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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 참선參禪 강좌

일체가 잘 사는 길

작성자活仁 正修스님|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일체가 잘사는길

사람은 본래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또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가?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기 이전에
이미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잘사는 문제에 대해 말하려 한다.
농사짓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공장 직공,
정치인, 학자, 종교인 심지어는 석가, 공자, 예수에게
물어 볼지라도 잘살려는 마음...
이 생각만은 똑같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을 잘산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잘 살려는 마음을 가졌고
잘살 수 있는 어떤 법칙은 틀림없이 필요하다.
그런데 잘사는 법을 말하기 전에
먼저 어떤 것을 잘사는 것이라고 하는가 알아야 한다.
부귀와 명예를 가졌다고 잘 산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면 부귀와 명예를 헌신짝같이 던져버리고 뜬구름,
흐르는 물로 살림을 살아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양하는
사람을 잘사는 사람이라 할 것인가?

아니다.
이 모두가 겉치레의 잘사는 방법이 될는지는 몰라도
참된 의미의 잘사는 방법은 되지 못한다.
구할 것이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원망과 성냄이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미움과 질투가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또 강제와 속박이 없고
해탈과 자유가 있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보다 위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말은 곧 죽어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농사짓고, 장사를 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는
모두 죽지 않으려는 노력인데
그래도 결국 죽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과학자, 종교인, 철학자 등 일체 중생은
누구나 다 업보중생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견해도 역시 업안이므로
해탈하여 진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런 진리의 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
심성수양, 곧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함이니 견성이다.

견성이란
자기성품 자리, 일체만유의 본성 자리,
곧 진리이니 이 진리인 본심자리를
맑고 청정히 가져 만사만리를
통찰할 줄 알면 지혜의 눈을 얻는 것이다.
중생의 육안으로는 안보이나
이상하고 묘하게도
성품은 각자가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도
못보고 못찾는 것이 묘한 이치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어떻게 견성을 이루고
이 고해에서 헤어날 수 있는가.
탐진치 삼독과 오욕병을 고치지 않고는
자기 성품을 볼 수 없나니
먼저 삼독과 오욕락을 버리고
육바라밀을 향해 나가야 한다.
그럼으로 해서 죽음에 직면해 있는
우리 일체 중생은 불안과 공포에서 헤어나
영원한 절대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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