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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사상

[스크랩] 조선 유학에서의 기(氣)의 개념

작성자정규훈|작성시간11.07.14|조회수300 목록 댓글 0

       

 

    조선 유학에서의 기의 개념


                                                 김용헌

 


 

 

1. 머리말


2. 조선 초기의 기 개념
 1. 리기이원론의 기 개념
  1. 정도전
  2. 권근
 

 2. 기일원론의 기 개념
  1. 김시습
  2. 서경덕


 3. 조선 중기의 기 개념
  1. 퇴계 학파의 기 개념
   1. 이황
   2. 정시한
   3. 이현일
 
 2. 율곡 학파의 기 개념
  1. 이이
  2. 한원진
  3. 김창협


4. 조선 후기의 기 개념
 1. 성리학자들의 기 개념
  1. 임성주
  2. 이항로
  3. 기정진


 2. 실학자들의 기 개념
  1. 홍대용
  2. 정약용
  3. 최한기

 

5. 맺음말

 

 

 

 

 

1. 머리말


이 글은 조선 유학자들의 기氣의 개념을 그들의 자연관과 결부하여 검토
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에는 조선 유학자들이 자연自然을 인식하는 태도
나 그 인식의 체계가 변화된 모습을 보였고, 따라서 기의 개념 역시 변화되었
으리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자연 현상을 기에 근거해서 설명하는 자연
이해는 고대 이래로 동양인들의 오랜 전통이었고, 조선 유학자들도 그러한
전통선상에 있었다. 리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틀로 자연을 설명하고자 했던
주자학朱子學이 500여 년 동안이나 줄곧 조선 사상계를 지배했다고는 하지
만, 기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이해가 한결같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500여 년 동안 수많은 정치적 굴곡은 물론이고 생산력의 발전
및 그것에 기반을 둔 생산  관계상에서의 변화가 있어 왔기에, 자연을 이해하
는 방식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양의 자연관이 유입
됨에 따라 우리의 전통적인 자연관에는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존재의 세계에 대한 총괄적인 설명을 시도하는 존재론存在論, 즉 리기
론理氣論에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후한後漢 시대를 거치면서 동양의 지배적인 존재론으로 자리 잡은 기의
존재론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자와 그 존재자의 운동 변화를 기로 설명한다.
이때 기는 현상 세계의 물질, 생명, 정신이라는 세 층차의 존재 또는 현상을
담보해 주는 근원적 존재이다. 다시 말해 현실 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를테면 귀신의 영역까지도 기에 의거해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는 동양의 전통 사회에서 모든 존재와 현상을 설명하는 만능 열쇠였던 셈
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의 세계 이전에 무無 또는 도道의 세계를 설정했던
도교적道敎的 존재론이나 리理로서의 태극太極을 궁극적 존재로 설정했던
주자학적朱子學的 리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서도 그대로 관철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형이하形而下의 세계에 대한 주희朱熹와 장재張載의 설
명 방식 사이에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데서 간접적으로 입증된다.


서경덕徐敬德, 임성주任聖周로 대표되는 이른바 성리학적 기일원론氣一
元論의 철학이나 이황李滉, 이이李珥 등에 의해서 정착된 리기이원론의 철
학에서 기는 현상 세계의 시원始原이자 구성 요소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
다. 조선 성리학에서 기는 천지와 만물로 이루어진 현상 세계가 생겨나기
이전의 근원적인 물적物的 존재인 동시에 현상 세계의 다양한 존재자들을
구성하고 있는 현실적인 물적 존재이기도 하다. 다만 주자학에서는 형이상
학적形而上學的 본체로서 리理 또는 태극太極을 설정했다는 점에서는 차이
를 보이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형이상학적 본체가 결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 자연학, 그리고 그에 근거한 자연 철학의 영역에서 기일원론과 리기이
원론의 차이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조선 성리학
자들의 기 개념을 발전사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점이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주자학적 자연관에서 탈피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홍대용洪大容, 정약용丁若鏞, 최한기崔漢綺 등의 실학자들의 기 개념을 검
토하는 데서도 발견된다. 이들 실학자實學者들의 기와 주자학자들의 기 사
이에 발견되는 결정적인 차이는 음양오행과 관련해서이다. 그러므로 리理와
음양오행(그리고 귀신론을 포함해서)을 제외하고 기만을 따로 떼어 독립적으
로 논할 경우 조선 유학자들의 이론 체계 속에서 규정된 기 개념의 차이를
도출하는 작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 개념의 변천에 대한 고찰은
기 개념 그 자체보다는 학자들의 이론 체계 안에서 기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
을 검토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2. 조선 초기의 기 개념


1. 리기이원론의 기 개념


1. 정도전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철학 이론은 불교 및 도교와의 이론 투쟁 속에
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의 자연관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
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도전은 항상 도학道學을 밝히고 이단異端을 물리치
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는 권근權近의 평가는 정당하다고 해야 할 것
이다. 그의 자연관에서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자연 세계를 비실재적인
것(假幻)으로 보는 불교의 자연관에 대한 비판이다. 일시적인 것(假) 것은
잠시 있는 것이어서 천만 년 오래 있지 않고 환상적인 것(幻)은 한 사람을
속일 수 있으나 천만인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므로 천지天地의 유구함(常久)
과 만물의 영원한 생성(常生)을 가라고 하고 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다. 천지는 오래도록 있어 왔고 만물은 끝임없이 생겨난다는 것이 자연에
대한 정도전의 일차적인 이해이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실재론적 인식이라
고 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정도전의 두 번째 인식은 자연의 근원이 태극太極이라고 보
는 것이다. 천지 만물이 있기 전에 태극이 먼저 있어 천지 만물의 이치가
그 가운데 갖추어져 있었는데, 온갖 변화가 이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다. 세 번째 인식은 자연의 움직임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태극으로부터
만물이 생겨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와 달, 추위와 더위가 가고 오는 것은 일정한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인식은 자연의 질서는 실재하는 리(實理)가 지배하는 것이
라는 인식이다. 자연은 실리實理가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그
리를 탐구하는 궁리의 학문이 없다고 정도전은 비판한다.


다섯 번째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 관계에 대한 견해이다. 그는 [심문천답心
問天答]에서 인간의 행위와 그 행위로 인한 결과가 도덕적으로 서로 부합하
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서 인간의 잘못 때문에 풍우한서風雨寒暑의 질서가 
어그러지고 해와 달이 가려지는 이변이 일어난다고 답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그릇된 행위가 초래한 것으로 하늘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늘을 책망할 것이 아니라 그 올바름을 지켜 하늘이 본래
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도전의 도덕적 천
관天觀에 기반한 것으로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그에 따르면 선한
사람에게 복福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화禍를 주는 것이 하늘의 도道이다.
자연의 운행은 질서 정연하며 그 질서 정연함 속에는 선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화를 주는 도덕성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질서 정연함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 일시적이긴 하지만 깨뜨려질 수 있는 것
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자연관 속에서 기는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그는 자연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기화氣化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즉 태어
난다는 것은 바로 기화의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원래 정신이 태허의 가
운데 서려 있던 것이 아니며, 죽음이라는 것은 기와 더불어 함께 흩어지는
것이니 다시 형상이 아득한 공간(冥漠) 속에 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영혼불멸설靈魂不滅說 즉 윤회설輪廻說에 대한 비판으로, 모
든 존재는 기의 합으로 생겨났다 기의 흩어짐으로 사라진다는 기론적氣論的
존재론이다. 둘째, 음양오행의 운행이 고르지 않으므로 기에는 통색通塞·
편정偏正·청탁淸濁·후박厚薄·고하高下·장단長短의 다름이 있다. 그리
하여 바르고 통한 기(正通)를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기(偏塞)
를 얻은 것은 사물이 된다. 그리고 사람은 맑은 기(淸)를 얻으면 지혜롭고
어진 사람이 되며, 흐린 기(濁)를 얻으면 어리석고 불초한 사람이 된다. 이
것은 사물의 다양성을 기의 차별성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셋째, 그는 태극의
동정으로부터 음양 오행이 생겨나고 이 태극의 진眞과 음양오행의 정精이
묘합하여 사람과 만물이 생겨난다는 주돈이의 생성론을 수용하고 있다.


여기서 태극이란 리이다. 이것에 대해서 정도전은 "아름답다, 리理여. 천지
보다 앞서 있었다. 기가 리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마음心 또한 품부稟賦되었
다. 마음이 있는데 리가 없으면 이해利害에 얽매이게 되고 기가 있는데 리가
없으면 혈육의 몸일 뿐이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권근에 따르면 그는
"사람이 생겨남에 천지의 리를 받아 성性이 되었고 형체를 이룬 것은 기이며
리와 기를 합하여 능히 신神하고 명明할 수 있는 것이 심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주자학적 리기이원론이다.  

 

2. 권근


권근權近(1352-1409)이 일종의 성리학 개설서인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쓴
해는 1390년인데, 이것은 정도전의 [심기리편心氣理篇](1394)과 [불씨잡변
佛氏雜辨](1398)보다 앞선다. 물론 정도전이 이보다 훨씬 앞선 해인 1375년
에 [심문천답心問天答]을 쓰긴 했으나 이 저술은 본격적인 성리학 이론서라
고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권근이 언급하고 있듯이 정도전에게는 [학자지남
도學者指南圖]라는 저술이 있긴 했지만 그 내용을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이
렇게 보자면 우리 나라의 성리학 이론은 권근에 의해서 그 체계가 완비되었
다고 해야 할 것이다.


권근의 자연관은 정도전과 별 다를 바가 없는데, 그 이유는 정도전의 자연
관을 권근이 리기이원론적理氣二元論的 틀로 세련화시켰기 때문이다. 권근
에 따르면 풍우와 한서는 하늘의 기가 되고 해와 달은 하늘의 눈이 되며,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는 일이 한 가지라도 바른
것을 잃으면 하늘의 풍우와 한서가 반드시 어그러지고 해와 달이 반드시 가
려지는 데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권근은 인간과 자연의 감응
관계를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희의 이론을 수용하여 그 관계를 마음
과 기를 매개로 설명하고 있다. 천지와 만물이 본래 한몸과 같으므로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 또한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조로우면 천지의 기
또한 순조롭다는 것이 그것이다. 결론적으로 천지의 재앙과 상서는 진실로
인간 행위의 자잘못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연관을 다
음과 같이 리와 기로 설명하기도 한다.


재앙과 상서의 바르지 않은 것은 모두 기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기수氣
數의 이상(變)이 비록 그 리의 정상(常)을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다만
하늘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기는 쇠하고 성함이 있으나 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하늘이 안정되면 리가 반드시 그 정상을 얻게
되고 기 또한 바르게 되는 것이니, 복선화음福善禍淫의 이치가 어찌 소멸되겠는
가?


하늘은 결코 자의적恣意的이거나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존재가 아니다. 하
늘 그 자체도 한계가 있고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그 질서가 파괴될 수도 있
다. 하늘은 인간의 그 질서 파괴적인 행위 앞에서 무력하기까지 하다. 왜냐
하면 하늘은 의지적인 존재도 아니고 그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 힘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자연의 질서 그 이상이 아니며, 따라서 천은 곧 리이
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근은 인간의 자연 질서의 파괴는
일시적인 것이며 자연의 질서가 궁극적으로 안정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
다. 자연은 도덕적 원리가 지배하고 그 원리는 비록 일시적으로 어그러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자연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권근의 생성론은 주자학적 이론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리가 있은 연
후에 기가 있고, 이 기가 있은 연후에 양기陽氣의 가볍고 맑은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음기陰氣의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엉켜 땅이 되었다.
사계절이 여기에서 유행하고 만물이 여기에서 화생하니, 사람이 그 사이에
서 천지의 리를 온전히 얻었고 또 천지의 기를 온전히 얻어 만물보다 귀하고
천지와 더불어 참여하게 되었다.


권근의 존재론의 기초가 되는 것은 주희의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화생함에 기로써 형체를 이루니 그 속에 리 또한 부여되었다"는 언급이다.
이것은 만물이 리와 기의 합으로 이루어졌다는 리기이원론적인 견해이다.
사람과 만물이 생겨남에 그 리는 같지만 기에는 통색편정通塞偏正의 다름이
있어, 바르고 통한  기를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기를 얻은
것은 사물이 된다. 이와 같이 기의 차별성에 의해 인간과 사물의 다름을 설명
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주자학적 설명이다. 한편 권근은 만물이 각자 하나의
리를 갖추고 있다고 보는데, 그 개별적인 리(萬理)가 하나의 근원 즉 태극에
서 흘러 나왔다고 본다. 반면에 기는 형이하자여서 반드시 형이상의 리가
있은 연후에 이 기가 있게 된다. 기를 말하고 리를 말하지 않는 것은 그 끝이
있는 것만을 알고 그 근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리를 무위無爲한 것으로 기를 유위有爲한 것으로 본다. 아울러 리를
선한 것으로 기를 악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상을 통해서
권근이 리일분수理一分殊, 리선기후理先氣後, 리무위기유위理無爲氣有爲,
리기의 선악 문제 등 주자학 이론의 기본 원리를 체계적으로 수용하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다.

 

2. 기일원론의 기 개념


1. 김시습


김시습金時習(1445-1493)의 자연관은 오늘날 이른바 미신으로 통칭되는
신비주의적 자연관을 비판하는 데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그가 자
연 현상을 경험적 사실로서 설명하고자 하는 합리적인 자연 인식 태도를 가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이러한 자연관은 열자列子와 장형張衡의 기론
적氣論的 자연관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천형天形]에서 천天에 대한 자신
의 견해를 밝히면서 "하늘은 쌓인 기일 뿐이다. 해와 달과 별은 쌓인 기 속에
서 빛을 내는 것이다"라는 열자의 말과 "별이라는 것은 체體는 땅에서
생겨나고 정精은 하늘에서 이루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나 각각 속하는
바가 있다"라는 장형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김시습은 하늘이 형체가 있
고 기가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둥글지만 물체가 없는 것이 형체이고 해와
달과 별들이 번갈아 나타나고 추위와 더위, 밤과 낮이 왕래하는 것이 기라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로 가득한 하늘은 더없이 높고 크며
둥글게 회전하는데, 그 운행은 굳건하여 쉬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매여 있으나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과
비와 서리와 이슬은 기화로 인해서 내리는 것이지 어떤 의지의 결과가 아니
다. 대지와 산천은 하늘이 회전하는 가운데 떠 있고 풀과 나무, 사람과 사물
은 일정한 법칙(性命) 속에서 움직인다.


그가 이해한 자연의 운행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기의 운행이다. 그러므
로 "귀하고 천함,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천명에 매여 있고 가난하고 부유
함, 길하고 흉함은 운수에 달려 있으며, 소멸하고 성장하는 것 그리고 차고
비는 것이 때를 따라 유전하는 것이니, 진실로 빌어도 면할 수 없고 물리쳐도
막아낼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연의
질서를 인간이 자의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인간의 영역
과 자연의 영역을 완전히 분리한 것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은 도덕성이라는
매개고리를 통하여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호안국胡安
國의 말을 인용하여, "하늘의 경계를 잘 삼가면 비록 재앙이 있더라고 당하
지 않으나,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재앙과 변고가 왔을 때 그것을 물리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결국 김시습이 이해한 자연 운행의 귀결은 선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고 악한 사람을 징벌하는 것이다. 김시습이 말하는
자연은 도덕성이 내재되어 있는 자연인 셈이다. 그래서 김시습이 기론자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성리학자
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김시습은 천지 자연을 끝임없이 운동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 운동
변화의 과정을 생生으로 규정한다. "생생生生하는 것은 천지의 대덕大德이
고 생生하고자 하는 것은 만물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본
우주는 생명의 전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만물이 생하고자 하는 본성을 통해 천지의 생생하는 본질을 체득하여 만물
로 하여금 각각 그 본성을 이루게 하고 깊은 인仁과 후한 은택 속에서 자라나
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인간을 자연의 과정과 조화시키려는
관점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 관계가 아니라 연속 관계로 파악하려는 유가의
전통적인 사고이다. 김시습은 이러한 사고를 장재의 말을 빌려 "사람과 만물
은 함께 천지天地의 대화大化 사이에서 났으므로, 백성은 나의 동포요 만물
은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라고 표현한다. 사람과 자연의 터전인
천지의 대화란 곧 기의 운동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그가 인간과 자연
의 연속성 내지는 통일성을 기氣에 의해서 확보하고자 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사람과 만물이 천지의 기를 균등하게 품부받고 일원의 묘를 똑같이
키워내니, 비록 기질에 치우침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각의 성은 다른 적이
없었다"라는 언급에서도 확인된다.


김시습의 철학 체계 속에서의 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
째, 우주는 기로 충만되어 있다. 천지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모두
기이며, 천지 사이에는 오직 한 기의 풀무가 있을 뿐이다. 둘째, 만물
은 음양의 기가 모여서 이루어진다. 음양의 기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회전하
고 있는데, 기를 모아 형체를 이룬 것이 만물이라는 것이다. 셋째, 천체의
운행이나 계절의 변화를 비롯한 자연 현상은 기의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
다. "수직적으로 말하면 해와 달이 오가는 것, 별들이 운행하는 것,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드는 것, 음양이 서로 바뀌는 것, 그리고 끝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消息盈虛生旺休因)이 모두 기이다. 평면적으로 말하면 산과
내, 큰 산과 큰 강이 모여 어울리는 것, 바람이 불고 비와 서리 그리고 이슬이
내리는 것, 초목이 자라는 것, 사람과 동물이 살고 죽는 것, 성현과 우매한
사람들이 맑고 탁하고 깨끗하고 더러운 차이가 나는 것 모두 기가 그 사이에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넷째, 천인일기天人一氣를 근거로 하여 자연과
인간의 감응感應 관계를 인정한다. 천지 만물은 서로 다르긴 하지만 그 체가
하나이므로 나의 기가 순順하면 천지의 기도 역시 순하여, 음양이 화하고
풍우가 유순하고 온갖 생명체들이 저마다의 본성을 잘 발휘하는 반면에, 나
의 기가 어그러지면 천지의 기도 어그러지게 되고 그 결과 천지의 조화가
상하고 음양이 변이를 느끼고 해와 달과 별들이 어긋나고 일·월식이 일어나
는 등 자연의 운행이 질서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김시습의 이론은 기론적 색채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심성설의
영역에서 성즉리性卽理를 인정하는 등 리기이원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
가 적지 않다. "성과 리는 두 가지가 아니다. 선유가 말하기를 '성은 곧 리이
다.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받았으니 실리가 내 마음에 갖추어진 것이다'라고
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명덕이란 사람이 하늘로부
터 얻은 것으로 허령불매하여 모든 리를 다 갖추어 온갖 일에 응하는 것이다"
라는 {대학장구大學章句}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또 "천지 사이에 낳고
낳아 끝임 없는 것은 도이고, 모이고 흩어지고 오고 가는 것은 리의 기이다
", "음양의 시작과 끝은 언어나 형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천지의
생생의 도는 무망無妄이라고 말할 뿐이니 오직 실리實理이다"라고 하였
다. 무릇 원형이정元亨利貞은 하늘의 덕이고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성의 덕이
라는 것이다. "추위와 더위가 왕래하고 일월이 교대로 밝은 것과 낮과 밤의
도道는 이 리理의 자연自然이다." 이상에서 인용된 글들은 김시습이 기
이외에 리를 적지않게 언급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김시습이 언급한 리가
과연 기의 속성이나 원리라는 제한적인 의미를 넘어서 기를 주재하는 객관
존재의 의미까지 지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이와
같이 리를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자학자들의 경우처럼 리를 절대화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그의 이러한 모습이 그를 기일원론자로 볼
수 있게끔 해 주는 결정적인 요소로서, 이 점은 태극에 대한 그의 견해에서도
확인된다.


태극이라는 것은 무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태극은 음양이고 음양은 태극
이다.…… 음양 밖에 따로 태극이 있다면 음양이 될 수 없으며 태극 안에 따로
음양이 있다면 태극이라고 할 수 없다. 음이면서 양이고 양이면서 음이고 움직이
면서 고요하고 고요하면서 움직이니, 그 리의 무극한 것이 태극이다. 그것의 기는
움직이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며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면서 음양이 된다.
그것의 본성은 원형이정이고, 위축되기도 하고 확산되기도 하는 것이 그것의 현
실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천지가  둥글고 모나며 원기가 발육하고 만물이 성을
완성하는 것은 모두 그것의 작용 때문이다.


태극에 대해 논하고 있는 이 글은 그 의미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태
극이 근원적인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이 시원적인 물적
존재(기)인지 아니면 그것에 선행하면서 그것을 생성하고 지배하는 관념적
존재(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태극이 음양이라는 것으로 보아서는
전자가 옳은 것 같지만 리의 무극한 것이 태극이라거나 원기가 그것 때문에
발육한다는 말에서는 태극이 기가 아니라 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
서 이 글에 대해 섯부른 판단보다는 다소 모호하기는 하지만 가장 덜 틀릴
수 있는 판단을 하자면, 태극이란 리와 기가 미분화된 근원적 존재라고 규정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밑받침해 주는 것이 "그 기는 움직이기
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며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면서 음양이 되고, 그
성은 원형이정이고……"라는 구절이다. 여기서 그 기라는 말과 그 성이라는
말은 태극의 기와 태극의 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태극은 기의 측면과 성의
측면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시원적 존재인 태극은 그것
의 가장 기본적인 운동 형태인 음양의 운동을 자신의 본질로 하고 있다. 그래
서 "태극의 도는 음양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운동
의 주체가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것은 기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다면
다소 불분명한 점이 있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최소한의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시습은 정도전이나 권근 같은 학자처럼 리가 궁극적 존재이자 궁극적
존재 원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표명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주희의 리기
이원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는 그 이론을 잘 알고 있었고,
특히 심성론心性論의 영역에서는 그 이론을 부분적으로 차용하기도 했기 때
문이다. 그 이론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이론을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 김시습의 리기론의 주요한 특징이다.

 

2. 서경덕


서경덕徐敬德(1489-1546) 역시 자연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이해했고, 그것
을 기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김시습과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자연의 성誠,
천지의 심心, 천지의 선善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서경덕은 존재의 시원 또는
근원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에 따라 체계적인 이론적 작업을
진행했다는 데 그의 자연관 및 존재론의 특징이 있다. 그는 [천기天機]라는
시에서 "혼돈混沌의 처음을 거슬러 올라 보건대, 음양 오행을 누가 움직이게
했을까?"라고 했고, [유물有物]에서는 "오고 오는 것은 시작이 없는 것으
로부터 오는 것, 묻노니 그대는 처음에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했으며,
또 [만인挽人]에서는 "만물은 어디에서 왔다가 또 어디로 가는가?"라고
하였다. 이러한 물음들은 그가 가졌던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강렬한 문제 의식
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그의 결론은 잘 알려진대로 기에서
나와 기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서경덕은 이 우주를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나누어 이해한다. 지금 우
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후천이라면 이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의 세계가
선천이다. 후천은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선천은 바로 이러한 후천의 세계가 그 모습을 갖추
기 이전의 상태이다. 그것을 서경덕은 '태허太虛'라고 하였다. 태허는
글자 그대로 큰 공간이지만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아니라
기가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그것은 중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인 동시에 소멸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리고 맑고 형체가 없으며
무한히 큰 존재이다. 이 태허의 맑은 기 즉 일기一氣가 갑자기 운동을
하는데, 그 운동은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다시
말해 동정이 없을 수 없고 열리고 닫힘이 없을 수 없는데, 그것은 기틀이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로 일기가 음양이 되는데, 양
의 움직임이 극에 이르러 하늘이 되고 음의 모임이 극에 달하여 땅이 된다.
이렇게 서경덕은 일기로부터 음양의 기가 분화되고, 이 음양의 기에 의해서
하늘과 땅을 비롯해 일월성신과 수화水火가 생겨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
로 후천이다. 그에 따르면 후천 즉 지금의 이 우주는, 기로 이루어져 있는
하늘이 바깥에서 회전하고 땅은 그 중간에 고요히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기에 의해서 우주 및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
에서 리의 역할은 잘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서경덕의 이론 속에서 리는 어떤 존재를 지칭하는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리理는 기와 별개로 존재하는 객관 존재가 아니라 기의 작용
의 질서이다. 리라는 것은 기의 주재자이긴 하지만 이 주재자라고 하는 것은
밖에서 와서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의 작용이 그 질서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을 가리켜 주재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정한 의미
의 주재자일 수 없다. 다시 말해 리는 기를 주재하는 주재자도 아니며, 기가
복종해야만 하는 원리도 아니다. 그것은 기의 작용의 질서일 뿐이다. 그렇다
면 서경덕의 자연관을 기론적 자연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서경덕의 기 개념이 갖는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는 우주 전체에 충만해 있어 빈 틈이 없다. 둘째, 기는 양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무한하다. 하도 커서 바깥이 없다. 셋째, 기는 시간적으로 영원
하다.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작도 없고 또한 끝도 없다. 넷째,
기는 초감각적인 그 무엇이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소리도 냄새도 없
다. 다섯째, 공기도 기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부채질을 했을 때 바람이 일어
나는데, 바람의 선행적 존재가 곧 기이다. 다섯째, 만물의 질료이다. 기
가 모이면 만물이 되고 흩어지면 만물은 다시 태허로 돌아간다. 여섯째, 기
의 움직임은 외재적인 요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
는 것이다.

 

3. 조선 중기의 기 개념


1. 퇴계 학파의 기 개념


1. 이황


이황李滉(1501-1570)은 조선 시대 주자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학자이
다. 그는 일반 성리학자들처럼 사물이 객관적으로 존재함을 인정한다. "사
물에 대하여 말하자면 천하의 모든 사물은 실제로 나의 밖에 있다." 그리
고 그것들이 기로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물적 존재만이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천하의 사물은 반드시 각각 그렇게 되는 까닭이 있으며 바
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법칙이 있는데 그것이 리이다." 이황은 리와 기라
는 두 범주에 의해서 만물의 존재를 설명하는 리기이원론자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천지 사이에는 리와 기가 있다. 리가 있자 곧 기의 조짐이 있고 기가
있자 곧 리가 따라서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리 없는 기 없고
기 없는 리 없다. 그런데 그는 "리는 기의 통솔자이며 기는 리의 졸병이
다"라고 하여, 리와 기의 역할에 대해서 리 우위의 사고를 보이고 있다.


리와 기가 현실의 존재를 이루는 두 가지 구성 요소이긴 하지만 그 둘의 관계
는 리가 기를 지배하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리와 기가 합하여져서 사물이 이루어진다. 그 신묘한 작용이 이와 같을 뿐이니
천명이 유행하는 곳에 그렇게 되도록 시키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리는 지극히 높아 그것과 마주 설 만한 것이 없으며, 사물에게 명령을 내리지
사물로부터 명령을 받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리는 지극히 높아 상대할 것이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그가 리를 궁극적 존재로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즉 태극이 리인 것이다. 이
황에게 있어 리는 사물을 낳는 바탕이며 만사의 뿌리이다. 그리고 이것은
리선 기후理先氣後의 사고와 직결되는데, 무릇 사물에는 필연의 법칙과 당
위의 법칙이 선행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리와 기의 선후 문제는 성리학에서 많은 논란거리가 되어 왔던 것이 사실
이다. 그것은 리 우위의 사고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리선 기후를 주장해야
하지만 현실 사물에서는 엄연히 리와 기가 병존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는 데서 오는 문제이다. 전자를 강조하다 보면 리만 있고 기는 없는 경우를
상정해야 하기 때문에 리기 병존이 부정될 수밖에 없고, 후자를 강조하다
보면 리의 절대성에 손상이 온다. 그래서 주희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일관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같지는 않다. 다만 현실적으로 리와 기가 병존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리가 기보다 앞선다는 것이 그의 만년 정설이었던 것으
로 보인다. 이황 역시 리선 기후와 리기 병존을 다 인정하지만 그 무게
중심은 리선 기후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이황은 리 우위의
사고를 가졌던 것이다. 그의 리 우위의 사고는 리(태극)가 기(음양)를 낳는다
거나 리(태극)가 스스로 작용한다는 사고에서 그 정점에 달한다.


그의 이러한 사고는 서경덕의 학설이 하나도 들어맞는 것이 없다는 혹평
에서도 확인된다. 서경덕이 아주 깊은 데까지 나아가고 미묘한 데까지 파헤
쳤다고 자부하나 결과적으로 리자理字 하나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였다는 것
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서경덕이 수數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지만 리를
기로 여기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를
영원히 존재하여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니 이미 불교에서 범한 오
류에 빠져 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리 우위의 사고는 기를
천시하는 사고와 결부되게 마련이다. "리는 귀하고 기는 천하다"는 것이
리와 기를 바라보는 이황의 기본 관점이었다.

 

2. 정시한


정시한丁時翰은 율곡 학파에 맞서 퇴계의 이론을 옹호한 17세기 퇴계 학
파의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사람이다. 율곡학파에 대한 그의 평가는 그들
이 기를 인식하기를 리와 같이한다(認氣爲理)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
현하자면 그들이 기를 숭상한다는 것인데, 정시한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
은 곧 리학理學의 종지를 배반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결국 당시
의 학자들이 리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점에
대해서 정시한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이 학문을 함에 있어 단지 리자理字를 투철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
일 뿐이다. 만약 리를 진실로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마음을 쓰고 일을 하는 데
어찌 선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만약 기를 주인으로 여겨 작용을 성이라고
한다면 그 화가 반드시 하늘을 업신여기는 데까지 이를 것이다.


당시의 학자들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리와 기의 관계를 주인(主)과 보조원
(輔)으로 이해하는 데서 온 것이다. 정시한은 리와 기가 묘합해 있는 가운데
리는 항상 주인이 되고 기는 항상 주인을 돕는 보조원이 된다고 보았다. 리가
비록 기 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리는 기에 구속되지 않으며, 기에 명령을
하지 명령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리와 기를 각기 대장과 부하에
비유하기도 한다. 리와 기에 대한 이러한 이분 의식은 리를 순선 무악한
것으로 기를 선악의 기미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이렇
게 본다면 정시한은 리 우위의 사고를 가졌음이 분명해진다.


정시한의 리기론에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황의 학설을 적극
옹호하면서도 리기불상리理氣不相離의 원칙을 매우 강조한다는 점이다. 리
와 기는 본래부터 혼융무간했기 때문에 그것이 합쳐진 때가 있었던 것도 아
니고 앞으로 서로 분리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태극에 적용하게
되면 "담일청허의 기는 태극 본연의 체와 혼융무간하다"는 견해가 나온
다. 이황의 호발설에 대해서도 리와 기가 함께 있는 가운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에 나아가 리발 또는 기발이라고 했을 뿐이지 기 없이 리만이 발한다거
나 리 없이 기만이 발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리기불상리
를 강조하다 보면 리기의 선후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실제로 정시
한은 기의 작용처를 기발이라고 할 수도 있고 리의 주재 유행처를 리발이라
고 할 수도 있지만 기가 리보다 앞서는 것도 아니고 리가 기보다 앞서는 것도
아니라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러한 리기관이 리기의 현실적 작용에 적
용될 때는 "천지의 운동 변화는 기가 운동 변화하는데, 거기에 리가 타고
있다"는 주장을 승인하게 되는데, 이것은 부분적으로 리의 무위성을 인정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리의 무위는 자연히 그러하여 유위의 자취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위라고 하는 것이지 그 어떤 기능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리가 단순히 운동하는 기에 타는 운동의 수동체가 아니라 그 운동
의 원인이라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시한은 리의 동정
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단칠정을 리발과 기발로 나누어
이해했던 이황의 견해를 지지하게 된다. 이렇듯 정시한이 리의 동정을
강조하는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리가 기에 종속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
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이에 대한 다음의 비판에서 확인된다.


만약 리가 기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만을 보고 리기가 둘이 아니라고 여기
고, 기가 항상 리를 싣고 있는 것만을 보고 리기는 나눌 수 없다고 여긴다면,
기는 스스로 작용하고 리가 관여함이 없으므로 작용이 성이라는 설로 귀착될 것이
다.
  

서로 혼융무간하고 선후와 이합을 말할 수 없는 가운데서도 리는 리이고
기는 기이다. 그래서 리는 기에게 명령을 내리지 명령을 받지 않으며 기에
있지만 기와 뒤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시한의 이러한 관점은 이이의
리통기국설理通氣局說을 비판하는 데로 이어진다. 율곡의 리통기국설을 인
정하면 기를 주재하고 물에 명령하는 본원으로서의 리가 완전히 결여되고
단지 리가 기의 제한(局)에 종속되는 것이고 기의 명령을 받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 속에는 기가 가리기 이전에 이미 리
자체가 서로 다른 리이므로 그에 따라 차별적인 기의 작용이 일어나고, 이에
서로 다른 사물이 생겨난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목적이 있다.

 

 

3. 이현일


이황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 학맥의 관점에서 볼 때 특히 두드러진 인물은
김성일金誠一과 유성룡柳成龍이다. 그들은 이황 학맥을 이은 양대 학맥, 이
른바 호파虎派와 병파屛派의 종장이기 때문이다. 이현일李玄逸(1627-1704)
은 이 가운데 김성일의 재전再傳 제자로서 호파의 정통을 이은 학자이긴 하
지만 17세기 후반 그의 치열했던 이론적·실천적 활동은 호파를 넘어 퇴계학
파 전체를 대변한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비록 유성룡,
이덕홍, 장현광 등 퇴계학파의 학자들의 성리설을 비판하고 있기는 하지만,
18세기 조선 주자학사의 차원에서 보자면 [율곡이씨논사단칠정서변栗谷李
氏論四端七情書辨]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는 이이의 학설에 대한 비판이
더욱 의미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서인과 남인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과
맞물리면서 그 의미는 배가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현일의 리기론은 리의 지위를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는
리와 기가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그리고 없을 수도 없는 필수적인
존재이며 아울러 언제나 공존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는 리
와 기가 별개의 존재임을 더욱 강조하였다. 다시 말해 리기불상리理氣不
相離를 전제한 것이긴 하지만 리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 원칙을 더욱 강조했
다는 점에서 그는 퇴계 학파의 일반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의식은 이이의 학설에 대한 비판에서 공동 보조를 취했던 정시한에게 "그대
의 견해는 리기의 혼륜을 주장하여 분별하지 않는 뜻이 너무 지나쳤습니다.
그러다가 자칫 리기가 일물이 된다는 설에 빠지지 않겠습니까?"라고 주의
를 환기시킨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19조목으로 되어 있는 [율곡이씨사단칠정서변]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이
의 학설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이이가 리의 역할을 너무 축소시켜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현일은 이 점에 대해
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리는 비록 무위이지만 실로 조화造化의 추뉴이고 만물의 근저이다. 만약 이이의
학설과 같다면 이 리는 단지 허무하고 공적한 것이 되어 온갖 조화의 근원이 될
수 없고 음양의 기화만이 제멋대로 운동하면서 그 조화를 이루게 되니 또한 잘못
이 아닌가?  

 

이러한 비판은 이이가 "음양동정陰陽動靜은 기틀이 스스로 그러할 뿐이니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없다"고 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이의 주장대로
라면 리가 기를 주재하는 적극적 능력이 상실되고 만다는 것이 이현일의 생
각이다. 그래서 그의 비판은 리가 모든 작용의 주인(主)이 되고, 또 그러
해야만 자연의 질서가 어그러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만약에 리
가 주인이 되지 않고 음양기화의 작용에만 맡겨 둔다면 반드시 여름에 추워
지고 겨울에 뜨거워지는 등 자연의 질서가 파괴될 것이라고 그는 이해한
다. 여기서 이현일이 다른 주자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질서의 원천을
리에서 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리가 동정動靜의 주인이 된다는 주장
은 리의 동정을 인정하는 사고와 맞닿아 있는데, 리의 동정의 문제는 이황이
주장한 호발설互發說의 관건인 동시에 그 호발설에 대한 이이 비판의 핵심이
다. 그래서 이현일은 "리에 동정이 있기 때문에 기에 동정이 있다. 만약에
리에 동정이 없다면 기에 어떻게 동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든가, "태극이
동정을 겸한 것이 아니라 태극에 동정이 있다"와 같은 주희의 말을 인용하여
리에 동정이 있음을 주장한다. 이와 같이 리의 동정을 근거로 호발설을
옹호하는 이현일의 학설은 그 이후 퇴계 학파를 하나로 묶는 핵심 이론으로
자리를 잡았다.

 

2. 율곡 학파의 기 개념


1. 이이


이이李珥(1536-1584)는 존재를 리와 기로 설명하는 전형적인 리기이원론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주자학자들도 그러하듯이 자연에 대해서
는 기를 중심으로 설명했고 그러한 점에서는 기일원론자들과 큰 차이를 보이
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천지 사이에 차 있는 것은 기 아닌 것이 없다",
"일기一氣의 운화運化가 흩어져서 만수萬殊가 되니, 나누어 말하면 만상萬
象이 각기 일기이고 합하여 말하면 천지만상天地萬象이 똑같이 일기이다"
라는 것이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이 하늘에서 빛나고 비, 눈, 서리, 이슬이
땅에 내리고 바람과 구름이 일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은 이 기氣가 아님이
없다. 우주 공간은 기로 가득 차 있고, 그 기로부터 만물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물의 운동 변화가 모두 기의 운동 변화라는 것이다.


이이는 자연의 운동 변화를 질서 정연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는
그 질서 정연함의 원인에 대해서는 자연히 그러할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알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연의 질서가 어그러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데, 그는 그 원인을 음양의 기가
조화되지 않는 데서 찾는다. 바람, 구름, 우레 , 번개가 모두 어그러진 기(乖
氣)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는 리의 이변(變)이라고 한다. 그런
데 그는 이러한 이변이 인간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고 본다.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므로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조로
우면 천지의 기도 순조롭기 때문에, 리의 정상과 이변을 오로지 천도에만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이는 천지와 인간 사이에 있는 마음 및 기의 동질성에 근거하
여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통일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성의 실천 여부가 자연의 질서를 보존하기도 하고 깨뜨리기도 한다는
의식으로서, 주희뿐만 아니라 정도전 이래로 조선 주자학자들이 일반적
으로 견지하고 있었던 일종의 천인감응설이다. 그의 이러한 사고는 자연의
재이災異 현상에 대한 이해와 부합된다. 그는 재이에 대해서 "재이의 발생은
덕을 닦는 치세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일월식의 이변은 말세의 쇠한 정치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하늘과 사람이 서로 관여함을 여기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크게는 인간의 도덕적 실천을, 작게는 임금의 왕도 정치를 담보할
수 있는 권위의 원천을 천 또는 자연에서 확보하고자 했던 유학(주자학)에서
는 자연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통일적으로 이해하였고, 따라서 필연의 영
역과 당위의 영역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이 주된 경향이었다. 이러한 이유
로 인해서 주자학에서는 자연의 독립성과 필연성을 승인하고 있었음에도 불
구하고 그 독립성과 필연성이 심각한 제약을 받았던 것이다. 그 결과 자연의
재이 현상을 자연의 필연적인 과정의 하나로 인식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그것을 인간의 도덕척 실천 영역으로 환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자연학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연 인식은 일반 주자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므로 별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다른 학자들과 상대적으로 다른 점을 골라내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담일허명澹一虛明한 기가 기의 처음일 수 없
다는 것이다. 기라는 것은 음 아니면 양인데, 그 담일청명澹一淸明의 기가
음이라면 그 이전에 양이 있었을 것이고, 그 기가 양이라면 그 이전에 음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이것은 박순朴淳, 나아가서 서경덕을
비판하는 것인데, 서경덕은 천지가 생겨나기 이전, 즉 선천을 담일청허의
기를 내용으로 한 태허라고 하여 만물의 시원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견해의
차이는 서경덕이 천지의 개벽을 기준으로 선천과 후천의 세계로 나누는 데
반하여, 이이는 천지가 끝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겪는 것으로 보는
데서 오는 것이다. 서경덕은 지금 현재의 천지가 생기기 이전의 기를 원초적
인 기로 보는 데 반하여 이이는 현재의 천지가 생기기 이전의 기를 그 이전의
천지가 소멸된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는 원초적인 기가
될 수 없다. 둘째, 그는 서경덕의 일기항존설一氣恒存說을 비판한다. 원기元氣는 끊
임없이 새롭게 생겨나므로(生生不息) 간 것은 이미 간 것이고 새로 오는 것
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덕이 일기가 항존한다고 본 것은
기를 리로 여긴 병폐이다. 이러한 견해는 리를 영원한 존재로 기를 유한
한 존재로 보는 주자학자들의 통상적인 견해이다. 
셋째, 이른바 충막무짐庶漠無朕이라는 것은 담일청허의 기를 지칭하는 것
도 아니고 음양을 떠나 허공에 매달려 있는 태극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며,
기 속에 있는 리 즉 태극을 지칭하는 것이다. 기는 상象이 있고 상이 있으면
충막무짐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 역시 "태허가 담일청허하여 음양을 낳는
다"고 한 서경덕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이른바 주리설과 일정한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음양은 시작이 없는 존재이므로 음양이 생기지 않았는
데 태극만이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때는 없다고 그는 보았기 때문에 '태극이
양의를 낳는다'고만 말한 것은 미진하다는 것이다. 리기는 본래 혼합되어
있으니 모두 본래부터 있었지 처음 생겨난 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넷째, 무형무위無形無爲이면서 유형유위有形有爲의 주主가 되는 것이 리
이다. 유형유위이면서 무형무위의 기器가 되는 것이 기이다. 그러므로 리통
기국理通氣局이다. 오물과 같은 사물 속에도 리가 있어서 그 사물의 성이
되지만 그 리의 본래 모습은 그대로 있다. 이것을 리통이라고 한다. 기의
근본은 맑고 깨끗하지만(湛一淸虛) 끊임없는 운동 과정에서 수만 가지의 다
양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기의 유행에 그 본래 모습을 잃은 것도
있고 잃지 않은 것도 있다. 이미 그 본래 모습을 잃었으면 기의 본래 모습은
있지 않다. 이것이 기국이다.
다섯째, 음이 고요하고(陰靜) 양이 움직이는(陽動) 것은 기틀이 스스로
그러할 뿐이지(機自爾) 그것을 부리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양의 움직임
은 리가 그 움직임에 탄 것이니 리의 움직임(理動)이 아니며, 음의 고요함은
리가 그 고요함에 탄 것이니 리의 고요함(理靜)이 아니다. 음이 고요하고
양이 움직이는 것은 그 기틀이 스스로 그러한 것이고, 그 음이 고요하고 양이
움직이는 원인은 리이다. 그러므로 천지의 운동 변화와 내 마음의 작용은
'기발이리승지氣發而理乘之'가 아님이 없다.

 

2. 한원진


한원진韓元震(1862-1751)은 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권상하權尙夏
로 이어지는 정통 율곡 학파의 충실한 계승자이다. 그는 이이의 기발일도설,
리통기국설 등에 근거해서 서경덕류의 기론을 경계했을 뿐만 아니라 리발을
인정하는 퇴계 학파의 호발설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나아가 그는 같은
율곡 학파의 일원인 김창협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으며 권상하 문하에서
동문 수학했던 이간李柬과도 첨예한 이론 논쟁을 전개했다.
그는 천지 만물이 일원지기一元之氣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가 일원지기로
돌아간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에는 다만 일원지기만이 혼돈 상태로 있었다. 그 기 가운데
가볍고 맑은 것은 밖으로 나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것은 안에서 응결되어
땅이 되었다. 그 다음에는 해와 달이 나왔고 그 다음에는 사람과 만물이 생겨났
다. 그것이 장차 없어질 때는 사람과 만물이 먼저 없어지고 그 다음 해와 달이
떨어지고 대지가 녹아서 흩어지고 하늘이 파멸되어 혼돈 상태의 일원지기로 돌아
간다.


일원지기에서 만물이 생겨났다 소멸되는 과정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은
존재의 물질적 시원이 일원지기라는 것과 존재가 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런데 이 생성과 소멸의 과정은 만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게도 있다. 천지는 한 번 생겨나면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
라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소멸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현재 몸담고 있는
이 천지가 생겨나기 이전에 또 다른 천지가 존재했다고 여기는데, 그것이
전천지이다. 전천지가 없어진 후에 지금의 이 천지가 발생하며 이 천지가
없어진 다음에 후천지가 생겨나는데, 이 천지의 열리고 닫히는 과정은 영원
히 반복된다. 이러한 우주 자연관은 이이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성리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견해였다.


이이도 그러한 것처럼 이 우주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새로운 생성이라는
순환론적 우주관은 기의 운행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기만의 운행 과
정인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리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 한
원진은 "리와 기는 하늘과 땅의 부모이다.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에는 다만
리와 기뿐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천지가 생기기 전에 일원지기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리도 또한 있었던 것이다. 이 리와 기는 천지가 생기기
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천지가 생긴 이후에도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천지 사이에는 다만 리와 기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천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리 아니면 기라는 것이다. 이것은 존재하
는 것이 모두 리 또는 기로 환원된다는 의미가 되고, 그렇다면 리와 기는
가장 기초적인 존재론적 범주가 되는 셈이고 그러한 점에서 한원진의 존재론
은 전형적인 리기이원론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리와 기의 관계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리는 기에 붙어 있으며, 기는 리를 운행시킨다. 이 리가 있으면 반드시 이 기가
있고 이 기가 있으면 반드시 이 리가 있다. 리 바깥에 기가 없고 기 바깥에 리가
없으니, 리와 기는 비록 일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또한 한 순간이라도 서로 떨어
질 수 없다.


이렇듯 한원진은 리기불상리理氣不相離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리기
무선후설理氣無先後說로 이어진다. 그는 유행流行의 측면에서 리기무선후,
본원本源의 측면에서 리선기후, 품부稟賦의 측면에서 기선리후氣先理後라
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본원과 품부라는
것은 현실 자체라기보다는 논리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한원진은 본원
과 품부라는 것은 모두 유행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로 회통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리와 기의 역할에 대해서는 "리는 사물을 낳는 근본이며 기는 사물을 낳는
자료이다"라거나, "천지 만물은 모두 음양의 기로써 그 질을 이루고 태
극의 리를 얻어서 그 성을 이룬다"고 하고 있다. 기가 천지 만물의 물적
구성 요소라면 리는 그것을 지배하는 원리이자 만물의 본질인 것이다. 그렇
기 때문에 리와 기가 더 이상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근원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그 둘의 위치를 보자면 기보다는 리가 우위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
다. 그래서 그는 "리를 위주로 하는 것은 바른 학문이고 기를 위주로 하는
것은 이단이다. 바른 학문과 이단의 구별은 오직 리와 기에 있을 뿐이다"
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리기관은 "발하는 것은 기이며 발하게 하는 것은 리이다. 기
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리가 없으면 발하게 하는 것이 없다"는 이이의 학설
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서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발리승氣發理乘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리의 능동성을 부정하고 기에의 의존성을 강조하다 보
면 리의 지위가 그만큼 약화되게 마련이다. 이것은 리일분수를 설명하는 데
서 잘 드러난다. 그는 리가 본래 하나인데 분수가 있는 까닭은 그것이 타고
있는 기가 고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리가 기에 의해
서 규제가 된다면 리는 단순히 수동적인 지위에 머물게 되고 존재의 근원자
로서의 위치도 손상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퇴계 학파를 비롯해 리의
절대적 지위를 고양하려는 학자들에 의해서 비판받는 점이다.  

 

3. 김창협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기본적으로 이이 계열의 학자이다. 그의 철학
의 밑바탕에 기발일도설氣發一途說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자
적인 리의 발(理發)을 부정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존재의 변화 현상에는 기의 움직임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리는 독자적으
로 움직이면서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기로 인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때의 리라는 것은 기의 발용을 타고 드러나는
사물의 '스스로 그러함'(自然) 및 '마땅히 그러해야 함'(當然) 즉 법칙성일
뿐이다. 그래서 마음의 작용도 역시 기의 기틀(氣機)이 발동하고 리가
거기에 타는 형태(氣機發動而理則乘焉) 한 가지만이 있을 따름이다. 이
렇게 본다면 김창협이 이황의 리기호발설을 반대하고 이이의 기발일도설을
지지했음이 분명해진다.


리가 반드시 기를 타야만 한다는 것은 리가 어떤 형태로든 기에 의존한다
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점을 강조하면 할수록 주자학 이론 체계 안에서
리가 차지하고 있는 절대적 지위는 그만큼 손상될 수밖에 없다. 이이가 리의
소이연所以然이나 주재성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동
시에 그는 이황의 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 맞서서 그의 이론을 전개했기 때
문에 그의 이론에서 리의 무위성이 강조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비록
이이의 의도는 본래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리가 서경덕의 경우처럼
단순히 법칙이나 조리의 차원으로 전락될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퇴계 학파에서 끝내 이이의 이론을 용인할 수 없었던 이유이다.


이이의 이론이 안고 있는 이러한 약점을 간파했던 김창협은 주자학의 기
본 원칙 중의 하나인 리의 무위성을 부정하지 않는 범위에서 리의 지위를
강화하고자 이황의 이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였다. 그의 이러한 경향은 사
단과 칠정을 각각 주리와 주기로 이해하는 데서 확인된다. 그는 "사단은 리
의 발이고 칠정은 기의 발이다"를 "사단은 리를 위주(主理)로 하여 말한 것
이나 기가 그 가운데 있고 칠정은 기를 위주(主氣)로 하여 말한 것이나 리가
그 가운데에 있다"로 해석한다. 물론 그의 이러한 해석은 오직 실천적
요청에 의해서만이 그 정당성이 확보된다. 사단은 확충하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고 칠정은 경계하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라는 그의 논거는 사실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사단과 칠정이라는 언어에 대한 기술, 즉 메타 언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발출 근원이나 발출 경로라는 실제적인 차원을 바탕
으로 사단과 칠정을 각기 주리와 주기로 이해한 이황과 구분되는 점이다.


리의 지위를 고양시키려는 이러한 김창협의 경향은 선은 '맑은 기(淸氣)
의 발이고 악은 탁한 기(濁氣)의 발'이라고 한 이이를 비판하면서 선악과
리기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김창협에
따르면 천리天理의 가볍고 무거운 정도와 기의 맑고 탁한 정도에 의해서 선
악이 나뉘어지는데, 부자간의 사랑 같은 것은 천리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이
므로 아무리 탁한 기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이처럼 맑은
기의 발은 모두 선한 정이 되고 탁한 기의 발은 모두 악한 정이 된다면, 정의
선악은 전적으로 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리는 단지 수동적인 지위에
머무르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선악의 결정 과정에서 리는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따라서 김창협은 리가 정의情
意가 없고 조작造作이 없다는 특성으로 인하여 비록 기를 타고 있지만 기
또한 리의 명령을 받는 것이라고 하여 리의 주재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다.


이렇듯이 김창협은 기와 선악의 관계에 대한 이이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의식적으로 리의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 물론 그가 기발일도설이나 리의 무
위성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이의 학설을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것은 아니
다. 하지만 이이 및 송시열의 이론을 고수하는 호서의 학자들과는 달리 친퇴
계적인 경향을 보이기까지 하면서 리의 지위를 강화시키고 있는 그의 이론은
그 이후 낙학의 기본 입장으로 정착된다.

 

4. 조선 후기의 기 개념


1. 성리학자들의 기 개념


1. 임성주


임성주任聖周(1711-1788)는 중년에 이르러 초기의 리기이원론을 버리고
기일원론을 주창하였다. 그는 우주에 가득 차서 사람과 사물을 낳는 등
온갖 조화를 일으키는 것은 단지 이 하나의 기氣일 뿐이어서 리자理字를 안
배할 조그만 틈도 없다고 본다. 사람을 포함한 만물은 모두 기의 산물이
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기의 근본은 하나이지만 그것이 나뉘어 음양과
오행이 되며, 오르내리고 날리는 등 운동하면서 응취될 때 천차 만별의 모습
을 갖게 된다. 그 기의 능력이 이같이 성대하고 이같이 작용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여 그러할 뿐인데, 도道 와
리理는 스스로 그러한 것(自然處)에 붙인 이름일 뿐이지 기와 별개로 존재하
는 실체가 아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자연히 기가 있었고, 그 기가 자연히
음양오행으로 나뉘어졌으며 자연히 사람과 만물을 낳았다는 것이다. 리의
주재라는 것은 이 자연스러움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임성주는
근원적인 기의 운동이나 음양오행의 분화로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임성주의 리기론은 기일원론임이 확실해진다.


리가 기와 별개로 있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임성주의 주장에는 몇
가지 부수적인 설명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 가운데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담일청허湛一淸虛의 기에 대한 생각이다. 이이는 담일청허한 기가 없
는 곳이 많다고 하여 서경덕을 비판하였는데, 임성주는 이이의 이러한 주장
을 재비판함으로써 서경덕의 견해를 지지하였다. 그 어떤 곳에도 담일청허
한 기가 스며 있지 않음이 없으며, 다만 형기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기는 청탁수박淸濁粹駁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본체는 담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담일청허의 기가 모든 사물에 내재한다는 것을 인정함으
로써 얻는 효과는 리의 개념 없이도 주희 이론의 근간인 태극의 편재성遍在
性을 대체할 수 있는 이론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일분수설氣一分殊說이다. 주희는 존재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리
일분수설로 설명한다. 만물은 태극이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지만 기에
의해서 다양하게 분화되었다는 것이 그 요지인데, 여기에는 리는 같고 기는
다르다는 리동기이理同氣異의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임성주는 리일
理一이라는 것은 기일氣一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서 리동기이의 사고를
부정하였다. 그 결과 리일분수는 리를 주로 해서 말한 것이므로 리일만이
아니라 분수 역시 리에 귀속시켜야 하며, 기를 주로 해서 말한다면 기일분수
라고 해도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임성주가 주자학적 리기이원론의 지적 풍토에서 할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일원론을 주창한 것은 리의 존재 없이도 주자학적 사유를 효과적으로 충분
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자각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이 우주를 일기의 끝임없
는 유행으로 보는 동시에 생의生意의 유행으로 이해하였다. 그 기라는 것은
원래 공허한 존재가 아니라 생의를 본질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가 한
번 동하여 만물을 낳고 한 번 정하여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데, 낳는 것이
원元과 형亨이 되고 거두는 것이 리利와 정貞이 된다. 이러한 기의 성질은
자연에서 나와서 당연의 법칙이 된 것으로 성인은 그것을 도라고 하고 리라
고 한다. 그러나 자연이든 당연이든 그것은 기를 형용한 것이지 기와 별개의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리하자면 이른바 원형이정이라고 하는 자연
의 원리(천리)는 주자학에서처럼 기가 순응해야 할 근본적 원리가 아니라
기의 성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우주는 원형이정이라는 생의를 본
질로 하는 기의 운행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자연 현상을 기로 설명하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은 유가의 전
통에서 보자면 이색적인 것만은 아니다. 임성주는 기존의 리기이원론적 틀
에서 리가 했던 역할을 완전히 제거하고 새로운 이론틀을 건설한 것이 아니
라 리의 역할을 기에 귀속시킴으로 해서 그의 기일원론은 사실상 리기이원론
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게 되었다. 임성주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생의生意
의 유행流行이 가능한 것은, 그리고 우리 인간의 도덕적 실천이 가능한 것은
바로 기의 본질이 담일하기 때문인데, 이 담일한 기는 곧 리 또는 성을 대체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에는 생의生意의 원리인 태극(원형이정)
이 내재해 있다는 것과 생의生意를 덕德으로 하는 담일청허의 기가 있다는
것의 차이가 현실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다만 그 생의를
주희의 경우처럼 하나의 객관 존재로 파악하고, 나아가 그것을 궁극적 존재
로 격상시키지 않고 기의 속성으로 해소시켰다는 점에서 주희의 리기이원론
과는 차별화가 된다.


임성주는 기일원자이면서도 그의 음양론적 자연 이해는 그와 거의 동시대
인인 홍대용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홍대용은 음양을 태양의 위치에
의해 파생되는 것으로 보는 데 반하여 그는 음양으로 인해 태양의 위치가
바뀐다는 이해를 하고 있다. 봄과 여름에는 양의 기운이 고조되어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가을과 겨울에는 음의 기가 고조되어 태양의 고도가 낮아진
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험적인 원리인 음양을 전제해 놓고 그 원리에
의해 자연을 설명하는 방식은 같은 기론임에도 불구하고 음양론적 자연 이해
에서 탈피하고 있는 실학의 기론, 이를테면 홍대용이나 최한기의 기론의 자
연 이해와 구별되는 주요한 요소이다.

 

2. 이항로


이항로李恒老(1792-1868)는 이 세계를 리기이원적 구조로 설명하는 방식
을 취한다는 점에서 다른 주자학자들과 다를 바 없다. 이항로에 따르면 천지
사이에는 리와 기만이 있을 뿐인데, 사물을 생성하는 데 리는 본체가
되고 기는 재료가 되어서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사물이 생겨날 수 없다.
리와 기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리와 기가
본래부터 같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리는 리이고 기는 기여서 서로 섞이지
않는다.


리와 기는 서로 불상잡 불상리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주자학자면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가운데 어느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철학적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이항로 역시 그 두 원칙을 다 인정하면서도 리와
기의 차이를 역설하는 불상잡의 원칙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리의 주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배려이다. 그에게 있어 리는 기를 통솔하는 주인이고 기는
리를 싣고 있는 그릇이다. 리는 기의 통솔자이고 기는 리의 일꾼이
다. 기에 대한 리의 주재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리의 동정을 전제하
지 않을 수 없다. 태극에 동정이 없고 동정이 오로지 기기氣機에 귀속된다면
태극은 공허하여 기기의 본원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기가 태극
의 주재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항로의 리기관은 리는 존귀하
고 기는 비천하다는 사고와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기는 언제나 다스림
의 대상이 된다. 리가 주인이 되고 기가 일꾼이 되면 만사가 다스려지고 천하
가 편안해지지만 반대로 기가 주인이 되고 리가 보조가 된다면 기는 강해지
고 리는 숨게 되므로 만사가 어지러워지고 천하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
다. 이와 같이 리의 우위성에 대한 강조는 비록 그가 리기선후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가 기를 낳는
다는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그는 본원을 논하면 리가 있은 후에 기가 있고,
기품을 논하면 기가 있은 후에 리가 따라서 갖추어진다는 주희의 두 가지
관점을 다 알아야만 균형잡힌 학문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생
각은 태극을 해석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는 "태허라는 것은 천이다. 형체
로써 말하면 쌓인 기이고 도리로써 말하면 태극이다"라고 하여, 기와
태극을 하늘의 형체와 도리로 이해하고 있다. 이 때 기는 음양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일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음과 양으로 분화된 기이다. 그에 의하면
음양 이외에 다른 기가 있을 수 없으며,음과 양의 끝임없는 순환만이 있을
수 있다.


일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태극이 음양을 낳는다는 주자학의 근본 원
리에서 태극을 기로 보아 일기가 음양을 낳는다고 해석할 여지를 봉쇄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항로는 주돈이가 리기의 근원을 깨닫고 그 리를 태극이
라고 하고 그 기를 음양이라고 했다고 하여 태극이 리임을 분명히 하였
다. 하지만 일기의 부정은 후천지後天地의 시작은 전천지前天地의 끝이
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천지의 개벽과 종말이 순환 반복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천지 개벽, 그리고 그 개벽 이전의 원초적 상태(일
기)를 상정할 수 없고 음양의 기는 본래부터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원초적인 일기를 상정해야만이 그 일기를 낳은 존재 즉 태극을 설정할 수
있는데, 이항로는 이러한 논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태극은 음양
이 되는 소이의 도이고 음양은 도를 싣고 있는 그릇이다. 여기서 태극은
음양을 낳는 주체라는 의미는 찾아 보기 힘들고 다만 리기가 순환 유행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이라는 의미로 제한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리가 기를 낳는다는 논리를 펼침으로
써 그의 리기관의 부정합성을 드러내고 있다. "리가 쌓이면 신을 낳고 신이
쌓이면 기를 낳고 기가 쌓이면 형을 낳는다"는 언급이 그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기의 존재를 리의 파생물로 격하하는 동시에 기를 포함한 모든 존재
를 리에로 귀일시키는 리일원론적 이론틀의 한 단면으로 해석될 수 있는 빌
미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한편 그는 리가 기에 의해 제한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
이 말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리는 같고 기는 다르며, 리의 다름 또한 기의 다름에서 연유한
다. 이것은 진실로 그러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리가 같은 가운데 본래
스스로 허다한 다름이 있어서 기의 다름을 기다리지 않고도 다르다. 예를 들어
"텅 비고 아득하여 아무 조짐도 없지만 만상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한 것은
같은 가운데 다름을 함축하고 있음을 이른 것이다. 이것이 어찌 기국氣局을 기다
려 같지 않게 되겠는가?


이러한 논법은 만물의 다양성을 기에 의해서 설명하는 일반적인 주자학자
들, 특히 이이의 리통기국설을 신봉했던 율곡 학파의 학자들과 다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현실의 세계를 가능한 한 리에 의해서 설명하고자 했던 의도
에서 나온 것으로 기정진의 논법과 유사하다.


그는 그보다 한 세기 전에 김석문金錫文이나 홍대용이 이미 받아들였던
지전설을 수용하고 있지 않다. 그만큼 그는 서양 과학에 대한 이해가
빈약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종동천宗動天의 설이 요순 시대의 역법에 이
미 있었던 것으로 바로 진辰이 종동천에 해당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
러한 주장이 과연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지느냐 하는 문제는 접어두더라
도, 구중천설이나 십이중천설에나 나오는 종동천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오래전에 이미 폭넓게 수용되고 있던 티코 브라헤의 우주구조론조
차도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폐쇄적이었던 그의
자연 인식과 지식 체계로 인해 그의 리기론이 리의 지위를 절대화하는 방향
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3. 기정진


 

19세기 들어서 조선 주자학계에는 리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었
다.이진상李象靖, 남한조南漢朝, 유치명柳致命, 이진상李震相으로 이어지
는 퇴계 학파는 물론이거니와 그 학맥의 연원이 이이李珥에 닿아 있는 이항
로나 기정진奇正鎭(1708-1880)도 퇴계 학파 못지않게 리의 절대성을 확보하
고자 노력한 학자들이였다. 특히 기정진의 철학은 유리론 또는 리일원론으
로 정리되면서 임성주의 유기론 또는 기일원론과 비교되기까지도 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기정진이 유리론자나 리일원론자로 평가될 수 있었
던 것은 기가 리와 나란히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기와 리를 나란
히 언급하는 것이 온당하지 못하다고 했을 만큼 그가 기의 지위를 평가절하
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와 리를 마주 세워서 리기라고 부르게 된 것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나는 이것이
성인의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리의 존귀함은 짝할 것이 없으니, 기가
어찌 이것과 짝할 수 있겠는가? 그 광할함은 짝할 것이 없으니, 기 또한 리 속의
일(理中事)이니 곧 이 리가 유행하는 손발이다. 그것은 본래 리에 대적할 것이
아니니 짝도 아니고 적도 아닌데 마주 세우는(對擧) 것은 어찌된 일인가?

 

아무리 리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이른바 주리론에서도 리와 기를 병칭하는
것마저 부정하지는 않았던 것에 비하자면, 기에 대한 기정진의 폄하의 정도
는 그 강도가 매우 강했다. 기정진에게 있어 기는 리를 실현하는 도구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운동 변화를 리발 또는 리행으로 환원
시킨다. 실제로 운동하는(발하고 행하는) 것은 기이지만 그 기는 리에 순종하
여 운동할 뿐이므로 그 운동의 주체는 리가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기발氣發과 기행氣行이 아니라 리발이고 리행인 것이다. 기의 발과
행은 실제로 리에서 명령을 받기 때문에 리는 주인이고 기는 하인인 것이고,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일하는 것은 기일지라도 리가 그 공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기정진의 리기론은 기가 리를 실현시키는 도구로 폄하됨으로써 리
의 절대성을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의 이러한 경향은 리일분
수를 해석하는 데서도 예외가 아니다. 주자학에서는 흔히 리는 본래 하나이
지만 구체적인 사물 속에 내재해 있는 리는 서로 다르다고 이해하는데, 이것
이 바로 리일분수설이다. 리일분수설의 핵심은 본래 리는 하나이지만 다양
한 기로 인해서 그 리 역시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리의 순선성
을 확보하는 동시에 현상 사물의 다양성을 아울러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이론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리가 오히려 기에 의해서 제한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기정진은 이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리일분
수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그는 분分을 리일理一 안에 있는 세부적인 조리(細
條理)라고 규정한다. 이것의 의미는 리가 기로 인해서 그 다양성을 드러
내는 것이 아니라 리일一理 안에 본래부터 분수의 리가 내재해 있었다는 것
이다. 이렇게 되면 현상 사물의 다양성은 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리에 의해서
설명이 된다. 여기서 기는 그 분수의 리를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기의 운동이 이이가 주장하듯이 기를 움직이는 것이 따로 있지 않고 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리는 몸에 붙어 있는 혹이나 말을 따라 가는 파리
에 불과하다고 기정진은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리 하나만
으로 현실 세계의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리가 모든 일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그의 철학을 유리론나 리일원론으로 규정짓는 것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그가 리발이나 리행을 주장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리만의 독자적
인 발이나 행이 아니었다. 리의 발은 기의 발과 기의 행에 의해서만 가능하
다. 예를 들자면 사람을 태운 말이 사람의 뜻을 알고 갈 경우 실제로 가는
것은 말이지만 사람이 간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리는
필연성(必然之妙)을 가지고 있지만 능동적인 힘(能然之力)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리는 곧바로 실현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다. 리는 본래 선하지만 기로 인해 불선이 있게 된다는
것이 주자학의 일반적인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기정진이 이러한 설명을 부
정했던 것은 어떻게든 리가 기에 의해서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자신의 기본
적인 확신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내 놓은
것이 리에는 능동적인 힘(能然之力)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대안은 기를 끌
어들이지 않고도 불선의 발생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리 그 자체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더 나아가 불선의 원인을
리 자체가 가지고 있다는 논리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리의 절대성을 확보하고
자 했던 본래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2. 실학자들의 기 개념


 

1. 홍대용


 

홍대용洪大容(1731-1783) 역시 모든 존재를 기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주자
학자들과 다를 바 없다. 홍대용에 따르면 "텅 비고 고요한 우주에 가득
차 있는 것이 기이다. 안도 없고 밖도 없으며, 시작도 끝도 없다. 기가 쌓이
고 엉키고 모여서 형질을 이루고 이것이 허공에 두루 퍼져 돌거나 멈추게
되는데, 바로 땅, 달, 해, 별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는 "형체와 형질이
있는 물건은 마침내 반드시 파괴되는데, 이것이 엉키면 형질을 이루고 풀리
면 기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홍대용을 기론자라
고 규정 지을 수 없는데, 리기이원론에서도 자연 현상을 설명할 때는 기만으
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가 이이의 리기론에 대해서
"발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는 까닭은 리이다.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리가
아니면 발하는 바가 없다"고 한 것이 이이 학설의 요지라고 하면서 지지
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리기론은 리기불상리를 강조하는 율곡류의 이른
바 주기설과 유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리와 기에 대한 홍대용
의 견해를 엄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홍대용은 리의 실재성 및 주재성을 부정하였다. 주자학에서의 리는 무형
적인 존재이지만 홍대용에게는 형체가 없으면서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는 무엇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소리, 빛, 냄새, 맛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것이 없는 것은 형체와 방소가 없는 것이므
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존재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리理의 주재성을 부정하였다. 이 세상에는
현실적으로 악이 존재하는데, 주자학에서는 리를 존재의 근원인 동시에 가
치의 표준, 즉 선으로 보기 때문에 악을 기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
다. 그러나 리가 기를 주재하면서 동시에 기로 인해 선을 실현시키지 못한다
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리가 기를 주재한다면 기로 하여금 선하게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대용은 바로 이것을 근거로 하여 리理는 주재
하는 바 없이 기가 하는 바를 따를 뿐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홍대용은
리의 실재성 및 주재성을 부정하였다. 홍대용에게 있어 리는 기 가운데 있을
뿐 더 이상 기보다 앞서 존재하면서 기를 규정 짓는 존재의 근원이 아니
었다. 여기에다 그가 존재의 궁극적 근원으로서 태극을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탠다면 그의 기론과 이이의 주기론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홍대용의 기론이 갖는 또 다른 특징은 역시 음양오행설을 부정했다는 데
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는 "음양에 얽매이고 의리에 빠져 천도를 밝히지
못한 것은 선배 유학자들의 잘못이다"라고 하여, 자연 현상을 무조건적
으로 음양으로 설명하는 음양설을 비판하였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그는
계절의 변화라든가 계절의 변화에 따른 추위와 더위를 음양의 변화로 설명하
는 것을 비판하는 대신에 햇빛의 멀고 가까움이나 바로 비춤과 비스듬히 비
춤으로 설명하였다. 만물이 화생化生 수장收藏하는 것은 "실로 햇빛(日火)
의 얕고 깊음(淺深)에 달려 있는 것이지 후세 사람들의 주장처럼 천지 사이
에 별도로 음양이라는 두 기가 있어서 때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조화造化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음양설에 대한 비판은
오행설五行說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는 근원적인 요소가 꼭 다섯이
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육부六府, 팔상八象, 사대四大와 같
은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오행五行 가운데 목木과 금金은
일日(火)과 지地(水, 土)의 파생물이어서 화火·수水·토土와 동열에 놓을
수 없다고 보았다.


홍대용의 기론이 전통적인 기론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서양의 청몽기淸
蒙氣의 개념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청몽이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 즉 대기를 의미한다. 실학자들이 이러한 서양의 청몽기
설을 접했을 때 보인 반응은 전통적인 기와 청몽기, 즉 대기를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리와 더불어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범주로 설정되었던 기가 구체적인 사물의 하나가 된다. 더군다나 청몽기를
언급하면서 그 기가 인간의 시각을 왜곡시킨다는 경험적 사실을 지적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의 경험적 성격이 더욱 뚜렷해진다. 주자학 이론 체
계에서 기는 그런 구체성보다는 리와 더불어 존재를 설명하는 추상적 범주라
는 성격이 강하다. 물론 기라는 개념이 도출되기까지는 공기나 호흡과 같은
구체적인 것에 대한 경험이 선행되었고 기가 리와는 달리 물질적 존재를 반
영하는 개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사물인 공기
와 동일한 차원의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홍대용의 기는 모든 존재를 설명하
는 전통적인 의미의 기이면서도 청몽기라는 개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체적
인 감각 대상으로서의 기라는 이중적인 성격이 혼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
다.


홍대용의 기론의 특징은 생성론의 영역에서도 발견된다. 그는 만물의 생
성을 두 단계로 나누어 이해한다. 처음에는 기로 가득 차 있는 태허의 상태에
서 우주(또는 천지)가 생겨나며, 일단 생겨난 우주에서 인간과 사물이 생겨난
다. 태허는 안도 밖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기가 쌓이
고 모여서 형질을 이루는데, 이것이 땅과 해와 달과 별이다. 즉 우주가 생성
된 것이다. 만물의 생성은 천지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천지 사이를 가
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물론 기이다. 이러한 기의 작용으로 만물이 생겨나지만
이때는 기만이 아니라 해와 땅이 함께 작용을 한다. 홍대용에 따르면
만물이 생겨나는 데는 하늘(氣), 해(火), 땅(水, 土)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땅은 만물의 어머니이고 해는 만물의 아버지이며 하늘은
만물의 할아버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성 과정은
태극, 음양, 오행, 만물로 이어지는 주자학적 생성 과정과 다르다. 뿐만 아
니라 만물의 생성 과정에서 기만이 아니라 해, 땅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장재
나 서경덕의 기론과도 다르다.


이러한 홍대용의 생성론은 서양의 사행설에 영향을 받았을 터이지만, 여
기에는 좀더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는 하늘, 해, 땅 셋을 만물 생성의
근원이라고 보고 있어서 하늘을 기로, 해를 화로, 땅을 수와 토로 바꾸어
놓으면 서양의 사행설과 일치한다. 그러나 홍대용이 이 넷을 만물의 구성
요소로 본 것은 아니다. 그는 기, 해, 땅이 만물의 생성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했을 뿐 만물의 구성 요소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과 사
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햇빛(日火)에 근본한다. 만약 하루 아침에 해가
없어진다면 추운 겨울의 세계가 되니 만물이 소멸된다"라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 땅(수, 토)이라는 것도 기가 모여서 된 기의 산물이므로 모
든 존재는 결국 기로 환원된다. 이것은 서양의 사행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홍대용의 생성론의 의미는 사행설과의 관련성보다는 경험주의적인
생성론이라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실제로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는 공기, 태양, 땅(물, 흙)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셋을 생성의
근원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경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험주의적 생성
론을 전통적인 기론으로 재구성해 낸 것이 홍대용의 생성론이었다.

 

2. 정약용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려는 강한 문제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과 자연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는 주자학
적 사유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 없이는 불가능하다. 주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객관적인 원리이자 궁극적인 존재인 리로서의 태극을 가지고
있다고 보며, 그러한 점에서 인간과 만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정약용은 인간
만이 영명靈明의 마음을 부여받아서 인의예지를 실천할 수 있을 뿐이며, 인
간 이외의 것은 그러하지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의예지는
인간의 실천을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일 뿐이지 그 어떤 존재에 내재해 있는 
선험적인 원리가 아니다. 더욱이 사물들의 모든 작용은 필연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정약용의 생각이었다. 닭이 새벽에 울고 개가 밤에 짓는
것과 같은 동물의 세계와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잎이 지는 식물의 세계는
일정한 법칙에 의해서 전개되기 때문에 인간의 실천 영역과는 달리 자유 의
지에 의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가  식물, 동물, 인간의 성을 3등급으
로 나누어 이해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존재 이해에 근거를 둔 것이다.
정약용은 리를 근원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자학의 리기
론적 이론틀에서 벗어나 있다. 정약용에 따르면 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
며 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그 무엇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리가 자존적 존재가 아니라 의존적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약
용의 리는 주자학에서처럼 만물을 낳는 궁극적 원인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만물을 지배하고 규정하는 주재자일 수도 없다. 반면에 기는 스스로 있는
존재이다. 그는 리와 기를 다음과 같이 비교 설명한다.

 


기氣는 '스스로 있는 존재'(自有之物)이고 리理는 의존적인 존재(依附之品)이다.
의존적인 존재는 반드시 '스스로 있는 존재'에 의존해야 하므로 기氣가 발發하자
마자 곧 이 리理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기발이리승지氣發而理乘之라고 하면 옳지
만 리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라고 하면 옳지 않다. 왜냐하면 리理는 스스로 설
수 있는 존재(自植者)가 아니므로 먼저 발發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리가 기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 리는 이제 더 이상 기를 낳고 기를 규정하는
존재일 수 없다. 정약용의 이러한 생각은 자연히 기발일도설氣發一途說로
귀착된다. 리는 자존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기보다 먼저 발할 수 없다. 그러
므로  사단 칠정을 포함한 모든 자연 현상은 기가 발하고 리가 그것을 타고
있는 형태가 된다. 정약용은 리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성리학
의 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리의 어원적 의미를 분석하여 리란
옥석玉石이나 나무의 결(脈理)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이렇게 되면 리
가 기에 선행하면서 기를 규정 짓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결이라
는 것은 어디까지나 옥석이나 나무의 결이므로 옥석이나 나무보다 선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옥석이나 나무가 존재한 다음에야 결
이 존재할 수 있다. 옥석이나 나무가 존재라면 결은 그 존재의 존재 형식
내지는 존재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궁극적 존재로서의 리를 인정하지 않는 정약용은 만물의 생성을 태극으로
부터 분화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태극이란 주자학에서와는 달리
시원적인 물적 존재이다. 그는 "태극이란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이전이며
한데 엉켜 있는 유형의 시작이요, 음양의 배태이며 만물의 태초이다"라
든가 "태극이란 음과 양이 뒤엉켜 있는 것이다. 태극이 나뉘어 하나의 양과
하나의 음을 낳는다는 말은 옳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태극
이 물적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그것을 명확하게 기라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기라는 것을 다음의 언급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공영달孔潁達은 태극을 원기元氣로 여겼고, 또 노자老子의 '도가 일을 낳는다'라
는 말을 인용하여 태극으로 삼았으니 이것은 오히려 이치에 가깝지만, 후세 사람
들의 주장은 태극을 떠받들어 형이상의 존재로 삼고 매양 '리이지 기가 아니며
무이지 유가 아니다'라고 하니, 형이상의 존재를 어떻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겠는
가.


이 글에서 보듯이 정약용은 태극을 리와 같은 형상을 초월한 존재로 보는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태극을 기라고 분명하게 말
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태극을 원기元氣로 해석한 공영달의 설을 이치에
가깝다고 한 것으로 보아 태극은 기와 유사한 물질적 실체인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은 만물의 생성 과정을 태극이 분화하여 하늘과 땅이 되고, 그 하늘과
땅이 분화되어 물과 불이 생겨나고, 이 넷이 다시 분화되어 하늘, 땅, 물,
불, 우레, 바람, 산, 못이 된다고 설명한다. 시원적 물질인 태극이 하늘
과 땅으로 분화되는데, 가볍고 맑은 것은 위에 위치하여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에 위치하여 땅이 된다. 그리고 그 분화의 구체적인 형식은
불분명하지만, 하늘과 땅이 다시 분화하여 하늘, 땅, 불, 물이 되며, 나아가
하늘과 불의 상호 작용에 의해 바람과 우레가 생겨나고 땅과 물의 상호 작용
에 의해 산과 못이 생겨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정약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생겨난 여덟 가지의 사물들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물이 생겨났
다고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생성론은 기의 개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는 음양오행으로써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는 주희의 이론을 부정한다는 것이
다. 그는 음양의 이름이 햇빛의 비침과 가리워짐에서 나왔다고 이해한다.
해가 가리우면 음陰이라 하고 해가 비추면 양陽이라고 하므로 음양은 본래
체질이 없고 단지 명암만 있는 것이고, 따라서 원래 만물의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오행에 대해서는 오행이 만물 중에
다섯 가지 사물에 불과하므로 다른 사물보다 더 근원적인 존재일 수 없다는
논리적 추론과 동물을 해부해 보아도 목, 금 등의 물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경험적 사실을 들어 존재의 생성에 대한 오행론적 이해를 거부하고 있다.
둘째는 그가 만물의 생성을 논하면서 의도적으로 기라는 용어를 쓰지 않
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기를 만물의 질료가 되는 보편 물질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는 "기의 됨됨이를 살펴보지 않으
면 안 되는데, 만일 후세의 리기설과 뒤섞어 말하면 매우 잘못된 것이다"라
고 전제한 후 "저 몸에 가득 차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기다. 이 기가 사람 몸 가운데 있음은 마치 유기游氣가 천지天地 가운데
있음과 같다. 그러므로 저 사람 몸에 있는 것도 기라 하고 이 천지에 있는
것도 기라고 한다. 모두 리기설에서 말하는 기와 같지 않다"라고 하여 주희
의 이론체계에서 리와 더불어 가장 기본적인 존재론적 범주로 설정되어 있는
기를 부정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말하는 기는 몸안에 있는 호연지기와
천지 사이에 있는 유기와 같은 특정한 존재이지 보편 물질이 아니라는 의미
이다.

 

3 최한기


 

최한기崔漢綺(1803-1877)가 이해한 자연은 인간의 의식 바깥에 객관적으
로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인간과 무관하게 운동 변화
하는 객관 존재이다. 인간이 없더라도 천지는 스스로 운동 변화하기 때문에
내가 있고 없고는 천지의 운동 변화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시 말해
자연이란 하늘의 영역이므로 사람의 힘으로 증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은 인간 행위의 도덕성 여부
가 자연의 운행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른바 천인감응설에 기반한 전통적인
자연 이해와 구별된다.


최한기가 이해한 자연은 도덕성을 본질로 하지 않는다. 최한기에 따르면
하늘은 만물을 낳는 데 뜻을 두지 않으며 땅도 만물을 기르는 데 마음을 두지
않는다. 만물 스스로가 하늘의 힘을 빌려 생겨나고 땅의 힘을 빌려 자라날
뿐이다. 천지의 생의를 부정하는 이 항목은 천지의 불인不仁을 근간으로
하는 도가의 자연관을 연상시킨다. 최한기에 따르면 만물이 생겨났다가 소
멸되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 이해는 자연 내부에
도덕성이 개입될 여지가 봉쇄되고 만다. 왜냐하면 자연의 영역은 필연의 영
역이지 선택과 결단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인용한 '천지와 그 덕을 같이한다'는 말은 자
연과의 도덕적 합일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에 근거한 적절
한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자연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란 곧 자연의 이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뜻한
다. 최한기는 자연의 이치라는 뜻으로 물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최한기의
일차적인 인식 대상은 물리였다. 물리의 정확한 인식이 최한기 학문의
관건인 셈이다. 이렇게 리를 도덕적 원리로서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으로 이
해하고 있다는 것은 {추측록}의 [추기측리推氣測理]에서 구체적으로 다루
고 있는 내용이 지구구형설, 지전설, 해와 별의 타원 궤도, 별의 운행 속도,
밀물과 썰물의 원인, 낮과 밤 또는 겨울과 여름이 생기는 원인, 바람이 생기
는 원인과 같은 것이라는 데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최한기의 리는 도덕적
성격이 탈각된 물리의 성격이 강하다. 이렇게 물리가 학문의 핵심 분야로
부각된 것만으로도 학문관의 의미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연
과학이 성립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최한기가 본 우주는 천지와 만물 그리고 그 사이에 꽉 차 있는 기로 구성되
어 있다. 기는 온 우주에 충만되어 있어 한 터럭의 빈틈도 없다. 그래서 기가
없는 텅 빈 공간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그리고 그렇게 충만된 기 속에
만물이 존재한다. 못에 잠긴 물체가 물에 흠뻑 젖어 있듯이 만물은 우주의
충만된 기에 젖어 있는 것이다. 우주의 운행과 사람 및 사물의 생성과
소멸은 모두 대기大氣의 운화運化로 인한 것이 아님이 없다. 비록 아주 미세
한 사물일지라도 이 기화氣化를 떠나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최한기는 기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을 형질(質)이라 한다. "기가 응결하
면 형질이 되고 형질이 흩어지면 다시 기가 된다" 즉 "형질은 기가 형체
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기가 모인 형질만으로는 사물이 될 수 없다.
사물의 생성을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기와 형질의 합이다. 기가 모여서 이루
어진 형질과 기 자체가 합해져서 사물이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기가
모여서 형질이 되고 그 형질 속에 기가 내재함으로써 하나의 사물이 생겨나
는 것이다. 이때 사물 안에 내재해 있는 기를 본래의 천지의 기와 구분하여
형체의 기 또는 형체의 신기神氣라고 한다.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존재는 천
지의 기와 사물인데, 이 사물이 형질과 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형질도 기가 응취된 것이므로 결국 모든 존재는 기 하나로 환원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는 존재의 궁극적 실체이자 생성의 근원적 원질이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절대적 보편자의 의미를 지닌 리는 최한기의 철학 체계 내에
서 기의 조리가 됨으로써 그 비중이 현저하게 감소된다. 최한기가 리를 기의
조리로 보았다는 것은 리를 기의 속성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가 있으면 리가 있고 기가 없으면 반드시 리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서는 논리적으로 기에 앞서서 존재하며, 현실적으로 기의 움직임을 주재하
는 소이연所以然으로서의 리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리는 존재 개념이
아니라 기라는 존재에 부속된 속성일 뿐이다. 그러므로 최한기의 존재론은
기일원론氣一元論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최한기는 자연 현상을 설명할 때나 존재 자체를 설명할 때 음양 및 오행의
개념을 도입하지 않는다. 그는 소리의 발생을 음양으로 설명하는 것을 반대
하며, 간지를 가지고 오행의 생극에 배정하여 사람의 운명을 논하고 귀
천을 판단한다든가, 약을 오행에 배속시키고 장부를 오행에 배속시켜
상생상극의 설이 있게 된 것을 비판한다. 존재론의 영역에서도 그는 근
원적 존재로서의 기와 기의 운동 변화만을 인정할 뿐이다. 특히 오행에 대해
서는 그것이 구체적인 사물일 뿐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음을 구체적으로
비판한다. 이렇듯 최한기는 오행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서양의 사행설
도 부정한다. 그에 따르면 오행이든 사행이든 그것은 형질의 기이고, 그러한
만큼 그것들은 운동 변화하는 기의 파생물에 불과하다.


(음양)오행은 사물들의 분류 체계이다. 음양오행설에서는 모든 사물들을
둘 또는 다섯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 유형들의 상호 관계로 변화 현상
을 설명한다. 이때 음양오행은 그 유형들을 대표하는 상징이고 상생상극은
그 유형들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최한기는 음양오행을
단일한 기로 환원하고 상생상극을 단일한 기의 단일한 운동, 즉 활동운화로
환원하고 있다. 이것은 니담의 이른바 자연에 대한 정성적定性的 이해가 정
량적定量的 이해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된다는 의미가 있다. 최한
기의 신기神氣는 인간의 몸 안에서 정신적인 작용을 담당하는 주체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몸 밖에서는 물질적 특성을 보이는 존재이기도 하다. 기를
설명함에 있어 최한기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의 유형성을 강조한
다는 것이다. 천지 사이에는 오직 형질의 기가 있을 뿐 무형의 기는 없다. 
 

기는 천지간에 가득 차 있으며 그 본성은 활동운화活動運化이다. 그것
은 현상 세계 이전이나 너머에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본체가 아니라 현상 세
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구체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일상 생활에서
늘 쓰는 것이다. 그의 관심사는 현재의 기가 어떻게 운동 변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한기의 기는 경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기의 형질은 맑고 막힘이 없으며 끊임없이 움직이므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구가 필요하다. 최한기는 그의 저술 곳곳에서
기구에 의한 기의 증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발을 물동이의 물 위에 엎었을
때 물이 주발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70치의 비약  에서 69치까지는
공기를 수축할 수 있지만, 그 수축되어 단단해진 나머지 1치의 공기는 더
이상 억지로 수축할 수 없는 것 등은 기가 형질이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
다. 이와 같이 최한기는 기의 형질을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 기는 형질이
있는 존재이고, 그래서 그것은 측정이 가능하고 수량화가 가능하다. 기
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자연 대상의 탐구에 수학적 방법의 도입을 가능하게
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기 개념은 전통적인 기론자들
의 기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부분적으로는 오늘날 공기의 외연과 겹치는
측면이 있다. 
 
5. 맺음말


 

조선 유학에 있어 기는 현실 세계의 존재와 그 존재의 변화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기로 존재의 세계를 설명할 때는 3개의 층차가 있다. 첫째는 자연
학의 영역으로서 현실 세계의 존재와 그 존재의 변화를 설명하는 경우이다.
이때는 기가 사물들을 구성하는 물적 존재가 된다. 우주 공간에는 기가 가득
차 있는데, 그 기가 모여서 구체적인 사물들이 생겨나며, 아울러 그렇게 생
겨난 현실의 구체적인 사물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기의 상태로 되돌아
간다는 것이다. 즉 현실 세계는 기에서 구체적인 사물들로, 그리고 구체적인
사물들에서 기로 끝임없는 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둘째는 우주생성론의 영역이다. 여기서 기는 우주의 시원이다. 현실 세계
가 생겨나기 이전의 원초적인 물질 형태가 바로 기인 것이다. 흔히 원기로
불리면서 현실의 기와 구별되는데 장재나 서경덕은 이것을 태허라는 개념으
로 나타내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우주의 시원으로서의 기와 현실
세계(의 기)는 시간적 선후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주희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소강절의 역사 인식에 정형화되어 있다.
셋쨰는 존재론의 영역이다. 현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기로 이루어져 있다
고 본다는 점에서 첫째와 다를 바 없고 기로부터 모든 존재가 생겨난다고
보는 점에서는 두 번째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존재론의 영역에서의 기는
개별적이고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성격을 지닌 첫 번째와는 달리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다시 말해 존재의 본질을 해명하는 작업이다. 즉 존재를
근본적이고 통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것들의 배후에 있는 근본적인
존재를 탐구한 결과이다. 그것은 H₂+ O와 물질의 차이이다. 그리고 생성론
영역에서의 기가 시간적인 근원이라면 이것은 논리적인 근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기론의 출발은 첫 번째였다. 하지만 인간의 인식 체계의 진전에 따라 첫
번째 기는 그 의미가 축소되고 둘째의 기가 강조되기도 했고, 성리학에 이르
러서는 세 번째가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장재나 주희가
천문 현상이나 기상 현상과 같은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현상을 기로 설명했다
는 점에서 첫 번째 의미가 배제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지녔던 존재의 시원에
대한 강렬한 문제 의식에 비추어 보아 두 번째 의미가 축소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는 이미 경험적 의미가 매우 약화되었다. 이 때 기는 이미
기가 아니고 음양오행이다. 그러나 음양오행은 경험적 개념이 아니다. 이를
테면 어떤 기가 있을 때 그것이 음인지 양인지, 금목수화토 가운데 어느 것인
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 기는 이미 경험의 영역을 떠나 관념의 세계로 편입
된 것이다. 비록 기는 형이하의 존재이지만 그 기에 접근하는 자세는 매우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기의 추상적 성격이 부각되는 것은 존재
를, 그리고 나아가서는 존재의 생성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내려는 철학적 관
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존재나 현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
명이 가능하겠지만 모든 존재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추상의 과정
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추상적인 개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리와 기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조선조 성리학자들은 차이는 있지만 리와 기에 의해서 자연, 나아가 존재
일반을 설명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리기이원론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기만
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기일원론자들도 어떤 형태로든 리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만큼 조선 유학에 드리워진 주희의 그림자
가 컸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희의 리기이원론에 대한
이해가 일률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어서, 리기이원론을 고수했던 학자들 사이
에서도 기의 작용에 대한 리의 규정성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적지 않은 이론적 편차를 보였다는 것도 아울러 인정해야 할 것이다.


고려 말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주자학은 정도전과 권근을 거치면서 일단
이론적 틀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규보李奎報로 대표되는 고려
후기의 기론적 전통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어서, 김시습이나 서경덕의 기
론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6세기 중반
이황과 이이와 같은 걸출한 이론가가 등장하면서 주희의 리기이원론은 조선
주자학의 주류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음은 물론 이른바 주리론과 주기론이
라는 이론적 분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만물의 물적 측면을 기로
설명한다는 점에서는 기일원론자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
일원론자들이 리를 기에 종속된 존재로 보아 그 자체로 독립된 존재가 아니
라고 이해하는 데 반하여, 이들은 리가 설사 기와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고 하더라도 리는 어디까지나 리여서 기와 구별된 독립적 존재이자 기에 선
행하면서 기를 주재하는 존재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
다. 그리고 주리론과 주기론은 리가 기를 주재하는 정도를 어디까지 인정하
느냐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 내부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편차를 보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황은 태극
(리)이 음양(기)에 선행하면서 음양을 낳는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이는 태
극과 기의 공시 공존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그리고
이황은 리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역할을 강조하여 리동이나 리발을 주장하
는 데 반하여 이이는 리의 원리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이황의 주장을 반대한
다는 점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이후에는 학맥에 따라 이황과 이이의
이론 가운데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편향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조선 주자학
이론의 대체적인 흐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도 양쪽을 절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과 조선 후기에 이르러 임성주의 기일원론과 같은 극단적
인 기편향적 이론과 이항로, 기정진, 이진상 등의 매우 강화된 리 편향적
이론이 등장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기일원론자들과 리기이원론자들을 포함한 이들 성리학자들의 자연관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음양오행의 틀로 자연 세계의 생성, 존재,
변화를 설명한다는 것과 자연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도덕성을 매개로 통합
하여 이해하는 천인감응설의 틀을 견지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실학
자들은 재이설을 부정하는 등 자연과 인간의 영역을 분리하는 시도를 하며
최한기에 이르러서는 자연 세계에서 도덕성을 탈각시키는 분명한 모습을 보
여 주는 데까지 이른다. 그리고 실학자들이 음양오행을 추상적인 범주가 아
니라 햇빛의 유무나 구체적인 사물로 본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
다. 이들의 이러한 자연 이해는 자연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의식적
인 노력의 산물로 보는 것이 온당한 평가일 것이다. 한편 객관주의를 지향하
는 그러한 노력이 기에 적용되었을 때, 그 기는 홍대용, 정약용, 최한기에게
서 보이듯이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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