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금산군의 연혁 금산군(錦山郡) 역사 2010/12/1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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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금산군 연혁
-. 백제시대에는 진내군(進乃郡) 또는 진내을군(進乃乙郡)이라 했다.
-. 통일신라경덕왕 16년(757년) 全州(처음 完山州) 관할 進禮郡으로 개칭.
伊城縣. 丹川懸. 淸渠縣을 領縣 으로 두었다.
-. 고려 성종 2년(983년) 江南道 南原府 관할의 進禮縣으로 개칭한다.
-. 고려 성종 14년(995년) 茂豊縣이 속현으로 된다,
-. 고려 현종 3년(1012년) 錦溪郡으로 승격한다.
-. 고려 현종 9년(1018년) 江南道가 全羅道로 개편 全羅道 錦溪郡이 됨.
-. 고려 명종 3년(1173년) 錦溪郡을 분할 富利縣과 茂豊縣을 설치 한다.
-. 고려 충렬왕 31년(1305년) 錦州郡으로 승격하고 ※知錦州事가 다스리며,
속현으로 富利縣, 淸渠縣, 朱溪懸, 茂豊縣, 珍同縣을 둠 (高麗史 57)
-. 조선 태조 2년(1393년) 珍同縣이 珍洲郡으로 승격하며 分立한다.
-. 조선 태종 13년(1413년)錦山郡으로 개칭하고 茂朱縣이 생기면서 朱溪懸,
茂豊縣이 분립하며 淸渠縣도 龍潭縣으로 개칭하며 분립.
-. 조선 고종 32년(1895년) 공주부 관할변경
-. 建陽1년(1896년) 금산군과 진산군이 전라북도로 편입.
-. 일제강점기(1914) 행정구역 개편으로 珍山郡을 병합.
-. 대한민국(1963)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편입
1.1.知錦州事
고려 충렬왕(忠烈王) 31년에 본현 출신 김신(金侁)이 원(元) 나라에 벼슬하여 요양행성 참정(遼陽行省參政)이 되어 공을 세웠으므로 知錦州事로 승격시켰고, 조선 태종(太宗) 13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군으로 하였다.군지사(郡知事)=지군사(知郡事)=고려시대=도호부 산하 지역 책임사=시장, 군수급 책임자1명
1.2. 지역감정의 여파겠지만 금산군이 과거 전라도로 되기전에 충청도였다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종종 본다.
하나는 지금 금산군의 일부인 珍同縣 지역(진산면, 추부면, 복수면)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757년) 熊川州 소속 黃山郡 (논산군 연무지역)의 속현이었는바 고려 충렬왕 31년(1305년)에 금주군의 속현이 되기 전 까지 몇 백년간 충청도 지역이었던 것이 맞다.
또 하나 금산군이나 진산군 모두 1895년에 공주부 관할로 되었던 것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으나 그 당시는 道체제가 아니고 23부 체제였다. 23부의 하나인 公州府 (그 당시 충청도 전라도가 없었다)에 소속되었고 그 다음해인 1896년에 다시 13道 체제가 되면서 전라북도의 관할이 되는 것이다. 그 것을 두고 그 때 잠시
충청도 관할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지역적으로는 계속 전라도 땅이 었다고 하는게 맞다.
결론은 일부지역이 충청도 지역으로 있었던 적이 있으나 큰 흐름상 전라도 지역이었다.
그후 1963년에 충청남도로 편입되는 것이다.
2. 백제의 지방행정조직
(한성시대) 근초고왕 당시 지배영역을 分定하여 담로제를 마련하고
(웅진, 공주시대) 천도 후 22담로(擔魯-장관으로 왕자나 왕족을 봉함) 제도가 확정되며
(사비, 부여시대) 중앙권력 강화를 위해 方(5方) -郡 - 城(縣)지방제도가 마련되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행정단위/수 장관(책임자)/품계 내용 주둔군사
方/ 5방 方領/달솔 최고행정단위, 7-10개군관할 700-1000명
郡/ 37성 郡將 3명/덕솔 방아래단위 미상
城/ 200-250城 道使/미상 縣級 미상
5方 方城 王都거리 方城넓이 兵力 方城추정지
中方 古沙城 남260리 方150보 1200명 전북 고부
東方 得安城 동남 100리 方1리 700-1000명 충남은진
南方 久知下城 남360리 方130보 700-1000명 전남 구례?
西方 刀先城 서350리 方200보 700-1000명 ?
北方 熊津城 동북60리 方1리반 700-1000명 충남공주
3.지방행정구역의 변천(충청, 전라도 지방) / 국토지리연구원/한국지리지
백제는 원래 북방에서 유입한 집단이 세운 국가로 260년(백제 고이왕 27) 한강유역에서 고대 국가로 발전하였다. 이후 백제가 남진하여 근초고왕 때 마한을 점령하면서 이 지역이 백제 영토가 되었다. 이후 고구려의 남진으로 개로왕이 참사를 당하고 475년(백제 문주왕년)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 538년(백제 성왕 16) 지금의 부여인 사비(泗沘)로 옮기면서 새로운 도읍이 되었다. 660년(백제 의자왕 20)신라에 멸망되었으나 백제문화는 경주와 대비되는 지방문화의 중심이었다.
통일신라 말 궁예와 견훤의 남북세력이 경합하였으며 이후 고려 왕건에 의해 복속되면서 고려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공주에 신문왕이 웅천주(雄川州)로 고쳐 도독을 두었고 경덕왕이 熊州로 고쳤다는 기록에서 전국 9주의 하나인 웅주를 중심으로 충청남도는 지역적으로 한 단위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997년(고려 성종14년)에 전국 10도중의 하나로 이 일대에 설치한 河南道는 지금 충청남도의 지리적 범위와 대체로 일치한다.
백제시대 전북지방에는 완산(지금의 전주) 1주와 벽골(지금의 김제) 고사부리(지금의 고부)등 10군과 모량부리(지금의 고창)등 35현이 존재하였다.'
그러다가 660년(의자왕 20년) 신라무열왕이 당나라 지원군을 받아 백제를 멸망시키고 백제의 옛 땅에 5도호부를 설치하고 주와 현으로 나누어 다스리게 하였다. 뒤이어 신라 35대 경덕왕은 당나라의 제도를 쫓아 전라지역을 진주와 무주로 나누고 전주의 도읍은 지금의 전주에 두고 무주의 도읍은 지금의 광주에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그 후 891년(진성여왕 5년)에 견훤이 무진주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백제의 옛 땅을 차지하면서 수도를 전주에 옮겨와 후백제의 왕이 되었다.
후백제시대 전라지역은 별다른 명칭 없이 40여년에 걸쳐 후백제의 지배아래 있었다. 후백제를 통일한 고려는 995년(성종 14년) 전국을 10도로 분할하여 지금의 전남지방을 해양도로 그리고 전북지방은 강남도로 불렀다. 전주 영주(지금의 고부) 순주(지금의 순창) 마주(지금의 마령)등의 주와 현은 강남도에 속했다.
그 뒤 1018(현종 9년)에 이르러 이 두 지방을 합쳐 처음으로 전라도로 일컫고 그 도읍은 전주에 두어 다스렸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1407년 태종은 지방제도를 전면적으로 혁신하여 전국의 행정구역을 8도로 나누는데 군사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전라도를 좌우로 구분하고 동쪽산악지역을 좌도로 서쪽의 해안지역을 우도로 했다.
따라서 전라좌도에는 남원, 용담, 무주, 진안 등 21관이 전라우도에는 전주, 고부, 금산, 진산 등 36관이 속하였다. 다시 6년 뒤인 1413년(태종 13년)에 일부지역을 병합하거나 유지 또는 존속시키면서 행정구역을 다시 개편하는데 그 내용은 1목(나주목) 5부(순천부, 장흥부, 담양부, 전주부, 남원부) 외에 광주와 순창군 등 14군과 함평과 김제현 등 36현으로 개편하였다.
물론 전라도는 조선인조 때에는 광남도로 그리고 영조 4년(1728년)에는 전광도로 불리기도 했다. 1895년(고종 32년)에는 지방관제개정에 의하여 전국을 23부로 나누는 등 행정구역은 대폭적인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라도에는 전주, 남원, 나주, 제주의 4부가 설치되었다. 전주부는 전주, 고산, 고부 등 19개 군을 관할하게 되었고 남원부는 남원, 진안, 용담, 무주 등 15개 군을 관할하였다.
이러다가 바로 이듬해인 1896년에 부제는 폐지하고 도제를 실시함에 따라 한성부를 제외한 전국을 13도로 나누고 그 아래에 다시 7부 1목 331군을 두었다. 당시 13도는 대체로 종래의 8도에 바탕을 두어 경기, 강원, 황해의 3개도를 제외한 충청, 경상, 전라, 함경, 평안 5개도를 남북으로 분할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전라도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분할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지방행정변천사에 있어 또 하나의 큰 획은 1914년에 그어졌다, 일제에 의해 군과 면의 통폐합이 이루어졌으며 오늘날의 각급행정기관의 명칭과 규모는 이때에 그 기틀이 확립되었다. 다시 말해 도의 관할구역과 부와 군의 명칭 및 관할구역이 대폭 조정되었는데 특히 이때의 부와 군의 관할구역이 대폭적으로 병합함으로서 그 하부의 면과 동,리의 명칭과 관할구역의 대대적인 개편까지 단행되었다는 점에서 가히 전면적인 개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전국은 13도 12부 220군으로 정비함에 따라 전라북도는 1부 27군을 거느리게 되었다. 1979년에는 면 가운데 군청소재지가 인구와 관계없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4.우리나라 지방행정조직의 변천사
4.1.통일신라시대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지방행정조직)에 관한 제도는통일신라시대에 시행된 주(州),군(郡),현(縣), 촌(村)제도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그의 재임 5년(685년)에 새로 편입된 백제 고구려의 영토에 대한 행정구획을 단행하여 9주(州)를 정비하였고 경덕왕 16년(757년)에 9주의 명칭변경과 함께 행정구역 변경이 있었는데 그때 내용을 보면 9주 5소경(小京) 117개 군(郡) 293개 현(縣)으로 정비되었다.
그 당시 주(州)를 다스리는 통치자를 총관(總管)이라 했는데 통일 이전에는 군주(軍主)라 했다. 그러나 총관의 명칭도 원성왕1년(785년)에 다시 도독(都督)이라 하였고 군(郡)의 책임자는 태수(太守), 현(縣)은 현령(縣令)이라 했는데 이런 형태의 지방행정조직은 지금의 행정조직과 상당히 흡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당시 주(州)는 변화를 거쳐 지금의 도(道)로 정착되었고 소경(小京)은 지금의 광역시(廣域市)로 군(郡)이 지금의 시(市),군(郡)이 되고 현(縣)이 지금의 읍(邑), 면(面)이 되고 촌(村)은 지금의 동(洞), 리(里)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9주는 개략적으로 신라 가야 지역에 3주, 백제지역에 3주, 그리고 과거 고구려 땅에 3주로 구획했는데 경덕왕 16년(景德王 757년)에 9주의 명칭이 아래와 같이 바뀐다.
사벌주(沙伐州, 治所는 경북 상주)가 상주(尙州)로 바뀌고
삽량주(歃良州, 治所는 경남 양산)는 양주(良州)로
청주(菁州, 治所는 경남 진주)는 강주(康州)로
웅천주(熊川州, 治所는 충남 공주)는 웅주(熊州)로
완산주(完山州, 治所는 전북 전주)는 전주(全州)로
무진주(武珍州, 治所는 광주광역시)는 무주(武州)로
한산주(漢山州, 治所는 경기도 광주)는 한주(漢州)로
수약주(首若州, 治所는 강원도 춘천)는 삭주(朔州)로
하서주(河西州, 治所는 강원도 강릉)는 명주(溟州)로 명칭이 변한다.
그리고 수도(首都) 금성(경주)을 제외한 5소경은 금관경(김해)과 남원경(남원), 서원경(청주), 중원경(충주), 북원경(원주)이었는데 지금의 광역시 개념과 상당히 흡사하다.
4.2.고려시대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지방행정구역이 다시 개편되는데 <고려사절요>에 보면 고려 6대 왕 성종 2년(983년)에 12목(牧)이 설치되고 성종14년(995년)년에는 지금의 도(道) 개념인 9주가 10도로 바뀌면서 10도(道)·3경(京)·5도호부(都護府)·8목(牧)·양계(兩界)로 다소 복잡한 구조로 변하게 된다.
10도는 관내도(關內道) ·중원도(中原道) ·하남도(河南道) ·강남도(江南道) ·영남도(嶺南道) ·영동도(嶺東道) ·산남도(山南道) ·해양도(海陽道) ·삭방도(朔方道) ·패서도(浿西道)인데 이 10도(道)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6道가 되고 7道로 행정개편이 되다가 현종 9년(1018년)에 5道 양계(兩界)로 정착되었다.
5도 양계 밑에는 4도호부(都護府)와 8목 그리고 군(郡)·현(縣)·진(鎭) 등이 설치되는데 5도와 8목, 군, 현은 행정중심의 구획이라면 양계(兩界)와 4도호부, 진(鎭)은 군사적 성격이 강했다.
5도(道)는 경상도(慶尙道)·전라도(全羅道)·양광도(楊廣道) 서해도(西海道)·교주도(交州道)인데 양광도는 충청도와 경기남부지역이고 교주도는 지금의 경기 동부지역과 강원도 서부지역이며 서해도는 황해도지역이었다.
양계는 북계와 동계로 호칭되다가 후에 서북면(西北界)과 동북면(東北界)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북계는 서경(평양)을 포함하는 평안도지역이고 동계는 원주와 원산이 포함되는 강원도 동부와 함경도 남부지역이었다. 양계의 책임자는 병마사(兵馬使)이며 병마사 아래 지역 책임자를 방어사(防禦使)라 했다.
3경(京)은 개경(개성)과 서경(평양) 동경(경주)이었는데 성종14년 개경이 개성으로 명칭이 바뀌면서(승격되고) 3경에서 제외되고 대신 문종 21년(1067년)에 양주(楊州 서울지역)가 남경으로 개편되어 3경 시대가 지속되었다. 3경의 통치 책임자는 유수사(留守使)·유수지사(留守知事)라고도 했지만 대체로 유수(留守)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4도호부(都護府)는 경상도(경주)에 안동도호부, 서해도(해주)에 안서도호부, 전라도(전주)에 안남도호부 그리고 북계에 안북도호부를 설치했다가 현종 9년(1018년) 경주가 동경(東京)으로 승격되면서 안동도호부가 경주에서 안동으로 이전되고, 안남 도호부가 전주에서 수주(樹州=부평)로 이동하고 동계(東界)지역에 안변도호부가 새로 신설되면서 5도호부가 되었다. 도호부의 책임자는 부사(府使)라 했는데 고려시대 부사는 지방장관인 지금의 도지사와 같은 직급이었다.
8목(牧)은 광주(廣州 경기도) ·충주(忠州) ·청주(淸州) ·진주(晉州) ·상주(尙州) ·전주(全州) ·나주(羅州) ·황주(黃州 황해도)에 두었는데 12목에 속했던 양주(楊州) ·해주(海州) ·공주(公州) ·승주(昇州)가 8목에서 제외되었다. 목(牧)의 책임자는 목사(牧使)라 했다. 고려시대 지방정부(道)의 관리 책임자를 안찰사(按察使) 안렴사(按廉使)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항시 상주(常住)하는 책임자가 아니라 감시, 감독 책임자의 성격이 강했고 실제적 도(道)를 관할 통치하는 책임자는 군사 행정의 책임자인 도호부의 도호부사(都護府使=府使)가 그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도호부 관할 아래에는 주지사(州知事) ·군지사(郡知事) ·현령관(縣令官)을 두어 관할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충렬왕 34년(1308년)에는 서경·남경.동경을 평양부·한양부·계림부로 개편했다가 공민왕 5년(1356년)에 서경을 비롯하여 동경 남경을 다시 복구하고 1362년에 또 다시 평양부·한양부·계림부로 바뀌었다.
4.3.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대체로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였으나 1394년(태조 3년)에 양광도를 충청도로, 교주도와 강릉도(交州江原)를 합쳐 강원도로, 서해도를 풍해도(豊海道)로 고치고 경기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고 전라도 경상도 그리고 서북면(西北面:평안)과 동북면(東北面:함경)체제를 유지하다가 태종 2년(1401년)에 경기도는 다시 합해지면서 6도 2면 체제로 지방행정구획이 바뀐다.
태종 13년(1413년)에 풍해도를 다시 황해도로, 서북면을 평안도로 고치고, 동북면을 영길도(永吉道)로 하면서 8도 행정구역 체제가 정착되는데 영길도(永吉道)는 태종 16년에 함길도(咸吉道)로 고치고 함길도는 영안도(永安道)를 거처 함경도(咸鏡道)가 된다. 이 8도 체제는 1895년 23부(府) 체제를 거쳐 1896년 13도(道) 9부(府) 339군(郡)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되기까지 근 500년간 지속되었다.
고려 후기에 소경이 부(府)로 바뀐 체제가 조선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어 개성·강화·광주(廣州)·수원 등에 부(府)가 설치되고 이곳을 유수(留守)가 통치했는데 유수의 품계는 광주 수원은 정2품이 개성 강화는 종2품이었으며 정원은 각각 2명씩 두었지만 1명은 경기관찰사가 겸직하였다. 하지만 실제 행정과 군사업무는 상임(常任) 유수가 담당하고 관찰사는 유수의 변고시 대리 성격이 강했다.
조선시대에는 주(州)의 명칭을 가진 도시 20여 곳을 목(牧)이라 하였는데 경기도에 여주 ·파주 ·양주의 3목, 충청도에 충추 ·청주 ·공주 ·홍주(洪州.홍성)의 4목, 경상도에 상주 ·진주 ·성주의 3목, 전라도에 나주 ·제주 ·광주 ·능주(綾州:화순군)의 4목, 황해도에 황주 ·해주의 2목, 함경도에 길주(함북), 평안도에 안주(평남) ·정주(평북) 2목을 두었다.
조선의 지방 행정조직은 전국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 ·강원도 ·함길(咸吉)도 ·평안(平安)도 8도(道)로 나누고 8도 아래 ·목(牧), 부(府) ·군(郡) ·현(縣)을 두었다.
도(道)에는 관찰사(觀察使)가 장관으로 행정 ·군사 및 사법권을 행사하며 지역 수령을 지휘 감독하였고 부윤(府尹)은 문관의 외관직(外官職)으로 관찰사와 동격으로 경상도 경주부(慶州府)와 전라도 전주부(全州府) 함경도 영흥부(永興府:뒤에 咸興府) 평안도 평양부(平壤府), 의주부(義州府)를 두었다. 이 밖에 수원부 ·광주부(廣州府) ·개성부 ·강화부의 장은 부윤이라 하지 않고 유수(留守)라 하였는데 유수는 부윤의 상위 계급으로 지금의 대형 광역시 책임자(시장)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는데 개성부와 강화부는 부윤이 통치하기도 하였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는 대도호부를 설치했는데 대도호부의 책임자는 대도호부사였다. 하지만 일반적 호칭은 부사였으며 대도호부사의 직급은 목사와 비슷하거나 높은 정3품이며 대도호부가 설치된 곳은 강릉,영변,안동,창원,영흥이었다. 그리고 여주(驪州), 광주, 제주, 상주 등의 20개 목(牧)은 목사(牧使)가 책임자이고 군(郡)을 관장하는 책임자는 군수(郡守), 현(縣)의 책임자는 규모가 큰 현은 현령(縣令) 그렇지 않으면 현감(縣監)이라 했다.
1895년에 23부(府) 체제를 거쳐 1896년 8월 다시 전국이 13도 9부 339군(郡)으로 구획되었는데 9부는 한성부(서울) ·광주부(경기도) ·개성부(경기도) ·강화부(경기도) ·인천부 ·동래부(東萊府 부산) ·덕원부(德源府 함경남도 원산) ·경흥부(慶興府 함경북도 경흥) 수원부(경기도)였지만 몇년의 시차를 두고 부(府)는 상당한 변화를 거쳤다.
이때 한성부에는 판윤을 두고 다른 부에는 종전과 같이 부윤을 두었지만 대한민국 건국 이후 1949년 7월 공표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부(府)는 시(市)가 되고 부윤은 시장이라 불렀다.
4.4. 한국
과거 부(府)급 지방 핵심도시는 직할시를 거쳐 1995년 광역시가 되었는데 현재는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 울산 6곳이 있다. 지방행정구역은 지금은(2009년1월 기준) 1개의 특별시(特別市)와 6개의 광역시(廣域市) 제주를 포함하여 9개의 도(道)와 74개의 시(市)를 포함하는 230여개의 기초단체(시, 군, 구)로 구획되어 있다.
5. 관직과 직급 그리고 현재 관직과의 비교
5.1. 도지사, 광역시장급 지방장관
판윤(判尹)=조선시대=한성부의 책임자=정2품=지금의 서울특별시장
군주(軍主)=총독(總督)=도독(都督)=신라시대=9주의 책임자=지금의 도지사
부사(府使)=고려시대=5(6)도호부(府)의 책임자=지금의 도지사급
병마사(兵馬使)=고려시대=2계의 군사행정 책임자=도지사급 군(軍)사령관
유수(留守)=고려, 조선시대=소경(小京)의 책임자=정2품=대형 광역시 시장=부산, 대구, 인천
관찰사(觀察使)=감사(監司)=조선시대=8도의 책임자=종2품=지금의 도지사(道知事)
부윤(府尹)=조선시대=부(府)의 책임자=종2품=규모가 작은 광역시장(광주, 대전, 울산)
5.2. 지방 대도시급 책임자
목사(牧使)=고려시대=8목의 책임자=지방 거점도시의 책임자(市長)
주지사(州知事)=고려시대=도호부 산하 지역 책임자=목사급
방어사(防禦使)=고려, 조선시대=방어주(防禦州)의 책임자=목사급 최전방 지역 군사행정 책임자
부사(府使)=조선시대=5大도호부의 책임자=정3품=군사적으로 중요한 지방대도시의 책임자
목사(牧使)=조선시대=20목의 책임자=정3품=중급이상 도시의 책임자
5.3. 일반 시, 군 책임자
태수(太守)=신라시대=120여개 군(郡)의 책임자=일반도시의 시장(市長)과 군수
군지사(郡知事)=지군사(知郡事)=고려시대=도호부 산하 지역 책임사=시장, 군수급 책임자
부사(府使)=조선시대=75도호부의 책임자=종3품=일반도시의 시장(목사보다 계급이 낮다)
군수(郡守)=조선시대=82군의 책임자=종4품=지금의 군수
5.4. 읍,면의 책임자
현령감(縣令監)=고려시대=도호부 산하에 있는 가장 작은 지역 수령(首領)=읍면장
현령(縣令)=조선시대=26여개 큰 현(縣)의 책임자=종5품=지금의 읍장(邑長)
현감(縣監)=조선시대=139개 작은 현(縣)의 책임자=종6품=지금의 면장(面長)
5, 6. 참고
부(府)는 원래 도호부(都護府)의 의미로 지방정부(政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고려시대 도호부(都護府) 책임자는 지방장관(도지사)과 같은 역할을 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방장관 역할을 하는 관찰사(觀察使)라는 직책이 신설됨으로 도호부는 지방정부의 보좌 기능을 하는 지금의 기초단체역할을 하게 된다.
도호부의 책임자는 일반적으로 부사(府使)라 호칭하지만 고려시대 부사와 조선시대 부사(종3품)는 직급(職級)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고려시대 부사(府使)는 도지사급이라면 조선시대 부사는 일반도시의 책임자(시장)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고려시대 품계와 조선시대의 품계는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품계는 조선시대의 관리에게만 표시했다.
[출처]신라 고려 조선 한국의 지방행정조직|작성자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