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신 귀한 사진과 시를 깊이 읽었습니다. 사진 속 정성스럽게 눌러쓴 한 자 한 자의 이름들과 시인님의 절절한 고백이 만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김석환 시인님의 **<옛날 사진>**은 갑작스러운 군 동기의 부고를 접하며 느낀 인생의 무상함과, 45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마주한 청춘의 그리움을 담담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낸 수작(秀作)입니다.
이 시의 핵심적인 아름다움과 깊이를 몇 가지 줄기로 나누어 해설해 드립니다.
1. '이름'의 어긋남이 주는 충격과 슬픔
시의 도입부는 현대적인 일상(단톡방)에서 시작됩니다. 처음 부고를 보았을 때 시인님은 "모르는 이름"이라며 낯설어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고인이 이름을 개명했거나, 혹은 너무 오래되어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날 다른 동기가 올린 '빛바랜 단체 사진'과 '그때 부르던 이름',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 밑에 고인이 친필로 쓴 동기들 이름"**을 마주하는 순간, 시적 반전이 일어납니다.
"아 / 그 친구!"
이 짧은 외마디 탄식은 단순히 기억의 회복을 넘어, 단숨에 45년 전의 시간의 벽을 허무는 감정의 폭발입니다. 이름과 얼굴이 마침내 연결되었을 때 밀려오는 슬픔과 미안함, 그리고 반가움이 이 한 마디에 모두 압축되어 있습니다.
2. 친필(親筆)이 지닌 온기와 고인의 성정
시인님이 올려주신 사진을 보면, 푸른색 잉크로 정갈하게 쓰인 '제1공병여단본부대 7, 8, 9월 동기들'이라는 글씨와 19명의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속에 '김석환'이라는 시인님의 성함도 또렷이 박혀 있습니다.
고인이 살아생전 정성껏 남겨둔 이 친필은,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가 남긴 '가장 따뜻한 흔적'이 되었습니다. 시인님은 이 글씨를 보며 고인의 "유머스런 말과 명랑한 얼굴", "정이 많았던" 성품을 그대로 느낍니다. 글씨는 그 사람의 영혼을 담는다고 하듯, 사진 속 투박하지만 다정한 글씨체가 고인의 따뜻했던 인간미를 증명해주고 있기에 마음이 더욱 먹먹해지는 것입니다.
3. 45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청춘의 기백
사진 속 청년들은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시인님은 이를 *"청춘의 기백이 넘쳐보이는 사진 속 얼굴들"*이라 표현합니다.
"두터운 장막 속으로 흘러간 세월"이라는 표현처럼, 45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대하고 어두운 장막과 같습니다. 하지만 고인이 남긴 "이름 적힌 옛 사진 한 장"은 그 두터운 장막을 뚫고 들어가, 그 시절의 푸르렀던 청춘을 "엊그제 일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되살려 놓는 기적을 행합니다.
4. 세월을 담는 그릇, 사진
시의 마무리인 **"사진은 세월을 담는다"**라는 구절은 이 시의 빛나는 주제 의식입니다.
사진은 단순히 과거의 한 순간을 포착한 필름이 아니라, 그 속에 흐르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지나간 세월 전체를 박제해 두는 영원의 그릇임을 시인님은 깨달은 것입니다. 동기의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들이 가장 빛나던 청춘의 순간이 사진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총평
이 시는 2026년 5월 12일, 한 동기의 죽음이라는 슬픈 사건에서 출발했지만, 절망이나 허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대신 사진 속에 찍힌 19명의 동기들과 고인의 다정한 친필을 통해, **'비록 인간은 떠나도 그들이 함께 나누었던 우정과 청춘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삶의 숭고한 진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이토록 가슴 절절하고 아름다운 추모의 시를 빚어내신 시인님의 깊은 시선에 경의를 표합니다. 먼저 떠난 동기분께서도 하늘에서 이 시를 보신다면, 자신을 '명랑하고 정 많던 친구'로 생생하게 기억해 준 시인님에게 고마워하며 미소 짓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