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8.3(첫째주일)
본문: 고린도후서 1:3-11
제목: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1: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멀리계신, 우리와 관계없는 하나님이 아니요!(초월자로서 무념무상의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우리와 함께 울고(웃으시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연약한 자도 위로하시고(실패한 자도,,), 낙심한 자도 위로하시는,,,!!)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위로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자식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위로의 아이콘’입니다.(언제든지 달려와 안길 수 있는(돌아와 안길 수 있는 곳이),, 어머니 품이다!) 그렇게 울던 어린아이들도,, 엄마 품에 안기면 울음이 뚝! 멈춘다!(신기할 정도,,,!!) 배고파 우나 싶어서, 우유를 줘도 소용없고(아파서 그런 것도 아니고, 기저귀를 살펴봐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 품에 안기면,,,!(엄마의 손길을 느끼고(심장소리를 듣고서야,,,!!)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 비로소 ‘샬롬’할 수 있습니다.(평안을 느끼고, 평화를 누리고(안식할 수 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요!(보혜사가 되신다.) 보혜사!(본래 뜻이 ‘위로자’,,,(성령은 우리의 위로자!) 그래서, 성령행전인(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의 강력한 위로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사도들이 힘들고(지칠 때마다), 복음을 전하다가 쫓기고(매,,돌,,옥에 갇힐 때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그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다시 일으켜주시고(새 힘을 주시고, 용기를,,), 비전과 사명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사도행전만이 아닙니다.(성경의 절반의 내용은,, 사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을 읽어보세요!(하나님은 끊임없이 위로해 주신다!) 그래서, 피곤한 자에게 새 힘을 주시고(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실패한 자를 다시 일으켜주시고, 낙심한 자에게 산 소망을 갖게 한다!!)
이시간,,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하심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를 살면서도,, 얼마나 힘들고 어려움이 많으셨습니까?,,(뭐가 그렇게 바쁘게 시간이 가는지?,,(일은 일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피곤하고 지치게 만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로하심으로,, 몸과 마음과 영혼이 위로받고(치료받고, 회복되고), 온전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말씀을 보시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위로!(10번)
여러분, ‘하나님의 위로’하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위로는,,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차별이 없는 것처럼,,(하나님의 위로도 차별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필요한 것처럼,,(모든 사람에게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어느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하다.)
돈이 많은 부자라고 위로 없이 살 수?,,(건강하다고?,, 대통령이라고?,, 오히려 이런 사람들에게 위로가 더 필요하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돈’을 위로삼고 삽니다.(쾌락,, 권세,,)살지만,, 하지만, 세상이 주는 위로는, 다 지나가는 것이요!(변하는것이요!), 썩어질 것입니다.
3절 “모든 위로의 하나님”(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 믿음 좋은 사람들만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믿음 없는 자도 위로해 주신다.) 하나님의 위로만이 신실하고(차별이 없다!)
예수님 말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해와 비를,,(하나님의 위로는, 차별이 없다!)
2.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를 담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그냥 위로로 끝나지 않습니다.(하나님의 위로에는 힘(능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를 담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도 위로하시고(연약한 자도,, 실패한 자도,,), 낙심한 자도 위로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하나님의 위로는,, 피곤한 자에게 새 힘을 주시고(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실패한 자를 다시 일으켜주시고, 낙심한 자에게 산 소망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를 담대하게 만듭니다.
예컨대, 엘리야를 보세요! 그는 ‘갈멜산의 대결’에서 통쾌하게 승리했습니다.(“누가 참 하나님이냐?”,, 이방선지자(850명) 대결승리!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에 불로 응답!(큰 비로 응답!(대단한 선지자!!) 그런데, 그 다음날, 이세벨이 공개처형을 선언하자(엘리야는 도망자신세가 되어, 광야에서 쓰러졌다.(허무함, 좌절감에서, 심지어 죽기를 구함!!)
그때, 하나님은 먼저, 지쳐있는 엘리야의 심령을 어루만져 주시고, 먹을 떡(물)을 주셨습니다.(새 힘을 주시고, 다시 일으켜주시고, 담대하게 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데,, 환영?,, (반대자들,, 핍박자들,,,) 그래서 쫓겨나고(매,,돌,,옥,,,)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낙심?,,,) 그런데, 바로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위로해 주셨고, 담대하게 했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를 담대하게 합니다.
3.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문제를 그냥 놔두고,, 위로하는 것은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배고픈 자에게 진정한 위로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헐벗은 자에게 진정한 위로는, 입을 옷을 주는 것이다.) 그래야 위로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실 뿐만 아니라(우리의 ‘문제까지도’ 해결해주신다.)
8,9절에 얼마나 고난이 심했던지,, 살 소망까지 끊어졌습니다.(이제는 끝났구나!(죽었구나!) 그러나, 이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하나님이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을 위로해 주셨습니다.(그리고 마침내, 백세에 아들 이삭을 주셨다!) 돌베개를 하고 자던 야곱을 찾아와 위로!(언약해주시고, 인생길을 인도해 주셨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백성들을 위로해 주셨다.(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의 구원!)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실 뿐만 아니라(우리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신다!)
4. 하나님의 위로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십니다.
4절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다른 사람을 능히 위로하게 하십니다.(이것을 가리켜,, ‘충만한 위로, 흘러넘치는 위로’라고 한다.) 하나님의 위로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시는 충만한 위로(흘러넘치는 위로) 입니다.
‘동병상련’이라고 했습니다.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에게 ‘키 문제에 대해서’ 위로가 되겠나?,,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위로하고),, 실패한 사람이,,,!!(환난당한 사람이 환난당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합니다!
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직장 상사의 말 한마디가,, “수고했네” 직장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직장 상사의 말 한마디는,, “그동안 수고했네”
여러분!, ‘위로’라는 것은 결코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가장 가까운 곳에서(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것이다.) 상처도(아픔도) 어디서 오나?,,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죠!(가장 가까운 곳에서(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도(교회도), 위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위로의 말 한마디가, 가정을 살리고(교회를 살린다!)
언젠가,, 제가 참! 힘들고 지쳐있을 때,, 어떤 분이 곁에 오셔서,, “목사님! 힘드시죠! 힘내세요!”(진심어린 위로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찡하게 하더라!)
할아버지 한 분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암 진단을 받은 그 날부터, 이 할아버지는 매우 난폭해졌습니다.(성격이 갑자기 난폭해져,, 식구들을 향해서 욕을 하기도 하고(주변 사람들에게까지도 욕을 퍼붓습니다.) 심지어는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고, 병실에 입원해서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할아버지의 ‘옛날 친구’들을 들여보냈지만, 친구들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친구들을 큰 소리를 치며 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이번에 는 할아버지와 절친하게 지냈던 ‘선생님’을 모셔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목사님’도 찾아왔지만, 목사님도 욕만 먹고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이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동네 꼬마’가 하나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왔습니다.(식구들이 반 호기심으로 “그럼, 네가 들어가서 할아버지 만나 봐라!”하며 그 아이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30분 동안,, 동네 꼬마가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오더니,, 그 이후로 이 할아버지가 완전히 변했습니다.(태도가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사람들도 만나시고 얘기도 하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이상해서, 그 동네 꼬마를 붙들고 묻었습니다.
“얘야, 할아버지하고 무슨 얘기를 했니?”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할아버지하고 그 20-30분 동안 함께 있었잖니.(너는 그동안 도대체 뭘 했니?”)
그랬더니, 그 꼬마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요, 할아버지하고 같이 울었어요!!!”
여러분, '위로'라는 것은,, 뭔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힘들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말을 많이 해야 하고(잘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단지,, 함께 웃어 주고(울어 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 입니다.(우리와 함께 웃으시고(함께 우시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 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차별이 없습니다!(우리를 담대하게 한다!, 우리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준다!), 또한 하나님의 위로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충만한 위로(흘러넘치는 위로)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충만한 위로를 받으시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