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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만해스님특집

작성자혜민스님|작성시간26.06.13|조회수19 목록 댓글 0

 

ㅡ만해스님특집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 한용운

https://m.youtube.com/watch?v=-RAT_Y47Zxs&pp=ygUY7ZWc7Jqp7Jq0IOyLnCwg7KCE7Jyg64uI0gcJCTkLAYcqIYzv

 

ㅡㅡ

 

찬송(讚頌)  -  한용운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金)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珊瑚)가 되도록 천국(天國)의 사랑을 받으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 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의(義)가 무거웁고 황금(黃金)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복(福)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梧桐)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光明)과 평화(平和)를 좋아하십니다.
약자(弱者)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慈悲)의 보살(菩薩)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ㅡㅡ

 

나의 길 : 한용운

https://m.youtube.com/watch?v=ErExxzEY-nY&pp=ygUP7ZWc7Jqp7Jq0IOyLnC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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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보고 가장의 무게를 느껴봐야,

고달픈 중생들의 삶과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구제할 수 있다"며

조선총독부에 건백서(건의서)를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출가 전 조혼을 했다가 홀연히 입산했으나, 훗날 53세의 나이에

간호사였던 유숙원 여사와 재혼하여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에서 외동딸을 두고 말년을 보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구자였습니다. 

 

그의 대표 시집 《님의 침묵》 서문에서 만해는 직접 이렇게 말했습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혹독한 옥고를 치르면서도 끝까지 기개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한 뒤, 지인들이 성북동에 집을 지어주었으나

"조선총독부 건물이 보기 싫다"며, 볕이 잘 드는 남향을 거부하고

일부러 추운 북향으로 집(심우장)을 짓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평생을 일제의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며 서슬 퍼런 조선총독부에

저항했으나, 안타깝게도 광복을 단 1년 앞둔 1944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 영양실조와 중풍으로 입적. '심우(尋牛)'라는 말은 불교에서

'잃어버린 마음의 본성(소)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뜻합니다.
만해가 집을 짓고 이름을 '심우장'이라 붙이자, 경봉 스님이 편지로 선문답을 겁니다

"만해 스님, 집 이름을 '심우장'이라 하셨으니, 소를 잃어버린 것이 분명하군요.
잃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소를 찾는다 하며,

소를 잃었다면 어떻게 소를 기른다고 하겠습니까? 그곳에서 어찌 지내십니까?"

 

ㅡㅡ

 

겉으로는 "방황하지 말고 마음 잘 다스리라"는 안부 같지만, 속뜻은

"나라를 잃었다고 해서 당신의 본성(마음)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 않소?"

라며 만해를 찔러본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의 기막힌 답신
 

"털과 뿔이 나지도 않았는데, 어찌 얻고 잃음이 있겠습니까.
목부(목동)가 일이 많아서 부질없이 심우장을 지었습니다."

"애초에 소라는 것(집착이나 얻고 잃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찾는단 말입니까.
그저 이 늙은 목동이 할 일이 좀 많아서 부질없이 집 한 채 짓고 지납니다"

 

(AI가 자료조사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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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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