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시대의 역사를 배우며 우리는 충성스런 대제사장 사독과 만나게 된다. 사독(Zadok)은 과연 누구인가? 대학에서 학문적으로 배우기 전의 사독은 나에게 있어 그냥 성경에 등장하는 대제사장이었다는 것 외에 별다른 의문이나 의심이 없던 존재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사무엘서나 열왕기 그리고 역대기에서 등장하는 이 사독이란 존재가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의문의 대상이며 의심되는 문제의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사독에 대하여 비평적인 학자들의 저서들과 연구 서적들을 아직 접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학설들이 주장되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약간의 토론도 하게 되었다.
얕은 지식의 무기력함을 느끼면서 나는 성경을 통해 사독을 알아보았으며, 좀 더 세밀하게 성경을 탐독하게 되었다. 사독, 사독을 알아보기 위해서 내가 제일먼저 선택한 방법은 그의 족보를 추적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였으며, 그것을 통하여 그의 근거와 당위성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이것이 성경의 교훈과 위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 1:4) 라고 말하며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 주문하고 있지 않는가? - 되긴 하지만 내 궁금증을 억제하기에는 나의 피가 너무 뜨겁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지 못한 채 사독을 연구하는 것에 약간의 불만을 느끼지만 성실하게 성경을 추적하였으며, 성경을 통한 사독의 정체성을 찾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사실 성경보다 다른 어떤 것도 사독을 정확하게 문서화 한 것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이 생각에 대하여는 조금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사독을 알아보려 한다.
성경에서 증거 하는 사독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후손이며(대상6:1~3) 아히둡의 아들이자 아히마하스의 아버지이다(삼하8:17; 18:19; 대상6:8). 이 사독은 다윗의 집권과 함께 갑자기 등장 한다. 그후 다윗의 왕국에서 아비아달과 함께 공동제사장으로서 활동하며 오벧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 주도적인 사역을 담당한다.(대상15:11~12) 그리고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이 도피의 여정에 오를 때 예루살렘에 남아 법궤를 사수 하였으며, 그의 아들 아히마아스를 연락병으로 사태의 추이를 다윗에게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한다.(삼하15:22~29; 35. 17:15~22) 그 후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으로 회정할 때 다윗의 의중을 유다 장로들에게 전하여 마음을 돌려 다윗을 영접하게 한다.(삼하19:11)
이렇듯 사독은 다윗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충실한 동지이자 충성스런 아론과 비느하스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대제사장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민수기 25장을 보면 바알에게 미혹되어 미디안 여인과 음행을 저지르는 이스라엘 자손을 추살하는 비느하스가 등장한다. 이 비느하스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제사장직분을 언약하는데 그것이 “평화의 언약”이다.(민25:1~13) 이 언약을 받은 후예답게 신실하게 다윗을 섬겼던 사독은 솔로몬의 등극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아도니아의 반역이 발생할 때 그의 동료 아비아달과는 달리 사독은 솔로몬의 진영에 서며, 솔로몬에 기름을 부어 왕으로 임명하는 사명을 수행한다.(왕상1:34.38~39.44~45) 솔로몬이 왕이 된 후 아비아달이 제사장의 직분을 상실하자 비로소 완전한 대제사장으로서 사독과 그의 자손들이 유다의 성소에서 제사장의 업무를 반차대로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왕상1:7; 2:26~27.4:2.4) 그리고 그 후손들은 우상숭배와 죄악이 만연할 때에도 제사장직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성소를 지켜내고 있었던 사실을 성경은 증거 해 준다.(왕상1:8.대하31:10,겔40:46;43:19;44:15) 에스겔서 45장15절에 보면 사독(고결한.의로운)의 후손들이 그 이름의 뜻과 같이 책임감 있게 성소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론의 반차를 따라 비느하스와 사독으로 이어지는 지성소의 의로운 수호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과 만나게 되었는데, 왜 사독이 다윗시대에 갑자기 제사장으로 나타나느냐 하는 것이다.(삼하8:17) 다윗의 논공행상에 첫 등장하는 사독을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사독을 추적하던 나는 역대상12:28절에서 약간의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역대기 기자는 사독을 집안의 군대장관으로서 젊은 용사였다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사독이 “젊은 용사”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어서 그가 다윗에게 참여할 때 이끌고 온 군대-가문 혹은 집안장정들-의 인원수 인데, 22명이라는 적은 무리였다는 점에 나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이로서 추론해 보건데 그의 가문이 매우 기울었거나 아니면 다른 족장들에 비해서 그의 가문 사람들이 소극적으로 다윗을 추종했을 것이란 가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향후 사독이 보여준 충성심을 감안할 때 후자는 옳지 않다. 결론적으로 사독의 가문은 그리 번창 하지 않았으며, 적은무리의 군사였지만 최선을 다해 다윗의 정부에 참여 했다고 보는 것이 매우 타당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왜 사독의 가문이 이렇게 보잘것없는 인원으로 다윗의 무리 중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점이 발생했다. 아론계열에서도 엘르아살과 비느하스로 이어지는 정통제사장 가문이 다른 여타 가문들 보다 매우 적은 소극적 형태의 인원들을 파견한 것은 의문이다. 이런 것을 사실 성경으로 밖에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사료들이 인정되고 또 보충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재로서는 성경보다 확실한 것은 없으며 당연히 모든 가설들 보다 성경이 권위를 획득하는 것은 마땅하고 당연하다.
이제 사독의 가문, 즉 엘르아살과 비느하스로 이어져 내려온 아론계열의 대 제사장 계보를 차근차근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려한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의 집권기에 보면 요단강을 시원하게 가르는 법궤를 어깨에 멘 제사장들이 등장한다. 물론 당연히 아론의 계보를 이어받은 제사장들 이였음을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다.(수3:14~17) 그 후 이들은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에도 역시 법궤를 메고 나팔을 불면서 백성들 앞서 진행하고 있는 것을 성경은 증거 해 준다.(수6:4~5) 이처럼 비느하스의 “영원한 언약”의 약속대로 여호수아 군대의 최선봉에서 하나님의 제사장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길갈에서 땅을 분배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그들은 중심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수14:1) 또 수22:13절에 보면 길르앗 땅을 분배받은 르으벤,갓,므낫세반지파가 돌아가는 도중에 요단강 가에 단을 쌓은 문제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비느하스가 파송되어 중재를 맡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렇게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의 혼돈의 시기를 헤쳐 왔던 엘르아살은 여호수아 말미를 죽음으로 장식하며 비느하스의 장례식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진다.(수24:33) 여호수아 기자는 마지막에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비느하스가 아버지 엘르아살을 장사하는 “받은 산” 이 에브라임(실로) 산지이며, 그곳에서 비느하스가 시무하고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찬란했던 여호수아 시대가 끝나고 사사시대로 접어들면서 나는 참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어느 곳에도 제사장들의 역할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느하스의 계보가 주도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혼탁한 우상숭배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으로 점철되는 음울한 기록들만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불신앙의 시대에 당연히 아론계열 제사장들의 울부짖음과 통곡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들리지 않는다. 진정과 신령으로 가슴을 찢는 예배와 기도의 제단이 상실된 시대, 참으로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던 시대였던 것이다.(삿17:6) 그마나 다행인 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고통 중에 하나님을 찾고 울 때, 당당하게 등장하는 사사들의 활약상이 나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사기의 종반부는 타락한 우상숭배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데, 미가의 우상사건과 단 지파의 배교, 그리고 타락한 제사장의 첩 사건 등의 치정을 고발하고 있다. 하나님의 침울한 눈길과 패역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기브온 인들의 만행과 레위인의 첩 사건은 끔찍한 살육을 자행하며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다. 베냐민 지파의 멸절을 막기 위해 길르앗야베스에서 처녀들을 납치하며, 그것도 모자라 실로에 예배하러 올라온 여자들을 취하는 참으로 암울한 시대였다. 그때(삿21:25), 즉 광기의 시대에 나는 또 하나의 단서를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것을 보는데, 놀라운 것은 이 와중에도 신실한 자들에 의해 실로에서 매년 절기가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다.(삿21:19) 사무엘의 등장이 곧 나에게 희망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제 사무엘서를 보려고 한다. 이때에야 비로소 실로의 제사장 엘리 가 등장한다. 비둔한 제사장인 그는 한나의 기도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의자에 앉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영적으로 매우 둔감한 제사장상을 연출하고 있다. 여호수아서에 등장하던 의기백배 했던 제사장의 모습은 종적 없고 탐욕으로 배부른 나태한 늙은 제사장 엘리 가 있을 뿐이다. 그의 아들들은 성전에서 행악을 저지르는 불량자이며, 타락한 제사장들이다. 그들의 행위를 볼 때 비참한 죽음은 동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인과율에 의한 필연적 결과였으며 예견된 것이었다. 엘리 가족의 죽음과 “영광이 없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가봇의 우울한 탄생을 끝으로 아론계열의 의로운 제사장들의 모습은 실종 된 듯이 보인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사무엘 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충실한 한 제사장”(삼상2:35)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향후 이 “충실한 제사장”개념은 정통 아론 가문출신의 사독과 영적 대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확연하게 계시의 완성을 이룬다.
사무엘에 의해 제의가 이뤄지고 있던 이스라엘은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의 명맥을 삼상14:3절에서 제공하여 주는데, 사울의 정권에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 아히야가 참여 하는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 아히야는 엘리의 아들인 비느하스의 손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엘리의 가문이 아직도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하나의 단서를 얻었는데 그것은 사독의 아버지로 기록된 아히둡에 대한 내력이다. 아히둡은 이가봇의 형제로서 비느하스의 아들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 기록으로 추론이 가능한것은 아히둡은 틀림없이 엘리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이며, 그러나 사독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상14장에 등장하는 아히둡의 계보가 다시 나타나는 곳은 삼상 21장 이다. 아히멜렉 이란 아히둡의 아들이 나타나며(삼상22:9)아히둡의 가족(아히야)이 사울과 동행한 것으로 보아(삼상14:2~3)그의 가족들이 실로에서 놉 땅-베냐민지파의 영토에 있음- 으로 이주해 제사장 임무를 수행한 듯하다.
그런데 이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제사에 사용된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제공해 줌으로서(삼상21:1.7~9) 아히둡 가문의 엄청난 비극이 발생한다. 에돔 사람 도엑의 눈에 목격된 이 사건은 사울에게 보고 되고, 사울의 명에 의해 놉에서 시무하던 85명의 제사장이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러한 와중에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도망하여 다윗에게 피신한다. 이것이 엘리 가문의 비극에 대한 대략적인 줄거리 이다. 하나님께 범죄한 엘리 가문이 거의 멸절되기 직전에 아비아달이 탈출함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 다윗과 솔로몬의 정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독은 이 가문 사에 전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아히둡 가문의 비극적 사건속에서 아비아달은 등장하는데 사독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안달이 날 정도로 성경을 탐독하게 하였는데, 역시 사독은 없었다. 그런데 이 사독이 삼하8:17절에 갑자기 등장 한다는 것이다. 엘리 가문 어디에도 안보이던 이름이 다윗의 논공행상 속에서 떡하니 아히둡의 아들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성경을 더 정밀하게 찾던 중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였는데 역대상12:28절이 그것이다. 사무엘서에는 기록된 것이 없지만 역대기에는 다윗의 군대에 젊은용사인 사독이 참여하고 있는 장면이다. 위에서도 기술한 것과 같이 사독은 22명의 집안사람들을 이끌고 다윗의 진영에 합류한 것이 기록으로 성경에 증거 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아히둡의 아들 사독은 다윗의 전쟁기간 중 젊은 장관으로서 생과 사를 함께 하며 사선을 넘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삼하8:17절의 아비아달과 함께 대제사장으로 직분을 임명 받은 사독의 등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갑자기 등장했다는 것은 분명 수정 되어야 하며, 그런 학설이 있다면 반드시 제고되어야 하며 수정돼야 한다.
그렇다면 의문은 놉 땅에서 제사장들이 사울에 의해 학살당할 시점에 과연 사독이 그곳에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또 어떻게 사독은 생존할 수 있었는가 이다. 더 나아가서 아비아달이 도망쳐 다윗에게 올 때 왜 사독은 함께 도망치지 않았을까 이다. 그리고 왜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는 사독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일까 -다윗의 예루살렘 입성 전까지- 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은 역시 역대상12:28절이 가장 타당할 듯하다. 사무엘서와 열왕기 기자는 사독을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주지만, 역대기 기자는 사독을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으며 그것은 사료로서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역대기의 기록들-족보- 의 진실성이 위협받고 있지만 그것은 합리적 사고와 비판적 시각에 의해서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 한다면 성경 어느 곳이 과연 합리적이고 타당한가? 자유스럽게 성경을 이성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들면 온통 거짓말뿐이며 신화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그런 자유주의 적인 측면에 반하여 역대기서도 다른 권위 있는 성경 목록처럼 존중 받아야 지당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신뢰성에 타격이 가해지며 역사의 고고한 흐름을 기록한 진실성 또한 의심받기 시작 한다면 성경은 그야말로 좋은 교훈 집에 불과한 지성적인 사상집이 될 것이다.
나는 이쯤에서 몇 가지 단서들을 가지고 당시의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첫째 단서로는 사독이 아히둡의 아들이라는 것과, 둘째 단서로 젊은 장관 이라는 것에 주목하려 한다. 물론 이것 또한 무지한 신학생의 가설에 불과할 수도 있으리라 사료되지만, 어차피 성경에서 명쾌하게 증명되지 않는 것들은 신학자들이나 교수들에 의해서 계속적인 연구를 필요로 요구하며, 또 계속적인 가설들이 생산되고 있지 않는가?
당시 놉 땅에 상주했던 제사장들이 아론계열의 제사장들 이며 비둔한 제사장 엘리와 그 아들들의 자손들 이라는 데에는 성경 기록상 아무런 이견을 제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삼상14장에 분명이 이가봇과 그의 형제 아히둡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가봇과 아히둡은 비느하스-엘리의 불량아들-의 아들이며 엘리는 그들의 조부가 되는 것이다.(삼상14:3) -그러나 역대기에는 이 엘리의 가문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그리고 아히둡의 아들이 아히멜렉이며, 아히멜렉의 아들이 바로 다윗에게 도피하여 사독과 함께 공동 제사장이 되는 아비아달 이다.(삼상22:9;22:18~23) 이들 3대가 전부 놉 땅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아히둡은 고령의 나이였을 것이다. 당시 제사장으로 시무하려면 적어도 20세 이상이 돼야 했으며, 25세가 돼야 정식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레위인은 이같이 할지니 곧 이십오 세 이상으로는 회막에 들어와서 봉사하여 일할 것이요(민8:24) 그러므로 아비아달이 25세 이상 되었다고 가정할 때 그의 조부인 아히둡은 상당한 나이였거나 이미 사망 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성경은 아히멜렉을 말할 때 아히둡의 아들이라고 지칭해 사망한 후일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면에서 다윗에게 도망쳐온 아비아달은 아마 젊은 제사장 이였을 것이다. 85인이 살해당할 때 그가 민첩하게 도망친 것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추리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궁금한 사독에 대하여 말해 보고자 한다. 사독은 아히둡의 아들이 틀림없다. 아히둡의 아들인 아히멜렉과는 형제지간이며, 아비아달에게는 삼촌이 된다. 왜냐하면 아비아달은 아히멜렉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그렇다면 사독은 왜 놉 제사장 학살 사건 때 등장하지 않으며, 또 어찌하여 그는 죽음을 면하고 생존할 수 있었는가 이다. 그곳에 사독이 과연 있었는가도 궁금한 사항이며, 더 나아가 사독의 아버지가 아히둡이라는 것은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발동한다.
지금까지의 사항으로 종합해 보건데, 아히둡은 아마 늦은 나이에 사독을 얻은 것 같다. 이미 사독의 형 아히멜렉은 장성하여 아비아달을 키우고 있을 즈음 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비아달이 초보 제사장의 업무를 감당하고 있을 즈음, 놉 제사장 학살 사건이 터졌을 것이다. 이때 사독은 아마 소년 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제사장의 업무를 수행하기위해 성소에 없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제사장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면 그도 형인 아히멜렉과 함께 살해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죽음의 순간에 아비아달은 수습 제사장으로서 약간 자유로이 활동 하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추리해 본다면 그것이 그가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닐까 한다. 그리고 사독이 죽음을 면한 이유 또한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또한 그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서 성경은 “세마포 에봇을 입은 ” 성인 제사장들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다(삼상22:18)
이런 측면에서 보다면 아직 너무 어려서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던 사독의 생존은 충분히 납득되고 이해되어 진다. 그 근거 또한 확실한 듯하다.(대상12:28) 되풀이해 말하지만 성경은 다윗에게 참여한 사독을 말하기를 군대장관 “젊은용사” 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사독이 다윗에게 나아왔을 때 그의 나이를 짐작 하는데 도움이 된다. 종합해 보면, 사독은 아마도 이미 장성한 조카 아비아달이 죽음을 피해 다윗에게 도피할 당시 소년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존이 가능했으며, 몰락의 가문에서 자라났을 것이다. 그 후에 다윗에게 먼저 합류한 아비아달을 찾아, 혹은 아비아달의 부름에 따라 22명의 집안 청년들과 함께 다윗에게 합류한 것으로 추측된다. 형(아히멜렉)의 아들인 아비아달과 사독 간에 공동제사장 역할을 수행 하는데 있어 알력이나 다툼이 성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점-솔로몬정권 출범 시에 다른 노선을 추구하지만- 으로 미뤄 이러한 정황은 더욱 확실해 진다.
여기 까지가 엘리 가문으로 연결된 사독을 추론 할 수 있는 나의 최상의 가설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류의 가설들을 별로 좋아 하지 않으며, 대부분 이런 식으로 어떤 그럴싸한 스토리를 만들고 그곳에 약간 저명한-그들 중에는 성경 비평가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있다-사람들의 저서들과 몇 권의 참고문헌을 이용해 그 가설을 신빙성 있게 꾸미는 것에 적극 반대한다. 왜냐하면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다른 성경적 논리를 한번 진행시켜 보려 한다. 아마도 이것이 정설로 인정돼야 할 것이며 성경 또한 그것을 원하리라 생각한다. 위 글에서 추리한 가설들은 이제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다.
위 글에서의 불만은, 그렇다면 사독의 또 다른 족보들과의 괴리감을 어찌 좁히느냐 하는 것과, 역대기에 기록된 또 다른 기록-아론과 엘르아살 그리고 비느하스로 이어지는 정통계보(대상6:49~53)- 은 과연 조작된 것이냐 하는 의구심이다. 역대기(대상6:1~12)의 기록들이 무시된다면 성경의 모든 족보나 지명은 철저히 학대당할 것은 자명하다. 그것이 나에겐 불만이다. 그리고 위 글에서 사독이 다윗에게 합류한(대상12:27~28)내용조차 의심 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사독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사독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비느하스에게 약속했던 “영원한 언약”의 성취이며, 아론과 비느하스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대 제사장 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무엘서 기자들과 열왕기 기자들이 사독의 족보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으며, 혹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충분히 있지만, 역시 사독은 아론 반열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대 제사장이 돼야 마땅하다. 이제 그 근거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역대기 기자는 사독의 족보(대상6:1~이하)를 전혀 엘리와 상관없이 기록하고 있다.
엘리 가문이 불명예스러워 일부러 기자가 제하여 버린 듯 오해할 수 있으나, 그것은 분명 아니다. 그리고 두 번씩(대상6:49~53)이나 강조해서 성경을 거짓되게 기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시의 기록자들이 제사장 계통 이었으며, 또 에스라 시대나 그 이후라면 영적 각성운동이 일어나 신앙이 회복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런 불미스러운 일들을 기록하기에 주저-예수의 족보-하지 않는다. 시아버지와의 간통, 역대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의 음행과 살인 그리고 이방여인과 기생이 자유롭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역대기의 사독의 족보는 신뢰 받아야 할 것이다.
다윗의 왕정에 등장하는 사독은 한 마디로 엘리 가문과는 하등의 상관관계가 없다. 다만 공교롭게도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아히둡이며, 그의 가문 족보에 거론되는 이름들이 엘리 가문과 동일한 동명이인들이 있기 때문에 혼선을 일으키는 것일 뿐이다. 당시에 아히둡이나 비느하스라는 이름은 흔한 제사장들의 지칭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 가문이 그런 이름들을 사용 한다고 해서 이상한 것이 조금도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엘리 가문 족보 어디에도 사독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확실한 사독의 정체성이 될 것이다. 사독은 엘리 가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사독은 아론의 정통성을 부여받은 엘르아살과 비느하스 계열의 확실한 대 제사장으로 다윗 시대에 등용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엘르아살 계열의 제사장들도 유다 땅 어느 곳에서 사독이 대 제사장으로 인정받는 시점까지 신실하게 성소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실로의 성소에 있던 엘리 제사장의 가문처럼 말이다.
이제 간단하게 아론의 족보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아론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중에 나답과 아비후(민3:4)는 성소에 봉사하던 중 다른 불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죽음을 당하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대제사장 업무를 분담해서 성소를 관리한다. 이 두 가문으로 인해 대 제사장 계보는 이어지게 되며. 지금까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나온 제사장-실로, 놉-들의 이야기는 바로 이 이다말 계보인 것이다. 엘리는 이다말 계열의 제사장으로 실로에서 에브라임 지파의 경내를 관리 하였으며, 엘르아살 계열과는 사사기 시대 어느 시점에서 서로 떨어진 듯하다. 그리고 엘르아살 계통의 가문들은 유다의 성소 쪽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다만 기록들이 없고 사무엘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실로의 성소가 더 번창해서 그쪽 기록들이 남겨진 것일 뿐이다.
이제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 보려고 한다. 역대상 24:3절에 보면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이 나온다. 이 아히멜렉은 아나돗으로 유배당한 아비아달의 아들이다.(대상24:6) 그러므로 이 아히멜렉의 아버지 아비아달과 아비아달의 아버지 아히멜렉, 그리고 그 아히멜렉의 아버지 아히둡은 사독과 전혀 상관없는 이다말 계열의 가문인 것이다. 물론 엘리의 계보를 이렇게 성경은 상세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 당시에는 이름을 지을 때 조부나 아버지의 이름을 많이 물려받았으며 그러한 사항들이 성경을 보는 눈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엘리의 계보에도 아히멜렉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가? 물론 비느하스란 이름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봐야 맞을 것이다. 족보의 형식은 대강 이렇다. -아히둡-아히멜렉-아비아달...그리고 다시 아히멜렉..비느하스..이런식이다.-즉 손자가 조부나 그의 조상을 따라 이름을 부여 받던 시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복되는 이름의 등장은 오히려 시대 상황과 정확하게 부합한다. 성경의 신실함 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측면으로 볼때, 비느하스나 아히멜렉은 아마 가문 최고의 본보기가 될 만한 위대한 사람들이였을 것이다. 비느하스란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라. 아론 계보에서는 영웅 중에 영웅 이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많은 사람이 추종해서 따르려 했음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것으로 볼 때 아론 계열의 한 뿌리인 이다말 가문의 명맥을 이었던 엘리 가문 또한 그런 문화의 영향권에 들어 있었다고 봐야 무리가없을듯 하다. 이것이 성경적인 기록이며.성경적인 해석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들의 추락 또한 성경에 이미 예견된 것이었으며, 엘르아살 가문으로서 조용히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사독의 출현도 비느하스에게 준 "영원한 언약"의 성취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엘리의 가문에 있는 아히둡은 결과적으로 정통 대제사장 사독의 아버지가 아닌 것이다. 다만 동명이인 이며 당시의 흔한 현상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이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것이며, 성경적인 사건이며, 성경적 예언의 성취이다. 결론적으로 아론계열의 대 제사장 사독의 아버지 아히둡은 엘리가의 아히둡과 동명이인이지만 명백한 엘르아살 가문의 사람이다. 다만 후대의 사람들이 설왕설레 자기들만의 해석을 고집하며 성경을 어지럽게 바라보는것 뿐이다. 성경은 조용히 침묵하고 있지만 진실을 품고 언제나 웃으면서 가만히 서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시2:4)
결과적으로 볼때 하나님이 선택한 왕 다윗의 집정 기에 엘르아살 가문의 사독이 등용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이 사독 가문의 후예-사두개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자신들도 모르게 하늘에 영원한 제사를 십자가에 드리기 때문이다. 인간 제사장으로는 마지막 제사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영적 측면에서 보면 비느하스에게 약속한 “영원한 약속”의 성취이자 하늘의 “충실한 한 제사장”(삼상2:35)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을 성취 시킨 것이다. 멜기세덱(Melchi Zedek)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 제사장의 도래 인 것이다. 사독(Zadok)은 그 역할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충실하게 수행한 것은 아닐까?
교수님. 엉터리 제자라고 비웃지 마시고 조금 더 깊이 있는 제자로 재생산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졸필 이지만 성의껏 글을 작성해 봤습니다. 지도 부탁드리며,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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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2005신 조경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11.09 교수님 답변을 보며 조금 수정 하였습니다. 이 글을 쓸 당시는 제가 감기와 피곤이 겹친 무거운 상태였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시력이 아주 나빠져서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머리가 심하게 아파옵니다. 약간 수정 하였으니 기회되실 때 보시고 고견은 커피한잔 주시면서 귀로 들을 수 있다면 만족스럽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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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2005신 조경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11.09 그리고 수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한가지 제안 한다면...수업중 자신의 의견과 상충한 난제들이 토의 될 때 교수님의 카페를 이용하길 권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질문과 답변이 더 간결해 질 것입니다. 대강 토론하시고 수업을 진행 하는것이 학우들의 학습진도에 유용할 것이라 사료 됩니다. 알레고리한 질문들로 부터 비켜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요... 더불어 글을 올리는 사람에게는 당근도 제공해 주어야 할 듯 합니다 ^^* 일테면 학점 같은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