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양한 취미를 좋아하고 즐기고 있음에도
유독 제일 못하는 것은 그림 그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 있을때 그림전시회가 있거나 유명화가의 그림을 보러가고 인사동에도 가끔 들러
겔러리를 찾기도 하며,
외국여행을 할때마다 미술관을 들러 감상을 해보지만
때론 난해한 추상화등을 볼때는 도대체 그림이
내게 전하려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저 화가는 무슨 의도로 그런 그림을 그렸고
무슨 뜻과 생각을 전하려 하는 것이지?
도대체 알수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명화감상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나도 알고 여러분도 함께 배워보고자 글을 써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화가의 작품이 고가에 거래되는 이유도 단순히 부를 축적하고 늘리는 투자목적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그림이 인간에게 주는 무형의 감정적인 유익의 요소가 크기때문이고
파리 르부르박물관의 모나리자 그림앞에 발디딜틈없이 사람들이 빼곡히 모이는 것 또한
보는 이의 마음속에 무언가 뭉클한 감동이나
서정을 느끼는 이유일것이다.
그림이 사진과 다른 이유도 사진은 단순히 있는 사실을 인화지에 담는 사실의 복사에 불과하지만 그림은 작가의 생각과 구도, 색감, 형태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다양한 메세지를 담고있어 인간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무언의 대화를 하게 되고 정서적 위안을 주기도 한다.
감상하는 방법이 딱히 정형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림을 좀더 잘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과 같이
사전 준비를 하고 간다면 보다 알찬 그림 감상이 가능하다. 그림 보는 방법에 정답은 없지만, 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술가들이 어떤 시대상황에서 이런 명화들을 그렸는지?
그림을 주문한 이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이 그림들이 얼마에 팔리고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미술관에 들어갔는지?
또 당대의 평가에 비해 후대의 평가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전시회 방문 전 그림이 그려진 시대, 작가의 의도,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감상 포인트 등을 미리 알아놓는다면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미리 자료를 찾기 힘들다면 전시회장의 도슨트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미술 작품을 적극적으로 감상하려면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화가의 재치, 도상,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미술 전문 칼럼니스트 동요우요우가 명화가 재미있어지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동요우요우는 ‘손바닥 위 미술관’에서
“명화를 해석하려면 그림을 관찰하라”고 제시한다. 저자는 “작품의 세부적인 부분과 인물 표정을 하나하나 따져 ‘왜?’라고 묻기 시작하면
그림이 흥미로워진다”고 말한다.
음악을 듣고 영화 뮤지컬 스포츠를 관람하는 취미생활도 따지고 보면 나 자신이 기쁘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때문이다.
그림 또한 우리가 전문 화가나 예술가가 아닐지라도
그림속에 담겨진 메세지를 읽고 느낌으로 전해오는 감동으로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찾을 수 있다면
행복으로 다가서는 즐거움일 수 있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더 많은 고상한 취미를 찾고 주변에 좋은 친구를 두며 멋지게 익어가는
꽃중년의 풍요로운 삶을 누려보자.
■ 다빈치의 모나리자 밀레의 만종
[출처] 모나리자. 작성자 두오모
루브르 미술관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모델의 이름은 1479년생의'모나리자 게라르디'이며 지오콘도의 아내가 된후 지오콘다라고 불렸으며 음악을 아주 좋아했던 관계로 레오나르도가 그녀의 초상화를 제작할 동안 가수와 연주자를 동원하여 그녀의 미묘한 미소를 항상 유지시켰다고 한다. 눈섭이 그려있지 않아 미완성으로 보기쉽다. 그러나 이것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정취가 담긴 정원이 그림의 배경이리라 짐작하겠지만, 전혀 다른 풍경이 전개된다. 험준한 바위산이 다소나마 부드럽게 보이는 것은 짙게 드리워진 안개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계절과 시각을 헤아릴 단서는 찾을 수 없고, 마치 늑대나 박쥐의 소굴로 딱 알맞아 보인다.
이런 환영과 같은 경치와 모나리자는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모나리자의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는 어깨에 걸친 숄의 주름에서 나온 것 같으며, 왼쪽 꼬불거리는 작은 길의 불그스름한 빛은 모나리자 소매의 구릿빛이 메아리친 것 같다.
다리와 그 밑을 통과하는 길에서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지만 시선을 위로 올릴수록 원시 자연의 낯선 풍광이 이어진다. 이어서 얼굴 주위의 근접하기 어려워 보이는 얼어붙은 대지가 따뜻하면서도 친밀한 모나리자의 시선과 어우러져 복잡한 인상을 만든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화면속에 모든 것이 세심한 배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레오나르도는 모나리자와 풍경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기 위해
배경의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흐릿하게 처리했다.
자세히 보면 모나리자에게는 외부의 빛이 전혀 닻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신을 감싸는 황금빛 그늘은 촛불의 어른거림을 연상시키는데, 그래서인지 모나리자는 열린 창이 아니라 그림 앞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출처]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모나리자.작성자 루살로메
만종
그림을 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흥분되어있던 내 자신이 안정되는 걸 느낄 수 있고, 이런 농촌의 따스한 정경과 평화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힘든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수확에 대해 하늘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그려낸 만종은 농부들의 건강한 마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땅과 하늘에 대한 사랑도 보여준다. 특히 따뜻한 계열의 노을색을 사용함으로써, 엄숙하고 장엄한 자연 아래 부부의 소박하지만 참되고 신실한 신앙심 을 부각시킨 것 같다.
하지만 만종의 이런 평화로운 모습 뒤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사실 초판에는 저 바구니 안에 씨감자 대신 죽은 아기의 시체가 그려져있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1800년대로 이 때 유럽사회에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는 상황들이 만연했다. 결국 이 부부의 아이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싸늘한 시체로 변해버리고 이들은 수확에의 기쁨을 기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아이의 마지막을 기도한 것이다. 하지만 밀레의 친구는 큰 충격을 우려해 아기를 그림에서 빼자고 했고 밀레는 이를 씨감자가 든 바구니로 바꾸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에게는 평화로운 농촌의 정경을 담은 그림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출처] 밀레-만종|작성자 핸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