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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희망의 순례 ⑨完 최양업 신부 발자취 (원주-용소막성당) 2026.06.06

작성자나팔|작성시간26.06.07|조회수36 목록 댓글 0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설정된 100년이 넘은 용소막 성당

 

용소막 성당은 강원도에서는 풍수원, 원주에 이어 세 번째로 1904년에 설정된 교회다. 병인박해 이후 수원 지방에서 피난 온 몇몇 신자 가족들로 교우촌이 형성된 이곳에는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하고 성경 번역에 큰 자취를 남기고 선종하신 이곳 용소막 출신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의 유물관이 설치되어 있다. 가톨릭대학 교수이면서 성서학자인 선종완 신부의 유품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성경과 자료들이 풍성하게 전시되어 있다. 선종완 신부는 성경의 신·구교 공동 번역 주관자로 1955부터 1976년까지 신구약 성경을 번역해 냈다. 유물관에는 한글과 영어는 물론 라틴어 성경과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성경들이 전시되어 있다.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는 용소막 성당은 당시의 성당 건립 방식이었던 로마네스크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성당과 좀 다른 모습은 성당의 앞부분에 종탑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아마 당시 성당 건축에서 새로운 시도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용소막에 천주교가 전해진 시기는 병인박해 때 멀리 수원 지방에서 피난 온 몇몇 신자 가족들이 강원도 평창 지역에 살다가 박해가 뜸해지자 그 일부가 용소막에서 멀지 않은 황둔으로 내려와 거기서 얼마를 살다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충북 제천시 송학면 오미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곳에는 최씨와 백씨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93년부터 한두 집씩 오미에서 용소막으로 이사 오기 시작하였으며, 1898년에는 이곳 신자들의 지도자인 최석완 바르나바와 그와 한 집안인 최 바오로도 용소막으로 이사하였다. 공소가 개설된 다음 해 오미에 살던 백씨네와 행주에 살던 선병로 베드로 일가가 용소막으로 이사해 옴으로써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1900년 10월 24일에는 뮈텔 아우구스티노 주교가 이곳을 방문하여 새 경당을 축복해 주었다.

 

용소막 성당의 개척자인 최석완은 1848년에 제천 청풍에서 태어나 18세 때 병인박해를 겪고, 1893년 풍수원 본당의 르메르(1858~1928, 루이) 신부로부터 전교 회장에 임명되어 각처를 다니며 전교하다가 1898년 용소막에 정착 5, 6명의 교우들과 신부 방이 포함된 초가 10칸의 아담한 경당을 짓고 원주 본당 관할의 용소막 공소를 설립한 뒤 초대 공소 회장을 맡았다.

선종완(1915~1976, 라우렌시오신부는 1976년 7월11일 간암으로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 중 선종과천 성모영보수녀원 내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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