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기독교 회개 요약

작성자밝은 햇살|작성시간08.12.18|조회수253 목록 댓글 2

* 순정기독교 회개 요약


509



참된 믿음과 인애는 회개없이 얻을 수 없고 

회개는 자유의지없이 행해지지 않는다.



하나님 안전에서 혐오되는 심한 악들의 제거는 

오직 회개만이 가능하다. 


회개없이 중생은 없다.



중생되지 않은 사람은 

개전의 정이 없는 완고한 자이기에 마비 상태에 있는 자와 같아서 

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간통자가 창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죄를 품고 사랑한다.


1 회개는 사람 안에 있는 교회의 제일 요건이다.


510



사람의 중생은 


악한 영들의 군대가 횃불을 들고 자기를 불더미 위에 던지겠다고 위협하는 것을 피하듯 

죄인 악들을 멀리하고 피하는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 많은 요소들이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나 회개는 그를 교회 안에 있게 한다.



회개는 

악을 행하는 것을 막고 또 예방한다.



회개 이전에 중생과 관련이 없는 이유는 


구원을 위한 신앙의 여러 중요한 관념들이 

그의 이해에만 머물고 의지에 자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개는 

그 관념을 의지에 머물게 하여 영구적이 되게 한다. 

사상은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는 덧없는 것이다. 


결국 실질적 회개는 

의지에 영향을 주고 이로부터 사상에도 영향을 주어 죄악을 끊게 하기에 

사상만의 회개가 아니라 의지의 회개인 것이다.



회개가 교회의 첫째 요건이기에 

주님은 죄사함을 받기 위한 회개를 가르치셨다. 


사람은 


회개하는 것만큼 

죄가 옮겨지고 사해진다.(죄의 세력이 약화되다) 


회개로 죄가 옮겨지지 않고서는 사람 안에 교회가 들어설 수 없는 것은 마치 점령된 도시에서 적군을 몰아내지 않고서는 거기 질서를 되찾을 수 없는 것과 같다.


2 통회는 믿음을 시작하게 하고 복음의 위로를 불러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회개가 아니다.


512-513


- 통회는 사람이 범죄할 때 영벌과 연관지어 악에 기우는 경향성을 두려워하는 마음 상태, 또는 죄 의식에서 오는 불안, 비애, 공포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를 두려워하는 마음 상태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사람이 아담의 죄를 상속했으며(유전죄) 또한 악에로의 경향성 또한 상속받았기 때문에(유전악) 그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고 정죄와 영원한 죽음에 처해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고백일 뿐이다. 


이런 고백 자체가 회개로 인식되지만 

그것은 명백히 회개가 아니다.


514


- 회개가 아닌 통회는 명백하게 중요성이 없다.


515



회개와 인애를 강조한 카톨릭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혁파들은 회개를 통회로 대체하였으나 

그리스도의 피공로에 의한 전가를 다짐한 많은 이들이 

훗날 영계에서 자신은 결코 통회할 필요가 없음을 고백한다. 


왜냐하면 이미 피공로로 깨끗이 되어 지옥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케 되었기에 

지옥의 고통과 양심의 가책을 부르는 통회는 더 이상 필요없기 때문이다.


3 사람이 죄인이라는 입술만의 고백은 회개가 아니다.


516-517



인애와 회개없이 죄를 사하고 중생하게 한다는 개혁파의 선언은 거짓이다.



마귀도 입술만의 고백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다. 


즉 지옥의 고통이 위협하고 그런 생각이 머리 위에 드리워질 때 

아주 진지한 연기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심중의 고백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태에서도 여전히 악한 욕망은 내면에서 이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518-519



십자가 수난에 의한 피공로의 구원을 전적으로 수용할 때 


그는 사실상 인애와 회개가 구원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 앞에 분명히 선언한 셈이다. 


그럼에도 설교에서는 회개와 인애가 소리 높이 외쳐지고 있는데 이는 위선적 예배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인애와 회개를 외치지만 


그것은 도덕적인 것에 속할 뿐 

그 심중에는 인애와 회개를 의지할 수 없어 

피공로를 의지하려는 생각으로 꽉차 있기 때문이다.



겉사람의 진지한 연기로 진행되는 지식적 고백에 속지 말라  


“나는 나면서부터 헌데가 가득하며 문둥이며 부정합니다. 나는 머리 정수리로부터 발바닥까지 성한 곳이라고는 없으며 감히 하나님에게 얼굴을 들어 우러를 가치조차 없습니다. 내게는 죽음과 영벌이 마땅합니다. 당신의 아들을 보아서 내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모든 사람의 구원이 당신의 선하심에 따라 되오니 내가 당신의 자비를 간구합니다.” 


그 옆의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당신이 그런 줄을 압니까?” 

“내가 그렇다고 일러졌기 때문에 그것을 알지요.” 


그가 한 이 모든 고백은 진실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으나 

그는 실제로 자신 안에 있는 악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유는 자신의 죄가 모두 씻겨나갔다고 믿었기에 결코 자신을 검토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의 악도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심중과 의지가 그러하니 그는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진짜 성품이 드러났을 때 그는 지옥의 위선자들에게로 보내졌다.


- 그러나 위선자들의 이런 고백과 바르게 믿는 자들의 고백이 겉으로는 똑 같아 혼동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4 온갖 종류의 악들을 이어받고 있기에 사람이 회개로 그 악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는 악들 안에 남아 있어 구원될 수 없다.


521



사람들은 그들의 유전악의 기원을 아담의 죄에서 찾으나 이는 오류이고 

그 유전악은 사실 악을 향해 기우는 경향성을 뜻하고 

이는 부모 안에 그 기원이 있어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옮겨진다. 


사람은 악들 그 자체를 물려받지 않고 

일종의 악들의 특수한 경향성만을 물려받는다.



유전악은 매 세대마다 증가되고 확대되다가 마침내 악으로의 보편적 경향이 된다. 

그것은 중생에 의해서만 저지될 수 있다.



유대인들의 유전적 기질이 증대해서 그들이 기독교를 품에 안을 수 없게까지 되었다. 

그들의 내적 의지는 결정적으로 구원이 불가능한 상태에까지 도달되었다.


523



무지나, 압도해오는 정욕에 의해 죄에 이끌리는 경우는 죄가 전가되지 않는다. 

이때는 고의가 아니고 또 목적이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것에 이끌리는 삶에서도 

그 목적이나 의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유죄와 무죄가 가려진다. 


천계에서는 모든 것의 목적이 선이고 지옥에서는 악이다.



죄는 적시에 치료하지 않으면 

점점 더 깊어져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과 같다.


5 회개는 자신 안의 죄를 인식하고 개별적인 죄를 검토하는 것과 함께 시작된다.


525



기독교계에서는 어려서부터 많은 죄와 악에 대해 배우지만 


그가 실제로 자기 죄를 낱낱이 검토하여 이것이 죄다 라며 

그 죄에서 물러나기 전에는 


그 죄악들에 대한 인식은 별 효력이 없다.


526


- 영국교회에서는 성찬을 행하기 전 그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의 검토와 자신의 죄를 알고 시인하며 새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선행된다.



성찬을 받기에 합당한 자는 


일상적 삶의 언어와 행동을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 검토하고 

의지나 말, 행위로 범한 죄가 발견되면 자신의 죄를 통탄하며 하나님 앞에 

그 삶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이웃에 대한 죄는 화해와 보상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용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찬이 의미가 없고 

오히려 죄악을 증대시킨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지 않았으면 거룩한 식탁에 나오지 말라.


527



반성기에 도달하지 않은 소년, 소녀들, 반성할 수 없는 단순한 이들, 

여러 이유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 마음과 몸에 병이 찌든 이들은 


자기 검토가 불가능하나 


죄가 무엇인지 알고 자주 성언을 읽고 남을 가르치면서도 죄를 보지 못하는 자들은 다르다. 

성언에서 믿음과 인애에 대해 많이 배웠으면서도 그대로 살지 않는 이들은 다르다.


6 실질적 회개는 자기 검토와 죄의 시인, 주님에의 간구, 그리고 새 삶의 시작에 존재한다.


529



위선자가 상시 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나 

사람이 곤고와 고민에 처할 때 

자기 가슴을 치며 그 어떤 죄도 인식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죄악 가운데 있다고 말하며 

한숨과 신음을 발하고 가슴을 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그 한숨으로 그 사람의 욕정과 더불어 극성을 부리는 마귀가 떠나겠는가? 


그런 것은 명확히 회개가 아니고 

악한 행위에서 떠나는 것만이 회개의 의미이다.  


530



회개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그 순서는 자신을 검토하고 자기 죄를 알고 시인하며 주님께 간구함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십계명의 여섯은 사람에게 악을 끊을 것을 명하고 있다. 이 여섯 가지 악들이 회개에 의해 제거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성언과 구원은 결과적으로 이것, 

즉 회개로 악한 행위를 멀리하는 것에 달려 있다.



만일 사람이 어떤 때 성찬을 받을 준비를 하다가 깨닫게 된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죄를 인식하고 


그것에서 물러나면 


그는 실질적인 회개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는 천계를 향한 길에 서게 되고 그때부터 자연적인 데서 영적인 데로 변화되기 시작하며 

주님에 의해 새로 출생하기 시작한다.


531


- 사람이 자신을 영적으로 징계하지 않으면 사후 매질을 당하고 벌을 받는데 그것은 그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는 못하더라도 벌이 두려워 악을 행하는 것을 멈출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7 참된 회개는 사상의 검토 뿐 아니라 의지의 의도까지 검토해야 한다.


532



그 이유로 사람은 사고에 의해 말하고 의지에 의해 행동하기 때문에 

이해 뿐 아니라 의지도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지은 죄를 회개할 수는 있으나 


아직 그의 심중에는 

악을 생각하고 소원하는 면이 강하다. 


이는 나무를 찍었으나 뿌리는 남겨둔 것 과 같다. 


뿌리까지 뽑는 것이 

자신의 심중의 의도를 검토하는 회개에 의해 되어진다.



의도들의 검토는 

사상을 검토함으로 되어지는데 

그 이유는 의도들은 사상 안에 그 자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음이 악에 기울어질 때에 


법률의 공포나 명예의 손실을 두려워함이 아닌 

그것이 죄라는 이유 때문에 그것을 멈추기로 결심하면 


이는 참으로 진지하게 회개한 것이다. 


특히 더 참된 경우는 

그 악에 강하게 매력을 느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물러날 때이다.



만일 사람이 참고 견디면 

그 강한 의지의 쾌락은 마침내 무미하게 되고 지옥으로 옮겨진다.


533



권력애(지배욕)와 치부애(세상욕)이 사람 안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전자는 천계의 하나님이 되고픈 마음이고 후자는 세상의 하나님이 되고픈 마음이다. 


여타 모든 사랑은 

이 두 사랑에 종속되어 있고 그 이름은 군대다.  

이것들을 검토하기 힘든 이유는 그들이 깊이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권세욕과 치부욕은 


고귀한 자보다 비천한 자에게, 

부자보다 가난한 자에게, 

왕들보다 신하들에게 더 강하게 행사된다. 


왜냐하면 왕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권리와 부를 지녔지만 

이들에 대하여 마치 일반인들 어느 누구나와 같은 인식을 끝까지 지니고 가기 때문이다.



의지는 사람이 거주하는 집이고 이해는 바깥마당이다. 


이해의 지각과 사고들은 저 홀로 아무 것도 행하지 못하고 

각 사랑에 의해 암시되는 바에 동의하고 그것을 확인할 뿐이다. 


의지에 의해 각 종류의 사랑은 

그 환희를 내뿜고 그것을 이해의 지각들과 사고들 안에 주입한다.


8 자신을 검토하지는 않으나 악을 죄라는 이유로 물러서는 자들도 역시 회개하는 자다. 또 종교적 동기에 의해 인애의 일을 하는 자도 회개하는 자다.


535



여러 가지 이유로 개혁교도들이 

실질적인 회개를 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악을 행하는 다른 사람을 꾸짖어 말하기를 ‘그것은 죄다. 행하지 말라’ 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그것은 자기 통제는 의지에 속해 어렵고 

충고는 피상적 사고에 속할 뿐이기 때문이다. 


영계에서 자신의 의지를 통제하는 자는 사막에서 비둘기를 보기 힘든 것처럼 드물었다.



확실히 종교적 동기에서 인애의 일을 하는 자는 

실질적인 악들을 피한다. 


그러나 그들은 의지의 일들에 대한 검토는 매우 드물게 하면서 

자신들은 선을 행하는고로 악으로부터 자유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인애의 출발점은 

성언과 십계명, 세례와 성찬에서 가르치는대로 악을 피하는 것이다. 

자기를 검토하지 않고 어떻게 악들을 피하며 내적으로 정화되지 않고 어떻게 그의 선이 참되겠는가?



나는 모든 경건한 사람들, 건전한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성언을 읽을 때 그것에 동의하고 그것이 진리임을 알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행할 사람은 극히 적다는 것도 알고 있다.


536



오른편에 있는 자들 곧 양들에게 임금이 복을 주시다 


마 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왼편에 있는 자들 곧 염소들에게 임금이 저주를 내리다 


마 25:42-44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구절에서는 악을 행한 자들이 거론되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않은 자들이 거론되고 있다. 

즉 선을 행하지 않은 자들이 영벌에 처해지는 장면이다. 


그렇다. 선을 행하지 않은 자들은 악을 행한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악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악을 버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선을 행할 마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악을 버리는 것이 인애의 출발점이다.)


537



자연적 친절함에 의해서만 선을 행하고 

종교적 동기에서는 행하지 않은 자들은 

그들의 인애 안에 영적 선이 없으므로 사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연적 선은 육적인 것이고 부모로부터 상속된다. 

그러나 영적 선은 영에 속하고 주님의 보호 아래 새롭게 태어난다.


9 고백은 주 하나님 구주 예수 앞에 행해져야 하고 그뒤 악에 저항하기 위한 도우심과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538



보이지 않는 성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서는 안 되고 

신적 인성의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생각되고 접근되지 않고서는 

주님에 관한 모든 관념이 소멸된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양의 목자나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요 강도다.



신적 인성의 주님이 접근될 때 아버지 하나님 역시 접근된다. 

이것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이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539



자기 검토 후 


간구와 

고백의 의무가 


행해져야 하는데 


간구는 


주께서 자비하셔서 


회개한 악들에 저항할 힘과 

선을 행할 경향과 애정을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이고 


고백은 


회개하는 사람이 

자신의 악들을 살펴 인지하고 시인하고 

자신이 비참한 죄인임을 주님 앞에 선언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죄들을 


일일이 주님 앞에 열거할 필요가 없고 

그 죄들을 사해주실 것을 간구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자가 

이미 자신의 죄들을 찾아냈고 그것들을 자신 안에서 보았고 

주님 앞에 적나라하게 내놓았기 때문에 그런 열거는 불필요하다. 


더구나 그로 하여금 검토하는 일을 하도록 인도하신 이가 주님이시고 

그에게 그것들 때문에 슬퍼하게 했고 

동시에 그 악들을 저항해서 떠나도록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새 삶을 시작하도록 

영감을 주신 이가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죄를 사해주시도록 간구할 필요가 없는 이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죄들이 도말되는(지워지다, 말소되다, 삭제되다, 무효화되다) 것이 아니라 

옮겨지는 것이기 때문이고(죄의 세력의 약화) 


또 하나는 


주께서 자비 자체이시어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람에게 그 죄들의 어느 하나도 붙들어두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죄인들 용서 못하실까?



모든 악들은 

무수한 정욕들로 구성되어 있다.


10 실질적인 회개는 처음에는 매우 어렵지만 실천함에 따라 용이해진다


563



습관은 제 2의 천성이다. 

그러므로 어느 사람에게는 어려운 회개가 습관을 기른 자에게는 쉬워진다. 


자기 검토와 그렇게 해서 발견되는 죄의 고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 

경건한 자에게는 쉬우나 불경건한 자에게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그가 기대하는 목적으로 마음이 고취되고 

그것으로부터 습관은 생긴다.


11 회개나 자기 검토를 하지 않는 자는 마침내 저주가 되는 악이 무엇인지 구원을 주는 선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고 만다.


564


-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시인하지 못하는 악은 그와 함께 머물며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어 마침내 그의 속마음을 닫아 방해함으로 처음에는 감각적인 자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물질적인 사람이 되게 한다. 그는 저주의 악이건 구원의 선이건 관심을 두지 않게 된다.


- 악의 환희는 지옥의 환희다. 그것이 지옥에서 뿜어져서 발바닥 안으로 흐르고 등과 머리 뒤쪽으로 흐른다. 만일 그것이 머리 앞과 가슴 속에 흘러든다면 사람은 지옥의 종이 된다. 왜냐하면 대뇌는 이해와 지혜의 자리요 소뇌는 의지와 사랑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두 뇌가 있는 것이다.


565


- 감각적인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교활하다. 욕심 사납고 간음하는 자 그리고 남을 속이는 자들이 특히 감각적이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아주 지성적인 자로 나타난다.


- 마귀들은 감각적이며 그것이 심할수록 더 깊은 지옥 안에 있다. 지옥적인 영기는 사람의 감각적인 것과 연결되고 천계의 빛 안에서는 그들의 후두부가 공허하게 나타난다. 이같이 감각에 의해서만 추론하는 자들을 고대인들은 지식의 나무의 뱀이라고 불렀다.


- 자연적 지식은 이해의 말단이고 감각적 쾌락은 의지의 말단이다.


566



그러므로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당신 자신을 검토하라. 


그리고 당신들의 악들을 찾아내서 

종교적 동기에 의해 그것들을 제거하시라. 


만일 당신들이 

어떤 다른 동기에 의해 그것을 행하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 악들을 숨기는데만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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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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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디딤돌 | 작성시간 09.01.17 좋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작성자ykmoseskim | 작성시간 17.08.1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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