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전7기 출마 체험기 / 최승호
1996년 2월 어느 날 김대중총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
국회의원 선거에 전국최연소 29세의 나이로 가시밭길 조차 없는 황무지 같은 정치 현실속에서 오로지 당과 김대중대통령
그리고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는 마음으로 수영구에 당원1호로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998년 집권여당 위원장으로서
지역의 터전을 열심히 닦고 있을 때
구청장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중앙당 사무총장 요청으로 전국최연소 31세로 수영구 구청장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희생양이었습니다
두 차례의 선거를 치르면서 수억원의 선거자금을 사용했고 생활은 점점 어려웠졌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인물들을 수혈하며 당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후 당원동지들의 뜻을 받들어 경쟁력과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국회의원선거에 출마 해 낙선했습니다
박근혜 피습사건으로 당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광안동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구의원선거에 출마 했지만 낙선했습니다
얼마 후 망미동 수영동 민락동 시의원 보궐선거에 후보가 없어 또다시 당의 요청으로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또 낙선입니다
이어 광안동에 구의원선거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데 진보당후보가 연합공천으로 광안동에 출마하니 망미동 출마를 권유했고 그곳으로 가면 쉽게 당선이 되는데도 저는 이를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낙선했습니다
지역에서는 표가 많이 나와 이겨지만 군 부재자 투표에서 밀려 단 81표 차이로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실의에 빠졌고 우울증까지 겹쳐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선거 빚은 수억으로 불어났고 모든 것이 압류되어 살아가기 조차 힘들었습니다 재수없게 송사에 까지 억울하게 겹쳐서 설상가상으로 있었습니다
외동딸을 생각하며 참고 견디고 낮과 밤에 경계선 없이 죽도록 일을 하여 그 많은 빚을 갚고 또 6전7기에 도전 했습니다 부산시당에서는 핵심 인물들이 경계와 시기 질투로 도와주지 않고 계속해서 재심을 한 바 지치게 만들어 결국에는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습니다
16년만에 정금이 되어 돌아왔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넘게 당을 위해 헌신 했지만 개념없는 인물들때문에 헌신짝처럼 버려진 기분이었습니다
더욱 더 단단 해졌고 겸손 해졌습니다
내일 세상에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습니다
7전8기 봉사정신이 빛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