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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과 한성의 위치

작성자가시리|작성시간06.10.29|조회수465 목록 댓글 0

고구려의 평양성은 중국요사지리지에서

 

"요나라의 동경요양부는 본래 조선땅이었다.

위나라 태무제(423년)가 그 곳 '평양성'에 사신을 보냈는데

요나라 동경은 이 곳을 말한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평정하고 이 곳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였으며
후에 발해의 대씨가 이곳을 차지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요령성 요양이 고구려의 평양성이며

지금의 평양은 고구려의 한성이었음이

평양성 벽글씨에 흔적이 남겨져 있다.

 

백제의 한성은 산동성에 있으며

고구려의 한성은 평양이라는 것이며

대륙에 여러개의 평양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개봉도서관(中國開封圖書館)에서 보관된 연남생묘지문의 탁본은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장남인 남생 묘지문의 탁본 2장으로

1923년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남쪽에서 아우 남산(男産)의 묘지와 함께 지석(誌石)이

발견되었으며  비문을 지은 사람은  당나라 사람 왕덕진(王德眞)이고,

구양순의 아들인 구양통(歐陽通)이 글씨를 썼다.

 

公姓泉諱男生字元德遼東郡平壤城人也

 

남생의 묘지문은 남생의 자는 원덕이며 요동군평양성에서 태어났다고 적고있다.

 

 

 

* 고구려의 평양성에 대한 기록들 

“본국조선의 평양성은 하얼빈/장춘/영고탑/개원/해성이다”▼환단고기.
“제후국 평양은 개평/탕지보(번조선), 대동강평양(막조선)”▼환단고기.
“단군조선의 왕험성은 하북성 창려이다”▼중국 사기(집해/서광).
“요동의 험독현에 조선왕의 옛도읍이 있었다”▼중국 사기(응소).
“습수(영정하/하북성)에 낙랑과 조선이 있었다”▼중국 사기(장안).
“요나라의 동경요양부(요녕성/요양)는 고구려 평양성”▼요사지리지.
“발해의 현덕부는 기자의 평양성이며 지금의 요양이다”▼요사.
“동녕부(요녕성/요양)는 고구려 장수왕이 살던 곳이다”▼원사지리지.
“조선성이 영평부(북경) 경내에 있다”▼중국 대명일통지.
“험독(왕검성)의 옛성은 광녕(요녕/반산)의 동남”▼대청일통지.
*현재의 평양: 한반도/감숙성/절강성/산서성(중국역사지도집).


단군조선의 평양
(1)험독(왕검성/평양성)은 요동군에 있다.

集解徐廣曰昌黎有險瀆縣也.索隱韋昭云古邑名.應소注地理志遼東險瀆縣朝鮮王舊都.
臣瓚云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

사마천 사기는 험독인 평양성은 하북성 ‘창려’에 있고 ‘요동군’에 있다라고 하였다.


(2)한서 및 한서지리지에섣고 요동에 평양이 있다.

遼東郡秦置, 屬幽州, 戶五萬五千九百七十二, 襄平, 新昌, 無慮(무려), 望平, 房, 候城, 遼陽, 險瀆(험독),
居就, 高顯, 安市(안시), 武次, 西安平(서안평), 文, 番汗(번한), (沛水出塞外西南入海). 沓氏.

(3)후한서지리지에도 평양성(험독/왕험성/왕검성)은 ‘요동군’으로 나온다.
遼東屬國 洛陽東北三千二百六十里. 昌遼(故天遼屬遼西), 賓徒(故屬遼西), 徒河(故屬遼西), 
無慮(무려:有醫無慮山), 險瀆(험독), 房.

 

고구려장수왕 때의 평양

요사지리지  
“요나라의 동경요양부(요녕성 요양)는 본래 조선땅이었다.
북위의 태무제(423-425)가 사신을 보내 그곳 ‘평양성(요양)’에 머물렀는데

요나라의 동경은 원래 이곳(요양평양)을 말한다”

원사지리지 
“동녕로(요녕성 요양)는 본래 고구려 평양성이며 장안성이라고도 하였다.
진나라 의희(427) 때 고구려 장수왕이 살던 곳이다.

당나라가 평양(요양평양)을 멸하니,
평양세력은 압록수(요하)의 동남쪽 1000여 리로 옮겨갔다.

지금(대동강평양)의 평양은 옛평양(요양평양)이 아니다”

동명왕릉의 위치에 대한 대원일통지(大元一統志)와 전요지(全遼志)의 기록

요녕성 요양시(遼陽市) 동쪽 30리에 동명왕릉(東明王陵)이 있었다. 

 
대동강의 평양

‘丙戌十二月中漢城下後小兄文達節自此西北涉之’

(병술 2월 한성이 함락되자 후부의 소형 문달이 서북으로 건너갔다).
평양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구려성벽의 글씨다.
대동강평양이 고구려의 삼경(三京) 중 '한성'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남산의 묘지문

한성(대동강평양/하평양/남평양)을 지키지 못하니,

고구려왕(貊)이 화살을 바치고 항복하였다”(漢城不守貊弓入獻○矢來王)

 

남신 묘지문은 고구려가 한성(지금의 평양)에서 668년에 망한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금의 평양을 한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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