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8(대강절 넷째주일)
제목: “하나님! 실망했어요?”
본문: 시편 77:1-9
“시77: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시77:2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시77:3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시77:4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시77:5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시77:6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시77: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시77:8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시77:9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 실망했어요?’입니다. 조금은 낯설고(도전적인)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실망해보신적이 있습니까?(아니면, 지금 실망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항상 기쁘고(즐겁고,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신앙생활이 종종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름날의 폭포수처럼 유쾌하고(상쾌하고, 통쾌)할 때도 있지만 가을날의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하고, 공허하고, 허망할 때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실망합니까? 일이 내 생각대로 잘 안될 때, 계획이 내 뜻대로 안 될 때 실망합니다. 또 사람한테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뒤통수를 칠 때,,)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죠. 연애 할 때는 천사 같더니 결혼해서 살다보면 악처가 되고, 폭군이 되어있는 아내와 남편을 보면서 실망합니다.
성경을 보면 심지어 하나님께 실망한 사람들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요. 그런데 결과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데,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으셨지요? 그러니까 가인이 어떻게 합니까?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실망한 가인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실망한 적이 있지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약속하신 것,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를 않았지요. 아들 하나도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하갈이라는 여종을 첩으로 삼아서 아들을 낳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 실망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박국이라는 선지자는 하나님께 실망하다 못해 따지듯이 반문하고, 항의합니다. 악인들이 득세하고(의인들을 고난을 받는데도) 하나님은 왜 가만히 보고만 계시느냐? 왜 악인들을 심판하고 의인들을 구원하시지 않느냐? 실망하여 따지듯이 묻는 말씀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실망하고 있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조상들도, 선지자조차도 실망하고 있는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습니다. 가롯유다는 실망한 나머지 배반하지 않습니까? 누구나 다 하나님께 실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얼마든지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실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님께 실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도 별수 없으시구나,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아예 하나님을 등지고(세상으로 나가야,,) 오늘 말씀에서 그 길과 해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의 주인공도 하나님께 실망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3절(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이전에는 하나님만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소망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도리어 실망이 되고, 원망이 되고, 절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향한 실망은 원망이 되고(원망은 이내 절망이,,)
그 이유가 1-2절이지요. 이 사람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2절(나의 환난 날에), 그는 여느 때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는 남다른 믿음의 확신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는,,, 그런데 어찌된 연고인지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을 주시지 않았지요.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밤새도록 기도하며 응답을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마치 못들은 척 침묵하고만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3, 4절에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실망은 원망이 되고(원망은 이내 절망이 되어), 그 심령을 사로잡았습니다.
여러분, 출애굽기나 민수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백성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습들 볼 수 있지요.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배고파죽겠다고, 마실 물이 없을 때에는 목말라 죽주겠다고,, 길이 멀 때에는,,, 아무튼 조금 힘들고(돌아서면) “죽겠다고 그러고, 왜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했냐고(애굽으로 돌아가자)”, 불평하고 원망하기 바쁘죠. 저는 학생시절에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참! 이해가 안 되었죠. 어떻게 하나님께 이럴 수 있을까? 출애굽의 전 과정을 보면 그들이 한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기적, 은혜)으로 출애굽하지 안았습니까?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쏟아 부었고, 홍해를 갈라 육지같이 건너게 해 주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 주셨습니다. 그러면 매일매일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너무나 쉽게 하나님께 실망하고, 원망하고, 절망해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이해가 안 되었지요. ‘참! 별종들이다’라고 생각,, 그런데요, 인생을 쪼금 살고 돌아보니까? 나 역시 저 이스라엘백성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고(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우리를 구원하려고 예수님이 말구유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고, 더 이상 아무런 어려움도 없고, 기도만하면 척척 문제가 해결 될 것 같은데,,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어려움도 있고, 문제도 해결이 안 되고, 그러면 누구나 쉽게 주님께 실망(원망)하게 됩니다.
이럴 때, 오늘 시편의 주인공은 아주 원색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7-9절에 “주께서 영원히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그 은혜와 긍휼이 끝난 것일까? 약속하신 말씀은 거짓인가?)” 우리도 그렇잖아요! 어려움이 있으면, 밤잠을 설치면서 온갖 생각들을 다하잖아요. 지금 이 사람은 자신의 신앙의 뿌리까지도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른 시편들을 보면 이렇게까지 탄식합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여호와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왜 멀리서서 처다만 보고 계십니까? 왜 모른척하고 계십니까? 제가 이렇게 힘들고,어렵고,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어느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탄식합니다.
자, 그런데요 아주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자신의 고통을 탄식하는 시편들을 보면 똑같이 탄식으로 시작을 하고 있지만,, 마지막을 보면 탄식으로 끝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시편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실망하고 탄식하면서, 잠을 설치면서 던졌던 원색적인 질문들을 통해서(주께서 영원히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그 은혜와 긍휼이 끝난 것일까? 말씀은 거짓인가?), 이런 원색적인 질문들을 통해서,, 그가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10절, 11절, 13절입니다. 우선 10절(나의 잘못이라), 이것이 나의 연약함이라. 자신의 연약한 믿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자신은 평소에 생각하기를 “이만하면 됐다. 자신의 믿음이 좋은 것으로,,” 그런데 문제(상황)이 달라지니까 자신의 믿음의 바닥을 본 것입니다. 뿌리 채 흔들리는,,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입니까? 은혜와 긍휼이 끝난 것입니까? 말씀이 다 거짓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볼 수 있겠어요? 교회를 우리가 다닐 수 있겠어요? 하나님을 믿고 살 수 있겠어요? 결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뿌리 채 흔들리는 모습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보게 된 것이지요.
복음서에 보면,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아들을 제자들에 데려왔습니다. 고쳐달라고,, 그런데 못 고쳤지요. 그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전후사정을 말하면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달라고 합니다. 주님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그때 아버지가 소리 높여 간구하기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것이 오늘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절에 그가 그 밤에 깨달은 것은 옛적에 행하신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지난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 이전엔 이것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을 때도 그때는 그것이 끝인 줄 알았는데,,그렇지 않았지요. 내 힘과 능력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떠나 서) 잠시들 살 수 있겠어요? 다만, 내가 은혜를 깨닫고 사는냐, 모르고 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 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은혜)을 잊지 말지어다”,, 지금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13절에 그가 그 밤에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깊이 깨닫게 되었지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창조주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죠! 홍해사건입니다. 홍해를 갈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사건, 19절에 누가 상상이나? 바다 속에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며, 하나님은 창조주,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책망합니다. “너희가 언제까지 나를 믿지 못하겠느냐? 언제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성경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로다”, 하나님은 그 능력과 권세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보다 크시기에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고, 하나님은 홍해보다 크시기에 홍해를 갈라,, 광야보다 크시기에 광야40년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셨고, 여리고보다 크시기에 여리고를 정복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은퇴마귀가 자신이 사용한 무기를 판매했지요. 그중에 가장 비싼 것은 가장 낡은 것이었다. 신참악마는 물었죠. 왜 이것이 가장 비싼 것이냐? 그것이 자신이 사용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해줍니다. 그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다름 아닌 ‘실망’입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교회에 실망하고, 하나님께 실망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대한 실망은 원망이 되고(원망은 이내 절망이 되어), 그의 심령을 사로잡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 한 해를 돌아보아도 실망할 꺼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군다나, 우리가 미음으로 살고(기도했는데도)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하나님께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지금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하나님은 창조주요(구원의 하나님이심을),,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닷길을 열어서라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보다도(위기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신뢰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