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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 화엄경(華嚴經)

화엄경 강설 제17권 12 / 十六, 범행품(梵行品)

작성자活仁 正修스님|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화엄경 강설 제17권 12
十六, 범행품(梵行品)




(10) 스님을 관찰하다
若僧이 是梵行者인댄 爲預流向이 是僧耶아 預流果가 是僧耶아 一來向이 是僧耶아 一來果가 是僧耶아 不還向이 是僧耶아 不還果가 是僧耶아 阿羅漢向이 是僧耶아 阿羅漢果가 是僧耶아 三明이 是僧耶아 六通이 是僧耶아


“만일 스님이 범행(梵行)이라면, 예류향(豫流向)이 스님인가? 예류과(果)가 스님인가?
사다함(斯多含) 향(向)이 스님인가? 사다함(斯多含) 과(果)가 스님인가? 일래향(一來向)이 스님인가? 일래과(一來果)가 스님인가? 불환향(不還向)이 스님인가? 불환과(不還果)가 스님이가? 아라한(阿羅漢)향이 스님인가? 아라한(阿羅漢)과가 스님인가? 삼명(三明)이 스님인가? 육통(六通)이 스님인가?”


강설 ; 부처님과 부처님의 교법과 다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님이라는 사실에서 청정범행을 관찰해보는 것이다. 먼저 스님이라는 실체는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스님이라고 불리기까지의 과정과 인연들을 분석한다. 처음으로 출가해서 승가대중에 참예하는 것을 수행자의 무리에 참예한다는 예류향이다. 그 결과를 예류과라한다. 다음 단계를 일래[사다함]향과 불환[사다함]향과 아라한으로 이어진다. 요즘의 표현대로라면 행자, 사미, 비구, 중덕, 선덕, 대덕, 대사, 종사, 대종사, 큰스님, 작은스님 등이다. 모두가 허망한 말일뿐이다. 그냥 하나의 사람이다. 각각의 이름에서 어찌 스님을 찾겠는가. 설사 삼명과 육통을 얻었다 하더라도 역시 하나의 사람일뿐이다. 스님도 존재하지 않는데 어디서 청정범행을 찾을 것인가? 청정범행이란 스님들의 행동거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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