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동쪽으로 흐르는 이유 / 효봉스님
" 천지에 한 물건이 있는데,
형상이 없어 언제나 고요하며
홀로 삼라만상의 주인이 되어서도
사계절을 따라 변하지 않는다. "
만일 이것과 계합(契合)하면 성인 중에서도 성인이요,
하늘 가운데서도 하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그는 벌레 가운데서도 뼈 없는 벌레요,
귀신 가운데서도 이름 없는 귀신이니라. "
한참 있다가 말씀하셨다.
" 세 사람이 동행하는데 한 사람은 이렇게 오고,
한 사람은 이렇게 오지 않으며,
한 사람은 전연 관계하지 않는다.
세 사람이 동행하는데 어째서 이러한가? 각자 살펴보라. "
또 말씀하셨다.
" 대중들의 눈동자에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중들은
지금 금가루를 자신의 눈에 뿌리고 있구나.
부처란 별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마음이다.
마음이 인연을 따라 습관이 성품을 이루기 때문에
선하고 악함과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차별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마치 여울물이 동쪽을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으며,
또 자벌레가 푸른 빛깔의 먹이를 먹으면 푸르게 되고
누른 빛깔의 먹이를 먹으면 누르게 되는 것과 같은 도리이다.
이런 견해는 작은 비유로써 큰 것을 보인 것이니,
왜냐하면 무명의 힘은 크기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물들지 않으면서 물들어 범부가 되며,
반야(般若)의 힘은 크기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물들면서 물들지 않아 성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마치
어룡(魚龍)이 큰 바다 속에 사는 것과 같다.
아무리 큰 바람이 불지라도 바다 밑까지는 이르지 못해
어룡의 잠에는 방해가 되지 않으며,
세상 티끌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자성의 불토(佛土)에는
이르지 못하므로 우리 공부에는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니,
역순(逆順)의 경계에 부디 흔들리지 말라. "
한참 있다가 주장자를 들고는 말씀하셨다.
" 말해도 삼십봉(三十棒)을 내릴 것이요,
말하지 않아도 삼십방을 내릴 것이니,
어떻게 하면 그 삽십방을 면할 수 있겠는가? "
그래도 대중이 말이 없자, 이에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 획 없는 여덟팔자((八)를 허공에 쓰니
큰 기틀과 작용이 그 가운데 있도다.
선정(禪定)이나 해탈이 귀하기는 하지만
달마의 문하에서는 가풍 잃는 것이네 "
■ 효봉 스님 ■
1923년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로 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회의에 빠져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출가했다.
이후 밤낮으로 수행을 거듭하였는데,
한 번 앉으면 절구통처럼 움직이지 않아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법기암 뒤에 토굴을 짓고 들어가 수행하였으며
1936년에는 한암, 만공선사로부터 도를 인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