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창건과 함께 세워졌고, 전각의 명칭 역시 성종의 명을 받들어 좌찬성 서거정이 지어올렸다.
양화당 역시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순조 30년의 대화재를 거쳐 순조 34년(1834)에 재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궁궐지>에 의하면 명종 20년(1565) 임금이 양화당에 임어하여 독서당 문신을 친히 시험보기도 했다고 한다. 고종 15년(1878)에는 철종 비인 철인왕후 김씨가 이곳에서 승하하기도 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 곳 양화당에 처음 거처한 일로 인해 양화당은 지금도 '인조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6칸 측면 4칸이며,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