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에 있는 성으로 동쪽은 허베이성(河北省),
남쪽과 남동쪽은 허난성(河南省),
서쪽으로는 산시성(陝西省),
북쪽으로는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성의 대부분이 평균고도가 해발 300∼900m에 달하는 고원이며,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황허강(黃河)이 산골자기를 지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서쪽의 산시성(陝西省)과 경계를 이룬다.
산서성은 중국의 두 개 문명이 만나는 지역에 놓여 있는데 북쪽은 기마 민족인 몽고족의 영향을 받았고,
남쪽으로는 황하문명의 접경지로 진나라 이후 남방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나라가 장안으로 도읍을 옮기자 이 지역은 변방이 되었다.
2006년 발표 총인구는 3,375만명이며, 성도(省都)는 타이위안(太原)이다.
2006년 전성의 GDP : 4746.5조위안,2005년 대비 성장율 : 11.8%.
그중 제1산업 : 276.6조위안,증가율 : 5.1%,
제2산업 : 2742.5조위안,증가율 : 15.3%,
제3산업 : 1727.4조위안,증가율7.7%이다.
남쪽과 남동쪽은 허난성(河南省),
서쪽으로는 산시성(陝西省),
북쪽으로는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성의 대부분이 평균고도가 해발 300∼900m에 달하는 고원이며,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황허강(黃河)이 산골자기를 지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서쪽의 산시성(陝西省)과 경계를 이룬다.
산서성은 중국의 두 개 문명이 만나는 지역에 놓여 있는데 북쪽은 기마 민족인 몽고족의 영향을 받았고,
남쪽으로는 황하문명의 접경지로 진나라 이후 남방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나라가 장안으로 도읍을 옮기자 이 지역은 변방이 되었다.
2006년 발표 총인구는 3,375만명이며, 성도(省都)는 타이위안(太原)이다.
2006년 전성의 GDP : 4746.5조위안,2005년 대비 성장율 : 11.8%.
그중 제1산업 : 276.6조위안,증가율 : 5.1%,
제2산업 : 2742.5조위안,증가율 : 15.3%,
제3산업 : 1727.4조위안,증가율7.7%이다.
명승지/특산품
지형
고원
성도(省都) : 태원
대동
운강석굴(雲崗石窟)
오대산
용문산(龍門山)
볼만한곳
산서성의 볼거리
태행산(太行山)
| 중국 불교 4대 명산의 하나로 수려한 고산 자연풍경과 찬란한 불교 문화예술로 유명한 오태산(五台山)이 유명하다. 펀양을 중심으로 펀주[汾酒]라는 술이 유명하며, 신장[新絳]의 종이/먹/붓 등 전통적/역사적인 공예품이 있다 |
지형
|
동쪽은 타이항산맥[太行山脈]과 우타이[五臺]산맥, 서쪽과 남쪽은 황허강[黃河] 중류의 협곡, 북쪽은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여 있어 각각 허베이[河北]/허난[河南]/산시[陝西]의 각 성 및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와 접한다. 황투 고원[黃土高原]의 일부이며, 평균 해발고도는 600 ~3,000 m이다. |
고원
|
동부고원 이는 협의의 북부고원과 동부고원으로 나뉘는 경우도 있다. 즉 북쪽의 헝산산[恒山], 동쪽의 타이항[太行]/우타이[五臺] 산맥을 주체로 한 1,500 m급의 고원이다. 중부 펀허강[汾河] 하곡의 지구대(地溝帶):비옥한 땅으로 되어 있다. 서부고원 뤼량[呂梁]/윈중[雲中] 산맥으로 이루어지는 평균 2,000m의 고원지대이다.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지만, 타이항산맥 때문에 여름에는 남동 산기슭에 비가 내리고 고원 내부나 북부에는 강수량이 적다. 경지는 약 25%로 적으며, 가뭄에 견디는 옥수수/수수를 재배하고 관개용수가 완비된 곳의 경우 밀이 주산이다. 또한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석탄은 다퉁[大同]/시산[西山]/타이위안[太原] 등이 중국 제일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
성도(省都) : 태원
|
태원은 산서성의 성도로서 북경에서 514km 떨어져 있다. 2,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옛도시이다. 황하문명 발원지의 주요한 현장이며 또한 불교의 주요한 명승지이다. 산지가 총면적의 70%를 차지하는 태원은 산서성의 성도로 비옥한 토지가 많은 태원분지에 위치한다. 진(晋) 이 이곳에 도읍을 정한 이래 3,000년간 북방에 대한 군사의 요충지로서 황폐와 재건을 무수히 반복해온 역사깊은 도시이다. 예로부터 흉노족, 몽고족, 여진족 등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다. 관광명소로는 높이 54.7m의 쌍탑이 있는 쌍탑사(雙塔寺)와 당나라 때 세워졌던 옛 백마사 유적이 명나라 초기에 재건된 숭선사(崇善寺), 주나라 무왕의 둘째 아들인 숙우[진나라의 개국 제후]를 기념하고자 세운 진사(晋祠) 중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淨土宗의 사원인 현중사(玄中寺)등은 들려볼 만한 곳이다. 펀허강[汾河] 상류의 동쪽과 서쪽이 타이항[太行]산맥/뤼량[呂梁]산맥에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한다. 도시의 발달은 펀허강 서쪽 연안에서부터 시작하였으며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진양(晉陽)에 해당한다. 진(秦)나라 때에는 현(縣)으로서 태원군(太原郡)을 두었고 전/후한(前後漢)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 후 북위(北魏) 말에는 이주영(爾朱榮)이 이곳을 본거지로 독립하였고, 북제(北齊)가 업으로 도읍을 옮긴 뒤에는 배도(陪都:國都 외에 설치한 도시)가 되었다. 당(唐)나라 때에는 태원부(太原府)를 설치,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를 주재시켜 돌궐(突厥)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며, 오대(五代) 때에는 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 등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현재의 타이위안시 중심부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982년 송(宋)나라의 태종(太宗)이 양곡현(陽曲縣)을 이곳으로 옮겨 병주(幷州)라고 한 뒤 하동로전운사(河東路轉運使)의 치소(治所)를 둔 데서 비롯한다. 또한 명(明)나라 때는 다시 태원부로 고쳤으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주위 12 km의 성벽은 이 때 축조된 것이다. 명/청 시대 이후 산시성의 성도가 되었고, 1927년 시제(市制)가 실시되었다. |
대동
|
북경에서 북서쪽으로 382km, 내몽골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대동은 예부터 군사상의 요소로서, 또한 몽골 각지의 물자 집산지로 번영했다. 이 도시를 찾는 여행자의 대다수는 운강석굴을 보러 가지만 시내에도 볼 만한 곳이 많고 성 안의 구시가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대동의 역사는 周 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398년에 탁발씨(拓跋氏)가 세운 北魏가 이곳에 도읍(平城)을 정했을 때부터 대동의 황금시대가 시작된다. 그때 沙門統 (승려의 우두머리)의 지휘로 운강석굴을 파기 시작했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1,000m의 황토고원에 있는 산서성 제2의 대도시로 만리장성의 남쪽 50km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
운강석굴(雲崗石窟)
|
대동에서 서쪽으로 16㎞ 떨어진 곳에 있는 운강석굴은 약 1㎞에 걸쳐 53개의 동굴에 17m에서 수 ㎝ 크기의 불상 5만 1,000여 채가 돌에 새겨 있다. 낙양 용문석굴, 돈황 막고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3대 석굴 중에서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채색불상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석굴 안에는 당시의 건축양식이나 의상, 액세서리, 음악, 무용 등 여러 가지 재료들을 볼 수 있다. 굴마다 번호가 있는데 이것은 만들어진 순서가 아니라 발굴된 순서로 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제 20호 굴 안의 거대하고 섬세한 불상으로 한국 역사 교과서에도 소개된 불상이다. 전체 53개 동굴 중에서 제 5굴은 중앙에 운강석굴 최대의 높이인 17m의 좌상이 있으며, 사방 벽에 조각된 크고 작은 불상에 둘러싸여 있다. 제 6굴은 중앙에 15m 방형의 탑 기둥이 우뚝 서 있으며, 벽면에는 빽빽이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제 7∼19동굴까지 제각기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중국 전통적 조소에 인도,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의 예술이 합쳐져 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 |
![]() |
오대산
|
중국 불교 굴지의 성지로서 산서성 북동부에 망해봉, 계월봉, 금수봉, 염두봉, 취암봉 등 다섯 봉이 연봉이어서 오대산이라 불린다. 최성기 당대에는 360여 개의 절이 세워졌으며 현재는 태회진을 중심으로 47개의 절이 있으며 중국 각지로부터 신도들이 참배하려 몰려든다. 볼거리로는 절밖에 없는데, 태원에서 태회진으로 가는 도중에 있으며 목조 건축으로서는 중국 최고의 정전이 있는 남선사(南禪寺)와 당의 건축이 지금도 남아있으며 망상, 벽화, 묵적 등이 있는 불광사(佛光寺), 석가모니의 사리탑, 문수보살 등 네 보살과 석가상이 안치되어 있는 탑원사(塔阮寺), 문수보살이 살았다는 보살정(菩薩頂) 등 불교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본래 신선도(神仙道)의 신도에 의해서 개발되어 5세기 무렵부터 화엄경에 나오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의 거주지인 청량산(淸凉山)에 해당한다고 믿어 어메이산[峨嵋山:普賢의 푸퉈산[普陀山:觀音의 靈地]과 함께 중국 불교의 3대 영산(靈山)으로 숭상되어 중국 외에 인도나 그 밖의 지역에서도 불교도가 순례하는 영지가 되었다. 원대(元代)에는 라마교가 들어왔으나 청대(淸代)에 이르자 몽골족과 티베트족에 대한 대책으로 특히 라마교를 중시하여 이곳을 중심지로 삼았다. 우타이산의 불교는 선종라마교 외에 19세기 말부터 일어난 선제(善濟)화상 등의 불교회(佛敎會)의 세력도 크다. 현재 산중에는 100여 개의 사묘(寺廟)가 있으며, 그 중 특히 유명한 것은 라마계의 전하이사[鎭海寺]와 포광사[佛光寺]이다. 포광사의 본전(本殿)은 857년 건립된 것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다. 특히 신라의 혜초(慧超)가 이 산의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
|
남선사 | |
![]() | |
|
불광사 |
용문산(龍門山)
|
산서성과 섬서성의 경계에 있는 산. 예로부터 등용문, 신가백배(身價百培)라는 말로 유명하거니와 용문산이라고 불려진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강이나 바다에서 노닐던 고기떼는 매년 일정한 시간만 되면 이곳 용문산의 절벽 밑에까지 모여들어 높이뛰기 시합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절벽을 넘으면 승천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하면 여전히 물고기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는 용문의 근처에 이어동(魚里魚洞)이라고 하는 계곡이 있는데 이곳에는 잉어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동굴에서 빠져나와 3개월 동안이나 역류를 거슬러 용문의 상류로 가게 되는데 용문을 넘으면 용이 될 수 있지만 넘지 못하면 그냥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신화에 의하면 용문산은 여량산(呂梁山)의 산맥과 접하였는데 이 산이 마침 황하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우임금이 용문산을 두조각으로 동강내고 말았다. 그러자 이 산은 마치 대문을 연 듯 강의 양쪽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황하는 절벽사이를 급류를 형성하면서 흐르게 되었다고 한다. |
![]() |
볼만한곳
|
오대산 (五臺山) |
산서성 북동부에 있는 불교의 명산. 최고봉은 북대(北臺)의 두봉(斗峯)으로 삼천사십척이라 한다. 문수보살이 수도하던 청량산(淸凉山)에 해당한다고 여겨지며 아미산, 보타산(普陀洛伽:보타락가)와 구화산과 함께 불교 4대영산으로 꼽힌다. 오대란 중대의 취암봉(翠岩峯), 동대의 망해봉(望海峯), 남대의 천수봉(천繡峯), 서대의 괘월봉(掛月峯), 북대의 두봉을 말하며 대회진(臺懷鎭)의 현통사(顯通寺)가 유명하다. |
![]() |
|
운강석굴 (雲崗石窟) 석불사 (石佛寺) |
산서성 대동의 서쪽 교외에서 약 11킬로 떨어진 운강(雲崗)의 암벽에 있는 석굴. 석굴사라고도 한다. 수백의 석굴이 있는데 제 1, 제 2, 제 3의 3구로 나뉘며, 큰 것은 제 1구에 4굴, 제 2구에 9굴, 제 3구에 7굴이 있어서 이들의 상하 죄우에는 무수한 소감(小龕)이 이루어졌고, 그 내부에는 무수한 석불이 조각되었는데 그 길이는 약 450미터에 달한다. 북위 문제 때 사문(沙門) 운요(雲曜)가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서 수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초기까지 계속하여 판 것이라 한다. |
![]() |
|
현공사 (懸空寺) |
대동에서 운강석굴 다음으로 볼 만한 곳으로 대동에서 남쪽으로 약 75㎞ 떨어진 중국 오악(五岳)의 하나인 항산(恒山)의 산기슭에 세워진 사찰이다. 깎아지른 듯한 암면을 등에 지고 앞에는 깊은 계곡이 아른거리는 절경의 장소에 세워졌으며, 예로부터 명소로 인기가 높다. 대들보는 구멍을 파 산 벼랑에 반쯤 꽂고 대들보와 기둥을 교묘하게 이용해 40동의 전당을 다리로 연결하여 지었다. 제일 높은 곳에 세워진 삼교전(三敎殿) 내에는 불교, 도교, 유교의 소상(塑像)이 한데 섞여 모셔져 있다. |
![]() |
|
구룡벽 (九龍壁) |
중국에 현존하는 구룡벽은 세 곳이 있는데 그 중 두 곳은 북경(고공박물관과 북해공원)에 있고 남은 하나는 이곳 대동에 있는 것이다. 원래 이곳은 명태조의 13번째 아들인 주계의 살던 집터 고 벽의 길이는 45.5m, 높이 약 8m, 두께가 약 2m인 것으로 보아서 상당히 큰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파란색과 녹색을 바탕으로 황색, 흰색, 보라색의 5가지 색의 자색청기와로 만들어져 9필의 용이 부조되어 있다 |
![]() |
|
상,하 화엄사 (上,下 華嚴寺) |
시 중심에 있는 상,하 화엄사는 요(遼)대(1038년)에 세워졌는데 상사의 대웅전은 1122년 금(金)의 공격을 받아 거의 소실되었다가 금(金)대에 재건된 것인데, 불전으로는 중국 최대의 것이다. 내부는 용이 가득 그려져 있는 천정화(天井畵)와 거대한 벽화의 색채로 매우 산뜻하다. 하사의 천궁루각(天宮樓閣)은 드물게 현존하는 요나라의 목조건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요대의 31개의 불상은 운강석굴과 함께 대동의 자랑거리이다. |
![]() |
|
선화사 (善化寺) |
당나라 시대에 창건되어 금나라 시대인 1128년에 재건된 고찰이다. 경내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 삼성전(三聖殿), 천왕전(天王殿), 보현각(普賢閣) 등이 있으며 특히 보현각은 구조가 정교하여 매우 아름답다. |
![]() |
|
목탑사 (木塔寺) |
대동시에서 남쪽으로 73km 떨어진 응현(應縣)에 있으며 중국에서는 최고의 목조탑인 8각형 9층 (외관은 5층)의 탑이 있다. 높이는 67.13m, 지름은 30m이고 4m의 돌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대들보나 아치, 트러스 등으로만 짜졌고 정이나 못 등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탑 외면의 편액, 입구 정면의 벽화, 각층 마다 있는 보살과 석가상은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그 가치는 높이 평가된다. |
![]() |
|
관작루 |
산서성 평양(平陽)부 포주(浦州)의 성북에 있는 3층 루각 | |
|
불궁사 (佛宮寺) |
산서성 웅현에 있고 요나라때 건조된 절. 8각 9층 목탑이 있고, 첫층에 상계(裳階)가 있어 그 1변은 1,239센티이다. 높이는 약 115미터에 이른다. 중국의 목조건물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응(應)현에 있다) |
![]() |
|
천룡산 (天龍山) |
산서성 태원의 서남 17킬로 지점에 있는 동위에서 북제, 수, 당, 대를 걸쳐 조영된 석굴. 진사진(晉祠鎭) 서쪽의 산중에 있다. 동위의 건조에 대하여서는 불명하나, 북위가 동서로 분열하여 용문의 석굴이 일시는 쇠퇴되었다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 2동, 제 3동이 가장 고식으로 동위식인데 북제의 굴은 제 10동과 제 16동이고 3벽에 아취모양의 공감(公龕)을 부조하고 5존상이 들어 있다. |
![]() |
|
항산 (恒山) |
오악중의 북악. 내장성(內長城) 혼원(渾源)현에 있으며 높이는 이천이백십구척. 최고봉은 천봉령(天峯嶺). 태상노군(太上老君), 옥황대제(玉皇大帝), 원시천존(元始天尊)을 모시는 도관이 많고 현공사(縣空寺)가 유명하다. 산기슭에 북악묘(北岳廟)가 있고 일명 상산(常山)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거대한 새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새매)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그들은 고향이 광야와 하늘임을 어미가 알고 있어 더 이상 그들을 곁에 둘 수도 없어 슬피 울기만 할 뿐이었다. 이때 그의 울음소리는 천지를 진동시켰다고 한다. |
![]() |
산서성의 볼거리
![]() |
![]() |
![]() |
| 산서성 태원 전경 | 산성성 진성 전경 | 임분화문 야경 |
![]() |
![]() |
![]() |
| 산서면 산룡두사(寺) | 평요고성 | 오대산 |
![]() |
![]() |
![]() |
| 왕가대원 |
행화촌(村) |
류호란기념관 |
![]() |
![]() |
![]() |
| 현중사(寺) | 진섬협곡 | 백마선동(洞) |
![]() |
![]() |
![]() |
| 구룡벽 | 숭복사 | 관음당 |
![]() |
![]() |
![]() |
| 흑룡묘 | 현공사 | 현화사 |
![]() |
![]() |
![]() |
| 대동화산군 | 상화엄사(寺) | 운강석굴 |
![]() |
![]() |
![]() |
| 분화공원 | 면산(山) | 쌍림사(寺) |
![]() |
![]() |
![]() |
| 진양호(湖) | 굴위산 다복사 | 산서성 박물관 |
![]() |
![]() |
![]() |
| 기현구구 | 장벽촌 | 진성 |
태행산(太行山)
|
산서성 진성(晉城)현 남방의 태행산을 주봉으로하여 서쪽은 분수(汾水), 동쪽은 갈석(碣石)에 이르는 산맥. 거의 남북으로 달리고, 산서성과 하남, 하북 두 성의 경계를 이루고, 만리장성 근방에서 대흥안령의 남단으로 연결된다. 회남자(淮南子)에서 오행지산(五行之山)이라 불리며, 열자(列子)에서 대형(大形)이라 불리운 천하의 허리라고 일컬어지는 수 천리의 대산맥이다. 태행산은 전설에 의하면 왕옥산(王屋山)과 맞붙어 있었는데 통행이 불편하여 과아씨의 두 아들이 태행산은 삭동(朔東)으로, 왕옥산은 옹남(雍南)으로 갈라놓았다는 우공이산(愚公離山)의 신화가 있다. 태행산 일천리(太行山一千里)라 할만큼 거대하다. | |||
![]() |
![]() |
![]() |
![]() |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중국이우시장길라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