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코메디언 이주일

작성자다롱이|작성시간26.06.06|조회수1 목록 댓글 0

국회의사당에서 “이 코미디, 제대로 배웠습니다”라는 폭탄을 던진 남자… 아들을 묻은 밤에도 춤춰야 했던 광대, 이주일의 피눈물 나는 Susie Q

1996년, 대한민국 여의도 국회의사당.

권력의 꼭대기에 앉은 늙은 남자들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정치 은퇴식 자리에서, 한 남자가 한국 정치사에 영원히 박힐 냉소적인 한마디를 던지고 연단을 내려왔다.

“지난 4년 동안 여기서 코미디 공부 제대로 하고 갑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 통쾌하고도 오만한 폭탄 발언은, 그 자리에 있던 수백 명의 국회의원들을 순식간에 삼류 코미디언으로 만들어버렸다.

대중은 열광했다.

하지만 연단을 내려오는 그 남자의 뒷모습에는 뼛속까지 시린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가 바로 1980년대 대한민국 전체를 지배했던 단 하나뿐인 코미디 황제, 이주일이었다.

요즘 쇼츠와 유튜브에 익숙한 10대, 20대에게 이주일이라는 이름은 아마 오래된 흑백사진 속 원로 코미디언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980년대의 그는 지금의 유재석과 강호동을 합쳐도 쉽게 닿기 힘든 존재였다.

그는 그 시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이 우스꽝스러운 유행어 뒤에 어떤 잔혹한 시대극이 숨어 있었는지,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그가 막 데뷔했을 무렵은 살벌한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방송국 윗사람들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댔다.

“저 얼굴은 시청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그렇게 그는 방송에서 밀려났다.

권력자가 사람의 사상뿐 아니라 얼굴까지 검열하던 야만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주일은 세상이 자신에게 찍어놓은 ‘못생김’이라는 낙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갈아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끝까지 희화화했다.

오리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추던 Susie Q 춤은 단순한 몸개그가 아니었다.

권력자들만 배를 두드리며 군림하던 세상에서, 사회 밑바닥의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을 향해 날린 가장 통쾌한 주먹이었다.

그러나 카메라의 빨간 불이 꺼진 뒤, 무대 뒤 광대의 진짜 삶은 역겨울 만큼 잔혹했다.

사람들은 그가 벌어들인 돈과 인기에만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진짜 비극은 늘 가장 눈부신 조명 뒤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

1991년 11월, 이주일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던 외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겨우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였다.

아들의 차가운 몸을 흙속에 묻고 돌아온 그날 밤.

오장육부가 재가 되고, 피를 토해도 모자랄 만큼 슬픈 그 밤에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잔인한 괴물은 그에게 슬퍼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 날, 그는 어김없이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특유의 바보 같은 웃음을 짜내며, 엉덩이를 흔들어 전국의 시청자들을 웃겨야 했다.

방금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가, 국민을 웃기기 위해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이 소름 끼치는 엇갈림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아들을 잃고도 무대에서 웃어야 했을 때, 나는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TV 앞에서 배를 잡고 웃었던 그 코미디 장면들의 절반은, 사실 찢겨나간 부성애를 억누른 채 속으로 피를 흘리던 그의 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을 잃은 텅 빈 몸으로, 그는 1992년 갑자기 정치권에 들어갔다.

고 정주영 회장에게 반쯤 떠밀리듯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지만, 그곳에서 그가 본 것은 국민의 피땀을 빨아먹고 자기 배만 불리는 정치인들의 역겨운 민낯이었다.

4년 임기 동안 그는 단 한 건의 법안도 발의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지켜봤다.

그리고 임기가 끝나자마자 미련 없이 그 똥통을 빠져나왔다.

전설처럼 남은 그 은퇴 발언,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그것은 진짜 광대가 가짜들이 판치는 허세 가득한 세상에 날린 가장 완벽한 치명타였다.

시간은 흘러 2001년.

평생 미친 듯이 담배를 피우고, 극심한 압박 속에서 버텨온 그의 몸은 결국 폐암 말기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2002년, 온 나라가 한일 월드컵의 붉은 악마 함성으로 들끓던 그때.

이주일은 조용히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자기 인생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가장 잔혹한 마지막 공연을 준비했다.

앙상하게 마른 몸.
쉰 목소리.
초점을 잃은 눈.

그는 천천히 죽어가는 자신의 처참한 몸을 숨기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세웠다.

그리고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금연 공익광고를 찍었다.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저도 하루에 두 갑씩 피웠습니다. 지금은 정말 후회합니다.”

그는 병든 자신의 육체마저 마지막 연료로 태워, 세상에 마지막 경고장을 남겼다.

2002년 8월 27일.

62세의 코미디 황제는 마침내 너무 오래, 너무 무겁게 쓰고 있던 광대의 가면을 벗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대중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웃음만 남기고 떠났다.”

하지만 우리는 이주일의 인생을 단순히
“국민을 웃게 해준 훌륭한 코미디언”
이라는 건조한 한 줄로 줄여서는 안 된다.

이주일의 62년은 고압적인 시대의 검열을 온몸으로 부수고, 자식을 잃은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끝내 허리를 세운 채 대중의 상처를 달래려 했던 한 인간의 가장 처절하고도 숭고한 생존 투쟁이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조차 연예계의 소비거리로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을 살리기 위한 짧은 무대로 승화시킨 늙은 광대였다.

부디 그곳에서는 억지로 웃어야 하는 카메라의 압박도,
권력자들의 위선도 없기를.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의 손을 잡고,
이제는 진짜 당신 자신의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대한민국 연예계의 영원한 황제여.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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