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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 일반

법가와 한비자

작성자정규훈|작성시간10.05.26|조회수197 목록 댓글 0

춘추전국시대 일부 사상가들은 역사적 전환기의 시대적 상황을 통찰하고 당시의 유가, 묵가, 도가의 三家가 주창하고 있던 복고주의, 도덕정치, 이상주의를 일체 배격하고 오직 현실에 입각한 실제적 정치사상과 정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들은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정책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당시의 군주들은 이러한 인물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상례였다. 이들은 통치방법으로서 다스리는 자의 편에 고도로 집중된 권력을 위임하는 방법을 개발했으며, 이를 이론화하고 합리화시키기도 했는데 이들이 법가의 중추를 이루었다. 또한 이들은 경제와 무력 그리고 법치에 기반을 둔 부국강병책만을 전력을 다해 모색하고 강구하기 시작했는데, 법가사상의 탄생과 성립은 열국간의 약육강식과 역사적 전환기의 와중에서 연마되고 개발되었던 수많은 부국강병책이 그 직접적 기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적 기반을 가진 법가를 체계화한 사람이 바로 한비자이다.
 그리고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약 280 ∼ 233)는 한(韓)나라 귀족 출신으로, 젊어서 진(秦)의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에게 배워 뒷날 법가의 사상을 대성하였다.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한비자는 자신의 생각과 정견들을 입으로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글로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사기》의 〈한비열전〉에 따르면, 한비는 타고난 말더듬이였으나 두뇌가 매우 명석하여, 학자로서는 이사가 도저히 미칠 바 못 되었다. 진의 시황제는 한비의 고분(孤憤) ·오두(五 )의 논문을 보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까지 감탄하였다. 한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왕에게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끝내 진의 공격을 받자 화평의 사신으로서 진나라로 갔다. 시황제는 한비를 보자 크게 기뻐하여 그를 아주 진에 머물게 하려 하였으나, 이사는 내심 이를 못마땅히 여겨 시황에게 참언하여 한비를 옥에 가두게 한 후, 독약을 주어 자살하게 하였다. 한비자가 진나라에서 죽은 뒤 후학들이 그가 남긴 저술을 수집하고 추가하여 편집한 책이 『한비자』인데 모두 20권 55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비자의 역사관은 기본적으로 진보사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은 당시의 시대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개혁과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혁과 쇄신의 방법에 대해서는 상이했는데, 유가는 개혁의 방법으로 요·순 시대를 이상적 시대로 설정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였으며 도가와 묵가들도 사회를 퇴보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공자 이래 여러 학자들은 대부분 고대의 권위 있는 인물에 의탁하여 자신의 학설을 옹호하였는데, 이러한 과거 회고를 통해 이들 철학자들은 복고적 역사관을 만들어 내었다. 즉 인류의 황금시대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였으며, 인간의 구원은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것으로 회귀하는 데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관에 대하여 한비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시대변천의 요청을 파악하여 현실적으로 대처할 것을 주장한다.
 한비자는 여러 면에서 인성을 이기적인 것으로 파악하였을 뿐 아니라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즉 인간은 최소한의 물질적 요건이 갖추어져야 생존이 가능하고 정상적 생활을 영위하 수 있는 물질적 존재라는 것이다. 한비자는 인간은 시대변천, 인구증가 그리고 재화부족에 압박당하여 어쩔 수 없이 투쟁과 쟁탈의 생존경쟁의 와중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간악해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간악해지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한비자가 인간사회의 기본적 조직이라고 파악한 군신관계, 부부관계, 부자관계 또한 이해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한비자 이전의 법가에는 세 가지 파의 사상 계통이 있었다. 첫째는 맹자와 동시대 인물인 신도가 주도하는 학파로서, 그들은 세(勢)가 통치의 가장 주요한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둘째 계통은 신불해가 주도하는 학파로서 그들은 술(術)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셋째 계통은 상앙이 주도하는 학파로서 그들은 법(法)를 강조하였다. 세는 세력, 권위를 말하고, 법은 통제를 말하고, 술은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다루는 방법 또는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말한다.
 한비자는 이 세 가지 학파를 모두 수용하여 발전시켰다. 총명한 군주는 법에 따라서 공평무사하게 행동한다. 이것이 법의 기능이다. 총명한 군주는 귀신과 같이 은밀하게 백성을 통치하는 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지배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이 술의 기능이다. 그리고 총명한 군주는 법을 강력하게 시행시킬 수 있는 위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세의 기능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우선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법을 확립해야 한다. 이 법을 통하여 백성들은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알게 된다. 일단 법이 공포되면 군주는 백성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어야 하며, 세(勢)를 이용하여 상벌을 엄격히 해야 한다. 군주는 특별한 능력이나 도덕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술(術), 즉 신하와 관료와 백성을 다루는 방법만 가지고 있으면 스스로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군주는 어떤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는 한, 그 일을 진행하는데 쓰인 방법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만 상벌의 권위만 지니고 있으면, 무능력자는 - 관직을 준다고 하더라도 무능력으로 인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 자연히 도태되고 능력자만이 남는다. 한비자나 기타 법가들은 현실적인 인간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므로 법가의 통치방법은 실용적이다. 여기에서 인위적 규범을 통한 인간의 교화를 주장했던 순자와 차이점을 보인다. 현실적 인간은 도덕적으로 교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성품은 악하다는 전제 아래서 이러한 통치방법이 제시되었다.
 법가 사상은 혼란에 빠진 당시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대안적 성격으로서 존재했다. 여타 제자백가의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해결책을 배격하고, 냉철하고 합리적인 접근을 통해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국가의 존망을 걸고 전개되는 대규모의 살육적인 전쟁을 막기 위해 법가 사상은 강력한 국가 주도형 통치와 절대군주권의 확립을 주장하였다. 또한 법 제도의 확립과 공평무사한 시행을 통해 사적 이해관계가 국가의 공적 이해를 침범하고 간섭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했으며, 이 점에서 법가는 기존의 유교사상에서 볼 수 없는 근대적 국가원리를 확립했다. 이는 현대 사회의 관료주의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자의적인 통치를 배격하고 공적 관계를 통한 국가 운영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현대 국가의 관료 계층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부정부패와 지역주의·연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유용하다.
 그러나 한계점도 존재한다. 법은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처벌보다는 일반 국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다. 법 중 가장 강력한 법인 형법조차도 범죄자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범죄인의 마그나 카르타’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법가에서 내세우는 ‘법(法)’에 국가 구성원의 인권 보장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단지 효율적인 사회 통제를 앞세운 강제만이 있으며, 이는 개인의 인권에 대한 심각한 유린으로 작용할 수 있다. 법가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운 통일 왕국 진(秦)의 단명은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또한 인위적으로 생겨난 법이 과연 완벽한 사회 통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며, 불가피하게 생기게 되는 제도의 모순과 법의 허점들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법가 사상이 가지는 문제점이다. 그리고 실재하는 군주들이 도덕적이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 법가 사상 , 특히 백성과 신하를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기법인 술(術)의 이론은 자칫 절대 권력을 소유한 통치자들에게서 통치의 편의를 위한 독재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악설적 인간관을 내세움으로써 당시 사회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지나치게 개인의 합리적 측면만을 강조한 나머지 개인의 개성적 측면과 감정적 측면에 대해선 간과했다는 비판도 성립할 수 있다. 군신과 부자와 부부 사이가 어느 정도는 이해 관계에 따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측면만 존재하고 정(情)적인 측면은 존재하지 않는가? 이 점에서 법가 사상이 인간성에 대한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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