주전 마지막으로 취했던 찌끄러진 자세 그대로 혀를 툭-내민 채 미동도 없었다. 이것은 수백번의 뒤척거림 끝에 도출한, 그 공간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였다. 그럼에도 이 뒤틀린 자세를 계속 유지한 끝에 몸이 굳어버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잠조차 허락 않는 끔찍하게도 뚜렷한 자신의 의식을 저주했다. 잠이라도 자고 싶었다, 기괴하고 끔찍한 현실에서 등 돌려 도망치고 싶었다. 기이할 정도로 강하게 각성해있는 새끼의 정신은 한달이 넘어가도록 피곤하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억지로 눈을 감아도, 심한 두통이 뒤통수를 찔렀다. 녀석에게 허락된 것이라고는 게슴츠레 눈을 뜬 채 숨결을 내뱉으면 바로 자신쪽으로 되돌아올만큼 가까운, 반대편 벽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어떤 자극도 변화도 없는 시간이 끝없이 이어지자 몇번 손으로 만져본 끝에 느낀 나무벽의 사소한 질감, 패턴의 차이가 무언가 형태를 이뤄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이하게도 그것은 분명히 시야에 관찰되었다. 새끼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그것을 계속 응시했다. 사람이라면 그것을 꿈틀거리는 뱀이나 지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새끼는 어미도 저주했다. 마마는 먹을 것이 없다면 슬픈 일이 일어난다는 핑계로 항상 아침 늦게 나가서 저녁이 될 때까지 자신을 통분하게도 외롭게 방치했으면서, 정작 지금 와서 보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시간이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슬픈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마마는 그런 핑계를 대고 밖에 나가서 혼자만 재밌게 놀고 있었을 것이다. 분충, 거짓말쟁이 쓰레기였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이렇게 고통받는데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거, 자신의 어미가 될 자격이 없었다... 그런건 마마도 아니었다... 갈증과 굶주림에 고통 받는 새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의미없는 저주를 퍼붓고 있으니 한결 기분이 나은 듯 했다. 기분이 나아지니, 뭔가 행동할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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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이 흘렀을까?
"텟테로체~ 텟테로체~"
정말 오랜만에, 통 안에서 목소리가 흘렀다. 기묘하게 부푼 배를 가진 새끼는 태교의 노래를 부르며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다. 어린 새끼는 외로움과 고독을 견디지 못했고, 스스로 키워나간 어미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은 '자신이 마마가 되어도 마마보단 낫다'라는 결론을 도출했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결단과 행동력으로 아이를 가지기로 결정했다.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대신 직접 더러운 속옷에 손을 대야 하는 것은 끔찍하고 한탄스러웠지만, 자신의 뱃 속에서 헤엄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어찌되든 좋았다. 이제 새끼는, 기이하게도 어린 나이에 어미가 된다. 이 암흑의 지옥 속에 자신과 함께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일이다.
새끼는 태교의 노래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잘 몰랐지만, 가슴 속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들었던 희미한 목소리를 생각하며 좋을대로 불렀다.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음정에 맞지 않게 불러대는 노래는 청중만 있었더라면 경멸과 야유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모든 구절과 단어에 행복과 희망을 듬뿍 담아서 노래했다. 그런만큼, 눈 앞의 모든 것과 괴리되고 어긋났다.
"세상은 넓고 신기한것 가득가득인테치~"
아둔했기 때문에, 그저 기억에 남았던 태교를 그대로 따라 불렀다.
"환하고 따뜻한 햇님씨가 반짝반짝테치~"
태아들이 태어날 곳은 어둠에 질식하고 있다.
"오네챠들과 이모토챠들과 재밌게 뛰어노는테치~"
숨 막힐만큼 비좁고, 빛도 들지 않는 곳에서는 불가능했다.
"놀고나면 맛있게 배불리 먹는테치~"
녀석은 본인조차 철저히 기만했다.
"놀고 먹고 졸리면 따뜻한 집에서 포근히 잠드는테치~ 텟테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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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뎃? 여긴 어디인 데스우? 데..데..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려보기 앞서 워밍업으로 통 속의 독라자실장 스케치를 했습니다.
근데 다 그리고 저장버튼을 누르니기어오는 혼돈이 영감을 내려줘서 브리릿 하고 스크를 싸게 되었네요.
행복하고 단란한 일가를 그릴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고통받는 분충을 그리자마자 머릿속에 영감이 떠오르다니 기괴하네요.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인데, 결말까지 쓰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다음에 이어쓰든 해야지 안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