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지 순례

희망의 순례 ⑨完 최양업 신부 발자취 (원주-배론성지) 2026.06.06

작성자나팔|작성시간26.06.07|조회수24 목록 댓글 0

배론 (박해시대 교우촌) - 원주 교구

 

여러 사적과 복음사의 애환을 간직한 순교자들 요람지로 배론[舟論]이란 명칭은 마을이 위치한 골짜기의 형상이 배 밑바닥 같다고 한 것에서 부쳐진 이름으로, 본래는 팔송정 도점촌이라 불렸다.

 

배론 사적지가 갖고 있는 특징

첫째 그 복음사가 한국 천주교회와 함께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고 있는 점,

둘째 다른 사적지와는 달리 여러 사적과 복음사의 애환들을 함께 간직해 온 곳.

다시 말해 가장 일찍 교우촌이 형성된 곳,

 -1791년 신해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농사를 짓고 옹기를 구워 생활하 면서 신앙 공동체를 이룬 곳

 -1801년 신유박해 때 그 유명한 황사영 알렉시오가 《백서》를 작성한 곳,

 -황사영(1775~1801, 알렉시오)이 이곳의 옹기 굴에 숨어 있으면서 조선 교회의 박해 상황과 외국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을 적은 《백서(帛    書)》를 작성했던 곳. 이 백서를 북경 교구장 구베아(1751~1808) 주교에게 보내 려다 체포되어 황사영을 비롯하여 이에 관련된 신자들이    모두 처형되면 서 배론 교우촌도 파괴되었다.

 -그 후 배론에 교우촌이 다시 형성된 것은 1840년대였다.

  한국 최초의 격식을 갖춘 신학교인 ‘성 요셉신학교’가 자리 잡았던 곳.

 -1855년 초에는 배론 공소 회장 장주기(1803~1866, 요셉)의 집에 페레 올(1808~1853) 주교 사후에 한국 천주교회의 장상 역할을 하던 매

  스트 르 신부가 성 요셉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교장 푸르티에(1830~1866) 신 부, 교사 프티니콜라(1828~1866) 신부가 조선인 신학생을    가르쳤고, 장주기는 한문 교사와 공소 회장으로 활약하였다. 이 신학교가 바로 현 가톨릭대학교가 그들의 전신으로 지목한, 격식을 갖춘 최    초의 신학교.

 -배론 신학교는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최양업 신부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 곳,

 -1861년 6월 15일, 최양업(1821~1861, 토마스) 신부가 문경에서 병사하 자 약 5개 월간 배티에 가매장했다가 11월 초 이곳 배론으로 그    시신이 이장되어 베르뇌 주교의 집전으로 안장되었다.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여러 순교 성인들의 순교사가 시작된 요람지.

-박해의 여파로 장주기,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가 체포되어 두 신부는 군문효수형을 선고받고 3월 11일(음 1월 25일)에 새남터에서 순 교하였고, 장주기는 갈매못으로 이송되어 3월 30일에 순교하였다. 장주기는 1984년에 성인으로 시성됨으로써 배론은 순교자들의 요람지가 되었다. 배론 교우촌은 박해가 끝나면서 재건되어 공소로 설정되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