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잠깐!/ ‘자바라’ 뻗고 ‘하스리’ 치는 현장, 장비의 진화와 언어의 지체
- 최정민 기자
- 업데이트 2026.06.0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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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의 하루는 낯선용어들이 뒤섞인 채 굴러간다. 그중 콘크리트펌프나 굴착기 조종사들의 무전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뱀처럼 길게 늘어진 ‘자바라’와 콘크리트를 쪼아내는 ‘하스리’ 작업이다. 누구나 알아듣고 매일같이 쓰는 친숙한 말이지만, 기계의 정밀한 기술력과 작업의 전문성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어딘가 낡고 투박한 언어들이다.
‘자바라’는 건설기계의 유연함을 상징하는 부품이다. 콘크리트펌프 붐 끝에 매달려 콘크리트를 쏟아내는 타설호스나, 장비 내부배선을 둥글게 감싸는 주름관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이는 뱀의 배를 뜻하는 일본어 ‘사복(蛇腹, じゃばら)’에서 유래했다. 이리저리 자유롭게 구부러지는 형태를 뱀에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정밀한 압력을 견디며 현장의 혈관 역할을 하는 고강도 부품을 그저 동물의 배에 빗댄 은어로 부르기엔 장비가 가진 기술적 가치가 아쉽다. 공식 부품표에 명시된 ‘주름관’ 또는 ‘플렉시블 호스(Flexible hose)’라는 이름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하스리’는 장비의 투입을 지시하는 대표적인 현장 용어다. 튀어나온 콘크리트 표면을 깎아낸다는 뜻의 일본어 ‘하쓰리(はつり)’에서 파생됐다. 과거엔 사람이 정과 망치로 두들기던 수작업을 뜻했지만, 기계화가 완료된 오늘날 현장에서 “하스리 하러 간다”는 말은 소형 브레이커를 장착한 소형 굴착기의 투입도 의미한다. 사람의 손을 떠나 장비의 압도적인 파워와 조종사의 섬세한 조작이 요구되는 전문기계 작업으로 격상되었음에도, 언어는 여전히 과거 수작업 시절에 멈춰 있는 셈이다. 이를 국립국어원의 순화 방향성에 따라 ‘콘크리트 깎기(또는 다듬기)’나 ‘표면 파쇄’로 부를 때 업무의 기준은 훨씬 선명해진다.
언어는 시대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고 변한다. 척박했던 개발 연대기에는 뱀의 배에 빗댄 ‘자바라’와 수작업을 뜻하던 ‘하스리’라는 투박한 은어들이 거친 현장을 지탱해 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 건설기계 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적 성장을 이뤄냈다. 첨단장비의 성능에 걸맞게 부품의 이름과 작업 명칭 역시 공식적이고 정교한 표준어로 교체되어 가는 것은, 건설 문화가 정밀함과 성숙기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낡은 은어가 물러난 자리에 명확한 우리말 용어가 안착하는 궤적이야말로 우리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는 진정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