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3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바울리노는 갈리아 지방 총독인 부친의 영향으로 30세 때에 이탈리아 캄파
니아 지방의 집정관이 되었고, 에스파냐 카탈루냐로 가서 테라시아와 결혼하였다. 394년경 성탄절에 사제품을
받은 그는 막대한 재산을 팔아 작은 수도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그는 아내와의 부부관계를 포기하고 가난한 이들
을 돌보며 교회의 직무를 수행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수도 생활을 이어나갔다. 409년에 놀라의 주교로 승품되어
22년 동안 주교직을 헌신적으로 수행한 그는 431년 6월 22일 저녁 기도 중에 선종하여 성 펠릭스의 무덤 곁에 묻
혔다.
▲1469년 영국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요한 피셔는 1483년에 성 미카엘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1491년 22살의 나
이에 교황청의 특별 관면을 받고 사제품을 받았다. 1504년에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총장이 되었고, 로체스터
교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캐서린 왕비의 고해성사 담당 사제가 되었다.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와 재혼하려는
헨리 8세는 교황청의 승인이 지체되자 교황으로부터 영국 교회를 분리한다고 선언하였고, 영국 의회는 1534년
에 헨리 8세가 영국 교회의 유일한 최고 수장이며 주교 임명과 영국 교회의 모든 종교 문제 등에 대한 결정권과
개혁의 권한을 갖는다고 수장령을 선포하였다. 요한 피셔는 1534년 4월 수장령에 대한 서약을 거부하여 성 토마
스 모어와 함께 반역 죄인으로 런던탑에 감금되었다. 그는 1535년 6월 22일 처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으로 순교
의 월계관을 받았다.
▲성 토마스 모어는 1478년 2월 7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옥스퍼드와 런던 대학에서 신학과 법학을 공부
하였다. 1501년 런던에서 변호사가 된 그는 정계에 진출하여 하원 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국왕은 그를 왕
실 자문위원으로 임명하였으나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다. 그런 그를 국왕은 대법
관직에 앉혔다. 하지만 국왕의 이혼 서류에 그가 서명을 거부하자 국왕의 태도가 돌변하여 모든 공직에서 사임하
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국 의회는 1534년에 수장령을 공포하여 헨리 8세가 영국 교회의 유일한 최고 수장이며
주교 임명과 영국 교회의 모든 종교 문제 등에 대한 결정권과 개혁의 권한을 갖는다고 선포하였다. 국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한 그는 1534년 4월 요한 피셔와 함께 반역 죄인으로 런던탑에 감금되었다. 그는 1535년 6월
22일 처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그는 정치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